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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Sep 30. 2024

28. 마로니에인가, 칠엽수인가?

<양재천 산책>


오스트리아 빈에서 학회가 있었을 때였다. 학회의 짬을 내어 유명한 쇤브룬 궁전을 방문하게 되었다. 쇤브룬 궁전은 유럽 최대의 왕가 합스부르크가 의 위세를 드러내는 궁전인지라 궁전 내부도 화려했지만 잘 가꾸어진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정원에는 각을 맞추어 다듬어진 아름다운 나무들과 분수대, 석고상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쇤브룬 궁전 앞을 걷는데 누렇게 물든 가로수가 큰 잎을 떨어뜨려 길 위가 온통 누런 방석을 깔아놓은 것 같았다. 가을이었고 그 가로수길이 너무 멋져 잊을 수 없는 풍경으로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 

떨어진 나뭇잎 사이로 밤같이 생긴 큰 열매들이 떨어져 있었다. 하도 윤기가 흐르고 탐스럽게 생겨 나도 모르게 그 열매를 주워 입에 넣고 깨물어 보았다. 떫고 쓴맛이 입안에 가득 몰려와 본능적으로 뱉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텁텁하고 씁쓰레한 맛은 혀를 마비시킬 듯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이것이 나와 마로니에 나무와의 첫 조우였다. 그전에 마로니에 나무를 본 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오스트리아에서 그 나무를 만난 후 나는 그 나무가 마로니에인 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마로니에 열매로 인해 아무 열매나 먹어보아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 나무에 두 번째로 매료되었던 것은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에서였다베르사유 궁전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거주하던 궁인지라 크고 화려하기가 상상을 초월하였다내부뿐만 아니라 정원도 너무 넓고 화려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지쳤다나무들은 각을 지게 잘라 인공미가 넘쳤다

그런데 그 옆의 쁘띠 트리아농(이궁離宮)으로 발길을 옮겼을 때 정원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 마로니에 숲으로 인해 눈이 훤히 트였다아무런 인공미를 가하지 않은 채마음껏 자란 마로니에 나무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마로니에가 얼마나 멋진 나무인지 나는 그때 절감했다

아직 이른 가을이라 멋진 단풍이 들지는 않았지만마로니에 나무 자체가 풍기는 멋은 필설로 다하기 어려웠다나는 마로니에 나무에 반해 그 나무 아래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왔다 갔다 하였다샹젤리제 거리의 마로니에 가로수는 파리의 명물이기도 하지만 쁘띠 트리아농 궁전보다 멋지지는 않았다사실 마로니에(marronier)라는 멋진 이름은 프랑스명이다    


베르사유 쁘띠 트리아농 궁전의 마로니에 숲


마로니에라고 하면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노랫말이 있다. 


...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덧없이 사라진 옛사랑을 그리며 부르는 노래에 마로니에 나무가 등장한다. 헤어진 옛 연인의 이름은 잊었지만, 마로니에를 생각하면 그때의 가을이 생각난다는 그 쓸쓸한 느낌이 가을과 너무 어울려 가을이 되면 자주 흥얼거렸던 노래였다. 그래서 지금도 동숭동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에는 젊은 청춘들이 모여드는가 보다. 


그런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심어진 나무는 마로니에가 아니고 일본 칠엽수이다. 이곳은 옛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였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제대에 근무하던 한 일본인 교수가 대학 본관 앞에 일본 칠엽수를 심은 것이 오늘날 마로니에 공원의 효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로니에나 일본 칠엽수나 같은 칠엽수 나무이다. 칠엽수(七葉樹)는 말 그대로 긴 잎자루 끝에 손바닥을 펼쳐 놓은 것처럼 5~7개의 작은 잎이 달려 있는 모양의 나무를 통칭한다. 두 나무는 수형이나 꽃이 피는 시기, 꽃모양 등이 비슷하게 생겨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일본 칠엽수가 많아 마로니에와 조우하기는 그만치 어렵다. 


5~6월이 되면 마로니에도일본 칠엽수도 꽃을 피운다. 하늘을 향해 핀 원추형의 큰 꽃무더기의 모양은 마로니에나 일본 칠엽수나 비슷하지만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두 꽃의 모양이 좀 차이가 난다. 

마로니에의 경우 핑크빛이 많이 나고 꽃무더기의 모양도 약간 성글게 보인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마로니에는 꽃 중앙에 분홍색 점이 있어 원추형의 꽃무더기 자체가 전체적으로 분홍색을 띤 것처럼 보인다. 

    

마로니에 나무의 꽃

    

마로니에와 서양칠엽수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열매를 살펴보는 일이다. 마로니에의 열매에는 돌기모양이 확실히 드러나므로 매끈한 모양의 일본 칠엽수와 구분이 확연해진다. 돌기는 어린 열매일 때부터 그 양태가 보이다가 열매가 다 자라면 더욱 분명해진다. 

    

좌: 마로니에 열매: 껍질의 돌기가 확연하다 우: 일본칠엽수의 열매


앞에서 마로니에 공원의 칠엽수가 마로니에로 불리는 서양칠엽수가 아니고 일본 칠엽수라고 하였는데, 사실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칠엽수는 일본 칠엽수이다. 

양재천에도 멋지게 자란 칠엽수들이 미색을 뽐내고 있는데 이들도 모두 일본 칠엽수들이다. 

일본 칠엽수는 5월경 원추형 미색 꽃이 핀다. 꽃이 마로니에에 비해 촘촘하게 열려 하늘로 곶추선 원통형의 모양이 더욱 확실하다. 

    

양재천의 일본 칠엽수


마로니에 열매에는 탄닌과 사포닌, 약성이 강한 글루코사이드가 들어있어 독성을 띠므로 이것을 먹으면 설사 등의 부작용이 생긴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이 이 열매를 먹으면 안 된다. 하지만 말은 이 열매를 끄떡없이 먹을 수 있는 모양이다. 서양에서는 이 열매를 말에게 먹이는 밤이라고 하여 말 밤(horse chestnut)이라고 부른다.  모르는 식물 열매를 함부로 먹었으니 나는 참 무모한 사람이다. 


일본 칠엽수 종자는 탄닌이 주성분이어서 물에 담가 탄닌만 제거하면 식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칠엽수열매를 이용하여 화과자를 만들어 먹는다. 도치모치라고 하는데 돗토리현에 큰 도치모치 공장이 있다. 나는 실제 이 도치모치 공장을 견학한 일이 있다.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마로니에의 말 밤을 입에 씹었을 때의 쓰고 떫은맛이 기억나서 칠엽수 열매로 과자를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였고 그 과자가 어떤 맛일지 궁금하였다. 

도치모치는 밤을 이용해 만든 화과자와 맛에서 별차가 없었다. 이 과자는 쌀을 거의 구할 수 없었던 산악 마을에서 먹었던 구황작물의 하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칠엽수를 많이 심고 있으므로 칠엽수 열매를 이용한 요리를 시도해 볼 만하다고 여겨진다. 

    

일본 칠엽수: 성인순 그림

성인순 그림: 칠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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