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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Sep 30. 2024

30. 양재천의 가래나무


양재천을 걷다가 대치중학교 근처 둑길에서 알지 못하는 나무를 마주하였다. 나무는 늘씬하고 시원시원하게 뻗어 올랐고 잎은 하나의 잎자루에 작은 잎이 열 개 너머 달려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가죽나무 같기도 하고 호두나무 같기도 한데, 자세히 보니 호두처럼 생긴 원추형의 열매가 서너 개 뭉쳐 달려 있었다.

나무가 궁금하여 식물 사전을 한참 뒤지다가 그것이 가래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식물에 호기심을 가지다 보니 웬만한 나무 이름은 낯설지 않은데 가래나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무는 주로 중부 이북 지방에서 자란다고 하니 남부지방 출신의 내가 잘 보지 못했던 나무였던가 보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가래나무는 우리 땅에서 군락을 이루며 살아온 우리의 토종나무였다. 가래라는 말도 농기구 쟁기의 순우리말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양재천의 가래나무

양재천에 가래나무가 있다. 자세히 보면 추자 열매가 보인다.

재생 44             

가래나무인 줄을 알고 보니 양재천에도 이 나무가 꽤 눈에 뜨인다. 이곳에 왜 가래나무가 있는지 궁금하였는데, 대치동 선경아파트 후문 입구에 큰 가래나무가 한그루 서 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양재천의 가래나무는 이 큰 나무에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밖에도 대치유수지 쪽에도 가래나무가 보인다. 역시 알면 보이는 것이다.

이제 양재천을 걷다가 이 나무를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는 일만 남았다.     



대치동 선경아파트 후문 입구에 서 있는 가래나무  : 수꽃이 주렁주렁 열렸다.


황해도 민요에 나무 이름을 풀이한 재미있는 노래가 전해져 오는데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나무이름 황해도 민요>

칼로 찔러 피나무, 가다 보니 가닥나무

오다 보니 오동나무, 십리 절반 오리나무

방구 뀄다 뽕나무, 입 맞췄다 쪽나무

사시사철 사철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물에 둥둥 뚝나무, 다리 절뚝 전나무

산에 올라 산나무, 들에 내려 배나무

덜덜 떨어 사시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할 수 없이 가야나무, 씨름해서 젓나무


나무 이름을 열거해 부르는 이 민요를 들으면 우리 조상들의 해학이 느껴져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이 노래 중에 가래나무가 등장한다.


-오자마자 가래나무-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호호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 오래된 민요에 등장할 만치 가래나무는 우리 민족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나무였던가 보았다. 내가 모르고 살았던 것뿐이었다.


가래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야생하는 산호두 나무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가래나무는 한자로는 추목(楸木)이라고 부르고 그 열매는 추자(楸子)라고 한다. 추자는 호도처럼 생겼다. 그러면서도 껍질이 호두보다도 훨씬 단단하여 좀처럼 깨지지 않으므로 불가에서는 이것을 둥글게 갈아 염주를 만들었고, 일반인들은 또 향낭이나 노리개 또는 조각의 재료나 상감을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요즈음도 노인들이 추자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래나무의 추자: 호두처럼 생겼으나 호두보다 훨씬 단단하다.

    

가래나무를 알고 영남내륙지방을 여행하면서 보니 곳곳에 가래나무가 많았다. 역시 알면 보이는 것이다. 최근 청송의 주산지를 다녀오면서 그곳에 가래나무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산지라고 하면 물한가운대에 서있는 왕버드나무가 유명하지만 가래나무 숲이 멋지게 펼쳐져있다는 사실은 잘 모를 것 같다. 나는 아는 자 만의 기쁨을 흠뻑 맛보면서 가래나무 아래에서 행복해하였다.

    

주산지 입구의 가래나무


    

우리나라 곳곳에 가래골이란 지명이 있는 것만 보아도 가래나무가 우리나라에 많았나 보았다. 양주에 송추골이라는 아름다운 계곡이 있는데 이 송추골은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송추골로 야유회를 갈 기회가 있으면 주변에 가래나무가 있는지 눈여겨볼 일이다.


한편, 가래나무줄기나 덜 익은 가래는 독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이것을 두들겨서 강이나 냇물에 넣으면 그 독성으로 인해 물고기가 잠시 기절해 물에 뜨는데 그때 물고기를 잡는 데 썼다고 한다. 그 효과가 4km를 간다고 하니 독성이 상당히 강한 나무인 것 같다. 이런 용도로 사용된 또 다른 유명한 나무에 때죽나무가 있다. 우리 어릴 때에도 봄에 하얀 때죽나무 꽃이 피고 난 후 열매가 열리면 동네 오빠들이 이 열매를 으깨어 피라미 등을 잡아왔던 기억이 있다.

    

때죽나무 열매



이 나무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성분을 만들어 내는데 사람들이 엉뚱한데 사용하니 누가 더 현명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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