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산책>
5월이 되면 양재천의 백합나무가 꽃을 피운다. 이름 그대로 나무에 피는 백합처럼 커다랗고 둥근 접시 모양의 꽃이 핀다. 워낙 나무가 키가 크고 꽃 색깔도 유난스럽지 않아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언제 꽃이 피었는지 알 수 없는 나무이다. 그래서 이 나무 곁을 지날 때마다 나무를 올려다보며 잘 관찰해야 꽃을 만날 수 있다. 백합나무의 꽃은 연두색을 띤 노란색으로서 꽃 밑동에는 노란색의 테가 확연하다.
백합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나무로써 우리나라에는 1900년 초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습기를 좋아하여 전국의 습기 있는 산기슭이나 하천 유역에서 잘 자란다고 하는데 양재천에도 이 나무들이 마음껏 위세를 펼치며 자라고 있다. 개중에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도 있다. 이름표에는 ‘목련과, 백합 모양의 꽃이 핀다. 이산화탄소 흡수능력이 뛰어나서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북아메리카 원산이다’라고 적혀 있다.
양재천에서는 영동 5교 근처, 체육시설이 있는 곳의 나무가 수형이 가장 아름답다.
백합나무는 원산지인 미국에서는 키가 100미터 이상 자라고 300년씩이나 산다고 한다. 백합나무는 백악기 때부터 지구상에 널리 자란 나무로 밝혀져 있기도 하다. 중국에도 중국 백합나무가 있는데 국가 2급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을 정도로 귀하게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이 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짙어 가로수로 추천되고 있다고 했는데, 자세히 보면 잎 모양이 독특하다. 마치 잎끝을 칼로 베어놓은 듯 뭉툭한 것이 어느 나뭇잎에서도 볼 수 없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나뭇잎들이 유선형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백합나무만 뭉툭하게 잘라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어느 날 양재천에서 백합나무의 꽃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대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청년이 자전거를 세우며 “뭐 하세요?” 하고 물었다. 백합나무에 꽃이 피었다고 알려줬더니 그 나무를 올려다보던 청년이 “저 나무에도 꽃이 피는지 몰랐어요. 꽃이 참 예쁘네요”라고 하며 한참을 같이 올려다보았다. 청년의 반응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 꽃을 바라보며 “참 예쁘네요”라고 느낄 수 있는 그 마음이 아름다웠다. 부디 그 마음이 세파를 겪으면서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보았다.
어떤 풍경을 떠올릴 때면 늘 나무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참 이상한 일이다. 예전에 근무하던 학교의 연구실을 생각하면 연구실 창 앞에 버티고 서 있던 나무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늠름히 창 앞에 버티고 선 이 나무는 나의 오랜 친구였다. 논문을 쓰다가 잘 안 풀릴 때 연구실을 서성이다가 나무를 바라보았고 커피를 마실 때도 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무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지 늘 연구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 창문을 열고 나무에게 ‘굿모닝’하며 아침 인사를 건넸고 나무는 화답이라도 하듯 싱그러운 푸른 잎을 살짝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어느 해 봄날, 나는 그 나무에 가득 매달린 녹색 꽃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지 끝마다 접시같이 생긴 커다란 꽃들이 매달려 있었다. 녹색의 나뭇잎 사이에서 연두색의 꽃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워낙 튤립같이 큰 꽃이 나무에 잔뜩 매달려 있으니 발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연두색의 수수한 색깔의 꽃이지만 꽃이 피자 나무 전체가 화사하게 일어나는 것 같았다. “아! 저 나무에도 꽃이 피는구나” 하는 발견이 내 마음을 신선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나무가 백합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나무의 이름을 알자 백합나무는 더욱 정다운 친구가 되었다.
어린 왕자는 자기 별에 날아온 한 송이의 장미꽃과 제대로 된 사랑을 나누지 못하다가 지구에서 수천 송이의 장미꽃을 발견하자 그제야 자기 별의 장미를 그리워하며 울었다고 했다. 양재천을 걷다가 백합나무에 핀 둥근 꽃을 발견하자 근무하던 학교 연구실 앞의 백합나무가 생각났다. 내 연구실 앞을 지키던 그 백합나무는 내가 연구실을 떠난 다음에도 여전히 잘 있는지 궁금하다.
백합나무는 이제 어느 교수의 연구실 안을 훔쳐보고 있을까? 누가 나처럼 그 나무를 바라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아름답게 꽃을 피운 그 나무에 아무도 눈길조차 안 준다면 나무가 너무 슬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