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산책>
가을이 깊어지면서 이제 대부분의 잎들은 떨어지고 단풍나무만 붉게 물들어 있다. 홀로 남은 단풍나무의 단풍이 너무 붉어 그 요염함에 시선을 뺏긴다.
“단풍나무는 왜 저렇게 불타고서야 잎을 떨어뜨릴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았다.
그러다 문득 단풍나무가 가장 늦게까지 붉은색을 유지하는 이우는 단풍나무가 키가 작은 교목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단풍나무만 있어 햇볕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경우라면 예외겠지만, 숲 속의 단풍나무들은 대개 키 큰 나무 사이에서 자라고 있다. 그럴 경우 햇볕을 충분히 받기가 어렵다.
그런데 단풍나무의 아름다운 단풍색은 안토시안이라는 붉은색이다. 안토시안은 햇볕을 받아서 합성이 된다. 이 때문에 키 큰 나무들이 모두 잎을 떨어뜨리고 나서야 단풍나무가 아름답게 단풍이 들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게다가 단풍나무 잎들은 매우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단풍나무 종류가 많이 있지만 공통된 특징은 잎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잎들이 왜 이렇게 공들여 잎을 갈라지게 하고 톱니를 예쁘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것도 궁금하였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쳐다보며 또다시 이 의문이 떠올랐다.
“왜 단풍나무는 에너지를 쓰며 잎을 여러 갈래로 쪼개고 톱니장식을 요란하게 하는 걸까?
미인이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요란한 화장을 하는 것처럼 이 나무도 요염을 한껏 부리려는 걸까?”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혹시 햇볕을 나누어 가지려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하며 조심스럽게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아! 그때 전기가 팍 들어왔다. 그렇지! 단풍나무나 다른 잎들이 잎을 쪼개는 이유는 빛이 아래로 통과할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틀린 생각일지도 모른다).
물론 단풍나무도 햇볕을 잘 받기 위하여 줄기와 줄기 사이의 간격을 유지하고 잎을 가능한 넓게 벌려 햇볕을 받기 위한 빈틈없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키 큰 나무 아래에서는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잎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아래 잎에까지 볕이 닿도록 진화한 것이 아닐까!
잎을 여러 갈래로 쪼갠 것은 다른 잎에 대한 배려의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놀라운 발견이다. 식물은 이렇게 공생하며 살아가는구나. 단풍나무 잎은 요염을 떨려고 잎을 여러 갈래로 쪼갠 것이 아니었구나!
그러고 보니 단풍나무뿐만 아니라 잎을 여러 갈래로 나누고 잎가를 톱니모양으로 장식하는 나무나 풀들이 많다.
그런데 이기적으로 햇볕을 차지하려는 나무도 있다.
나는 그 대표적인 나무가 층층나무라고 생각한다. 층층나무는 가지가 옆으로 층층으로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옆으로 난 가지는 수평으로 퍼지며 잎이 촘촘하게 달려 있어, 아래의 잎이나 식물에게 전혀 배려가 없는 가차 없는 이기주의자가 바로 층층나무이다. 안 그래도 이 나무의 힘찬 기세와 다른 나무의 영역 침범을 허락하지 않는 특성으로 인해 이 나무는 나무들 사이에서 폭도라는 별명이 붙여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층층으로 벌어진 무성한 잎은 보기에도 싱그럽고 그늘을 만드는 능력도 탁월하기 때문에 가로수로 인기가 있는 나무이다. 양재천의 영동 3교 가는 천변에 이 나무들이 몇 그루 자라고 있고 이름표까지 붙어져 있으므로 지나다가 쉬이 만날 수 있다. 이 나무는 20여 미터로 자라고 나무껍질은 얕게 세로로 홈이 져있어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주로 숲에서 번성하는 층층나무를 양재천에서 만날 수 있음은 신기한 경험이다.
식물은 자기 생존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마련하겠지만, 내게는 자기만 살려는 이기적인 나무보다 배려할 줄 아는 이타적인 나무의 존재가 귀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