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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Oct 06. 2024

45. 메타세쿼이아, 낙우송, 낙엽송의 단풍

<양재천 산책>


침엽수이면서 낙엽이 지는 나무에 메타세쿼이아, 낙우송, 낙엽송이 있다. 요즈음 이 세 침엽수가 아름답게 단풍이 들었다.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이 빨갛게 물이 든다면, 낙엽송은 황금색으로 단풍이 든다.


양재천에 가을이 들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들이 빨갛게 물이 들어 완전 딴 세상을 연출한다. 가을이 되어 메타세쿼이어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면 이때의 양재천 길을 드라이브하며 만추의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차들이 줄지어 이 길로 들어선다. 양재천에 줄지어 선 차들을 보노라면 사람들의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번잡한 도심 속에 살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늘 자연의 아름다움을 희구하는 본능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양재천의 메타세콰이어 단풍길


낙우송도 가을이 되면 붉게 물이 든다.

양재시민의 숲 공원 못 미쳐 오른편에 메타세쿼이어와 유사하게 생겼으나 메타세쿼이어가 아닌 나무 몇 그루를 만날 수 있으니 바로 낙우송이다.

낙우송이라는 이름은 일본의 낙우송(落羽松)에서 차용하였는데, 가을 낙엽이 질 때 잎이 깃털처럼 뚝뚝 떨어지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나무는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 강 유역이 자생지이다.

낙우송은 메타세쿼이아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메타세쿼이아가 삼각형으로 위로 높게 자란다면 낙우송은 키가 메타세쿼이아만큼 크지 않고 옆으로 퍼져 약간 땅딸하게 보인다. 그러나 낙우송만의 가장 큰 특징은 공기뿌리(기근)가 지상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이 나무가 의심스러울 땐 나무 주변을 둘러보아 괴이한 뿌리 같은 게 불뚝 쏟아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양재천변에 자라는 낙우송의 공기뿌리는 눈에 확 띄게  솟아 나오지는 않았지만 틀림없는 기근이다. 

바로 근처에 있는 `양재시민의 숲`에 가보면 우람한 낙우송들의 멋진 자태를 볼 수 있다.

시민의 숲 입구에 심어진 몇 그루의 낙우송은  `시민의 숲 공원`으로 우리를 안내하기 위한 나무안내선처럼 보인다. 입구의 낙우송들은 마치  “공원 안의 낙우송 보러 오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양재 시민의 숲 공원에 있는 낙우송들은 사시사철 너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어서 이 나무들을 보아주지 않으면 나무가 섭섭해할 것 같다. 



양재천의 낙우송과 기근(오른쪽)



또 하나의 낙엽 지는 침엽수 트리오에 낙엽송이 있다.  

낙엽송은 이름 그대로 낙엽이 지는 소나무라는 뜻이다. 이 나무도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든다. 앞의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이 붉게 단풍이 든다면 낙엽송은 황금색으로 물이 든다. 우리나라의 강원도나 경북지방에 에 많이 자라고 있는 이 나무를 양재천에서 볼 수는 없지만,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을 거론하였으니 낙엽송을 빼고 넘어갈 수는 없다.

낙엽송은 낙우송과 매우 유사하게 생겼는데 가을에 침엽 낙엽이 하나씩 개별로 떨어져 소복이 쌓여 있으면 낙엽송이고 반면 잎이 작은 가지와 함께 떨어지면 낙우송이다.


낙엽송은 일본 원산이다.

일본은 한일합방 후 우리나라의 민둥산을 녹화하기 위하여 빨리 자라는 이 나무를 대거 식재하였다. 강원도나 경상북도의 깊은 산에 가면 키가 크고 미끈한 낙엽송 군락을 많이 볼 수 있다.

낙엽송은 키가 20~50미터까지 자라고 줄기가 쭉쭉 뻗어 오르며 가지는 나무 높은 곳에서 분지 되기 때문에 시야가 시원하다. 봄에 신록이 돋아나오면 잎의 색깔은 청록색을 띠어 매우 신선하게 보인다. 또한 이 나무가 군락을 이루면 군락 안에 다른 수종이 자라지 못하여 낙엽송만의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게 된다.


여름의 낙엽송 숲(왼쪽)과  황금색으로 물든 낙엽송 단풍(오른쪽)


이 낙엽송이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논란은 태백산국립공원이 공원 내에 자라고 있는 이 나무들을 모두 잘라내고 우리 나무로 수종을 바꾸려고 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재 태백산국립공원에는 전체의 약 11%에 해당하는 면적에 낙엽송이 심겨 있고 그 수가 50만 그루에 달한다고 한다. 태백산국립공원 측은 민족의 영산을 살리고 ‘외래종 나무를 토종으로 대체한다’는 국립공원 관리 원칙에 따라 낙엽송 자리에 참나무와 소나무를 심을 계획이었다. 이 계획이 알려지자 이를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일제에 의해 식재되었다고는 하나 40여 년간 이 땅에 잘 적응해 현재 직경 60∼70㎝의 거목으로 자란 이 나무에게 굳이 ‘국적’을 따져 강제 벌목을 하고자 하는 것이 잘못된 애국심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낙엽송은 소나무의 2배로 성장하는 속성수이면서 산성토양인 한국 지형에도 잘 적응해 온 관계로 전국의 산림녹화에 이용되어 국토 녹화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낙엽송 군락은 보기에 아름답기도 하지만 목재나 펄프, 공사장 받침목(비계) 등으로 용도도 다양하다. 특히 우리가 여름에 시원한 소재라서 애용하는 인견제품도 낙엽송에서 만들어진다. 인견은 펄프에서 추출한 실로 만든 순수 천연 섬유여서 가볍고 시원하며 몸에 붙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온도가 자꾸 높아지는 근래 통풍이 잘되며 착용 시 촉감이 상쾌하며 땀 흡수력이 탁월하고 정전기도 없는 인견섬유의 가치는 새로이 조명되고 있다. 같은 천연 소재 셀룰로오스 섬유인 모시나 삼베보다 가격도 저렴하다.


이런 실용적인 면뿐만 아니라 낙엽송에 대한 우리나라의 애국적 논의는 일본 측의 반발을 일으켜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출하게 했다. 일본의 대표적 혐한론자인 햐쿠타 나오끼는 <지금이야말로 한국에 사과하자>라는 혐한서에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헐벗은 산에 총 5억 9천만 본의 나무를 식재(어떻게 계산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하여 민둥산을 푸르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에 심어준 나무를 다 베어 원상으로 회복시켜 주자고 빈정대고 있다.


지금 우리 산하에서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는 세 나무 중 메타세쿼이아는 중국이, 낙우송은 미국이, 낙엽송은 일본이 각각 원산지이다. 식물에게 “너 어디서 왔니? ”라고 차별하는 것은 인종주의(racism)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보다 더 우스운 일이다. 나무가 무슨 죄가 있는가. 나무는 그저 심어진 자리에서 살아남으려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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