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이니아의 가을 여행
다음 날 아침 비콘의 호텔을 떠나 친구가 예약해 둔 포코노 마운틴스(Pocono Mountains)의 캐빈으로 출발하였다. 워싱턴 디씨에 살고 있는 헬렌은 우리가 미국으로 여행한다는 것을 알자마자 이곳을 예약해 두고 우리를 기다려왔다. 헬렌은 수차 포코노 마운틴스의 자연을 칭송해 와 기대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뉴욕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로 갈 때 포코노 마운틴스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때 그 지명만 보아도 매우 반가웠었다. 그 포코노 마운틴스를 드디어 가게 되었다.
비콘에서 포코노 마운틴스까지 84번 도로를 따라 2시간여를 달려갔는데, 그동안 뉴욕 주와 헤어지고 펜실베이니아 주로 들어가게 되었다.
펜실베이니아 주는 ‘펜(Penn)의 숲’이라는 뜻으로 명명된 주라고 한다. 얼마나 숲이 아름다웠으면 그런 이름을 얻었을까 싶어 도착하기 전부터 펜실베이니아의 자연을 흠모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가는 길에 곱게 물든 단풍이 마중을 나와 있어 그런 기대를 더욱 가지게 하였다.
펜실베이니아는 영국인 윌리엄 펜(William Penn)이 개척한 식민지이다. 윌리엄 펜의 아버지는 잉글랜드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국왕 찰스 2세에게 대규모의 차금을 제공하였다. 그런데 그 아들 윌리엄 펜이 당시 박해받던 퀘이커 교도가 되면서 수차례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다. 국왕 찰스 2세는 아버지에게 빌린 빚을 갚는 대신 윌리엄 펜에게 아메리카 식민지를 개척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왕이 윌리엄 펜에게 하사한 땅이 펜실베이니아였다. 그곳에는 숲(라틴어로 숲이 sylvanus이다)이 무성했으므로 ‘펜의 숲의 땅’이라는 뜻으로 펜실베이니아로 불리게 되었다. 펜은 박해받던 퀘이커 교도들을 이끌고 이 땅으로 건너와 그가 꿈꾸던 자유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이 식민지는 퀘이커 교도들 뿐만 아니라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으려는 독일계 이민자, 유대인 등에게 큰 매력을 주었다. 펜의 정신은 아메리카라는 독립국의 정신 속에도 자리 잡았다고 하니 펜실베이니아 땅을 밟는데 괜히 엄숙한 마음이 되었다.
친구가 예약해 둔 캐빈은 마운트 포코노의 한적한 숲 속에 있었다. 포코노 산맥(Pocono Mountains)은 뉴욕이나 필라델피아 같은 대도시와 가까워(미국의 잣대로 보면) 자연과 고요함 그리고 모험을 찾는 대도시 사람들의 인기 자연 휴양 장소라고 하였다. 지도를 보니 포코노 산맥이 상당히 넓은 지역을 나타내었다. 동북쪽으로는 델라웨어 주립 산림 공원(Delaware State Forest)이 펼쳐져 있고 동쪽으로는 델라웨어 워터 갑 국립휴양지(Delaware Water Gap Nathional Recreation Area)가 있었으며 그 끝에 델라웨어 강이 흐르고 있었다.
델라웨어 강은 조지 워싱턴의 ‘델라웨어 강 도하(1776년) 작전’으로 미국의 독립사에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강이다. 워싱턴이 실제 도하한 곳은 필라델피아에 가까운 트렌턴(trenton)이라는 곳이었지만 그 델라웨어 강을 옆에서 볼 수 있다면 독립전쟁에 나선 조지 워싱턴의 숨결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캐빈에 도착하자 헬렌과 그녀의 친구 그레이스가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가 뛰어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딸과 사위를 대동하였으므로 식당에서 점심을 먹자고 친구에게 여러 번 제안했건만 친구는 점심준비를 해왔다면서 굳이 야외에 식탁을 차리고 스파게티와 호박 수프를 내 왔다. 우리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헬렌은 자기 집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호박으로 만든 수프라면서 음식 솜씨를 뽐내었다. 과연 수프는 진하고 맛있었다.
헬렌은 자기가 만든 음식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을 좋아한다. 일류 레스토랑 뺨치는 헬렌의 화려한 음식사진들은 나 같은 무취미의 친구들을 기죽게 하기도 하였다. 미국에 떨어져 살고 있으면서도 옛 친구들과의 우정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녀의 노력으로 인해 그녀와 그녀의 음식에 익숙한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캐빈 주변에 큰 참나무들이 많아 식탁으로 낙엽이 하나씩 떨어져 내렸다. 벌써 낙엽이 지는 계절이 되었나 하고 보니 야외 식탁 풍경이 어쩐지 썰렁하였다.
오후에 찾아간 곳이 이 동네에서 나름 유명한 부시킬 폭포(Bushkill falls)였다. 미국 여행하면서 지명에 ~kill이라는 이름이 많다는 것을 진작부터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비콘으로 올라갈 때만 해도 Peekskill, Fishkill, Catskill이라는 지명이 있더니 이곳은 Bushkill이다. 무엇을 그렇게 죽이려고 하는지 원!
이곳 폭포는 오후 6시에 문을 닫으므로 5시까지는 하산해야 한다는 당부를 듣고 한 사람당 40불이라는 적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거의 4시에 가까웠으므로 가벼운 트레일 코스를 다녀온다고 해도 시간이 빠듯하게 보였다. 그때만 해도 그곳에서 헤매게 될 줄을 몰랐다.
부시킬 폭포는 ‘펜실베이니아의 나이아가라’라고 불린다더니 실제 폭포 모습을 보자 실소가 터졌다. 가을이라 유량이 적은 탓도 있겠지만 작은 폭포를 대하자 나이아가라라니 너무 터무니가 없는 주장이라고 여겨졌다.
남편은 부시킬 폭포까지만 갔다가 비지터 센터 앞에서 쉬기로 하였고 우리 셋은 더 깊은 계곡으로 들어갔다. 언덕배기에 올라서자 델라웨어 계곡 전망대가 나타났고 크릭(creek)을 사이에 둔 계곡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숲 사이로 난 크릭에 여러 개의 폭포가 숨어있다는 지도를 따라 계곡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지만 폭포들과의 조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블라이달 폭포(Bridal Fall)가 있다는 계곡을 향해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는데 “한국분들이세요?”하는 인사말이 들렸다. 중년의 여인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숲 속에 아무도 없었으므로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던 우리에게 구세주 같은 사람의 출현이었다. 이 여성은 홀로 미국의 국립공원 탐방에 나섰다고 하였다. 차박을 하면서 지금 무슨무슨 국립공원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자기소개를 하였다. 참으로 용감한 부인인지라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제 이 부인까지 합세하여 계곡을 내려갔다. 브라이달(Bridal)이라고 이름 붙여진 작은 폭포들이 나타났다. Bridalsmaid's Fall을 거쳐 계곡으로 더 내려가자 브라이달 베일 폭포(Bridal Veil Falls)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었다. 신부의 베일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가느다란 물줄기를 흘리고 있는 폭포여서 다시 헛웃음이 나왔다.
헬렌은 자기가 그런 작은 폭포를 만든 사람이기라도 하듯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온 너한테 이런 거 보여줘서 미안하다야”하면서 자꾸 미안해하였다. 그 폭포를 만든 사람이 내 친구가 아니듯, 나도 남편도 작은 폭포라고 고깝게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작은 대자연의 작품도 귀중하게 여기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특히 그곳에는 머리에 키파(Kippah)를 쓴 정통파 유대인(Orthodox) 복장을 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곳에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무슨 유대인 모임이 있는 날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내 눈에는 매우 신기하게 보였다.
네 명의 여성이 계곡을 좀 헤맸다. 다섯 시까지는 돌아오라는 비지팅 센터의 언질이 있었던 터라 입구까지 찾아 나서는 발걸음이 초초해지기 시작하였다. 지도를 보니 입구까지의 길이 아득하게만 보였다. 모두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헬렌이 어느 국립공원에서 홀로 길을 잃고 밤새 나무를 껴안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분위기가 더욱 초초하게 바뀌었다. 인적도 없고 계곡 속으로 나 있는 실낱같은 길에 아무 표지도 없었다. 계곡을 타고 계속 내려가다 보니 계곡물이 제법 풍성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이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물이 델라웨어 강에 합류한다고 생각하며 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려고 애썼다.
계곡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부쉬킬 폭포가 거기에서 가깝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계곡 길을 돌아가자 정말 부시킬 폭포가 보이고 데크를 둘러싸고 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원 바깥으로 나오니 남편이 물을 사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왔느냐고 남편이 걱정스레 물었다. 나는 애를 태우며 계곡을 건너오느라 목이 마른 줄도 몰랐는데 남편이 건네준 물을 보자 그제야 갈증을 깨닫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무슨 큰 모험을 하고 난 기분이었다. 사실 미국은 대자연이 워낙 방대한 탓인지 관광지에 가도 우리나라처럼 친절하지 않다. 표시판도 안내 데크도 안전 펜스도 별로 없다. 그러니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얻었다.
헬렌은 그새 한국 부인과 친해져서 그녀를 우리 캐빈으로 초대하였다. 헬렌은 이 여행을 위해 너무 많은 음식을 준비해 왔다고 아까부터 걱정이었다. 새 친구에게 음식도 나누고 말벗도 되어주고 싶은 착한 마음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그녀도 차박보다는 캐빈에서의 안락한 하룻밤을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나도 그녀로부터 차박을 하며 미국 국립공원마다 찾아다니는 모험담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서로의 스케줄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계곡에서 만난 한국 부인은 기아 소렌토를 타고 먼저 떠났다.
우리는 헬렌의 가이드로 짐 소프(Jim Thorpe)를 거쳐 숙소로 가기로 하였다. 짐 소프는 ‘펜실베이니아의 스위스’로 불리는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하였다. 이곳은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단풍시즌에 운행되는 단풍열차가 특히 유명하다고 하였다.
짐 소프에 도착해서 보니 역 건너편 산에 든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풍을 찾아 뉴햄프셔, 캐나다 퀘벡, Met 클로이스터스, 비콘을 다녔지만 짐 소프의 단풍이 가장 황홀하였다. 과연 단풍열차가 유명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은 옛날 탄광촌으로 이름을 날렸고 그때의 영광을 재현하듯 언덕 위에 멋진 맨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날이 곧 어두워졌으므로 내일을 기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헬렌은 또다시 저녁 준비에 분주했고 그레이스는 헬렌의 핀잔을 들으며 보조역할을 하느라고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