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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두 여인의 인생 이야기

뱃줄 달고 미 동부 여행

by 보현 Mar 19. 2025


저녁을 먹고도 세 여인들이 식탁에서 일어날 줄 모르고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남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식탁 저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세 여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나는 헬렌의 친구인 그레이스를 향해 담대하게 물었다.

“그레이스 씨, 어쩌다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어요?”

나의 질문에 그레이스가 조금도 저어해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질문을 한 내가 민망할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여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


그레이스는 헬렌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이다. 얼마 전까지 간호사로 일하던 그녀는 이제 막 직업전선에서 은퇴하였다고 하였다. 헬렌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하여 포코노 마운틴스에 간다는 사연을 들은 그녀는 자신도 함께 가고 싶다는 의중을 비추었다고 한다. 그동안 일에만 매달려 여행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그녀였던지라 이제 은퇴를 맞이하자 어딘가로 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헬렌도 장거리 운전에 자신이 없던 차여서 번갈아 운전하기로 하고 이곳까지 함께 오게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쭈뼛쭈뼛하게 부끄러워하는듯이 보였다. 그런데 부시킬 폭포 계곡에서 함께 헤맨 뒤로는 마음의 경계를 약간 허무는 것이 느껴졌다.


“남편이 술집 여자와 바람이 났어요.”

그레이스가 낮의 수줍어하던 모습을 버리고 갑자기 툭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이야기의 시작이 너무 놀라워서 다소 경직되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작열하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헬렌이 거들었다.

“이 부부 이혼 이야기로 팔스 처치(Falls Church) 동네가 한 때 시끄러웠다”.

“어쩌다 술집여자랑 바람이 났어요?” 내가 물었다.

“내가 서울에서 간호학과를 막 졸업한 해에 남편과의 혼담이 있었어요. 남편은 K고등학교를 졸업하고 S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한 수재였어요. 남편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어 하였던 때라 간호사 자격을 가진 아내를 찾았던가 보아요. 그래서 남편과의 혼담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우리는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오게 되었지요. 당시 우리 친정에서는 의사와 결혼한다고 하여 시댁에 열쇠 세 개를  바친다는 건 꿈도 못 꾸었어요. 친정아버지는 나름 딸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거든요.”

“그 일로 시댁에서 그레이스를 못마땅하게 여겼던가 봐. 그러니 남편도 불만이 있었겠지” 헬렌이 끼어들었다.

“미국에 와서 처음 병원을 열고 고생 참 많이 했어요. 그때 남편의 초청으로 시어른들이 미국으로 오셨는데 남편에게 돈을 요구하셨던 모양이었어요. 뒤에 알고 보니 남편이 차금을 내어 본가에 돈을 보내었더라고요. 아무튼 병원 경영에다가 그 차금을 갚느라고 고생 좀 했어요.”

“병원은 잘 되었어요?” 내가 궁금증을 못 참아 물었다.

“우리는 한국인들이 거의 없는 동네에다 병원을 열었고 남편이 성실하게 진료를 잘 본다고 소문이 나면서 병원은 점점 잘 되었죠. 그때 돈을 참 많이 벌었어요.”

“그레이스가 고생을 많이 했어. 이이가 간호사 역할뿐만 아니라 회계도 담당했고 병원 경영의 온갖 구질구질한 일을 다 해 내었어. 병원이 돈을 번 것의 절반은 그레이스 몫이야.” 헬렌이 또 끼어들었다.

“아! 돈을 많이 번 것이 화근이 되었군요.” 내가 단정하듯이 앞질러 예측하면서 말했다.

“맞아요. 어느 날 남편 절친과 둘이서 동네 술집을 갔대요. 거기서 그 젊은 애를 만났대요. 그 애가 남편에게 엄청 잘해주었대요. 어느 날 남편이 먼저 고백하였어요. 자기가 아는 어떤 젊은 여자 아이가 곤경에 빠져있는데 그 애를 건져주고 싶다고요.”

“젊은 여인이 온몸을 던져 매달리면 당할 재간이 없죠.” 이번에는 멀찍이 앉아있던 남편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맞아요. 당시 그 애는 무척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던가 보아요. 몸 하나 가지고 미국에 건너왔는데 형편은 점점 어려워져 숙소도 차도 모두 차금이고 빚만 엄청 늘어난 상황이었대요. 그녀에게는 남편이 구세주처럼 보였겠지요. 그러니 남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겠지요. 남편은 그 애의 그런 처지를 무척 동정했어요.”

“그래서 누가 먼저 이혼 이야기를 꺼냈어요?” 내가 궁금증을 못 이겨 또 물었다.  

“남편은 이혼을 원치 않았어요. 소문도 그렇지만 이혼을 통한 경제적 손실을 두려워하였지요. 그냥 이대로 이중생활을 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겠느냐고 내게 통사정을 하였어요.”

“말도 안 돼. 이중생활이라니! 그러면 안 되지요! ” 내가 격분해 소리쳤다.

“한동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친정 부모님 생각도 나고 미국에 와서 고생하며 이룬 경제적 안정도 허물기 싫었고 무엇보다 세 딸에게 이혼한 부모라는 타이틀을 주기가 겁났어요. 그래도 남편에게 매달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혼자 고민고민하고 있던 차에 봄 방학을 맞아 큰 딸아이가 집에 왔어요. 나를 보더니 “엄마 무슨 일 있지?”라고 묻는데 눈물이 터져버렸지 뭐예요. 딸아이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자 딸은 단호하게 아버지랑 이혼하라고 하대요. 그래서 용기를 내었어요.”

“그레이스는 그래도 이혼 위자료를 많이 받았어. 연금 형태로 지금껏 매달 수천 달러씩 받고 있는 걸.” 헬렌이 부러운 듯 말했다.

나는 이혼 후의 그레이스의 삶이 궁금하여 그 후 어찌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은 여전히 그 젊은 아내와 살고 있고요. 병원은 예전만 못한가 봐요. 딸아이들은 아버지와 인연을 싹 끊어버렸어요. 우리 가정은 완전히 깨어졌지요” 그레이스는 말 끝을 흐리며 쓸쓸한 미소를 띠었다.

“후회하세요? ” 하고 내가 물었다. 그레이스는 그때 그 젊은 아가씨는 필사적이었고 자기는 그렇지 않았다고 답했다. 어쩐지 후회가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그러자 헬렌이 자기도 전남편과 이혼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며 끼어들었다.  

헬렌은 나와 고등학교와 대학, 대학원을 같이 다닌 사이였으니 꽤 인연이 깊은 친구인 셈이었다. 70년대에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그녀는  80년도 초반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헬렌은 하동 노량의 부잣집 딸이었다. 대학교 때 그녀의 노량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자가용이 귀하던 그 시절, 헬렌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자가용을 내어주어 쌍계사까지 놀러 가게 해 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그녀가 미국인 남편과 이혼하였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전해 들었다. 그런 그녀가 언제부턴가 SNS를 통해 사진과 근황을 보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작년에 그녀가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우리는 다시 만나 오래된 우정을 재확인하였다.

헬렌은 나의 미국 여행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면서 미국에 오면 자기와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자고 여러 번 제안하였다. 남편과는 대학 시절부터 안면이 있었던지라 남편도 나를 따라 마운트 포코노의 이 캐빈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나도 그녀가 왜 배우처럼 잘 생겼다는 그 백인 남자와 이혼하였는지가 못내 궁금하던 차였다.


“내가 앨라배마대학에 유학을 갔을 때 그때는 동양인이라고는 나 하나뿐이었어. 그때 남편이 열렬하게 나를 따라다녔어.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주고 밤늦게까지 나를 기다려주고...”

“왜?”

내가 물었다. 헬렌은 누가 봐도 미인형은 아니다. 백인 남자가 작은 동양여자에게 쏙 빠진 이유가 궁금했다.

“그 남자는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라서 가정을 지키며 사는 집들을 부러워하였대. 동양인들은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잘 지킨다고 믿었던가봐.”

헬렌이 그윽한 눈빛이 되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상처가 아물었다지만 아팠던 것은 역시 아팠던 것이니까.

“그 남자가 내게 엄청 잘해주었어. 나는 내가 왜 유학 왔는가도 잊고 나보다 연하인 그 남자와 결혼하였지.

남자 집이 엄청 어려웠어. 그 집안에서 대학을 간 유일한 사람이 내 남편이었거든. 그래서 난 공부를 그만두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 남자가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서포트했지.”

“근데 왜 헤어진 거야? 바람피웠어?” 나도 그레이스도 심지어 남편까지도 궁금하여 헬렌의 입을 바라보았다.

“나한테도 문제가 있었어. 임신을 하면서 내가 우울증에 빠진 거야. 남편은 석유시추 관련 전공을 하여 시골로 나를 데리고 다녔어.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잘 통하지 않지 입덧은 심하지 미칠 것 같았어. 죽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어. 혼자서 하루 종일 호텔을 지키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면 싸움을 시작했어. 얼마나 격렬히 싸웠던지 남편이 나에게서 학을 떼는 것 같았어.”

나는 그녀의 단단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집이 느껴지는 그녀의 얼굴에 노량에서 보았던 그녀 아버지의 얼굴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러다 둘째를 임신하여 한국 친정에 와 있는데 어떤 여자에게서 전화가 온 거야.”

“뭐? 누군데?”

“그 여자 말이 남편이 너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니 너는 이혼하라고 하는 거야. 그때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남편이 이혼 문제를 협의하려고 친정에 찾아왔는데 내가 고함을 질렀지. 겟 아웃!”

“그래서 이혼한 거로구나. 나쁜 자식이야. 위자료는 제대로 받았어?”

내가 분개하며 물었다. 헬렌의 이혼 경위를 처음 상세하게 듣게 되자 그녀가 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남편도 얕게 한숨을 지었다.

“그러고 남편과 이혼했어.”

“위자료는? ” 내가 재차 물었다.

“한 푼도 안 받았어. 두 딸만 내가 양육하기로 하고 깨끗이 헤어졌지.”

“너 혼자서 두 딸을 키웠단 말이야?”

“그래. 나 무지 고생했다. 샌드위치 가게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어.”

그러면서 그녀가 자신의 손을 보여주었다. 굵게 주름진 손마디가 그간의 고생을 대변하는 듯이 보였다.

우리가 함께 여행하는 열흘 동안 그녀는 아침마다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자기 집에서 가꾼 채소를 넣고 그녀가 평가하는 고급 치즈와 햄을 넣고 싼 샌드위치는 과연 품격이 있었다. 나는 헬렌의 샌드위치를 질리지 않고 먹었고, 먹을 때마다 그날 밤 그녀가 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생활이 어려웠겠구나” 나는 진심으로 동정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도 샌드위치 가계가 잘 되었어. 돈에 궁하지는 않았으니까. 다행히 아이들도 잘 자라주었고. 그게 제일 큰 보람이야.”

“전 남편의 그 여자는 누구였어?” 내가 제일 궁금한 부분이었다. 누가 그 남자를 채간 것일까?

“그게 너무 어이가 없다. 필리핀 여자인데 호텔 청소하던 여자였데. 호텔에서 남편과 눈이 맞았단다.”

“뭐? 필리핀 여자? 호텔 청소부? 예뻤대?” 내가 놀라며 연이어 물었다.

“말도 마라야. 쪼께난 게 어디서 그리 못난 게  생겼던지. 나와 비교도 안된다야.” 우리는 함께 웃었다.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지만 그 쪼께낳고 못난 여자에게 친구 남편을 뺏긴 건 사실이지 않은가.

“너 전 남편, 지금은 뭐 한데?”

“석유시추회사 사장이 되어 인도네시아에서 지내다가 지금은 인도에서 사장을 하고 있대”.

“어머나! 잘 나가는구나. 그 필리핀 여자가 보석을 채갔네.”

“그래. 그 못생긴 게 대궐 같은 집에서 하인을 여럿 두고 명품을 주렁주렁 감고 산다더라.” 우리는 또다시 웃었다.

“후회하니?” 내가 물었다.

“후회하면 뭐 하니. 나의 운명인걸”

여기까지 이야기하다 헬렌이 입을 다물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두 여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밤이 너무 늦었다. 내일 일정이 또 있으므로 잠을 좀 자야 했다. 서둘러 식탁을 정리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서도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남편도 두 여인들의 처지가 딱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이민생활의 고달픔을 진하게 느꼈다. 서부의 개척자들처럼 이민자들도 생존경쟁이 치열한 아메리카라는 대지에서 발가벗고 살고 있음을 실감하였다. 살기 위해서는 남의 남자라도 빼앗아가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 이곳 이민자 사회처럼 느껴졌다. 말하자면 지금 나와 마주 앉아있던 두 여인은 이 전투에서 패배한 자들이었다. 남편을 지켜야겠다는 철저한 전투력도 전략도 없이 손을 놓아버린 두 여인들의 처지가 너무 안타깝고 억울하게 느껴졌다.

헬렌은 평이하게 교수생활을 마친 나를 부러워하였다. 평이한 삶과 굴곡진 삶과 어느 것이 인생을 더 윤택하게 만드는지는 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각자에게 인생의 무게가 지워지고 그 무게를 지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계속 공부를 하였더라면...”이라고 하던 헬렌의 후회가 귓전을 맴돌았다.

그래도 그녀들은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 변호사로 의사로 만들어 미국 주류사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강인한 한국 엄마들임에 틀림이 없다.  

여러 상념이 겹쳐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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