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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May 07. 2024

섹시한 상담사를 위하여

The Sexy, the better

제도권 공부를 시작하자 다양한 논문을 접할 권한도 생깁니다. 매사에 이상한 저로서는 논문도 아주 지독하고 기괴한 것만 살펴보고 있습니다. 연쇄 살인범이나 특수 강간범, 소년 범죄자 등에 관한 글인데요. 다행스럽게도 이런 제 취향이랑 맞는 논문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요즘 보는 것 중에 하나가 범죄자들을 교정 시설에서 심리교육한 결과에 대한 논문들입니다. 소년범들이나 강간범 살인자들에게 실시하는 교정 과정에서 심리학자들이 남긴 기록들입니다. 실시한 심리 교육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으나 실시한 대상, 기간, 성공 사례 등에 대한 기록인데 눈길이 가는 것은 실패한 사례들이랑 생생한 교정 대상자들 인터뷰 기록입니다.  


상담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과연 어떤 기술로 어떤 내담자를 대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합니다. 정신분석을 만드신 우리 아버지 프로이트 선생님도 실패하고 좌절한 환자들이 있으니 송사리 같은 제가 아무리 간단한 내담자 사연이라도 듣고 과연 입이나 뗄 수 있을까, 입을 뗄 필요는 있을까 싶습니다.


논문들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아래입니다.

-상담자는 모범을 보이는 멘토가 되어야 함;

-친밀감으로 마음을 열게 만들어야 함;

-감동을 주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야 함;

-후속 교육 / 지속성 문제.


멘토라는 말은 암시나 위계를 포함하는 느낌이라 첫 번째부터 눈에 걸립니다. 상담자는 선생 내담자는 학생 식으로 규정하는 많은 상담 방식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나처럼 얄팍한 인간이 상담사가 되어서는 안 되겠구나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문제를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상담자 위엄이 먹히지 않는 대상 / 치료자 역량 부족, 내담자가 지능이나 학벌 직업성이 높은 경우;

-친밀감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 / 전혀 친밀하지 않게 생겼거나 날 불쾌하게 자극하는 경우;

-감동이 과연 해답인가? 상담사가 감동을 주어야 하는 사람이면 배우도 아니고..

-지속성은 심어줄 수 있는가? / 나도 작심삼일로 사는데..


처음 세 번째는 어찌어찌 경험을 쌓고 노력을 해서 해결했다 치더라도 증상이 재발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프로이트 선생님도 우리가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하십니다. 라깡 쎔도 그렇고 정신분석에서는 결국 증상은 나 자신이며 증상을 조금 순화하거나 형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로 변형/승화시켜서 평생 같이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교정 시설을 이용하는 대상자들이 가진 증상은 형법에 어긋나는 행동들이라서 일반 신경증자 증상처럼 대충 변화시켜 보자, 재발하면 또 분석받지 뭐 이럴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다시 논문을 봅니다. 실패한 사례에서 그들에게 받대로 묻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니? 오히려 내담자 (여기선 강간범들)에게 상담자가 답을 묻습니다.


-교육보다는 진심으로 날 이해해 달라;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파악하고 연구해 달라;

-따뜻한 말로 눈높이에 맞추어 심리치료 해달라;

-각자 처한 상황이랑 Needs를 이해하고 문제를 보아달라;

-내면을 이끄는 상담을 해달라;


한 마디로, 내 무의식을 보아 달라.


정신분석을 이용하던, 무덤에서 프로이트 선생님이 다시 오던,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바로 무의식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의식이랑 무의식이 공존하고 있으며, 내가 알 수 없는 그 무의식이라는 것이 실제로 내 의식을 조종한다는 것은 꼭 프로이디안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상식이며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이 시대를 지배하는 사상이 되었습니다.



무의식이란 의식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언어 구조를 가지고 억압된 욕망들이 눌려 만들어진 창고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각자 기질이나 문화 가족 환경에 따라 그 무의식은 천차만별이요 같은 무의식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칼 융은 반대로 집단 무의식이라는 압축된 원형이 모든 인류에 공통 DNA로 심어져 있고 여기서 의식이 발전해 나온다는 입장인데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집단 무의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프로이트 선생님이 구스타브 르 봉쎔이 쓴 <군중심리>를 극찬했다는 것은 기존 입장을 뒤집는 것이 아니고 개인 무의식 안에는 [난교 충동]이랑 [살인충동]이라는 두 가지 공통분모가 있으며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통해서 형성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모두 겪는다는 말인데 이것이 가끔 집단 무의식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오인되는 것 같습니다.


봉쎔 <군중심리>에서는 결국 인간이 군중을 이루게 되면 리더를 중심으로 집단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하는데 이 집단 여론은 각자 가지고 있는 특이점은 모두 날아가고 공통된 무의식만 남는다고 했습니다. 유치하고 이미지에 현혹되며 논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모순된 원시인 수준만 공통되기에 그것만 남는 것이 군중심리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지난 <군중심리> 리뷰를 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성공한 심리 상담 경우로 돌아옵니다. 내담자들이 원하는 것은 상담자가 친밀함 (라포-심리학 / 전이-정신분석)을 기반으로 섹시하고 위엄 있고 전문성도 갖춘 멘토로서 진정한 자기 마음, 무의식을 고찰해 달라는 요구로 보입니다. 너무 무리하고 터무니없는 요청입니다. (이런 스펙을 가진 사람이 장기간 개인 상담을 해주면 1억은 깨질..)


하여튼 시장이 원하는 것이 이것이고 이런 상황이 갖춰져야 상담이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고 보고되니 굳이 의식-무의식 개인심리-집단심리 따위 고민을 하지 않더라도 막대한 임상을 경험한 상담사라면 결국 성공을 위해서 근엄을 갖추게 되고 의도치 않게 무의식을 자극하는 기법을 사용하던 개발하던 해서 이용할 것입니다. 물론 정통 정신분석에서 사용하는 자유연상이나 꿈 해석은 아니겠지만 비스무리하게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 글을 두 편이나 올렸습니다. 하나는 폭망이고 하나는 선전하고 있습니다. 폭망한 살인자 시리즈는 사실 시간도 많이 투입하고 사전 인터뷰로 정보도 수집하고 논문에서 일부 내용을 차용해서 쓴 대작이라고 생각했지만 대중 반응은 차갑기만 합니다. 반대로 점심시간에 그냥 무당 칼춤 추듯 머릿속에서 마구 떠오로는 최근 심경을 휘갈긴 글이 잘 팔립니다.  


이유를 알기 위해 밤새도록 고민하고 주변에 feedback도 받아 결론에 도착합니다. 폭망한 살인자 글은 의식으로 쓴 글입니다. 더구나 일부는 다른 사람 의식을 이용한 것이기도 해서 그 안에는 통일되지 못한 피들 A형 B형 0형이 마구 섞여 온전한 생명체로써 독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반면에 휘결겨 쓴 <환상 서비스>는 무의식에서 나온 글로 보입니다. 진짜로 내가 생각하는 것으로 쓴 글이고 결국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모국어라는 펜으로 무의식이라는 작업대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에서 상담이랑 비슷해 보입니다.

 



맥심코리아, 2022, 송리나 교수

다시 상담사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우리 같은 비상담사들이 그들을 보는 시선은 한마디로 이렇습니다.


참 성격 이상하다.


나쁜 사람이거나 유쾌한 성격이라는 느낌보다는 조금은 불편하고 특이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분명 군중에게 있습니다.


통계로서 가치가 있으려면 샘플이 25개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데 제 경우는 이쪽에 관심이 많아서 대략 그 정도 샘플은 채운 것 같습니다.


그래 뭐가 이상한데?


막상 실례를 꺼내려니 마땅한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이상함 혹은 특이점 역시 그들이 가진 무의식에서 발현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 마침 예가 생각났습니다.


50대 미혼 심리학자입니다. 본인이 운영하는 심리학 센터도 성황이며 학벌도 좋고 대학에 강의도 종종 나간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골드미스입니다. 가끔 저에게 연애 상담을 걸어오는 것은 불편하기도 하지만 심리 상담사도 사람이니 외로울 것이고 나이가 있으니 그런 것까지 야박하게 타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이 제게 이상한 느낌을 주는 것은 주로 성性에 관한 것인데 일관되지 못한 행동이 더해서 그렇습니다. 절실한 종교인으로 난교를 절대 금하지만 가끔 프로필 사진에 짧은 치마를 입고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다 내놓은 사진으로 도배하거나 몸매가 너무 드러나는 사진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 사람들에게 툭툭 던지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각선미이고 미녀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민망함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경이 먼저 올라옵니다..


그분이 주는 위엄이랑 사회에서 지휘가 있으니 그 사진을 보아야 하는 주변 사람들, 센타 20대 직원들, 친밀한 일부 내담자들은 감히 그 사진에 뭐라 토를 달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왜 이 사진을 올리셨어요?'라고 묻는다면 "그냥요. 올리고 싶어서요." 이럴 것으로 예상됩니다.


질문은 지극히 이성에서 발현된 것이나 답변은 그냥 무의식이 시키는 식으로 나올 테니 서로 '단위'가 맞지 않겠네요. cm로 물었는데 ml로 대답한다고 할까요?


제가 경험한 다른 사례도 그렇고 상담사들은 어쩌면 정신분석 기법이랑은 다르게 무의식을 다루고 싸우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이랑 의식 경계가 희미해진 것인가 싶습니다. 그 둘이 경계가 명확하지도 않고 다들 그 사이를 왔다 갔다며 사는데 그 경계를 잘 지키는 사람일수록 이 사회에서는 소위 '정상'이라고 평가받고 그렇지 못하면 '4차원이다'는 소리를 듣지요.


마치 무의식 속 환상에서 헤엄치며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처럼 상담사들도 임상이라는 과정에서 예술가들처럼 무의식을 현실로 너무 가지고 온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반대로 유명한 심리학자나 정신분석가를 봄에 그런 기괴함도 특출 날 것 같다고 기대했다가 너무도 평범한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 경우로 같은 사연 때문입니다.




글을 마치겠습니다. 상담학 공부를 한다지만 제가 과연 이 과정을 다 마칠지도 의문이고 그렇다 해도 상담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무의식에 대한 고민이나 그를 마주하는 상황에서 정통 정신분석도 모르는 놈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고민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보다는 많은 실제 사례를 접하면서 의식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신비한 것들을 (알지도 못하면서 더 이상 무의식이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보게 될 것이라는 기쁨이랑 이로서 더 나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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