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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Sep 25. 2024

날 사랑한 귀부인 - 1

매일 크리스마스인 섬

총각인 나에게 빨가벗고 달라드는 성숙한 여대생들 몸폭격은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듣는 분들은 이게 무슨 복에 겨우 개소리냐고 하시겠지만 이곳은 신학 대학이자 내 직장이며 호주는 교수들에게 학생이랑 부적절한 관계가 발생할 시에 치러야 할 값이 얼마인지 임용 첫날 자세하게 사례를 알려주며 서명을 받는 엄중한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제도도 짐승 때부터 내려온 내 본능을 이기지는 못했다. 나는 결국 가장 절실하게 몸을 열여보여주는 학생에게 무너졌고 그 달콤함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사물에게나 사용해야 마땅할 "따먹는다"는 기표를 사용해 그 학생 이미지를 내 안에 만들자 나는 그 친구를 애인보다는 먹는 음식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이미지가, 기표가 그 실제를 규정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나를 따먹자 또 다른 농익은 과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내게 강력한 파동을 지닌 주파를 던지는 학생이 눈에 띄였고 나는 그 주파수를 수신하며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또 넘었다. 그렇게 두 명을 육체만 탐하는 애인으로 삼자 내 삶은 그저 섹스만 반복하는 일상이 되었다. 피곤했지만 좋았다.


하지만 이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멀쩡한 여자에게 내 멋대로 번호표를 주며 사물로 대하니 그 상대는 내게 인격을 부여해 줄 것을 요구했고 그러다 토라진 한 명은 슬쩍 우리 관계를 자랑인지 불만인지 질질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라고 경고도 하고 빌어도 보았지만 발 없는 말은 결국 학장님실까지 달려가고 말았다.


아무리 우리 아버지 빽이 있다고 하지만 고국에서 호주까지 바다를 건너 오면서 그 농도는 옅어졌고 여학생들 수군거림에 이기지 못한 총장님은 나를 따로 방에 불러 당분간 휴가를 권고하셨는데 결국 휴직이고 사직이었다. 아무리 욕망 가득할 시기 총각이라지만 행정실에서 정한 선을 넘자 나는 조직 밖으로 밀려나고 만다.


내가 교수가 아니게 되자 신기하게도 나에게서 나오던 아우라도 같이 사라지고 그런 것이 없어지자 나를 따르던 그 많은 팬들 여학생들은 동시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대학이라는 조직이 부여해 주던 권위가 없어지니 나라는 인간은 당장 어디 가서 100불도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시는 그토록 좋아하던 강의도 못하게 되었고 불러주는 곳도 갈 곳도 없는 처량한 신세였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먹고사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다. 부유한 PK였기 때문이고 지금도 계속 그렇긴 하다. 아버지는 성도들 몰래 빼돌린 돈을 차곡차곡 모아 이곳에 투자 부동산을 몇 개 사셨고 날 믿었는지 내 이름으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오는 임대 소득은 진즉에 내 교수 월급을 능가했다.


여담인데 양아치 기질이 있는 도련님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큰돈을 주지 않기에 늘 지 부모 지갑 슈킹할 생각에만 몰두하고 그러다 걸리면 부모랑 계속 불화만 쌓여 부모는 결국 용돈 이외에 부동산 명의 따위는 절대 주지 않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나 같은 경우는 초기에 아버지 부동산에 손을 대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아버지는 계속해서 큰돈을 보내왔고 그렇게 해서 지금 내가 사는 이층집 말고도 두 채를 더 사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 명의로 되자 이것은 내 돈이요 내 노후라 나 역시도 세상 꼼꼼하게 관리하고 더욱 검소하게 되었다. 그러니 아버지는 나를 믿고 계속 검은 돈을 호주에 쌓았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한 선순환이다. 내가 호주에서 교수가 된 것도 아버지에게 믿음을 얻게 된 이유였으니 부모 돈을 얻고 싶은 자제분들은 지금 내 말을 새겨 들을 일이다.

 



그렇게 두어 달 멍 때리며 쉬었나? 내 상황을 알게 된 친구 회계사 헌터에게서 불연 연락이 왔다. 이민자들에게 생일만큼 중요한 날이 처음 호주에 입국한 날이고, 가족보다 더 끈끈한 인연은 대부분 초기 영어 학교에서 만들어지는데, 헌터는 내 영어 학교 동기였다.


농구도 잘하고 싸움도 잘해서 이탈리안 학생들하고 붙어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홀딱 반해서 나는 녀석을 잘 따라다녔고 녀석도 내가 맘에 들었는지 우리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뒷 끝도 없는 녀석이라 이탈리안 학생들하고 통 크게 화해한 이후엔 한국 유학생들 뿐 아니라 학교 전체에서 유명짜한 스타로 이름이 높았으니 호주 선생님들도 헌터를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계속 공부해서 Phd를 마치고 교수가 되었지만 녀석은 빨리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며 회계 학과를 졸업한 후에 필드로 나가서 회계사가 되었다. 평생 지근 거리에 있을 듯한 친구였지만 이렇게 갈길이 정해지자 각자 삶을 따라 헤어졌고 이제는 일년에 몇 번 어쩌다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우정은 그 어떤 핏줄보다 더 끈끈 했다.


"김교수, 요즘 논다며?"

"응.. 백수다."

"너 우리 회사 올래?"




헌터는 회계사로 호주 현대 계열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좆같은 주재원이랑 싸움이 나서 들이받고는 크리스마스 아일랜드라는 곳으로 시드니 생활을 다 정리하고 가버렸다. 가기 전에도 몇 번 만나서 하소연을 듣기는 했는데 사고를 친 헌터에게는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유배지 같은 곳이었다. 말이 같은 나라지 그곳은 Perth까지 비행기로 네 시간, 도착해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경비행기로 네 시간을 가야하는 외국으로 나도 헌터에게 호주에 그런 섬이 있는지 처음 들었다.


오른쪽 위에 예전 국기

크리스마스 섬은 시드니에서 3천 킬로 가량 떨어졌으며 오히려 인도네시아랑 가까운 곳으로 1950년 까지는 자치권도 있던 작은 도시 국가였으나 자력으로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자 자체 여론 조사를 토대로 호주에 귀화하고 만다. 거리상은 인도네시아가 몇 배는 가깝지만 아무래도 부자에 민주주의가 발달한 호주를 선택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인구는 2천 명도 안되며 그중 대부분은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까지 기어 들어 온 중국인계 동양인이 50%이다. 그러니 거리상은 인도네시아 영토요, 구역상은 호주이며, 문화권은 중국인 특이한 섬이다.


호주는 이 작은 섬을 수호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매년 쏟아붓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코딱지 만한 땅덩이에 호주 깃발을 유지하면 본토부터 그곳까지, 2천500킬로 이상 바다를 영토에 편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작 2천도 안되는 인간을 위해 막대한 광케이블을 바다에 깔아 전기 전화 인터넷 가스 등을 공급하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군대를 주둔시키며 의사 간호사를 동원해 병원을 만들고 우체국을 짓고 민간을 설득해 은행, 마트 따위를 세웠다.


성탄섬 홍게 대이동

헌터는 저기서 뭘 하냐고? 헌터가 일하는 곳은 저 섬에 유일한 카지노다. 성탄섬이 일부에게 유명한 것은 붉은 게가 살기 때문인데 인간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그 개체수가 급격하게 감소하 시작했다. 붉은 게는 일 년에 한 번 12월에, 정말 크리스마스 기간이 되면, 달 움직임을 따라 섬 끝에서 끝으로 3억 마리가량 산란을 위한 이동을 시작한다.


그 중간에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차도가 있고 민가가 있기에 대부분은 차에 치여 죽거나 민가에서 길을 잃고 도랑에 빠지거나 하구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홍게 대이동 덕분에 이 섬은 많은 이들이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버켓리스트에 자리했지만 생태계 파괴가 진행되면서 모두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가는 중이다.


특히 노랑미친개미는 인간을 따라 이곳에 들어오게 되면서 홍게를 전멸에 이르게 한다. 막태어나 몸이 부드러운 새끼 홍게들은 미친개미에게 끌려가 단백질 공급원으로 쓰이고, 단단한 갑옷을 입은 커다란 어미게 역시도 노랑개미가 꽁지에서 쏘는 산에 실명하여 하수구에 처박혀 방향을 잃고는 굶어 죽고 만다.  


호주 정부는 더는 방관할 수가 없어서 세계에서 유명짜한 과학자들에게 노랑개미 박멸을 포상금으로 걸었는데 마침 우리나라 과학자 몇 분이 이곳에 오신다. 실은 그 과학자를 영입하게 된 사연에는 곽사장이 있다. 곽사장은 과학자도 아니고 생태 연구자도 아닌데 어쩌다 크리스마스 섬에 굴러 들어오게 되었고 미친개미가 골치라는 것을 알자 여기에 큰돈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챈다.


발빠른 곽사장은 호주 정부에게 자신이 한국 곤충 전문가를 초빙해 미친개미를 10년 안에 박멸할 수 있다는 계획서를 올려 승인을 받고 엄청난 연구소 부지를 거의 무료로 제공을 받는다. 그리고 허술한 행정을 틈타 그 건물을 자신이 만든 회사에 헐값에 넘겨 버렸다. 듣기로 한국에서 초빙한 과학자들이랑 몇 년 연구를 하긴 했단다. 사명감이라기 보다는 이런 척을 하면서 호주 정부 곳간을 갉아먹다가 호주 정부 역시 정권이 바뀌면서 예산 삭감이 되었고 결국 곽사장은 막대한 건물을 소유하는 것으로 아무런 성과도 없이 미친개미 스토리는 끝나게 된다. 세상에 이런 방식으로도 부자가 될 수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막대한 땅에 건물까지 얻게 된 곽사장은 본격 개인 사업을 시작하는데 그 종목이 카지노였다.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잘 정착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군부 입김이 강력하다 보니 카지노 같은 사업은 자국에선 금지였다. 그러니 인도네시아 도련님들은 해외 원정 도박을 가셔야 하는데 돈 냄새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곽사장은 이 노다지를 직접 개발해 캐기 시작한다.


작은 공항도 있는 성탄섬에 인도네시아 도련님들이 자가 비행기로 뿅 하고 내려와 금발 여친이랑 신나게 놀고 다시 뿅 하고 사라지는 코스를 만든 곽사장은 또 한 번 인생에서 로또를 터뜨린다. 이 카지노 호텔 사업은 광고를 할 필요도 없이 일 년 내내 fully booked이고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조용한 S급 고객들이 돈을 싸가지고 문 앞에 줄을 선다니 매일 트럭으로 들어오는 현금을 세어줄 회계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시 봐도 누군가에게 인생이란 참 쉽다.


곽사장이란 사람이 운하나로 여기까지 온 놈팽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기마이'가 엄청난 인간으로 우리 같은 범인들은 가히 흉내조차 내지도 못할 위험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감수하니, 공명이 감탄했다는 강유도 울고 갈 배짱을 가졌다. 호주 정부에 카지노 사업권을 따내던 이야기 역시 전설인데 원래 이 섬에는 사행성 유흥 업소가 들어올 수 없다는 법이 있는데 곽사장은 법원까지 직접가서 판사 앞에 현금 몇 백억을 펼쳐 놓고 딜을 한 일화는 호주 사람들도 혀를 내둘렀던 사건으로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도 기사로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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