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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Sep 26. 2024

날 사랑한 귀부인 - 2

코코넛 크랩

곽사장 기행은 다음에 더 이야기하기로 하자. 우리는 아직 헌터 회계사도 만나지 못한 상황이라 그 이야기부터 끝내야 겠다.


호주 현대를 때려치운 헌터는 선배 회계사를 통해서 성탄섬Christmas Island이라는 곳에서 회계사를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나쁘지 않은 조건임에도, 차고 넘치는 한국계 호주 회계사가 있음에도, 그 자리가 계속 공석인 이유는 시드니에서 거리상 너무 멀고 킹콩이 산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개발이 안된 벽오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린 처자식도 이렇다 할 가족도 호주에 없던 헌터에게는 젊은 시절에 한 번 도전해 볼 만했다. 더구나 씩씩한 성격에 특이한 것을 좋아하던 녀석에게는 오히려 구미가 당겼다. 그렇게 해서 일사천리로 인터뷰가 진행이 되고 바로 합격하여 곽사장이랑 함께 크리스마스 섬으로 들어간 헌터는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막상 심심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백수가 된 내 소식을 듣고 얼씨구나 연락을 했으리라. 절친이 섬에 하나 있다면 얼마나 의지가 되고 재미있을까,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나 역시 시드니에서 굳이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카지노에서 신학과 교수를 왜 필요로 하는지가 궁금했다. 헌터는 곽사장 눈에 잘 들어서 벌써 카지노 돈을 총괄하는 재무 담당자까지 승격했는데, 헌터 설명에 따르자면 카지노 면허는 획득하기도 어렵지만 유지하기 위해선 매년 이익금 중 일부를 지역 사회나 정부에서 정한 기관에 투자해야 하는 조항이 있단다.


그렇게 직원들 복지랑 지역 사회에 무엇을 기여했는지 매년 정부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데 결국 얼마를 어디 좋은 곳에 그럴싸한 의미있게 쓰느냐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이 돈은 어차피 나갈 돈으로 조건만 맞으면 고양이에게 주어도 되었다. 외롭고 심심했던 헌터는 그때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신학 대학에 몸담고 있던 나이지만 평소에 정신분석에 관심이 많아서 일반 상담사 자격증도 있고 입만 열면 정신분석이 얼마나 위대하고 프로이트 선생님이 어쩌고 떠들던 나를 그 조건에 맞출 계획을 짠 것이다.


명분은 이렇다 도박 중독자들에게 강박 상담을 해주는 서비스를 무료로 해주는 것으로 그러기 위해서 성탄섬으로 상담 전문가를 초빙하고 그 비용을 카지노에서 전액 부담하여 이것을 복지 실적이라고 보고만 하면 끝나는 그림이었다. 녀석은 회계사보다는 사업가 아니 화가가 더 적절해 보였다. 하여간 이렇게 재미있는 껀수를 찾아내서 사람을 모으고 노는 데는 천재였다.  


나에게도 No 할 이유가 전혀 없는 딜이었다. 연봉이라야 6만 불 수준이지만 어차피 나는 그 봉급 없어도 사는 사람이었고 이미 헌터가 기반을 닦은 곳이라 위험은 별로 없어 보였으며 헌터가 보내온 성탄선 사진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니 무언가 신비한 힘이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았기에 승낙했고 마침 시드니에 출장 온 곽사장이랑 첫 인터뷰를 하게 된다.


시내 엘리자베스 스트릿 123번지 스타벅스 건물 23층에 두산 중공업이 쓰던 층을 통째로 빌려서 시드니 사무실로 쓰던 곽사장을 만나러 갔다. 벽오지 카지노가 시내 이런 금싸라기 장소에 어인 일로 임대 사무실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도착하니 사내 변호사인 인도 아저씨랑 곽사장이 나를 맞이했다.


우리 아버지 나이로 곧 정년을 앞둔 할아버지였지만 총명한 눈동자랑 다부진 말투는 범상치 않아 보였다. 어쩌면 그에 대한 소문을 익히 아는 내가 만든 아우라였는지도 모르지만... 왼팔인 헌터 회계사 절친으로 신대학 교수요 신학자이며 정신분석가라고 날 알고있는 곽사장은 몹시 흥미로운 눈길을 내게 보냈다.


정신분석이라면 정신과 의사 이런 거냐며 묻는 질문에 공손하게 분야가 절대 다르며 언어를 통해서만 사람을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프로이트 선생님에 대한 존경을 더해서 설명하며 고용주는 내게 프로이트 선생님이랑 동기 동창생이라는 각오를 은연중에 깔자 남아 있던 마지막 의심스러운 눈초리까지 싹 가시며 두 눈이 올 하트로 변해갔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Perth행 비행기표가 왔다. 원래는 한 번 들어와서 보고 올지 말지를 정하라고 했지만 이미 헌터가 자리 잡은 곳으로 귀찮게 왔다 갔다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서 나는 대략 시드니를 정리하고 바로 그 섬으로 들어갔다.




계약 조건은 간단했다. 연봉 6만에 호주 연금 Super 더해주고 1년에 한 번 육지로 나오는 비행기표 제공이랑 호텔에 내 방 한 칸 + 모든 부대시설 이용권이다. 즉, 숙식이 공짜이니 주급 받아서 모두 저금할 수 있는 구조인데 사실 이곳은 돈을 쓸 곳도 없었다. 섬 전체라고 해봐야 대전시 동구랑 비슷한 크기로 그나마도 70%가 국립공원이니 말 다했다.


카지노 안에 시설은 기가 막혔다. Nine Hall 골프장도 있고 체육관에 무엇보다 밥이 잘 나왔다. 사장님이 한국계인 회사이다 보니 재무 책임자(헌터) 호텔리어, 조경사 아저씨 등등 한국인 직원이 많았고 직원들 복지 차원이라기보다는 곽사장이 자신을 위해서 한식이 가능한 한국계 요리사를 주방장으로 쓰니 우리는 가끔 기가 막힌 한식 요리도 제공받았다.


첫날 도착해 보니 예약을 받는 리셉션 여직원들은 모두 백인 호주 사람이었고 총괄 지배인 GM 역시 백인으로 중요한 거래나 지역 인사들 관리 등을 그가 일임했다. 아무래도 호주 사람들을 상대하는 경우에는 현지 호주 직원이 필요하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을 고용한다 해도 그들 끼리 통하는 짬짬이는 어쩔 수가 없더라.


이렇게 '헌터' 왕국에 그 절친 '드림'이 도착하자 우리는 모두 감격했다. 헌터는 거의 울 지경으로 아무리 풍족한 카지노라지만 많이 외웠을 시간이 예상되었다. 악수한 내 손을 꼭 잡으며 잘 왔다고 눈물이 그렁 그렁한 헌터 모습에 남자들끼리 징그럽게 왜 이러냐는 말대신에 나도 살짝 울컥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여기서 뭘하는가? 인생 최대 실수한 것인가 싶기도 했지만 내 눈동자가 불안한 것을 눈치챈 헌터는 이미 골백번도 더 설명한, 이곳은 휴양지 중에 휴양지요 리조트 중에 왕이라 드라마처럼 살면서 돈까지 버는 신문에 나오는 꿈의 직장이라고 다시 침을 튀며 열을 올렸다.


알았어 알았어, 안 도망간다 이놈아!


헌터랑 오랜만에 회포를 풀면서 아름다운 카지노 호텔을 둘러보니 잠시 불안했던 것은 금세 사라지고 절친이랑 함께 일하며 그것도 내가 하고 싶던 상담 일을 새롭게 시도해 본다는 것에 설레었다. 그리고 주로 한국 직원들하고는 오래 인사 나누며 얼굴을 익혔다.


호텔리어로 일하며 객실 청소를 하는 직원들 중에 한국 학생들이 많았는데 특히 나를 살갑게 대해주는 것은 성희라는 여직원이랑 현철이라는 남학생이었다. 한국 전문대학에서 호텔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경력을 쌓으려 이곳에 워킹 홀리데이로 왔다고 웃으며 인사하는 성희를 보니 나랑 알몸으로 서로 몸에 있는 구멍을 막아주는 놀이를 하던 지난 학교 시절이 잠깐 환상처럼 지나갔다. 비슷한 나이일 텐데 이렇게 보니 성희는 그 아이들보다 무척 어려 보였다. 시간이 지나 상황을 떨어져 보니 나는 짤릴 만할 일을 한 것이다.


현철이도 비슷한 스펙인데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하기 전에 브로커를 끼고 이곳에 일자리를 구해서 왔다고 했다. 들어보니 집안이 빠듯한 친구인데 200만 원이나 태워가며 여기 일자리를 소개받아서 왔다고 했다. 이러니mz들이 자리 잡은 우리 선배 세대를 욕할만 했다. 물론 현철이나 성희는 모두 너무나 밝고 착한 아이들이라 나는 이래 저래 더욱 미안해졌다.


성희는 내게 학비도 내고 욕구도 풀어주던 그 또래였고 현철이 역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 나는 단 한 번도 지불하지 않았던 소개비나 참가비를 납부하고도 나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친구였다. 그 아이들이 가진 마지막 자산, 그 보물까지 넘보았다는 자신이 정말 사악해 보여 앞으로 이 친구들에게는 지난 시간을 뉘우친다는 심정으로, 내 졸라 잘해주리라 속으로 되뇌었다.


지난 경험이 없더라면 첫날 이런 다짐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또 이곳에서 새로운 내 왕국을 건설하며 무슨 야한 짓을 꾸몄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첫날 일정을 마치고 레오파드 육지 거북이보다 느린 섬 인터넷에 접속해 간단히 이메일 확인하고 부모님께 잘 도착했다는 인사 정도 겨우 보내니 밤 열한 시가 넘어갔다. 헌터는 내일 아침에 할 일이 많으니 빨리 자라며 지 방으로 벌써 들어갔고, 나 역시 슬슬 잘까 하는 야심한 밤인데 누군가 큰 소리로 당당하게 내 방문을 정확하게 똑똑 두들겼다.


네명씩 자는 직원들 숙소는 카지노 뒤에 따로 있는데 나는 계약대로 객실 하나를 받았고 거기에 헌터 배려도 더해 뷰가 좋고 베란다 쪽은 탁 트인 끝 방 1층에 자리 잡았기에 이 시간에 여길 지날 사람이란 없었다. 또 낮에 파악한 여기 분위기상 업무 관련해서 이 시간에 누가 온다는 것도 아닐 거란 계산이 들어서 덜컥 겁이 나면서 이런저런 상상으로 가슴이 쿵쾅대며 뛰기 시작했다. 혹시 잘못 들었다 생각하려는데 다시 크게 똑, 똑! 문을 때린다. 이 정도 둔탁한 울림이면 몸무게 80은 넘는 호주 남자다!


우선 현관을 바로 열기 뭐해서 문 옆에 있는 통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밖을 보았다. 문 옆에 바로 통창이 있어서 누가 서있다면 일부러 땅바닥에 거미처럼 딱 붙어 있지 않는 이상 보일 각도였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그렇게 속으로 놀라기가 무섭게 또 문을 두드린다. 똑 똑 똑!!! 이제는 대놓고 짜증섞인 노크다. 커튼을 확 열고 대놓고 밖을 보는데 정말 아무도 없다. 이럴 수가 있나 싶고 호주 귀신이 날 반기는 첫 인사인가 싶어, 평소 조롱만 하던 인격신 아버지 하나님을 외우면서 독하게 눈을 뜨고 문을 확 열어 젖혔다.


맙소사.. 방문을 두들긴 것은 심지어 사람이 아니었다.



코코넛게-Coconut crab

세계에서 가장 큰 육지 갑각류로 다 자라면 4킬로 이상이 되는데 마치 영화 Alien이 사람 몸에 심어 놓는 거미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첫날 내 방에 가장 먼저 방문한 생명체는 이 녀석이었다. 방문을 열자 아래에서 날 올려다보는 이 기괴하고 무지 막지 한 녀석 모습에 나는 비명을 지를 정도로 기암 했기에 크리스마스 섬에서 내 첫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이 섬은 홍게뿐 아니라 다양한 게들이 서식하는 게천국이었으나 인간이 들어오면서 생태계는 점점 박살이 나고 있었고 나는 선봉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지켜만 보면 다행이지, 그렇게 자연을 파괴하다 지친 노동자들을 위로하고 달래주려 내가 왔다. 다시 힘을 내어 생태계를 더욱 박살 내라고 말이다.



코코넛 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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