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며칠을 설렁설렁 보내고 일을 시작했다. 섬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타지인들이지만 원래 섬에서 태어난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이곳에 잘 정착했으며 순박했다. 그러니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까탈스럽게 상담에 임하거나 내가 곤혹스러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성희가 이야기한 작은 교회에 가보았는데 너무 작은 규모라서 목사님 역시 목수로 건설 일을 겸하시며 목회는 지역 주민을 위해서 봉사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렇다 보니 날고 기는 한국 목사들 사이에서 경쟁하며 단련된 내가 보기에는 투박하고 세련된 맛이 없었고 여기서 내 경쟁력, 차별점을 찾아 보았다. 이 섬에 없는 서비스를 해주자.
나는 우선 상담을 하면서도 최대한 깔끔하며 섹시하게 정장을 차려 입었다. 더운 섬이라 그렇게 옷을 입고 출근하면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땀으로 범벅이 되기 일쑤라서 나중에는 출퇴근은 반바지에 쪼리로 가고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틀고 식힌 후에 갈아입곤 했다. 거기에 김치 내를 삭힐 향수를 더하면 외모는 준비가 끝나고 다음으로 내담자들에게 줄 특수한 기표나 개념 표상을 준비한다.
내가 하는 상담은 심리 상담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신분석도 아닌 그냥 내가 고안한 이도 저도 아닐 수 있는 기법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상담사마다 스타일이 다르니 원래 정해진 방식 하나를 모두 따라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원래가 강의에 집중하던 교수라 기존 상담 서비스랑 비교해도 몹시 특이했다.
정신분석을 오래 관심 가지고 보았기에 아무래도 분석 기법에서 주요한 [자유연상]이나 [꿈 해석]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특히 꿈 해석은 내담자들로부터 신선한 반응을 끌어냈다. 아무리 시드니대학 법대를 나온 대법관이라고 해도 일상에서 꿈은 해몽 수준으로 접근하는데 이것만 시선을 바꿔주어도 사람들은 나를 또 다른 예언자 대하듯 자신들이 가슴에 품은 인격신 모습에 나를 대입하는 느낌을 받았다.
꿈 해몽은 외부에 있는 어떤 신묘한 기운이나 할 일 없는 절대 신이 보내는 기호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내 운명을 예언하는 환상으로 대하는 행동이다. 막 태어나 걸을 때까지 수년씩이나 걸리는 인간은 그 기간에 부모에게 언어도 같이 배우게 되며 우는 것 말고 다양한 방식으로 내 요구를 전하는 교육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엄마는 대타자-신神이 되며 나는 그에 복종하는 인간으로, 우리는 이 기본 골격이 죽을 때까지 남아서 늘 인격 신을 원하고 어떤 진리라도 가슴에 와서 박히려면 그것을 말하는 대상이 대략 인간 비슷한 모습을 해주어야 효과가 크다.
꿈 해석은 시작부터가 반대이다. 꿈은 우리가 (우리 무의식이) 만들어낸 자가발전 산물이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꿈에는 이따위 예지 기능이나 신비한 힘이 서려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 시키기 위해 강력한 권위랑 기운으로 이를 교육시켜야 했다. 그러자 웃기게도 사람들은 꿈에서 신비한 기운을 뽑아 내어 나에게 전이해 버린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내가 꿈을 해석해 주기를 바라는 아이처럼 의지한다. 내가 인격신이 된 것이다.
강의실에서 여학생들이 나에게 취하는 과정은 의도하지 않았어도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렇게 일대일 상황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나에게 취해가는 모습이 단 몇 번 상담을 통해서도 느껴졌다. 이러니 법을 잘 지킨다는 미국 상담사들 마저도 17% 정도는 내담자랑 섹스를 한다는 통계가 거짓이 아닐 것이다.
배우 김서형
그러다 어느 날 그분이 오셨다. 이 섬을 지배하는 최고 권력자. 사모다. 곽사장은 어차피 육지에 나가서 뭔 그리 할 일이 많다 보니 이 섬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사모였다. 60을 바라보는 곽사장보다 열 댓살은 어린 사모였으니 40대 초반에 은근한 빛이 줄줄 흐르는 여자였다. 돈이 있으니 사람이 더욱 그래 보였다.
비서 비슷해 보이는 젊은 남자를 시켜서 예약을 잡을 때까지도 나는 누가 오는지 정확하게 몰랐다. 하지만 내 상담실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키가 크고 섬에서 보기 힘든 하얀 얼굴을 한 귀부인이 들어오는 그 순간에 나는 이 분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실은 헌터 회계사를 통해서 대략 이 카지노가 어떻게 운영되고 누가 실세인지를 미리 들어 놓은 것도 한몫했다. 사모는 원래 서울에서 사채랑 채권 등을 다루던 큰 업자인데 남편 곽사장이랑은 거의 비지니스 파트너 느낌이라고 했다. 곽사장이 성공한 사례만 알려져서 그렇지 깨 먹은 것도 많고 그러다 사채 시장에서 사모를 만난 것으로 사람들은 추측했다.
사람은 그릇이 비슷하게 논다고 통이 컸던 사모랑 곽사장은 그렇게 바로 인생 파트너까지 가게 되었고 선수들을 모아서 주가 조작을 시도하다 탈이난 사모는 서울 생활을 덮고 곽사장이랑 이곳으로 도주 비슷하게 온 것으로 쉬쉬하는 중이었다. 이제 막 섬에 들어온 내가 알정도이니 저기 기어 다니는 코코넛 크랩도 다 아는 이야기이다.
주가 조작은 중범죄라서 형량도 높고 공소시효도 긴 모양이라 결국 이 섬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인지 이 섬이 진짜로 좋은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알바는 아니나 상담을 하다 보면 결국 밝혀질 것도 같아서 굳이 조급하지도 않았다.
무척 고상한 척하는 여자인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면 저렴한 기표가 끝도 없이 기어 나오는 것이 예상한 대로였으나 농익은 중년 여성이 뿜어내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지금까지 20대 애인만 상대한 나로서는 그 곱절 가량되는 나이 여성을 만난 적이 처음라 그런지 더욱 신기했다.
첫 상담은 대략 상견례 식으로 간단한 개인사 정도를 서로 탐색하는 느낌이었다. 사모도 보통 단수가 아닌 사람이니 내가 과연 유튜브 영상에서 보던 그런 섹시함이 Off-line 에서도 있는가 테스트해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최대한 건조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모가 묻는 것에만 짧게 대답을 했다. 자신도 원래 심리학이나 종교학에 관심이 많아서 어지간한 목사나 상담사는 가지고 논다고 말했다. 진짜 그렇게 면전에서 건방을 떠는 인간은 처음 보았다.
"교수님, 제가요. 이래서 상담을 못 받아요. 어지간해서는 제가 다 이기거든요."
"아 예.."
조또 재수 똥물 튀는 스타일인데 어쩔 수 있는가 닥치고 듣는다. 이것도 자유 연상 아닌가? 그래 자유롭게 해 보세요라고 시간을 주자 조금 떠들다 맘에 들었는지 어쨌는지 다음에 또 오겠다며 살며시 나간다. 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여자인데 그가 내게 주급을 내려주는 사람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그러다 한 주 정도 지난 수요일에 사모가 다시 날 찾아왔다. 이번에도 꽃밥같이 생긴 비서라는 놈이 같이 모시고 와서는 밖에서 기다렸다.
"교수님, 제가 사실 요즘 힘든 게 있어요. 제가 꿈에서 자꾸만 우리 아저씨가 (곽사장을 말함) 다른 여자랑, 특히 젊은 애들이랑 바람피우는 것을 보는데 힘들어요."
"(드디어 올게 왔구나 싶었지만 차분하게) 사장님께서 혹시 과거에 그런 전력이나 어떤 낌새가 있나요?"
요즘 mz처럼 낌새가 있으셨을까요?라고 낌새도 높여드릴까 하다가 너무 없어 보여서 그냥 표준어로 대해 보았다. 설마 그걸로 타박을 한다면 그것도 한 가지 단서로 참고해 볼만도 하여 그냥 그렇게 했다. 다행히 그것에 대한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아니요. 우리 아저씨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에요. 세상 사람들 다 오해해도 저만은 믿어요. 그래서 힘들어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너무 한심하다고 해야 하나? 우리 아저씨는 아닌데 말이죠."
앞에 긴 쓸데없는 이야기는 심드렁하게 듣다가 갑자기 섹스 이야기가 나오니 내 눈은 빛이 났다. 그리고 오늘따라 몸에 딱 붙는 치마로 드러나는 사모 다리 실루엣이 더욱 내 집중력을 높여 주었다.
"신기하네요. 사모님께서 그렇게 확고하신데 그런 반대되는 꿈을 꾸다니요. 꿈은 소원 성취라고 프로이트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하자면 사모님이 젊은 남자랑 섹스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으로..."
말하고 아차 싶었으나 이미 늦었다. 사모는 무서운 표정을 잠시 비추더니 말도 없이 상담실을 나가 버린다. 나는 황급하게 일어나 인사를 드리며 따라가 문을 열어 드리는데 눈 길도 마주치지 않고 그냥 가버린다. 그리고는 젊은 남자 비서에게 손가락으로 차를 빼오라고 지시하고 같이 가버렸다. 비서 역시 나랑 사모를 번갈아 보며 뭐가 이상한 것을 감지하고는 바로 튀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