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 비서 라율이는 요즘 거의 매일 나랑 통화를 한다. 우리 둘이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아서가 아니고 사모 상담 스케줄을 잡다가 조금 친해졌다. 녀석도 무척이나 특이한 캐릭터이지만 거기까지였다. 사모가 주는 일로 내 업무가 늘다 보니 라율이 서사까지 챙길 여력은 없고,거리를 유지하며 사모에 대한 개인 정보를 캐기에 바빴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렇게 내담자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면 오히려 이중관계 혹은 역전이 등등 좋지 못한 결과만 나올 테니 절제하겠지만 나 같은 사이비 상담사에게 내담자 정보는 달달한 꿀이었다. 그렇게 얻은 정보로 사모를 더욱 후려볼 생각이었지만 어찌 인간이 알면 알수록 정나미가 떨여지고 별로인지 요즘 심경으론, 상담 일만 아니면 꼴도 보기 싫은 캐릭터다.
키가 168 정도에 하얀 피부로 외모가 준수한 사모는 자본시장에서 사기 치는 능력도 있어서 돈도 좀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대머리에 배 튀어나온 곽사장 같은 꼰대랑 사는지 궁금했지만 10분만 사모랑 이야기해 보면 바로 안다. 곽사장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 여자랑 옷깃이라도 스친 사람들은 모두 학을 뗀다. 상대방을 견딜 수 없이 조롱하고 무시하며, 잠깐이라도 말을 섞어보면 지가 한 말이 서로 앞뒤가 맞지 않으니 시간 낭비라는 것이 무엇인지 절감하게 된다.
라율이도 육지에서 무슨 사고를 치고 뭔 죄를 지었는지 이곳 땅끝 크리스마스 섬에까지 와서 사모를 빨아주고 사나 어처구니없다가도 나는 그런 라율이에게 사모 정보를 구걸하고 있으니 누가 누굴 한심해하는가? 누워서 침 뱉는 일은 그만하고, 당최 사모는 어떤 사람이기에 내가 이렇게 한 인간을 평가하는지 말씀드리겠다. 가감 없이 정말로 딱, 내가 듣고 보고 겪은 대로만 사모를 표현해 보면 이렇다.
얘 정도는 약과..
우선 이 여자는 가족을 포함한 대인관계가 극도로 불안정하여 주변엔 아는 지인이나 친구는 물론이고 한국에 있는 가족이랑도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다. 가끔 가족 이야기를 하면 욕에 가까운 험담뿐이다.
그럼 자존감은 뛰어난가? 그 반대다. 어려서 연애한 썰도 가끔 푸는데, 상상 속에서라도 버림받을 까봐 과도하게 집착하고 상대가 지쳐서 나가떨어지려 하면 갑자기 자해를 암시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리면서 도망가지 못하게 해놓고는 그가 미안해하거나 위로하려 하면 너 까짓 놈이 뭘 알고 위로하냐는 식으로 혼자 끝도 없는 공허함에 빠져 들어 간다. 이러니 옆에서 듣고만 있어도 같이 딸려 들어갈 지경으로 기가 빨린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중요하다고 믿음으로 자신이 성취한 것은 (기껏해야 남 눈탱이친 거 아니면 개뿔도 아닌 거) 항상 지나치게 과장하며, 남들이 이룬 성과는 운이 좋아서 그랬지라는 식으로 깔보고 인정하지 않는다. 거기에 태어나기를 자신은 특별한 혈통이라고 진심으로 믿으니 중세 유럽에 귀족이 이러했을까 싶다.
이런 특권의식은 매우 지나치기에 조금이라도 자신이 기대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 때랑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화를 내며 견디지 못하는 성격으로 이 섬에 와서 여왕 노릇을 하며 가뜩이나 안 좋은 사모 기질은 더욱 안좋은 쪽으로 강해져만 가고 있다. 특히 화를 낼 때는 사람이 잔인해지기도 하는데 누군가를 헤아리는 마음란 애초에 없으니 그럴 것이다. 당최 이 여자에겐 미안함이나 죄책감이란 감정이 있을까?
여자로서 창피함이나 예의도 없는 편이라, 섹스에 대한 이야기도 매번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는데 아마 다른 남자들 (라율이 같은 비서)에게도 그럴 것이다. 어쩌다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사모 이상형이란 듣고 보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환상이고 이런 것에 몰두하니 주변에 괜찮은 사람들도 (이성이건 동성이건) 항상 무시한다. 이렇게 인간이란 다 필요 없는 존재, 결국 어딘가 있을 백마 탄 왕자님이 오시면 그때는 싹다 치워버릴 쓰레기처럼 취급하기 일쑤이다.
이러니 주변에 사람이 없고 그러다 외로움에 빠지면 어딘가 있을 귀인만이 나를 알아줄 것이라고 소설을 쓰고 자빠지기를 반복하여 옆에 있는 사람들은 이 오만하고 건방짐에 지치고 상처받기만 한다. 하지만 단기 기억이 약하고 사려가 없다 하였으니, 세상 잘난 척하다가도 늘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부러워하기기에 여태 이야기한 것이랑 정반대로 행동하여 듣는 사람은 그 모순됨에 혀를 내두른다.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불안한 여자가 이 큰 조직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 장부상 등기이사는 곽사장이고 돈을 투자한 은행이나 육지에 돈 많은 호주 사람 몇이 주주로 회사법상 주인이지만 그런 건 개나 주고 실제로 회사를 쥐락펴락하는 비선 실세는 사모다. 주주들이 알면 기절하겠지만 섬을 자주 비우는 곽사장이다 보니 사모가 그럴 만도 하다. 사모가 설친다고 욕하기에는 곽사장 잘못이 더 크겠다.
이 정도로 사모를 파악하고 보니 내 위치를 정해야 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상담 시간에 사모가 질문을 하면 나는 엄한 교수처럼 어려운 말을 섞어가며 열을 올려준다. 그럼 사모는 그 모습을 무척이나 좋아라 했다. 하지만 그 밖에 일상 주제나 다른 분야에서는 마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입니다'라는 식으로 행동해야 더 좋아했다. 즉, 똑똑함이랑 멍청함을 양 극단으로 몰아주어야 까르르까르르 자지러 지면서 날 보는 하트가 눈 속에 계속 채워지며 지루해 하지 않았다.
툭튀
가령, 사모는 남자들을 비하하는 것도 가끔 주제로 삼으니 내가 스스로 그런 대상이 되어 주기도 한다.
"김교수, 조루예요? 오래 못한다며? 그거 고칠 수 있는데~~^^"
초기에는 야릇한 사모 분위기에 나도 혹해서 어떻게 한 번해볼까 했지만 바로 다음 날 부터는 사모랑 거리를 두기 위해서 나는 자신을, 특히 성에대한 부분은 마구 자해하는 식으로 낮추어 자평했다. 그러다 찾은 것이 '극한 조루'였다. 이런 것은 또 끈질기게 기억하는 사모는 두고두고 나랑 내 고추를 놀리며 책 상 아래로 뭔가 지긋한 눈길을 보낸다.
"흔히 말하는 조루는 '조기사정 Early-Ejaculation'이라는 진단명을 가지고 있는데요. 보통 질에 삽입 후 1분을 넘기지 못하고 원치 않는 사정을 하는 경우를 뜻 합니다. 물론 삽입을 하지 않은 상태로 오랄이나 다른 유사 행위에서도 유발된다면 역시 조루이고요.
이런 체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지만 주로 사모님께서 고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유형은 후천성을 뜻하는 것이겠습니다. 조루에도 종류랑 중증이 다양한데요. 특정한 자극에 취약하거나 특정 파트너에게만 나타나는 상황형 조루도 있고요. 1분을 기준으로 한다지만 30초를 넘기지 못하면 중증이고 저처럼 15초 이내라면 고도 조루라고 하지요."
이렇게 나 자신을 떡밥으로 던져 주고나면 신나서 마구 언어 성희롱을 날리는데 이상하게 그게 자극하는 날은 심하게 부풀어 오르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일부러 창문을 열려고 하거나 서류를 찾는 척 일어나 책장으로 가면서 꼬툭튀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내가 상담에서 사모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이며 최고 서비스로 이 마지막 카드까지 꺼내 들면 이제 상담은 끝났으니 다음에 뵙지요하고 시간을 잘라 버리림에 눈가가 촉촉해진 사모는 너무나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비서 라율이를 불러서 가버린다.
나는 이런 엉터리 상담 시간을 절묘하고 위태롭게 탄다.
나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명확해 보이는 단서가 있더라도 사모 성격을 특정 정신질환으로 진단할 수는 없으니 시중에 떠다니는 MBTI 검사 따위에 단골로 나오는 '나르시시즘'이라고 대략 이미지를 고착해 본다.
나르시시즘이라..
말하고 보니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 프로이트 선생님도 포기한 내담자 부류가 바로 그들 아닌가? 프로이트 선생님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그가 만든 정신분석이라는 도구로는 치료나 증상 완화가 불가능한 족속이다. 우선 그들은 상담자나 정신분석가 심지어 정신과 의사도 개뿔 아닌 것들이라고 무시하기에 애초에 인터뷰나 상담 자체가 불가능하다.
웃기는 것은 나르들이 무속인들에 대한 믿음은 아주 각별하다는 것이다. 원래 모순됨이 특질이라 그런것도 있겠지만 상식으로 작동하는 인간들이 아니다 보니, 우리가 보기엔 조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주고는 공포에 질려 덜덜 떠는 것을 종종 본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분석가나 의사를 만나는 것이 아니고 만신-무당을 찾아가는 것이리라. 지친다 진짜..
정신분석에서 보는 나르시시즘 원인은 리비도라는 힘(색욕)을 신생아들 역시 가지고 태어나는데 아직 외부 경험이 없으니 온전히 자신(자아)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서서히 밖으로 향해 간다. 이렇게 성장하면서 밖을 향해야 하는 이 리비도가 외부 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발달 오류가 생기면 그대로 자신에게 고착되면서 탄생하는 것이 '나르시시즘'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