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근이가 이 주접을 떨던 순간을 계속 복기해 본다. 맞은편 구석에 있던 성희는 고개를 숙이며 듣고 싶지 않다는 몸짓을 내비친다. 대부분 여직원들이 그런 어두운 반응이지만 성희는 유독 심했다. 그리고 성희 꿈에 나오는 기표를 다른 기표로 바꿔서 나열해 본다.
큰 야자나무 = 남자 성기
야자나무가 쓰러져 카트를 부순다 = 사고 / 성추행
혼합 인물인 경찰이 와서 이를 조사한다 = 자신보다 큰 힘을 가진 이가 사고를 바로 잡기 원한다
호텔로 들어가지 않고 땡땡이친다 = 빠구리 / 섹스
빠구리한 것을 후회 = 원치 않는 섹스 / 강간 기억
성희가 꿈에서 '땡땡이'치는 장면은 '빠구리'라는 기표로 곧장 미끄러진다. 그럼 성희에게 빠구리는 두 가지 중에 어떤 의미일까? 첫째 땡땡이친다는 뜻을 전달하고 싶어서 대근이식 표현인 빠구리를 썼을 리는 없다. 빠구리 원래 의미는 섹스를 천박하게 표현할 때 쓰는 단어로 사실 대근이도 섹스를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 그 누구도 '빠구리'를 학교 땡땡이친다는 의미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희 성풍으로 보아 섹스한다는 표현 역시 빠구리라는 기표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성희가 누군가랑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과거 경험을 떠올릴 때 과연 빠구리라고 표현할 이유가 있을까? 성희가 정 섹스를 빠구리라고 낮춰 부르고 싶다면 어떤 경우일까?
수치스러운 섹스다. 만약 강간 당했다면 그것은 치욕스런 것이니 '빠구리'라고 저급하게 표현하는 것이 맞다. 자 시간을 원점으로 돌려 기표들을 다시 따라가 보자. 성희는 과거에 원치 않는 섹스, 강간을 당했다. 대근이는 '땡땡이'라는 기표를 '빠구리'라는 기표로 바꾸어 사용한다. 성희는 '땡땡이'라는 기표를 사용해 억압된 감정을 대신하고 있다. 무엇을 억압했을까? 그러자 '땡땡이'라는 성희 기표가 대근이 기표인 '빠꾸리'로 미끄러지는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퍼즐을 맞춰보자 성희 꿈은 나를 향한 편지로 해석되어 날아온다.
저는 대근이에게 강간당했습니다. 교수님, 이를 공정하게 조사하고 그가 죗값을 치르게 해 주세요.
대근아, 형한테 좀 맞자.
이렇게 해석을 마치자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 예전에 잘 가르치지 못했던 내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 그로 인해 성희에게 더 잘해주고 싶었던 첫날 다짐이 기억났다. 그리고 해맑은 학생들 웃음 소리랑 그 옆을 지날 때면 풍겨 나오던 영비천같은 풋풋한 체취가 떠오르니 심장이 마구 요동치며 무의식 속에서 날카로운 무엇이 각성한다. 대근이를 향한 강한 살기가 피어오른다.
해병대 갯벌극복훈련
우리 해병대 출신은 두 가지 성향을 품고 사는데, 제대하고 군생활이나 해병에 대한 이야기를 잊고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 조신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랑 가끔은 반대로 그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격렬하고 살벌한 운동으로 내가 해병 됨을 몸에 양각陽刻하고픈 충동이다.
나는 그동안 이 섬에 정착하고 새로운 업무를 숙지하며 모르는 사람들을 사귀다 보니 피냄새를 완전히 잊고 지내왔다. 너무 오래 그 욕망을 억압하고 살았음을 깨닫자 뻥! 하고 뚜껑이 열리면서 진한 피맛이 목구멍을 타고 다시 내 혓가에 진동했고 내 안에 흡혈귀가 깨어난다.
신학 교수이며 상담사로 정신분석도 공부했다지만, 중도 프로이트도 스스로는 스스로를 분석하지 못하는 법이다. 내가 남을 상담하며 위로하고 증상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이란 어디까지나 일로서 하는 직업 행위였으니 폭발하는 이 분노랑 살의는 적절치 못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인지하나 마음으로는 무시하고 계획을 진행시킨다.
그렇다고 진짜로 대근이를 잡아다가 패죽이고 섬 동쪽 끝에 있는 절벽에 묻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우선 지원 사격해 줄 누군가를 만든 후에 대근이를 잡을 정교한 덫을 놓아야 했다.
"성희야, 현철이 지금 어디 있니?"
"세탁실에서 청소하는 것 같아요 교수님."
현철이 역시 대근이에게 이렇게 저렇게 시달리는 중이고 평소 행실이 무겁고 나를 잘 따르는 아이라서 나는 믿고 찾아갔다. 낮에도 어두 컴컴한 세탁실인데 현철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기에 크게 불렀다.
"현철아, 뭐 하냐!"
"교수님, 저 이 아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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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섬은 매일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가는 아열대 기후인 데다 세탁실은 습하기도 해서 아예 바닷가 옆에 지어 놓고 물 빼기를 하는데 침수도 빈번하다 보니 물이 세탁실 안으로 차오르지 못하도록 지면에서 1미터 정도 띄워서 만든 가건물이었다.
가끔 세탁실 안에 비도 새기에 세탁기 등을 보호하려고 세탁실 바닥을 뚫어 큰 배관을 만들었는데 그 아래는 물을 모아서 바다로 흘려보내기 위한 거대한 드럼통 같은 것이 있다. 문제는 그 드럼통에 뚫어 놓은 구멍이 흙이나 나뭇잎 찌꺼기 등으로 자주 막히는데 바다로 쓰레기를 그대로 버릴 수가 없다는 규정 때문에 그 구멍을 작게 만들었으니 막히면 이렇게 사람이 들어가서 손으로 퍼내며 청소해 주어야 한다.
"고생이 많다. 네가 월급 제일 많이 받아야 하는데 사무실에 앉아서 펜대나 굴리는 놈들이 더 받으니.."
"아닙니다, 교수님. 이미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짜식아, 너는 너무 착해서 탈이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현철아, 대근이가 여자 직원들에게 실수가 많은 것 같은데, 너 뭐 좀 들은 것 있니? 괜찮아. 어디 보고해서 일을 키우지 않고 내가 직접 처리하려니 아는 것 있으면 말해 봐."
사모가 섬 유지들하고 멀쩡한 낮 시간에 제정신으로 만나는 행사가 매월 첫 일요일에 있다. 대근이는 사모가 여자 비서를 대동하고 출타하는 그 스케줄을 틈타 세탁장에서 여직원들을 성추행하는 모양이었다. 주요 타겟은 역시 조용하고 고분고분해 보이는 성희였다. 세탁장은 위치상 호텔에서 가장 외곽에 있으며 큰 업소용 세탁기 때문 늘 시끄럽고 수증기도 많이 피어올라 청각 시각 모두 가려지는 장소였기에 범행 장소로 적합했다.
대근이도 작가랍시며 브런친가 토스트인가 하는 곳에 올린 [임계점]이란 글을 자세히 보면 이 미친놈이 악마에게 매일 한 명씩 여자를 제물로 삼아 자신이 대리 섹스를 하겠다고 맹세를 했는데 이를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구절이 있다. 처음에는 이것도 무슨 글이라고 생각했지만 평소 잘못된 기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환유하는 이 새끼 행동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는 율법처럼 이것을 따를 확률이 컸다.
우선 사모가 내게 했던 이야기 중에 이랑 유사한 스토리도 있다. 자신은 남자에게 크게 바라는 것이 없으니 하루에 두 번 쎄게 넣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사모님 그게 엄청 바라시는 거예요. 어쩌다 만난 원나잇도 아니고 평생을 같이 사는 파트너가 어떻게 그렇게 해줍니까!' 혼구녘을 내준 기억이 나는데 이때 사모 반응이 이랬다.
"나 아침은 해결해. 한 번만 더 눌러주면 되는데~~ ^.~"
나 아침은 해결해. 생긴 대로 지껄이는 비문이라고 넘길 수도 있지만 아니다. 이 안에는 생략이랑 환유가 들어간 문장으로 해석해 보면 이렇다.
나는 매일 아침 즐겁게 섹스하는 젊은 정부가 있어.
젊다고 짐작한 이유는 매일 사모 아래 혈관에 정액을 투여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한 것이고 남편은 이 섬에 있지도 않으며 어차피 있어도 안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정부라고 단정 지었다. 그리고 끈적하게 나에게 윙크하던 사모 얼굴이 떠오르자 그 위로 대근이 몽타주가 겹쳐진다. 녀석이 사모 아침 주사기인 것은 확실했다.
이 계산이 맞다면 대근이는 하루 한 번 섹스 계약은 무난히 지키는 상황인데 사모가 일요일 모임을 가는 날은 못할 공산이 컸다. 아무리 정직한 성욕을 가진 사모라 해도 원체 게으른 인간이고 지도 사람이면 한 달에 한 번은 쉬고 싶은 날도 있지 않겠나? 풀 세팅해야 할 그 바쁜 시간에 정액 주사까지 맞고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다. 그럼 대근이는 한 달에 한 번 30시간 규정을 지킬 수 없다. 사모가 돌아오는 저녁에, 한 달에 하루 일하는 사모는 지쳤을 것이고, 그 상황에 들이댄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런 부류 정부는 반려 동물이랑 비슷하여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지 지가 먼저 가서 비빌 권한이란 없다.
마침 오는 일요일이 사모가 출타하는 일요일이다. 나는 현철이에게 세탁장 배관 아래 드럼통 청소를 하지 말라고 했고 오히려 박스 조각을 가져와 확실하게 막아 놓았다. 그리고 지천에 널린 홍게 사체를 그 안에 잔뜩 주어다 던져 놓았다.
세탁장은 습한 가건물로 벌레도 많으니 이를 먹기 위해 몰려든 다양한 생물로 생태계가 풍성했는데 지붕에는 유럽에서 건너온 햄스터 만한 곰쥐가 살고 있다. 녀석들은 잡식성이지만 늘 단백질에 굶주렸는데 이 섬에 사는 게들은 풍성한 단백질 덩어리였지만 겉이 단단하고 덩치가 자신들보다 훨씬 크기에 감히 덤빌 생각을 못하니 이렇게 죽은 게 사체에만 몰려들었다.
세탁장 아래 드럼통에 싱싱한 홍게 사체를 모아 놓자 지붕에 살던 쥐들은 하룻만에 드럼통으로 바로 내려가 잔치를 벌이지만 배가 부르고 정신을 차려 보면 다시 지붕으로 올라갈 길이 막막했다. 드럼통 깊이가 성인 남자 정도 키 깊이라서 나는 그렇게 하루 정도 잔치가 끝나길 기다리며 단단하고 긴 나뭇가지를 구해서 그 끝을 창처럼 날카롭게 갈았다.
그리곤 다음 날 아침 일찍 드럼통 위에서 손수 만든 죽창을 들고 아래를 진노한 인격신처럼 내려다본다. 핏기가 올라온 내 눈을 마주하자 쥐 무리는 아비규한으로 도망가려 위로 올라 오지만 그렇게 하면 나랑 거리가 가까워져서 오히려 날 도와주는 꼴이다.
식욕이랑 색욕이 강해 번식이 용이하며 성체로 자라나기까지 시간이 매우 짧은 곰쥐는 난잡한 짝짓기 성향이나 난교를 즐기는 성질로 멸종 위기 등급에서 최하위로 [최소관심] 평가를 인간들에게 받았기에 나는 그 지침에 따라 전혀 죄책감 없이 내 안에 흡혈귀 본능을 마구 표출해 버린다.
칼보다 날카로운 그 긴 나무 창으로 찍찍거리며 발버둥 치는 놈들을 알지 못할 분노랑 복수심에 닥치는 대로 쥐들을 도륙한다. 기실 내가 원하는 것은 녀석들이 죽는 것은 아니다. 그저 창에 찔려 피를 흘리고 그 부상으로 인해 통 안에서 피냄새만 풍기며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단백질이 필요한 것은 쥐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AI야, 내가 본 그 장면을 그려다오. - AskUp
덩치가 큰 이 섬 게들 역시 그 큰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선 단백질이 필요하고 느린 몸놀림으로 빠른 설치류 따위를 사냥할 수 없기에 식물을 통해서 주로 얻는 실정인데 간혹 이렇게 단백질이 풍부한 피향이 울리면 온 사방에서 소식을 들은 코코넛 크랩들도 게때처럼 모여든다.
다시 하루가 지나서 가보면 그 큰 드럼통 안에는 거대한 코코넛 크랩들이 쥐들을 뜯어먹으며 두 번째 잔치를 치르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먹고 먹히는 이 지옥경을 어떻게 이 글에 녹여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을까?
이것으로 모든 준비가 되었다. 일요일 아침 나는 상륙 작전을 명 받은 해병대원처럼 비장하게 신문지 태운 그을음을 얼굴에 시커멓게 바르며 악마 같은 몰골을 한다. 왜 쓸데없는 오바냐고?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렇게 한다고 대근이가 날 몰라본다는 기대를 품은 것이 아니고 녀석에게 공포를 극대로 심어 주고 싶기도 했고 나로서는 전투에 임하는 해병 같은 기분을 가지고 싶었으며 그를 위한 제식으로 얼굴 위장을 선택한 것이다.
피 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얼룩 덜룩한 죽창을 챙겨 든 나는 인간 사냥을 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세탁장이라는 드럼통으로 간다. 그 안에는 자기 성욕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그 옷을 찢고 성스럽고 나약한 피부를 빨며 썩을 대로 썩은 남근을 쑤셔 넣고는 낄낄거리는 쥐대왕이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아래는 지옥이요. 그 끝은 사망이라..
현철이에게는 만일을 대비해서 증거로 쓸 영상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고 나는 홀로 세탁실 문을 쾅 차고 들어갔다. 일부러 소음이 필요했던 대근이는 세탁물도 없는 세탁기를 공회전으로 크게 운행시켜 놓고 그 뒤로 하얀 여자 다리가 허공에 올라 부르르 떨며 발길질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보였다.
"야, 이 개새꺄! 내가 여기서 이런 짓하지 말라고 했지!"
내 고함에 놀란 대근이는 죽창을 들고 시커먼 얼굴을 한 나를 보자 비명을 지를 정도로 놀라더니 대충 빤스만 입고 혼비백산 달리는데 도망갈 구멍이라고는 내가 어제 활짝 열어 놓은 바닥 배관 입구였다. 녀석은 급한 김에 그 아래로 점프했는데 그 아래는 역시 깜짝 놀란 코코넛 크랩들이 풋쳐 핸섭하며 위에 떨어지는 큰 고깃 덩이를 반기고 있었다.
고작 1미터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는 것이라 부러질 충격은 없는데 문제는 갑옷처럼 두껍고 뾰족한 집게발을 한 껏 하늘로 올린 크랩들로 인해 대근이는 복부랑 뺨에 큰 상처를 입었다. 복부는 내장까지 관통하는 부상은 아닌 찰과상 정도였는데 껍질이 얇은 항정살은 크랩 집게가 뚫고 들어가서 얼굴이 피칠갑이 되며 비명을 질렀다.
성희는 그 일 이후로 바로 사표를 쓰고 육지로 훨훨 날아가버렸고 나랑 대근이는 각자 해군 기지 안에 있는 경찰 수용소로 끌려가 조서를 작성했다. 이렇게 나는좋았던 두 번째 직장도 날려 버린다.
현철이가 나를 위해 증언해 주고 경찰에 전달한 영상 자료 등으로 나는 금방 풀려 났으며 반대 편에서는 사모가 힘을 써준 덕에 대근이 역시 곧 불기소 처분되어 풀려 나왔다.
내 인생은 이렇듯 성욕을 어쩌지 못해서 아니면 그 성욕을 증오하는 짓거리로 늘 망가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