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eamHunter Oct 02. 2024

날 사랑한 귀부인 - 6

발기부전

사모가 내 사무실을 그렇게 박차고 나간 후 나는 엄청난 공포에 시달렸다. 이 섬에서 막 시작한 생활이 단 한 명으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용이 취소되면 나는 다시 짐을 싸서 이틀에 걸쳐 비행기를 타고 시드니로 돌아가야 한다. 돈이 궁한 것도 아니요 이 섬에 꼭 붙어 있어야 할 인연도 전혀 없지만 그날은 정말로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카지노에서 짤리더라도 크리스마스 섬에서 다른 일을 구하던지 아니면 그냥 홍게들 하고 놀면서 지내도 문제없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공포는 어떤 논리 있는 연상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직이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다.


하지만 조용했다. 사모로부터나 회사 측 그 누구로부터도 아무런 통보나 별다른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다가오는 화요일로 사모 비서는 다음 상담 예약을 잡았다. 느끼하게 보던 비서 놈이 고마울 정도로 그 전화는 반가웠고 사모가 다시 온다는 것으로 미루어 지난 분석 사건이 좋은 결과를 만든 것이라 계산했다. 내 분석이 대충 맞았구나! 정말 내 조언이 불편했으면 이렇게 다시 올리가 없지 않은가?




사모가 사무실로 왔다. 그날따라 나는 더욱 옷에 신경을 썼고 향수도 더 강하게 뿌렸으며 사무실 앞에 화단까지 지저분한 것이 없나 살펴보기도 했다. 이렇게 바짝 긴장하고 잘못한 학생처럼 사모를 대하는 나에 비해 그는 아무런 일도 없던 사람처럼 태연하기만 했다. 좋은 징조였지만 예상치 못한 태도였다. 정말 잊은 것인가? 그리고 사모는 알아서 자유연상을 시작하는데 다른 꿈 이야기를 내 사무실에서 풀어놓는다.


"아저씨가 (남편 곽사장) 옆에 있고 나는 가스 손잡이를 잠그려고 했어요. 배경은 이 섬이 아니고 예전에 엄마랑 살던 명일동인데 왜 한국 집에 보면 주방에 그런 거 있잖아요. 기다란 빨간 밸브."


"네, 그려집니다."


"여하튼, 아저씨에게 음식을 해주려고 그걸 다시 여는데 밸브가 너무 빡빡하다고 해야 하나? 잘 올라오지 않아서 열리지 않으니 힘들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열리는데 가스가 새어 나오면서 집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럼 다 죽는 거잖아요? 그래서 무척 놀랐는데 집은 멀쩡했어요."


여기서 나는 첨언을 하고 싶었는데 이 역시 sexual 한 내용이라서 망설여졌다. 또다시 사모가 열받아서 나가버리면 그때는 진짜로 문제가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내 해석에 성을 다루는 부분이 있으니 불편하시면 미리 말씀을 해달라고 공손하게 양해를 구했는데, 벌써 이런 식으로 내담자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이라 나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내가 이럴수록 사모는 만족스러워했다.


"사모님, 제가 분석가도 아니고 사모님 인접 상황을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하니 방금 말씀하신 꿈을 분석하기는 힘들지만 일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그런 밸브는 대부분 남자 성기를 은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리거나 작동하는 동작에서 애를 먹는다는 것은 발기불능을 뜻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리고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이혼이나 파경 등을 환유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쉽습니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쩔쩔매는 식으로 분석을 시도하자 사모는 이번에는 묘하게 만족한다는 듯이 웃으며 어떻게 해야 제 인접 상황을 다 전달해 드릴 수 있을까요? 라며 꼰 다리를 반대로 방향을 틀며 계속해보라는 반응이 나왔다.


"조급하게 하실 필요는 없고요. 지금처럼 저랑 꾸준히 상담을 하시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인데요. 먼저 제가 방금 말씀드린 꿈 해석은 어느 정도 현실이랑 맞는 부분이 있나요?"


내가 곽사장을 겨냥해서 발기불능을 예측한 것은 그 양반이 날 처음 면접 인터뷰 했던 날부터 지금까지 그에 대한 정보를 껴 넣은 것도 솔직히 있다. 60에 다다른 남성으로 운동은 전혀 하지 않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했으며 술도 어느 정도 즐겼으니 타고난 정력가가 아닌 이상 발기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 찍었는데 맞았다. 그러니 지난번 꿈에서 남편은 절대 바람피울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한 말도 이로서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우리 남편 안 서요!라고 신나서 이야기할 아내란 없으니 자존심 강한 사모 역시 절대 긍정 신호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에 관련해서 계속 이야기를 부탁했고 나는 의료 진단이 아닌 정신분석 측면에서 발기부전을 설명해 주었다. 어정쩡하게 대답하면 안 될 것아 잘 모르는 이론도 마치 전문가인 양 거침없이 풀어갔다. 어차피 사모가 어디 가서 이걸 다 기억했다가 대사 맞춰 볼 것도 아니니 과감하게 확답을 준다.


"남자가 성욕을 느끼려면 <애정 흐름>이랑 <관능 흐름>이 온전하게 합쳐져야 합니다. 그전에 가정으로 발기부전이 생식기 손상 때문이 아니며 특정 사람이랑 섹스할때만 실패하는 경우를 말씀 드립니다. <애정 흐름>은 유아가 보호자에게 느끼는 것으로 사춘기를 지나면서 줄어야 하는 것이고요. <관능 흐름>은 외부 성대상을 향하는 것으로 변덕스럽고 쉽게 방해받기에 이것이 <관능 흥분>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심리성 발기부전에 빠지게 되지요. 물론 남자들은 내 안에 어떤 심리 장애 요소가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지만 무엇이 부전을 유발하는지 스스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럼 불능인 남자도 분석을 받으면, 약물 치료 없이,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 만으로 치유가 가능한가요?"


"네, 책에서 보기에 이론상은 그렇습니다만 저는 그런 임상 경험은 없고요. 프로이트 선생님 정도 되는 대가들은 실제로 많이 고치셨다고만 들었어요."


"교수님은 못한다?"


"못한다기보다는 아직 해본 사례는 없다고 말씀드릴게요. 물론 아무리 대가라고 해도 분석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 제가 한다면 실패할 확률은 더 높겠지요."


"관능 흥분? 이걸 다시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게 살면 거기도 산다는 거죠?"


"남자들은 관능흥분 없이도 기계처럼 반응하기도 하는데요. 그렇다 보니 발기부전인 남자도 관능흥분이 아닌 단순 육체에 발기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보고 발기부전이 극복되었다고 말하지 못하니 발기부전을 치료하겠다고 다른 여자를 남편에게 소개해 준다는 영화나 소설식 설정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심리성 발기 부전은 단순히 육체가 서고 말고 따위 문제가 아닙니다."


"짐승들.. 남자란 존재들은 사랑은 하나요?"


사모 역시 발기, 섹스 관련 주제가 나오자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질문도 많이 했고 이때부터는 살기를 띤 독설이 아니고 농담 혹은 칭얼거리는 투로 내게 의지하는 듯한 자세가 보였다.


"남자들 사랑은 반드시 거룩한 사랑이나 동물 같은 사랑 중에 한쪽으로만 갈립니다. 그렇다 보니 진정으로 사랑하면 육체를 탐하지 못하고, 육체를 탐하면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 저변에는 근친상간을 피하려고 노력한 유연기 시절 기억이 깔려있기 때문인데요. 쉽게 말해 진정한 사랑은 어머니나 누이를 향한 색채를 띄기에 섹스 파트너를 진정으로 사랑해 버리면 그 이미지 역시 어머니로 덧씌워져서 그때부터 성욕, 피스톤 질은 멈춥니다."


"뭐야, 이런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닌데. 그럼 남자가 나한테 반응하지 못한다면 진짜로 사랑하다는 징표이니 감사하라는 거야 뭐야! 여자들 성욕은 어떻게 하고요?"


"아무래도 프로이트 선생님도 남자였고 저는 그보다 하찮은 존재이니 여자 성욕에 대한 부분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남자들이 성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많이 쓰는 방법은 하나 명확합니다. 바로 성대상을 폄하하는 일입니다. 즉, 여자를 육욕을 위한 대상으로만 보면 성능력이 대부분 향상되며 쾌락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자칫 애정은 전혀 없이 관능만 좇아다 보면 고급스러움이란 없는 <도착>으로 가기도 하고요."


"도착? 변태 같은 그런 거? 침대에서 욕하고 때리는 그런 것들?" (언제부턴가 말을 놓기 시작했다-_-;)


"네 비슷합니다. 정확하게 분석가들이 말하는 도착이 무엇인지 설명드리자면 길어지니 여기서 마무리하고요. 다시 말해 여성을 폄하하지 못하면 남자는 쾌락을 상실하게 되기에 우리는 비천하기 짝이 없고 하찮게 여기는 대상이랑만 진정으로 짜릿한 섹스를 할 수 있습니다. 가령, 거리에 있는 여자들 싸보이고 야해 보이는 그런 분들 아시죠? 여성들은 주로 혐오하는 대상일 수 있지만 남자들은 열광하니 여자들은 그들에게 욕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끔은 그런 모습을 흉내 내보기도 하지요?"


"그럼 창녀랑 할 때만 남자는 진짜 즐겁다?"


"소수 교양 있는 남자들은 아닙니다. 그런 분들은 애정 흐름이랑 관능 흐름이 적절하게 융합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그런 경우라고 하더라도 여성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 커지면 위축감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이고요. 자신이 보기에 미천하다 싶은 대상에게는 더 딱딱하게 발휘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교수님이 말을 너무 예쁘게 하시려고 하네. 어쨌든 남자라는 족속은 다 똑같이 야한 여자한테 꼴린다는 거죠? 뭘 그렇게 길게 말해요."


"아무래도 저는 사모님께 저잣거리 야설을 전달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학자로서 견해를 드리려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고 앞으로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모는 말은 저렇게 해도 세상 야한 이야기를 이렇게 고급스러운 기표로 끊임없이 내뱉는 나를 향해 은근한 주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교수로 일 할 때 몇몇 여학생들에게 받아 보았던 바로 그 느낌이다. 이제는 짤릴 위험은 없어진 것 같아서 더욱 편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프로이트 선생님뿐 아니라 융쎔도 말씀하시기를 '거룩한 목사가 창녀랑 연애한다'라고 하셨고요. 최상층 남자들, 가령 교수나 검사가, 종종 저급해 보이는 여자를 찍어서 정부로 삼거나 심지어 아내로 삼는 경우는 이런 욕망 결과라고 보입니다. 저급하다는 기표를 여자들에게 계속 사용해서 죄송하지만 남자들은 맘 속으로는 어머니나 누이 같은 고결한 여자를 사랑은 하지만 가장 싸보이고 심지어 예쁘지도 않은 여자들을 보면 욕망이 끓어 오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그놈에 근친상간.. 프로이트는 그래서 욕을 먹어요!" (아는거 하나 나왔다고 꼭 티를 낸다.)


"맞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 선생님 말씀에 따르자면 오히려 근친상간을 상상하는데 익숙한 사람이 어머니나 누이 이미지를 가진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자유롭게 섹스하는데 능합니다. 교양 있는 남자라는 족속 성행위를 분석해 보면 오히려 그들은 섹스가 육체를 더럽히고 오염시키는 것 이상 비천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틀림없이 나옵니다."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 우리 아저씨한테 창녀를 애인으로 만들어 주라는 거예요?"


"아뇨, 제 말씀을 이해 못 하셨어요. 절대 그것은 해답이 아니라고 위에 말씀드렸습니다. 성충동은 유별나게시리 만족되는 순간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애주가가 술을 마실수록 별로라고 하지 않지만 난봉꾼은 결국 모든 것이 허망하다고 시인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지요? 어찌 보면 강력한 금욕이 성 만족이란 가치에 대답일 수는 있지만 무분별한 섹스는 전혀 답이 아닙니다. 이런 부분도 프로이트 선생님이 늘 오해를 사는 부분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태어나면서 정한 근친 성대상을 떠나서 새로운 성대상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대상을 향해 가지만 늘 미끄러지기만 할 뿐 그 어떤 것도 첫대상이 주었던 그 충족을 다시 주지 못합니다."


정숙한 세일즈, jtbc


"아, 골치 아파요. 그래서요? 김교수가 생각하는 결론은 뭐예요? 내가 애들처럼 야한 속 옷이라도 입고 침대에서 쇼라도 하라는 거예요?"


사모는 겉으로는 무척 교양 있어 보이고 싶어 하지만 누구든 이야기해 보면 저렴함이 한껏 묻어 나오는 여자이다. 내가 계속 싸구려, 야함, 저속함 이런 기표를 쓰면서 반응을 보니 이 여자는 그런 단어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으며 은근히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마치 나는 교양이랑 야함을 모두 갖춘 여자라는 듯한 우쭐 거림도 느껴지고 남자 놈들이 그렇기에 내가 싼 티를 팍팍 내는 전략은 옳았다는 논거를 찾았다는 표정도 보았다.  


"성충동은 많은 요소로 되어 있고 그것이 억압되면서 한 남자 무의식으로 들어가게 되면 더욱 알 수 없게 되기에 모두를 위한 만능 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심리성 발기부전을 겪는 분이 있다면 그분이 스스로 분석을 받음으로써 그 안에 원인을 찾는 것이 유일한 답일 거예요. 옆에서 누가 어떻게 해준다고 서지 않습니다. 기계처럼 서는 것 말고 진짜 부전을 극복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를 모르고 단순히 성욕만 향하다 보면 그 충동은 이상한 형태로 표출되어서 똥을 먹어야 흥분하거나 시체랑 섹스할 때만 발기하는 등에 역겹기 그지없고 섬뜩하기 비할 데 없는 도착으로 가기도 합니다. 다 문명이 만들어낸 병입니다."


자꾸만 반말 지꺼리에 엉겨 붙는 것 같은 느낌이 나서 까불지 말라고 좀 살벌한 이야기를 꺼내니 움찔하는 듯했으나 단기 기억력이 약한 사모는 그때뿐이고 오늘도 흡족한 표정으로 상담실을 나선다. 오늘을 계기로 우리는 무척이나 가까워진 듯하다.


정숙해 보이는 사모랑 둘만 있는 공간에서 이런 기묘하고 야한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나누다니 우리는 몸을 섞은 사이 이상으로 깊은 연대감이 생기고 담화 속에서 서로 야릇한 지점을 자극하기도 하며 극도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모를 향해서 성욕을 느낀다고 고백해도 그럴 줄 알았다며 깔깔대고 웃을 판이었다.



크리스마스 섬, 홍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