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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환규 Dec 17. 2024

퇴직이라는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남편에게 아내가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당신은 빈둥거리면서 왜 나만 하고 청소해야 해?”라고 말할 때 남편의 반응은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대화 주제 바꾸기이다. “오늘 드라마 정말 재밌더라.”라고 말하며 대화를 다른 주제로 돌린다. 이런 남편의 반응은 아내의 불만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하게 되면서 갈등의 골만 깊어질 수 있다.     


둘째, 무관심한 태도이다. 남편이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TV를 보거나 휴대폰을 보면서 “응, 다음부터 도와줄게”라고 흘려듣는다. 아내는 이런 남편의 태도를 보면서 자신의 말을 남편이 무시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셋째, 변명하기이다. 남편이 “요즘 사업 구상을 하느라 바빠서 도와줄 여유가 없어”라고 말하며 자신이 열심히 산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말은 아내의 불만에 대해 해결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불편을 해소하기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우선시하는 태도로 보일 수 있다. 

    

넷째, 감정적으로 반응하기이다. 아내의 불만에 대해 “당신만 불만이 있는 줄 알아? 나도 당신한테 불만이 많아. 나도 힘들어.”라고 반발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이런 감정적 반응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문제 해결만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남편이 아내의 불만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회피하는 이유는 사람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피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이 되면 직면하기보다는 회피하려고 행동한다. 이는 불안감을 줄이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위협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경향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의 보고서에 대해 피드백을 하려고 하면 부하는 그 시간을 피하고 싶어 한다. 이런 반응은 실패나 비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화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고 불편한 감정이나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위에서 설명한 아내와의 다툼에서 대화 주제를 바꾸는 남편의 행동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아내와 다툼이 시작되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데, 대화 주제를 바꿈으로써 불편한 상황을 피할 수 있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기보다는 회피하려고 한다. 문제는 회피한다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직장인의 퇴직 시점은 정해져 있다. 법으로 정해진 60세까지 근무할 수 있다면 60세가 되는 자신이 퇴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60세가 되기 몇 년 전부터 퇴직 후 삶에 대해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퇴직 후 삶에 대한 고민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퇴직 시점을 알고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퇴직 준비를 하는 직장인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 이유는 자신의 퇴직을 냉정한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하기 때문이다.     


직장인이 퇴직을 회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퇴직 후 삶의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퇴직을 앞둔 사람에게 현실을 직면하기보다는 현실을 회피하게 만든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면하지 않고 회피할 때 만날 수 있는 부작용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문제의 악화이다     

앞에서 설명한 사례처럼 부인의 불만을 남편이 회피한다고 가사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인의 불만만 더 커지게 만들어 심하면 남편과 따로 살자고 말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남편은 혼자 살면서 부인이 하던 가사노동 전체를 자신이 떠맡아야 할 수도 있다. 이처럼 회피는 문제만 악화시킬 뿐이다.     

직장인이 퇴직을 회피한다고 퇴직이 늦춰지지 않는다. 하루하루 퇴직에 대한 계획을 미루다 퇴직을 맞이하고, 그때야 계획을 세우려고 하면 남는 것은 후회와 한숨뿐이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퇴직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2.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높인다     

회피는 일시적으로 불안감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과 스트레스의 강도는 높아만 간다.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족 간의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의 꼬임에 빠져 재산을 탕진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이해서는 어렵더라도 퇴직이라는 현실을 직면할 용기를 내야만 한다.   

  

3. 건강이 나빠진다.      

스트레스와 불안이 증가하면 신체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계속 회피를 하면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면서 심혈관계 질환, 면역력 약화나 소화기 계통의 문제를 경험할 수 있다.     


4. 소통이 단절된다     

회피는 소통을 단절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앞에서 설명한 부부 사이의 대화에서 가사노동이라는 문제를 회피하는 남편의 태도는 아내와는 이 사안에 대해 더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현일 수 있다. 이런 태도는 대화의 단절을 가져오면서 부부 사이에 관계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소통의 단절은 관계의 단절이기도 하다. ‘남보다 못한 사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서로 의심하고 견제하는 사이인 두 사람의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다. 서로 얼굴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이는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보다 더 나쁜 상황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그런 불편한 관계는 유지되기 어려워지면서 결국은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5. 회피 성향이 강화된다     

문제를 회피하는 횟수가 늘어나면 회피가 일상화되면서 습관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마다 회피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문제 대처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회피는 자신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선택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회피가 단기적으로 편안함을 제공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퇴직은 직장인이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퇴직은 현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하루라도 빨리 퇴직 준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퇴직 후의 삶에 도움이 되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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