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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자의 역할에는 돈이 전부가 아닌 이유는?

by 최환규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동기를 부여할 때 가장 쉽고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돈’이다. 특히 이 돈을 아이에게 줄 때 ‘조건’을 건다. ‘100점 맞으면 용돈을 올려줄게’ 혹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게임기 못 사줘’와 같은 말은 돈을 수단으로 아이를 부모의 의도대로 행동하게 만드는 수월한 방법이다. 문제는 방법이 수월할수록 효과는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부모가 ‘기말고사에서 평균 80점 이상을 받으면 피시방에서 게임을 3시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라고 조건을 걸었다. 아이는 부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평균 79점을 받았다. 부모로서는 아이가 목표에 미달했기 때문에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당연히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의 중간고사 평균은 65점이었다. 아이는 나름대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중간고사보다 평균 10점 이상 향상된 결과도 얻었지만, 부모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게임을 하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열심히 노력한 과정에 대해 아무런 보람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항상 부모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정말 게임을 하고 싶은 아이는 부모의 돈을 훔치고, 친구에게 돈을 빌리거나 친구의 돈을 갈취하기도 한다. 부모의 통제가 심하면 가출까지도 한다. 아이가 이런 부정적인 행동을 한 이유는 아이도 재미 혹은 다른 아이와의 관계라는 욕구 충족이 필요했기 때문에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이다.


돈으로 자녀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에는 몇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첫째, 내재적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아이가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5천 원 정도 있으면 된다. 만약 아이가 용돈을 모아 5천 원이 있었다면 부모의 과도한 목표에는 반응하지 않고 자기 돈으로 피시방에 갈 수 있다. 이렇게 돈과 같이 외부 요인을 활용해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을 ‘외재적 동기’라고 한다.


둘째, 외재적 동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하던 짓도 멍석 깔아 놓으면 안 한다’라는 속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이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지식 습득이지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지식 습득이 아닌 게임을 보상으로 삼는 것은 공부라는 본질을 왜곡한 것이다.


셋째, 외재적 동기는 단기적 효과만 기대할 수 있다. 돈으로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가능한 것이지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다. 보상이 사라지면 행동도 사라지고, 돈의 한계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가 게임이 싫어졌거나 다른 방법으로 돈을 마련할 수 있게 되면 부모의 보상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돈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에는 한계가 있다.


여전히 많은 부모가 한계가 있는 돈으로 자기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돈의 효과를 믿는 사람일수록 퇴직 준비의 우선순위에는 가장 위에 ‘돈’을 둔다. 열심히 노력해 노후자금으로 충분한 자금을 모았다고 하자. 자녀가 경제적으로 자립해 더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면 부모는 어떤 방식으로 자녀를 통제하겠는가? 부모가 손주가 보고 싶다고 애원해도 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를 만나러 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녀에게 부모는 무슨 말로 설득하겠는가? 이처럼 부모가 돈으로 자녀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할 때 가장 큰 피해자는 부모일 수도 있다.


퇴직자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충분한 자금을 마련했더라도 결국은 가족 혹은 자녀와의 관계가 퇴직 후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일부 유명인의 경우 70살이 넘어도 젊은 부인을 만나 아이를 낳으면서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을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는 ‘젊은 부인이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 있다’ 혹은 ‘다른 사람과 바람이 나면 어쩌지?’와 같은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가족과 함께 하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시간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자녀에게 돈으로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매우 많다. 직장 생활하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부모의 따뜻한 격려이다.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자녀에게 돈은 더는 동기를 자극할 수 있는 유인책이 아니다. 나이 든 부모가 여전히 돈으로 자녀를 통제하려고 할 때 자녀는 부모의 곁을 떠나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수시로 따뜻한 말과 눈길로 자녀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부모의 곁을 떠나고 싶어 하는 자녀는 없다.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 성취감이나 즐거움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직장 생활하면서 ‘내가 유명 대학만 나왔더라도 지금과 같은 어려움은 덜했을 텐데….’ 혹은 ‘그때 공대 대신 의대를 갔어야 했는데’와 같은 과거를 후회하면서 ‘우리 애들은 나와 같은 삶을 살면 안 된다’라고 생각해 아이들을 자기와 다른 길을 걷게 만들기 위해 아이들의 목표가 아닌 자신의 목표를 아이들에게 강요하게 된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아이의 목표를 통제하게 만들고, 돈으로 아이를 조정하려고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사람은 돈 혹은 직업이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보다 행복하다’라는 가정이 성립해야 하지만, 이 가정에 대해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돈보다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다.


외재적 동기보다 내재적 동기가 훨씬 중요하고 효과도 크다. 게임을 하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보다 공부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하는 학생의 성적이 더 높을 가능성이 크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운동하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꼈다. 다른 한 사람은 혈압이 높아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억지로 운동을 해야 했다. 아마도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하면 그만둘 가능성이 크지만, 운동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이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운동을 꾸준히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몸무게를 줄이기 위한 것처럼 외부의 영향으로 인한 동기는 오랫동안 유지되기 어렵지만, 성취감이나 즐거움과 같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동기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해 부모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녀에게 물려줄 자신의 강점’을 찾는 것이다. 유명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부끄러운 부모가 아니다. 만약 직장생활을 30년 했다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자신이 살아온 길을 살피면서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이 삶을 충실하게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을 자녀들에게 말하게 되면 자녀들 또한 부모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다.


비록 유명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더라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자녀들에게 따뜻한 말로 격려하고 힘들 때마다 용기를 주는 부모가 일류 대학을 나왔지만,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부모보다 훨씬 더 자랑스러운 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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