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첫 번째 회사를 퇴직 후 갈등에 관한 전문 지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 결정에 대해 지금의 판단은 잘했다는 결정이 70% 정도이다. 나머지 30% 정도는 갈등 공부에 대해 약간 후회하는데 그 이유는 필자는 갈등에 대한 지식이 직장인에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지만, 많은 직장인은 필자와 다른 의견을 가져 갈등에 대한 지식 판매로는 경제 활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는 퇴직을 결정한 다음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코칭, 비폭력 대화나 MBTI 등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부터 대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전문 지식까지 폭넓고 깊이 있는 공부를 했다. 심리학과 관련된 지식을 익히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가족과의 관계 회복 노력이었다. 지금도 아이들은 “직장 다닐 때 아빠의 모습은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토하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회사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대신 잘 먹지 못하는 술을 먹어가면서 직장에서 생존하려고 몸부림쳤다. 특히, 첫째에게는 기대가 커서 그런지 엄격하게 대했다. 가끔 종아리를 때리기도 하는 등 부모 교육에서 절대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들을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아이를 다루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지식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등과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필자의 행동이 아이에게 준 상처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이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아마 필자가 살아오면서 가장 진심으로 한 사과였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아빠의 이런 사과를 받으면서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는 알겠다는 말만 하고 자리를 떴다. 필자도 아이와 관계 회복을 위해 이론에서 배운 대로 실천했다. 이렇게 6개월 정도 지나자 아이로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어떨 때 아빠의 행동이 서운했는지, 그때 자기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등에 대해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말을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는 아빠의 사과가 진심이었는지를 오랫동안 관찰한 다음 진심이라고 판단이 들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
이때부터 가족 사이에 변화가 일어났다. 필자가 주도하던 대화를 아이들 중심으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주말 저녁에 가족 전체가 모여 간식을 먹으면서 한 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나눔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대화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지만, 필자와 필자의 배우자 모두 아이들이 무슨 말이든 시작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줬다. 아이들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부모가 중간에 말을 끊거나 참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나 친구와의 관계 그리고 부모의 말이나 행동에서 서운함을 느꼈던 상황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말하게 되었다. 부모인 필자와 필자의 배우자도 아이에게 서운함을 느낄 때마다 솔직하게 아이에게 말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금도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는 비밀이 없고, 아이들이 힘들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인 부모가 되었다.
이와 함께 가족 행사의 모든 주체를 아이들에게 넘겼다. 예를 들어, 가족이 외식한다고 하면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메뉴를 정하게 하였고, 여름휴가를 떠난다면 아이들이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처음에는 엉망으로 계획을 세울까 봐 조금 걱정도 했지만, 예상보다는 훨씬 짜임새 있게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함을 느꼈다. 이런 연습이 계속되면서 지금은 부모보다 아이들이 훨씬 계획을 잘 세워 그냥 아이들에게 맡기고 있다. 상당히 편해진 것이다.
필자도 가끔 ‘갈등과 심리학을 공부하지 않아 아이들과의 관계가 지금처럼 친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관계가 회복되지 않았다면 아마 코로나 기간에 틀림없이 무슨 문제든 일어났을 거라고 확신한다. 가족 모두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기에 몇 년간 온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해 수시로 갈등이 일어났을 것이고, 이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많은 직장인이나 퇴직자도 필자와 같은 고민을 했거나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가족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필자가 했던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관계를 회복하기 전에는 아빠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했다. 이럴 때 당연히 아이들의 반발이 따랐지만,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했다. 이때 ‘부모의 의견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판단해 아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 아이들의 계획이 부모보다 자신들에게 더 적합할 수 있다고 깨달으면서 과거를 반성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매일 “오늘은 어떻게 보냈어?”라는 질문을 했다. 처음에는 그냥 “잘 보냈어.”라는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대답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이 부모가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평가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아이들과의 회복된 관계를 다시 과거로 되돌리는 큰 실수이다. 아이들의 말이 길어지고, 횡설수설하더라도 인내하면서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고 난 다음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평가하는 대신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신났겠다” 혹은 “힘들었겠네”와 같은 말로 공감을 했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공감받았다고 느끼면 에너지를 회복한다. 신나는 일이었다면 더 신나게, 힘들거나 슬픈 상황이었다면 어느 정도 평상심을 회복할 수 있다. 부모와의 대화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서 다음에도 자기 속마음을 터놓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공감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교육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생각과 공감을 구분하지 못하고 공감 대신 판단에 가까운 부모 생각을 말하면서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생각은 자신의 판단이 들어간 말로 ‘좋다’나 ‘나쁘다’와 같은 단어이다. 반면, 공감은 ‘기쁘다’ 혹은 ‘슬프다’처럼 자신의 감정 상태에 관한 정보를 상대에게 전하는 말이다. 기쁘고 슬픈 상태는 절대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제삼자가 평가할 수 없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재미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과 같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상대, 특히 자녀가 공감을 표현하는 말을 들으면서 평가를 한다. 넘어진 아이를 보면서 “별로 아프지 않으니까 빨리 일어나”와 같은 말은 아이의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든다. 이런 부작용을 피하는 방법으로 인터넷에서 ‘감정 목록’을 검색하면 감정 단어들 리스트가 나온다. 이걸 출력해 아이에게 보여주면서 “네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를 골라 봐”라고 하면 아이는 선택한다. 부모는 이 단어를 보면서 “힘들구나”라고 말하면 아이는 공감받았다고 여기게 된다.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면 된다.
둘째, 함께 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필자가 했던 ‘가족회의’가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한 시간보다는 하루에 10분이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부모나 아이의 일상은 반복되기 때문에 길게 말할 대화 소재가 많지 않고, 아이들이 즐겁거나 힘든 상황은 즉시 해소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자주 대화하는 것이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필자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퇴직 후 모든 활동을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 주말에 아이들과 뒷산에 같이 올라가기도 했고, 노래방도 가족이 같이 갔다. 아마도 가족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약속이 자주 취소될수록 아이들로부터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정한 날짜는 반드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대화할 때도 위에서 말한 방법으로 하면 된다.
셋째, 칭찬과 격려를 자주 한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라는 속담이 있다.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키우라는 말이지만, 심리학 이론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아이가 가출하는 주된 이유는 부모의 물리적·심리적 압박 혹은 학대가 있다. 아이를 너무 칭찬해 가출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비난보다는 칭찬이나 격려가 아이의 심리적 안녕에 훨씬 도움이 된다. 오히려 칭찬이나 격려가 부족해 아이에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칭찬거리를 찾아야 한다. 부모의 이런 노력이 쌓일수록 자녀와의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다.
이렇게 하면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은 줄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긴장감이 사라졌다. 이와 함께 외로움도 사라진다.
가족과 함께하면 새로운 활력을 느낄 수 있다. 가족과 소통하면서 자녀로부터 젊은 감각도 느낄 수 있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젊은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낼 방법을 알게 되면서 동호회나 커뮤니티에서도 꼰대 소리를 듣지 않게 되는 것도 큰 수확이다. 이처럼 가족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응원군을 얻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