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는 데 지갑을 열었는데 왜 행복하질 못하니
오전에는 거실에서 여유롭게 <아침마당>을 보는 엄마를 갖고 싶었다. 저녁에 돌아올 때쯤엔 <여섯시 내고향>을 보는 엄마가 있었으면 했다. 따뜻하게 차려진 저녁 밥상 메뉴를 두고, 건강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새로운 레시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가 한 게 더 맛있어'라는 말도 해보고 싶었다.
화려한 꽃다발도, 은퇴식 세리모니도 없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은퇴였지만 이제 엄마는 오전에 <아침마당>을 볼 수도 있게 되었고, 오후에 시장이나 은행에도 갈 수 있고, <여섯시 내고향>을 볼 수도 있게 되었다. 비로소 나는 내가 바라는 엄마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엄마도 당연히 그렇게 돈 버는 일이 나닌 '집안 일'만 하고 싶어하리라 믿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조카가 집에 놀러온 주말이 되면 나는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엄마'의 풍경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평일 내내 고생한 엄마가 아니라, 평일 동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엄마가 주말이 돼 놀러온 딸과 조카를 위해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거실에는 우리들의 왁자한 수다가 들리는 따뜻한 저녁 풍경. 나는 주방에 있는 엄마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내가 완성한 '평범한 가족'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돌아보면 아주 오랫동안 나는 엄마의 음식을 먹는 일에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엄마가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는 와중에 만들어 놓은 반찬과 국을 데워먹으며 아빠를 증오하느라 자주 체했으니까. 이제 그런 마음 없이 상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리란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겨울에 주방창을 열어놓으면 바람에 불꽃 날릴 일 없어 좋다더라는 말에 인덕션을, 한 번 쓰면 없이는 못살게 된다는 식기세척기도 설치했다. 그렇게 더없이 완벽한 주방과 여유로운 시간이 지속되리라 믿었다. 엄마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아침 겸 점심과 저녁을 만들었다. 솜씨좋은 엄마의 음식을 받는 일이 기뻤고, 나는 지갑을 열었다는 이유로 숟가락 하나 놓지 않고, 밥을 다 먹으면 그대로 일어나 방으로 직행했다.
코로나가 터지고 언니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혼이나 별거는 아니었고, 불화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프리랜서라 재택근무를 하는 나와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조카, 그리고 회사에 다니는 언니와 엄마까지 네 명이 복작거리는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엄마는 언니와 나의 아침 식사를 만들고, 조카의 원격 수업을 챙기고, 저녁에 돌아온 언니와 나의 식사를 준비했다.
언니는 출퇴근 하는 아빠 같았고, 여기에 전업주부인 엄마가 있다. 그래도 집에서 1인분은 하는 나와 귀여운 조카까지. 형태는 달랐지만 내가 그렸던 4인 가족의 모습이었다. 친구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보던 완벽한 가족의 모습 속 전업주부들은 모두 그렇게 밝은 표정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 수록 엄마의 표정은 예상과는 점점 달라져갔다. 설거지를 마치고 행주로 싱크대를 쓸며 한숨을 쉬고, 거실 소파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냉장고로 가는 엄마 뒤로 무거운 그림자가 느껴졌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에게 매끼 식사를 만드는 일이 또 다른 노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식은 엄마를 '엄마'라는 존재로 바라보지만 엄마는 자신을 '나'로 이해한다. '내가 그리던 이상적인 엄마'의 풍경이 곧 '엄마라는 타이틀을 떼어낸, 000'의 풍경과 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서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고, 엄마는 당신의 딸이 아주 오랫동안 '안전한 엄마'라는 존재를 갖고 싶어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음이 가서 지갑을 열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결핍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