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술 마시는데 쓸쓸한 날이고 뭐고가 없지만, 그래도 핑곗거리가 있으면 술 마시는 마음도 편안해 진다.
핑곗거리, 합리성은 필요한 일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쓸데없는 일에도 합리성이 필요하다. 라스콜리니프처럼 합리성 판단에 오류가 있을 뿐이다.
문자가 시대적 흐름이라 말이 점점 실종되어 간다. 물건 사는 데도 몇 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조만간 대화 로봇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1인 가구, 대화가 실종되어 가는 트렌드에 착안한 것 같다. 챗GPT가 이제는 로봇에도 탑재되는 모양이다. 아직은 챗GPT가 세련되지 못해서 가끔은 할 말과 못할 말을 구별 못하기도 한다.
말에 대해 말하다 보니 오래전에 유행했던 말에 대한 유머가 떠 오른다. 말 나온 김에 할 말과 못할 말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본다.
어느 마을에 금실 좋은 암말과 수말이 살았다. 그러다 암말이 큰 병에 걸렸다. 암말이 죽자 수말이 하는 말 “이제는 할 말이 없네.”
암말이 죽고 나서 옆 동네에서 예쁜 암말이 이사 왔다. 그러자 수말이 하는 말 “이제 할 말이 생겼네!” 예쁜 암말과 즐기던 수말이 복상사로 죽고 말았다. 암말이 하는 말. “이제 해줄 말이 없네.”
그러다 어느 날 야생마들이 떼거리로 마을로 내려왔다. 암말이 하는 말 “어떤 말부터 해야 하나.” 야생말들과 난잡하게 놀다 보니 암말은 쇠약해졌다. 옆 동네 암말이 문병 와서 하는 말 “그러게 아무 말이나 막 하니까 그 꼴이지” 그러자 암말이 하는 말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그러다 도를 깨친 수말을 만나 암말은 병이 낫고 기운이 회춘했다. 암말이 하는 말 “지금까지 한 말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리고 암말은 큰 교훈을 깨달았다. 세상에는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 있다는 것을.
최불암 시리즈처럼 오래 묵은 유머라 신선도는 떨어지지만, 이처럼 동음이의어를 절묘하게 조합한 유머도 드물다. 내 생각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이 어려우면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라도 지정되어야 할 국보급이 아닌가? 이 말도 할 말인지 못할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할 말과 못할 말의 기준은 딱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대충 남에게 불쾌감을 유발하는가 아닌가에 달린 것 같다. 그러나 이것도 정확한 기준은 아니다. 사람마다 불쾌감을 느끼는 감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인사말을 해도 표정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진다. 뭐 씹은 표정이면 “아니꼽다”로 느껴지고, 반가운 표정이 아니면 “아직 안 죽었네!” 뜻으로 오해하기 쉽다.
요즘은 “못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홍수 시대다.
인터넷과 SNS 발달로 가짜정보 가짜뉴스가 매일 같이 쏟아진다. 그중에는 간간이 사기꾼도 섞여 있다. 전화사기가 옛날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휴대폰이 등장하고부터 보이스피싱이 대목을 맞았다. 가짜정보로 연출만 잘하면 돈벌이가 되는 시대니.
사실 살아가는데 꼭 해야할 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 말아야 할, 거짓말이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내는 경우도 있다. 역사적으로 그것을 밥 먹듯이 한 사람 중에 벤저민 프랭클린도 리스트에 들어간다.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발명가이며 언론인이며 정치인이다. 다초점 렌즈, 피뢰침, 우체국 시스템을 발명하고, 미국독립선언문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100달러 지폐에 올라 있는 그도 씻지 못할 흑역사가 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신문사를 통해 가명을 써서 남을 모함하고, 있지도 않은 허위 기사로 인디언에 대한 불신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서부 영화에서 인디언을 독일군 취급하는 증오 감정은 프랭클린이 만든 가짜기사에서 시작되었다. 그 외에도 정치적 목적,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가짜뉴스를 퍼트리기도 했다.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 거짓말과 남을 속이는 일이지만, 사기꾼 두 명이 서로 대결을 벌이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두 명의 사기꾼이 맞붙은 일이 있었다. 네덜란드 위조 화가 반 메헤렌에 대한 이야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한 사람이 전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나치에게 국보급 미술품을 팔아넘겼다는 죄목이라네.”
“어떤 미술품이기에 사형을 선고받아?”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 페르메이르 작품을 헤르만 괴링에게 거액을 받고 팔아넘긴 죄목이지.”
“그래서 사형당했나?”
“아니! 징역 1년으로 감형됐데, 나치에게 넘긴 미술품이 피고의 주장대로 가짜라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지,”
“적에게 사기를 쳤다면 오히려 영웅 대접을 해야 하지 않나?”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이유가 어쨌든 남을 속였다는 죄목 때문이라네,”
“거액을 챙기고 고작 징역 1년이라, 사기꾼치고는 괜찮은 사업가네.”
“그런데 그림값으로 받은 돈도 전부 위조지폐였다네.”
“.........”
지금 시대에 거짓말 탐지기가 있지만, 옛날에도 거짓말 탐지기가 있었다.
이탈리아 산타 마리아인 코스메딘 성당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대리석 조각상 “진실의 입”이 그것이다. 거짓말쟁이가 조각상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이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온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곳에서 찍은 영화 장면이 가장 코믹하고 극적이다. 남자 주인공 그레고리 펙이 진실의 입에 자신의 손을 넣고 "악!" 비명을 지르며 손이 잘린 척 하자,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오드리 헵번이 깜짝 놀라 기겁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중세 시대에는 조각상 뒷면에 손을 자르는 사람이 도끼를 들고 서 있었다는 설도 있다.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손을 넣으면 도끼로 손을 잘랐다는, 진짜로 그랬을 것 같은 으스스한 얘기도 전해진다.
잔혹한 진실의 책도 있다. 중세 시대에 마녀를 골라내기 위한 마녀 판별법이다. 진실의 입과 다른 점은 손이 잘리는 것이 아니라 고문과 화형이 가해진다는 점이다.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은 1486년에서 1600년 사이 무려 28판이나 발행됐다. 이 책이 등장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200여 년간 마녀사냥의 분위기가 고조되며 17세기까지 대략 20만 명 이상이 마녀로 몰려 처형되었다고 한다. 마녀 판별법을 보면
- 손을 묶어서 강에 던진다. 강에서 살아 나오면 마녀가 맞으니 화형 시키고, 익사당하면 마녀가 아님. 뭘 어쩌라는 건지?
- 뜨겁게 달궈진 쇠막대 위를 걷게 한다. 살아남으면 무죄 죽으면 유죄. 살아남는다고 해도 화상 후유증으로 사망. 이래저래 죽는 것은 똑같음.
- 악마와 계약을 맺은 흔적을 찾아내려고 긴 바늘로 온몸을 찔러봄. 점이나 작은 흉터가 있으면 악마 손톱 자국이라고 단정. 만일 아무것도 없으면 잉크로 거짓 흉터를 만듦
- 성경책을 읊게 한다. 읊지 못하면 마녀. 읊으면 무죄. 당시 대부분은 문맹자였다. 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읊어보라면 100명에 한 명 나올까 말까였다.
- 책에는 “교회에 가기 싫어하는 여자는 마녀다. 열심히 다니는 사람도 마녀일지 모른다”고 쓰여 있다. 여자는 전부 마녀라는 얘기여 뭐여?
- 교황사절은 마녀 판별에 고민하는 재판관들을 향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여라. 신이 분별해 주실 테지"라고 독려하였다고 한다.
쓸쓸하다는 핑계로 차려 놓은 술잔을 놓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다.
할 말 못 할 말 다 한 것 같은데 마음은 여전히 허전하다. 아직도 해야 할 말이 남아 있는 것일까? 그러나 할 말이 남아 있다 해도 더는 무리일 듯싶다. 어느새 새벽이고 취기가 올라온다. 이제 그만 하루의 시간을 봉쇄할까 한다.
인간에게 수면이 필요한 이유는 적어도 잠자는 동안에는 거짓과 진실 모두가 망각되어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것,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