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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잡담 Jun 10. 2023

스피노자 감정


스피노자 감정          


어느 철학자가 스피노자를 “철학의 그리스도”라고 표현했다. 이는 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했다는 기독교 그리스도에 빗대어 무지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스피노자를 평가한 것이다. 여기에 나는 니체를 덧붙여 두 명의 철학자가 인류에게 지성의 복음을 전한 진정한 지식의 사도들이라 말하고 싶다.

神은 유럽 신념의 우상이자 심장이었다. 스피노자가 神을 자연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내렸다면, 그보다 200년 늦게 태어난 니체는 아예 그 신을 소각해 버렸다. 문헌학자로서 니체는 스피노자를 당연히 주목했을 것이다.

니체가 神을 폐기함으로써, 종교라는 집단농장에 갇혀있던 인간, 神의 노예로 예속되어 있던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스피노자로부터 받은 지식의 세례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통 유대교 집안 출신이었던 스피노자는 신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단지 해석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해석한 신의 모습은 “자연” 그 자체다. 스피노자 사상을 흔히 범신론이라고 하지만, 엄밀하게는 무신론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가 말한 논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신은 무한한 존재인가 아닌가? 신이 무한하지 않다면 그는 우리와 같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가 남남이다. 신을 믿을 이유나 필요가 없다. 신이 무한하다고 한다면 세상 만물이 모두 그 속에 포함되는 것이니 나도 신이고 자연 전체가 신이 된다. 각자가 모두 신인데 누가 누구를 숭배할 것인가?』     


“자연이 곧 신이다” 유명한 명제를 탄생시킨 위 내용만 봐도, 그가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철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신이고 너도 신이고 자연 전체가 신이라면 사실상 신은 없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의 저서에는 신비주의가 좁쌀만큼도 들어 있지 않다. 그의 언어는 냉혹하리만큼 논리적이다.

일례로 그가 쓴 “에티카”는 윤리학책인지 수학책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이라는 부제까지 달려있다. 책 내용도 정의-공리-정리-증명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학 기호만 없지 서술된 형식만 보면 수학책이나 다름없다.     


1632년 스피노자는 유일신이 지배했던 시대에 태어났다. 그가 속한 유대교는 물론이고 로마 가톨릭, 칼뱅 같은 프로테스탄트, 유일신이 유럽을 덮고 있었다. 신의 규범이 곧 사회 정의와 도덕 가치의 기준이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는 종교박해를 피해 포르투갈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유대인이었다. 그의 친할머니는 포르투갈에서 마녀로 몰려 산채로 화형 당했다.

네덜란드는 종교의 자유가 있었고 암스테르담은 번성하는 도시였지만 정치적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왕당파와 공화정 간의 싸움으로 공포와 폭력이 난무했다. 공화정 수장 드 비트가 군중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학살당하기도 했다. 그것을 목격한 스피노자는 정치적 폭력이 자신의 친할머니에게 가해졌던 종교적 폭력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앞서 스피노자 양심을 뒤흔든 사건은 또 있었다. 한 유대 청년이 사후 세계에 대한 신앙을 의심하는 논문을 발표했다가 혹독한 비판을 받고 파문당한 것이다. 유대 공동체는 그 청년을 교회 입구에 엎드리게 하고 신자들이 그를 짓밟고 들어가게 했다. 모욕감을 참지 못한 나머지 청년은 박해자들에게 보내는 준엄한 항의 편지를 남기고 자살했다.

종교박해를 피해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이 종교박해를 가하는, 웃지 못할 이 상황은 스피노자에게 유대교에 회의를 품고 의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는 훌륭한 랍비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으나 마음은 이미 진실과 진리를 향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가 유대 경전을 비판한 것은 철저한 분석과 논리, 사고의 산물이다. 그가 쓴 "신학정치론"은 성서 해석학 성격의 책이다. 그 책에는 보다 엄밀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대충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사람들이 이성을 경시한 결과 미신을 신의 신탁으로 여기게 되었고 두려움 때문에 광기에 내몰려 자발적인 노예 상태에 내 놓인다. 자연법칙에 대한 무지가 공포스러운 신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권력은 그 잘못된 믿음과 미신을 이용해 대중을 통치한다. 사람들은 신에게 비천하게 아첨하고 있을 뿐이다.

지혜롭고 덕이 있으며 권세를 지녔다는 초월한 모습의 신은 한낱 상상력의 산물에 불과하다. 천국과 지옥은 어리석은 미신에 불과하며 성서는 하느님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편집되고 조작된 것일 뿐이다.』     

『대중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미신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 미신이란 근본적으로 우리가 약한 지성과 강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것인 양 자신들의 예속을 위해 싸우고 한 사람의 허영을 위해 피와 목숨을 바치는 것을 수치가 아니라 최고의 영예라 믿는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아마도 사람들이 넓은 의미에서 무지에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JMS 기독교복음선교회, 오대양 박순자,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신천지 등 광신도들을 스피노자가 말한 내용과 비교해 보면 수학 공식처럼 딱 들어맞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대 공동체 사회에서 이 같은 유대교 비판은 당연히 쫓겨날 수밖에 없다. 23세의 나이에 스피노자는 파문당했다. 유대 공동체가 그에게 내린 파문 판결문은 무자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스라엘 신께서는 그를 용서하지 마시고 노여움과 분노가 이 사람을 향해 불타게 하소서. 낮에도 그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고, 밤에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가 앉아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 것이고, 그가 일어나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가 밖을 나가도 저주가 있을 것이고, 그가 안에 있어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주께서는 그를 용서치 않을 것이며, 주의 분노와 질투가 그자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고, 이 책에 쓰인 모든 저주가 그를 덮칠 것이며, 주께서 하늘 아래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 없애실 것이다. 어느 누구도 말이나 글로써 그와 교제하지 말 것이며 그에게 친절을 베풀 수 없다. 누구도 그가 쓴 책은 읽어서도 안 되느니라.』     


이처럼 가혹한 파문에 대한 스피노자의 태도는 한마디로 “침묵”이었다.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파문당한 후 그는 영원한 추방자로서 삶을 살았다. 그리고 테러 위협에 항상 숨어 지내야 했다.

누구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기에 그는 다락방 셋방을 찾아 이곳저곳 떠돌아다녔다. “다락방의 합리론자”라는 그의 별명은 여기서 나왔다. 스피노자는 죽을 때까지 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렌즈 가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저녁에는 저술에 몰두하면서 궁핍한 생활에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흠잡을 데 없는 그의 생활이 반대편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했다. 무신론자가 성자처럼 도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비난받았다. 누군가는 그를 충분히 비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다. 철학 역사상 그만큼 경멸받고 온 세상이 적이었던 철학자는 드물 것이다. 묵묵히 렌즈를 갈며 살아갔던 스피노자를 보고 사람들은 “그의 인생은 영혼의 렌즈를 가는 삶”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철학의 그리스도라 불릴만한 이유가 여기에 또 있다. 인간 예수처럼 온갖 수난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향한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듯이 그의 생은 1677년 헤이그의 어느 허름한 하숙방에서 끝났다.     


“스피노자 공식”이라는 것이 있다. 학계에서 유통되는 용어가 아니라 누가 심심풀이로 만들어 낸 야담 비슷한 것이다. 이 공식에서 말하기를

- 인류 문명 발전은 과학적 지식에 비례하고 종교 미신에 반비례한다. 천둥 번개가 신의 노여움이라는 생각에서 “전기”라는 지식이 나올 수 없다. 천년만년 기도하고 주문을 외운다고 스마트폰이나 우주로켓이 저절로 생겨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인간의 지성은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에 비례하고 종교미신적 사고방식에 반비례한다. 자연과학은 합리성에 근거하고 종교미신은 맹목성에 근거한다. 합리성은 있는 사실을 믿는 반면, 맹목성은 없는 사실을 믿는다. 이것은 눈뜬 사람과 눈먼 사람만큼의 차이가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스피노자 동상에는 “국가의 목적은 자유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신학정치론"에 나오는 문구다.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짧은 이 문구가 오늘날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확립하는데 끼친 영향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인 하이네는 “모든 철학자들은 스피노자가 갈아놓은 렌즈를 통해 세상과 사물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철학자는 아니지만 나 역시 그가 갈아놓은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스피노자는 현자와 무지한 자를 구분하는 기준을 “에티카”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지한 자는 외적인 원인이나 힘에 의해 늘 동요한다. 반면에 현자는 외적인 원인이나 힘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지와 참된 지식의 차이에서 온다고 말한다.     


우울하거나 기분이 처질 때 누구나 위로가 될 만한 대상을 찾아 머릿속에 떠올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스피노자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골 중의 단골이다.

산책할 때마다 “자연이 지닌 질서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에 따른 정서를 품는 것이 바로 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그의 말을 떠 올리곤 한다. 나무와 꽃을 한참 바라보면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 속에서 스피노자가 내뿜는 지성의 향기를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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