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론은 전자의 확률밀도를 다루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나 역시 확률분포에 따른 전자의 구름모형이라는 것, 그것에 따라 전자가 배치된다는 개념적인 내용 말고는 알고 있는 지식이 없다.
그러다 문득 EBS 강사들은 오비탈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해졌다.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전자의 존재 방식을 그들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키고 있을까? 유튜브를 검색해 몇 편의 동영상을 시청했다.
참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 오비탈을 설명하는 그들의 노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극장 좌석을 비유로 든 설명, 생활공간을 비유로 한 설명, 콘서트 자리 차지를 비유로 든 설명 등등.
만일 내가 EBS 강사라면 오비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말로 초등학생이 알아들 수 있을 정도로 오비탈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을까?
전문분야 박사라고 잘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아는 것과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식 전달은 수강자 이해를 위한 2차 가공이 필요하다. 유명강사들은 이런 능력이 특출 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유튜브 시대에 굳이 학원이나 과외가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만큼 다양한 지식에 대한 훌륭한 강의가 유튜브에 널려 있다.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도 독특하고 세련미가 있다. 요즘은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어떤 학문이든 독학이 가능한 시대인 듯싶다.
오비탈은 원소주기율표와 직결되기 때문에 화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물질에서 전자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원소에서 어떻게 배치되는가 하는 것이 오비탈에서 다루는 핵심 내용이다.
문제는, 전자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직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 존재는 확률적으로 분포된다. 가령 하나의 전자는 지구와 목성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각각에 존재할 확률이 다를 뿐이다. 존재가 확률적이라는 성질은 전자뿐 아니라 모든 입자가 가지는 원초적인 속성이다.
입자의 존재가 확률적이기 때문에 입자 덩어리인 물체도 확률적으로 존재한다. 가령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여기 지구가 아니라 화성이나 목성에 있을 수도 있다. 화성이나 목성에서 나를 발견할 수 없는 이유는 그 확률이 너무도 작기 때문이다.
즉 현재 내가 지구에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확률이 가장 높아서 여기에 있을 뿐이다. 내가 화성에 있을 확률도 0.000.....0001% 존재한다. 터무니없이 작은 확률이기는 하지만, 이 값은 실제로 불확정성 원리나 파동함수로 계산이 가능하다.
우리는 누구나 생활공간을 가지고 있다. 집, 회사, 도서관, 음식점, 마트, 카페, 술집……. 만일 우리가 평생 사는 동안 이동한 장소 통계를 낸다면 각각의 장소에 있었던 횟수를 알 수 있다. 아마도 집이나 회사에 있었던 횟수가 가장 많을 것이다. 해외여행을 했다면 미국이나 유럽도 몇 회쯤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공간상에 전자가 존재할 확률이다. 전자는 집, 회사, 도서관, 음식점, 유럽, 화성, 목성……. 어디에나 같은 시간대에 있을 수 있다. 각각의 공간에 있을 확률(빈도)이 다를 뿐이다.
상호작용이 없는 상태에서는 전자뿐 아니라 물체도 파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입증된 바가 있다. 풀러렌 같은 고분자도 이중슬릿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한다.
이것은 농구선수가 하나의 농구공으로 자기편과 상대편 골대에 동시에 골인시킨 것과 같은 얘기다. 축구선수가 한 번의 프리킥으로 자기편과 상대편 골대에 동시에 골인시키는 기이한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오비탈은 우리의 감각이나 인식체계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하나의 입자(물질)가 동시에 여러 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100년 전 사람들에게 말한다면 “미친놈의 잠꼬대”라는 소리를 듣거나 정신병원 입원하기 딱 좋은 환자로 취급받기 십상일 것이다.
정신병 환자로 취급받기 딱 좋은 이 내용은, 그러나 수학이나 실험적으로 엄밀하게 증명된 사실이다. 우리의 감각적인 상식, 인식의 선입관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가를 오비탈이 말해주는 듯하다.
흔히 양자역학을 해석의 학문이라고도 불린다. “존재”가 입자(물질)와 파동(비물질),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하고 그것이 확률로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체계로 그 의미를 알 수 없기에 다양한 해석이 양산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오비탈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 오비탈은 교과서 목차 중 하나일지 몰라도 그 의미는 “존재”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전부인 것이다.
오비탈을 어떻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지식에 스승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면 스승이 있을 수 없다. 사실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유일한 정답일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철학적인 질문이었던 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과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존재에 관한 문제는 입자물리학과 양자역학에서, 시간과 공간은 상대성이론에서, 인간의 오성에 관한 내용은 뇌과학에서 실마리 찾고 있다.
앞으로는 철학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은 과학에서 답을 찾게 될 것이다. 근래에 와서 화학과 생명공학이 점점 입자물리학과 겹쳐지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그 중심에 오비탈이 있다. 물질의 기본이 입자이기 때문에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시대에 그리스로마신화를 믿지 않듯이,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앞으로 100년 이내에 인류의 모든 주류 종교가 소멸하리라 생각한다. 다수가 공유하는 종교가 아닌 1인 종교 시대가 올 것이다. 개인의 이념과 가치관이 곧 자신의 종교가 되는 이념의 개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비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인류가 발견한 사실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길이 진정한 의미의 종교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이라는 책에 담긴 주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것이 오비탈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삶의 화두다. 오비탈은 우리가 확률적인 존재라는 정보를 알려 준다.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가고, 우연히 생겼다가 우연히 소멸하는 것, 확률은 그런 것이다.
지구 나이를 1년으로 봤을 때 인간은 0.5초의 짧은 시간을 살다 간다. 인간은 티끌 같은 존재가 아니라 티끌 그 자체인 것이다. 지구도 은하에 비하면 티끌이고 우리의 은하도 수천억 개 중 하나인 티끌이다. 티끌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티끌 같은 인생, 티끌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그러나 삶에 티끌만큼의 의미나 목적이 있다면, 티끌만큼이라도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이 그나마 티끌다운 티끌 인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