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주제는 “엉덩이는 하나인가 두 개인가?”에 대한 것이다. 주장이 두 개로 갈렸는데 엉덩이가 하나라는 “엉한파”와 두 개라는 “엉두파”다.
엉덩이가 하나라는 엉한파 주장은 이렇다.
- 뇌는 좌뇌, 우뇌가 있지만 뇌가 2개라고 하지 않는다.
- 엉덩이를 따로 움직일 수 없으니, 이것은 엉덩이가 하나라는 증거다.
- 팬티를 하나만 입으니 엉덩이는 하나다.
반면에 엉덩이가 두 개라는 엉두파 주장은 이렇다.
- 엉덩이라는 단어는 두 개의 "덩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 유방이 두 개이듯 엉덩이도 두 개다.
- 영어에서도 hips 복수형을 사용한다.
이에 대해 해부학 교수는 엉덩이는 한쪽 엉덩이 위쪽, 궁둥이는 한쪽 엉덩이 아래쪽을 가리키고 이 둘을 합쳐서 볼기라고 한다. 볼기가 두 개니 엉덩이도 두 개다.
반면에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엉덩이는 볼기고 볼기의 정의는 허벅지 위 양쪽 불룩한 살이라고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엉덩이는 하나가 맞다고 말한다.
위 논쟁은 “위상학”과 관련된 토론이라고 볼 수 있다. 불변량 정의에 따라 논쟁의 답은 달라진다. 위상학은 일종의 범주론이다.
위상학에서는 성질이나 본질이 비슷한 것을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대표적으로 생물 분류를 나타내는 “계문강목과속종”을 들 수 있다. 가령 토끼와 사람은 모양이 다르지만 “척추동물 포유강 포유류”라는 생물 기준에서는 같은 생물이다. 특정 기준에서 두 생물의 위상은 같다. 이처럼 위상학은 국소적인 성질이 아닌 전체적인 성질을 기술한다.
위상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성질이나 본질”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다.
생물 분류는 생물학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구분한다. 그 기준에는 해부학적인 특징은 물론이고 생리·생태·생화학적 지식이 망라되어 있다. 근래에는 분자생물학적인 특징이 중요한 분류 기준으로 부각되고 있다.
식별 기준을 위상학에서는 “불변량”이라고 부른다. 성질이나 본질이 규정한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즉 대상을 다루기 위한 공리가 “불변량”이다.
가령 실종자를 찾을 때 인상착의가 가장 중요하다. 키, 몸무게, 얼굴형태, 혈액형, 실종 당시 옷차림 등등. 말하자면 실종자의 특징을 규정하는 것들이 “불변량”이다. 불변량이 동일한 것은 모두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만일 “혈액형 A”를 불변량으로 정했다면, 인종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혈액형 A인 사람은 위상학에서는 모두 같은 사람으로 취급된다.
위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 “범주론”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단어가 나타내는 속성으로서 실체, 양, 질, 크기, 시간 등 여러 가지 범주로 구분했다. 언어의 문법적 기능이 범주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령 어느 누군가를 가리켜 “그는 소크라테스다”라는 것과 “그는 사람이다”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다.
둘 사이는 범주가 다르다. 소크라테스는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개별자를 의미하는 것이고, 사람은 개별자가 포함된 집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자는 개별자, 후자는 보편자라고 부른다.
존재론은 제1실체(개별자)와 제2실체(보편자)로 구분되는 서로 다른 위상값을 갖는 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범주론에서 시작된 논쟁이 서양철학의 기반이 되었다.
위상학이 고도로 발전된 분야는 수학이다.
기하학은 “평면기하(유클리드)-곡면기하(리만)-공간기하(위상수학)”로 발전되어 왔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공리를 통해 점, 선, 면, 평행선, 정삼각형, 이등변삼각형, 정사각형과 같은 도형을 정의한다.
그러나 지구와 같은 곡면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은 맞지 않는다. 곡면에서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 보다 크거나 작을 수가 있다. 평면과 곡면의 위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위상이 다르기 때문에 수학적인 접근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공간의 기하학적인 성질을 다루는 학문이 “위상수학”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도 한다.
위상수학에서는 생물 분류와 같이 공간을 기본적으로 8개의 위상으로 구분한다. 공리나 정의에 따라 어떤 모양이든지 위상동형이면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가령 구멍이 하나인 손잡이 있는 컵과 도넛은 같은 도형이다.
서두에서 꺼낸 엉덩이 문제는 위상수학적으로는 답이 하나다. 덩이(둔부)가 몇 개이든 엉덩이에 있는 모든 대상을 수렴시키면 하나의 점으로 모이게 된다. 이것은 구와 같은 위상동형이다. 반면에 도넛의 경우, 모든 대상을 중심으로 수렴시킨 결과는 폐곡선이 될 것이다. 때문에 도넛과 엉덩이는 위상이 다른 도형이다.
유클리드 시대에는, 공간은 3차원 단일한 존재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위상수학이 나오면서 공간의 성질은 복잡해졌다. 위상수학은 임의의 n차원 공간에서의 기하학적인 성질을 탐구한다.
위상수학에서 공간 차원은 좌표상에서 대상이 가질 수 있는 자유도를 말한다. 자유도가 3개일 때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3차원 공간이 된다. 3차원은 수많은 공간 중 하나일 뿐이다. 위상수학에서는 무한차원 공간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현대 과학의 도약은 위상수학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리만기하학을 적용하여 기술되었다. 위상수학이 물리학에 접목되면서 중력파, 블랙홀, 빅뱅 등 우주에 대한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오늘날 위상수학은 물리학, 공학, 컴퓨터 과학, 생물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응용 프로그램도 개발되고 있다. 특히 고체물리학에서 위상수학은 “초전도체” 현상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가 되었다.
2016년 노벨물리학상은 “상전이와 위상부도체”에 대한 연구였다. 지금까지 물질의 전기적 성질은 도체, 부도체, 반도체로 구분되었지만, 이제는 “위상부도체”라는 새로운 성질이 하나 더 추가될 전망이다.
수학은 논리적인 사고로만 이루어진 추상적인 학문이다. 그중에서도 위상수학은 고단위로 추상도가 높은 학문이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여러 분야에서 전에는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위상수학을 적용함으로써 해결된 사례가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추상적인 것이 현실 문제 해결에 열쇠가 되는, 기이한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허수(i)도 그런 경우 중 하나다. 허수는 실수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수다. 그래서 이름도 허수(虛數)가 아닌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수라는 뜻이다.
그러나 허수는 좌표를 일반화(복소평면)하는 수단으로써 없어서는 안 되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또한 허수(i)가 아니면 기술하기 곤란한 수식이 수없이 많다. 오일러공식, 파동방정식, 전자기 해석, 벡터 해석 등등.
추상적인 것이 현실 문제 해결에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철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뇌과학에서는 우리의 뇌는 감각되는 정보를 편집해서 추상화된 이미지로 대상을 인식한다고 한다. 즉 뇌는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범주화(추상화)시켜서 사물을 인식한다.
범주는 대상을 식별하는 도구다. 범주의 범위가 넓을수록 추상도가 높아진다. “척추동물 포유강 포유류”라는 범주에서 토끼와 사람이 같은 생물로 보이는 식이다. 위상수학으로 말하면 차원이 높을수록 사소한 차이는 무시되고 거시적인 본질의 모습이 드러난다. 유클리드가 나무를 보는 것이라면 비유클리드는 숲을 본다.
범주가 넓다는 것은 공간위상의 차원이 높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가령 독수리와 개미는 공간위상에 차이가 있다. 개미들이 다투는 모습을 독수리가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사람이 사소한 일로 일희일비하는 사람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위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것이다.
얼마나 높은 차원에 도달해야 삶과 죽음이 하나로 보이는 것인지 나 자신도 모른다. 이것은 위상수학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세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추상적인 것이 현실 문제 해결에 키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싯다르타를 들 수 있다. 그가 인식하는 공간차원은 아마도 인간의 한계까지 도달한 것이 아닐까 싶다. 법화경을 읽어보면 심오한 그 차원의 그림자가 잡힐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가끔은 삶을 위상수학적으로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나는 몇 차원 공간의 삶을 살고 있나?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노망이나 망령 차원을 피하려는 노력은 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이 제일 두렵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