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생물학적인 정의가 있겠지만, 물리적인 해석이나 철학, 종교적인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개인의 신념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물리적으로는 “화학기계”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모든 생명체는 잉태에서 성장하기까지 화학시퀀스에 따라 일어난다. 모든 과정이 화학적으로 설명된다. “화학작용”에서 벗어나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체 자체가 화학기계이기 때문이다.
기계는 논리적으로 작동되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가령 자동차는 기계적인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컴퓨터는 논리적인 회로에 따라 작동하고, 화학기계는 화학적인 논리에 따라 반응한다.
18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생성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 시기에는 “생명력이 있는가? 없는가?”를 기준으로 원소를 구분했다. 생명체에서만 합성이 가능한 원소를 유기물, 그렇지 않은 것을 무기물로 분류했다.
유기물의 경우 커다란 분자구조 안에 생명의 정령이 원소와 원소를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뵐러가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합성하기 이전까지 화학지식의 기본이었다.
뵐러 이후에야 원소 안에 생명의 정령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살아있는 생명체에서 합성되는 모든 화합물 역시 실험실이나 자연에서 얼마든지 합성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기물과 무기물의 경계가 없다면, 무기물에서 생명체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상이다. 원시지구에서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학자는 오파린이다.
1953년 스탠리 밀러는 오파린 가설이 맞는지 실제로 실험장치를 만들었다. 그는 메탄, 수소, 암모니아가스 등 원시대기와 비슷한 화합물에 에너지(전기스파크)를 공급하여 유기결합물과 아미노산이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생명체의 화학진화를 주장했던 오파린 가설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밀러에 이어 폭스는 아미노산을 고온으로 가열하면 폴리펩타이드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밝혔다. 뜨겁고 건조한 화산이나 열수구 같은 고온 환경에서 아미노산 중합반응이 쉽게 일어나 고분자로 합성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은 단백질도 원시지구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합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4년에는 무기물에서 핵산의 한 종류인 RNA가 만들어질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실험실에서 농축된 포름아마이드를 고온에서 방사선에 노출시켰을 때 RNA의 재료인 시토신(C), 구아닌(G), 아데닌(A), 우라실(U)이 자연적으로 얻어졌다. 이로써 “생명시스템”을 이루는 골격이 원시지구에서 자연적으로 합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모두 실험적으로 입증되었다.
생명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면서 오늘날에는 실험실에서 인공생명체(JCVI-syn3 A)까지 만들어냈다. 박테리아처럼 스스로 성장하고 분열하여 자손까지 번식하는 이 인공생명체는 미국 여러 연구소가 공동으로 작업하여 탄생시켰다.
DNA 4개의 염기(ACGT)도 인공적으로 만들어 적용되었다. 492개의 유전자를 가진 JCVI-syn3A는 약 4000개를 보유한 대장균이나 3만 개 수준인 인간 세포와 비교할 때 극도로 단순화한 최소의 유전자를 보유한 세포다. 그럼에도 생명 유지뿐 아니라 세포분열을 통해 모세포와 동일한 딸세포로 증식한다.
서두에서 생명체를 “화학기계”라고 정의 내린 이유는 위와 같은 일련의 실험적인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탄생을 천문학과 연결하면 그 사실은 더욱더 명확해진다.
우주의 물질분포는 수소 75%, 헬륨 24%, 그리고 나머지 물질이 1% 차지한다. 나머지 1% 중에서도 산소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탄소다. 생명의 근간이 물(H₂O)인 이유는 수소가 우주에서 가장 흔하고 그다음이 산소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물의 화학적 성질은 매우 독특하다. 극성이 큰 탓에 거의 모든 물질을 녹이는 전해질로서 물만큼 뛰어난 것이 없다. “순수한 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 물이다.
대부분의 물질이 상온에서 고체나 기체로 존재하는데 비해 액체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물의 이상한 성질이다. “액체 상태의 물”은 화학반응에서 가장 효율이 높은 촉매제다. 고체는 반응속도가 느리고, 기체는 밀도가 낮아 효율적이지 못하다.
또한 표면장력이나 모세관현상은 다른 물질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성이다. 땅속에서 100m가 넘는 나무 꼭대기까지 물이 운반되는 것을 보면, 중력을 거스르는 그 힘의 정체가 불가사의할 정도다.
이 같은 물의 괴상한 성질이 생명체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이로 인해 바다에 있든 육지에 있든 모든 생명체는 사실상 수생생물이나 다름없다. 인간의 몸은 70%가 물이고 식물은 90%, 해파리는 95%가 물이다.
물은 생명체에서 에너지나 영양소를 운반하는 컨베이어 역할을 한다. 컨베이어를 따라 수많은 화학공장이 늘어서 있는 집합체가 생명체이고, 공장이 가동되고 있는 상태가 “생명현상”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생명이 바다로부터 시작되었으리라는 추론은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실제로 임신했을 때 양수는 바닷물과 그 성분이 비슷하다. 양수 속에 있는 태아도 배아 4주까지는 물고기나 다름없는 모양을 하고 있다. 사람 몸속에 있는 혈액과 조직액에 녹아 있는 주성분도 나트륨과 염소, 즉 바닷물과 같은 성분이다. 이것은 모든 생물에게 공통적이다. 때문에 외계 생명체를 탐사할 때 행성에 “액체 상태의 물”이 있는지가 가장 큰 관건이 된다.
화학반응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 이상으로 정교하고 예민하다. 자외선이나 방사선에 분자구조가 변하거나 성질이 달라진다. 일례로 “스파이로파이란”이란 고리형 분자는 자외선을 쪼이느냐 가시광선을 쪼이느냐에 따라 고리 구조가 변한다. 하물며 번개나 수많은 환경 변수에 노출된 분자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는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영역이다. 우리가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지식의 부족이지 거기에 神의 입김이 작용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에는 “특별”하다는 형용사가 붙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자체가 이미 신비로운 것이고 특별한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을 상상할 때 우리는 그것을 환상 또는 신화라고 부른다.
지식의 출발은 사실인 것과 사실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지 않을 때 이성은 정리되지 않은 무질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지성의 부재는 삶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독소나 마찬가지다.
아직 인간은 모르는 것이 많다. 모르는 것이 많기에 탐구할 이유와 목적이 생긴다. 모른다고 해서 “신의 뜻”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면 지식의 진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날의 과학 문명은 생겨나지도 않았다.
생명의 기원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신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과도 같다. 35억 년 전에 출발했던 생명의 여정이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지금의 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자연이 35억 년의 기나긴 세월 임신했던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이 얼마나 지극한 모성애인가?
때문에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귀향이다. 자연의 양심을 잃지 않고 떳떳한 마음으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모든 생명체에게 부여된 공통적인 귀향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