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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잡담 Oct 10. 2023

미생물 산책

미생물 산책        


생명체 중에서 지구의 주인은 누구일까? 생뚱맞은 질문 같지만, 지구를 “집”이라고 생각하면 누가 주인인지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집주인이라면 집안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하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거실에서만 살 수 있다면 집주인이 아니다. 안방이나 화장실에 접근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면 그 또한 집주인이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구 주인은 세균(박테리아)이다.   

  

사람은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 몇 가지 되지 않지만, 세균은 모든 동식물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알려진 것만 1만 종이 넘고, 발견되지 않은 종을 포함하면 100만 종 이상은 될 것이라 학자들은 추산한다.

세균은 지구 어디서나 생존할 수 있다. 8000m 상공 대기권, 수심 1만m 이하의 해저, 영하 20도나 끓는 물에서도 죽지 않는 세균이 있다. 뼈가 녹을 정도의 강한 산성이나 심해 열수구, 금속(망간)을 먹고사는 세균, 심지어 산소가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종도 있다.

개체 수나 생존 환경을 보더라도 지구의 진정한 주인은 세균이다. 지질학적으로 세균은 그 어느 생명체보다 먼저 지구를 선점했다. 소유권법상으로도 세균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간이 오대양 육대주에 흩어져 영역을 나눠서 살아가듯이 세균도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 토양, 해양, 암석, 빙하, 대기, 생물 등 지구에서 그들 영토가 아닌 곳이 없다. 워낙 종이 많기에 저마다 생존 기술이 전문화되어 있다.

동물과 식물도 그들 영토 중 일부분일 뿐이다. 인간이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듯 세균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기르는 가축은 동물이고 농산물은 식물이다.

농장주가 농작물을 정성껏 기르듯 세균의 노력과 노하우는 동식물 곳곳에 깊이 스며 있다. 생육을 위한 소화 기능, 외부 침입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면역체계, 성장균형을 위한 호르몬 분비, 질소고정 등 전문분야별로 세균의 기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세균이 농장을 운영하는 이유는 자신이 먹고살기 위해서다. 자신에게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해서 유기체를 키우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이나 식물은 미생물들의 식량창고나 다름없다.     


한편으로 “세균은 인지능력이 없지 않으냐?”며 세균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주장에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일 “인지능력”이 세균에 의해서 통제되는 것이라면? 나아가 세균이 뇌를 조종하는 것이라면?

2012년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 중에 “마음을 바꾸게 하는 미생물”이라는 제목이 있다. 장내 세균분포가 두뇌에서 일어나는 감정변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밝힌 내용이다.

“행복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 95%가 장에서 만들어진다. 장내 세균이 정신질환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감정은 뇌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장내 미생물이 뇌에게 메시지를 보낸 결과라는 것이다.     

“뇌-장 연결축”은 신경계가 미생물이 분비하는 화학물질을 뇌로 운반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즉 세균의 의사표시가 뇌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세균의 메시지를 받은 뇌는 이것을 거부할 수 없다. 어떻게든 해결방법을 찾게 된다. 통증이 생길 때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와 같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세균이 뇌를 조종하는 메커니즘의 하나로 보인다. 이것은 란셋흡충이 개미의 뇌를 조종하고, 구두충이 샌드크랩이라는 갑각류 신경을 조종하는 사례를 생각해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세균이 생물의 패권자인가? 그렇지는 않다. 세균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사냥꾼이 있다. 바로 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다. 바이러스는 생물도 아니고 무생물도 아닌 그 경계에 있는 어정쩡한 생명체(?)다.

만일 세균의 지배력이 절대적이었다면 모든 생물은 진작 멸종했을 것이다. 세균의 어마어마한 증식속도 때문이다. 세균은 지수함수적으로 늘어난다. 빠르면 30분마다 한 번, 24시간이면 48번 분열한다. 이 속도로 몇 달만 지나도 세균 한 마리가 지구 전체를 덮고도 남는다.

박테리오파지에 의해 세균은 개체수가 조절된다. 해양 박테리아의 40%가 매일 박테리오파지에 의해 사냥당해 죽는다는 통계보고도 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은 세균과 바이러스 관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속담이다. 생물계에 절대적인 강자도 약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둘 사이의 관계가 잘 말해 준다.     


세균이 바이러스 숙주가 되면 세균의 돌연변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된다. 바이러스 증식은 정교하지 않다. 숙주의 유전자를 헤집어서 자신이 필요한 부품만 대충 가져오기 때문에 숙주의 유전자 살림은 엉망이 된다. 돌연변이는 엉망이 된 유전자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살림살이로 말하면 가구 배치를 살짝 바꾸는 식이다.

한쪽이 공격무기를 개발하면 상대 쪽은 회피수단을 개발한다. 공격자는 다시 해킹기술을 개발한다. 이러한 쫓고 쫓기는 과정이 38억 년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이것이 곧 유전자 전쟁이다.

이것은 항생제 효과와 비슷하다. 개발한 지 90년이 지난 페니실린은 지금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이미 80% 세균에 내성이 생겨 약발이 들지 않는다. 세균들이 회피수단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즉 돌연변이한 것이다.

    

한 바이러스가 한 종류의 세균만을 수십억 년의 시간 동안 숙주로 상대해 왔다면 그 세균의 기능이나 역할은 거기에 대응하는 바이러스가 설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나긴 시간 동안 돌연변이를 통해 세균의 체질을 개선시키고 특성을 변화시켜 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세균들은 모두 바이러스가 만들어 놓은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그 세균들은 다시 하위 생명체(동식물)를 대상으로 바이러스가 했던 방식 그대로 행동한다. 동물이나 식물 또한 세균을 회피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강구해 왔다. 바이러스가 그러했듯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은 세균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을 설계한 지능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바이러스가 있다. 동식물은 세균이 만들어 낸 작품이고 세균은 바이러스 작품이기 때문이다.


인간 유전자 95%는 정크 유전자다. 아무 일도 안 하는 유전자가 95%나 있는 이유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유전자 화석”이라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38억 년의 기나긴 시간 동안 진행된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에 필요 없어진 정보들이 화석처럼 쌓인 것이다. 이것은 바이러스와 세균의 유전자 전쟁 기록과도 같다. 전쟁을 통해 유전자가 뒤섞이고 재배열되면서 유기체가 변해 왔기 때문이다. 즉 정크 유전자는 생명 역사가 기록된 유물인 셈이다.

최근 화석에서 채취한 유전자를 통해 생물 간 족보를 밝히는 분자생물학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DNA 분석에 의한 정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조만간 정크 유전자의 비밀도 드러나리라 믿는다.   

  

현미경이 발명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특별한 존재였다. 적어도 인간은 다른 생물과 다르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전자현미경 시대에 와서 그것은 하나의 소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걸어 다니는 미생물 덩어리나 다름없다. 개미나 인간이나 생명메커니즘은 똑같다. 특별한 법칙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인간만의 착각일 뿐이다. 인간뿐 아니라 지구조차도 우주 전체 규모에서는 미생물 수준을 넘지 않는다.     


나와 미생물이 룸메이트라는 것을 깨달을 때 나는 어느 때보다 편한 마음이 든다. 죽어서는 고독을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땅속에 그들은 얼마나 많은 숫자가 득실거릴 것인가?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그들을 대하게 될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 세계도 나름대로 재밌을지 모른다. 미생물만의 클럽이나 축제가 지천으로 깔려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심심치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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