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35억 년의 기간에 걸쳐 “다윈이론”에 의한 진화과정을 거쳐 왔다. 그러나 호모사피엔스에 이르러 진화의 패러다임이 바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앞으로는 진화의 주도권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진행될 것으로 생각된다.
새로운 진화혁명,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크리스퍼 기술과 줄기세포 합성, 오가노이드 비약적인 발전에 있다. 아직은 인간 존엄과 윤리적인 문제로 많은 압력이 가해지고 있지만, 그러나 생명윤리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척수성 근육위축증 치료제 주사 한 방에 1억 4천만 원이다. 떼돈 버는데 생명윤리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불치병 치료”라는 든든한 명분도 있다. 겉으로는 생명윤리를 외칠지 몰라도 물밑에서는 국가마다 치열한 기술경쟁을 벌이고 있다.
생명공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이제는 인공생명체(JCVI-syn3A)를 만드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연구진이 정자와 난자, 자궁 없이 줄기세포만으로 완벽한 구조를 가진 인간 배아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줄기세포는 미분화된 세포를 말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210여 가지 조직 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원시 단계의 마스터 세포다. 생리적 환경에 따라 신체에 필요한 그 어떤 세포로도 변할 수 있다.
이제는 동물을 가지고 임상 실험하는 시대는 지났다. 오가노이드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오가노이드는 체세포나 줄기세포를 배양시켜 눈, 귀, 코, 신장 등 생물체 장기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장기 미니어처를 만드는 것이다.
미니어처라도 생물학적으로는 인체와 유사하다. 이를 대상으로 실험한다. 오가노이드를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회사도 있다. 신약개발에 오가노이드는 필수적인 요소다.
오가노이드 기술은 임상 실험을 넘어 이제는 장기 이식을 위한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영화 “아일랜드”에 나오는 스토리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시점에 와 있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돈 많은 사람이 보험상품으로 복제인간을 신청하고, 회사가 지하 공간에서 복제인간을 키우는 일은 없겠지만, “인간복제”만큼은 현재의 생명공학 기술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2022년 10월 호주 연구진은 인공지능보다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이는 뇌 오가노이드를 개발했다. 인공지능이 90분 걸려 습득한 게임(벽돌깨기) 방법을 접시에서 배양된 뇌는 단 5분 만에 알아냈다.
연구진이 만든 접시 뇌는 100만 개의 살아 있는 뇌세포로 이뤄져 있다. 이는 바퀴벌레 뇌와 비슷한 수치다. 뇌파와 게임기를 연결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학습은 뇌세포에 전기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적절한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뇌에 불편한 자극을 주었다. 이런 훈련을 반복하면서 뇌는 점차 게임 방법을 터득했다.
뇌가 불편한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이든 의식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질문에 뭐라 딱 잘라 말하기 어렵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생화학적 작용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가령 식물인간(뇌사)의 경우 외부 환경에 일체 반응이 없다. 의식이 없는 것이다.
게임을 플레이할 정도의 의식이라면 당연히 “사고”라는 정신적인 작용도 있을 수 있다. 접시에 놓인 인공 뇌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인간의 지능과 인지력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진 유전자가 있다. 지구상에서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ARHGAP11B 유전자다. 이 유전자를 검증하는 실험이 2020년 독일에서 있었다.
연구팀은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하여 ARHGAP11B 유전자를 마모셋 원숭이 태아의 뇌에 주입했다. 그러자 실험 원숭이 뇌의 신피질 부피가 일반 원숭이의 2배로 확대되고, 뇌 표면 주름도 인간 태아와 비슷한 수준으로 발달하는 것을 확인했다. 위험을 인지한 나머지원숭이 태아는 출산에 이르기 전에 중절시키는 것으로 실험이 종료되었다.
반대로 인간의 뇌에서 ARHGAP11B 유전자를 제거하면 어떻게 될까? 연구팀은 배양시킨 인간 뇌 오가노이드에서 ARHGAP11B 유전자를 제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유전자가 제거된 인간의 인공 뇌는 세포 수와 뉴런이 급격히 퇴화하면서 일반 원숭이 수준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똑같은 방식으로 쥐에게 실험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진은 ARHGAP11B를 “인간결정” 유전자라고 결론지었다.
인간과 침팬지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약 500만 년 전에 갈라져 나왔다. 어떤 유전자가 돌연변이되어 나타난 것이 ARHGAP11B 유전자이고, 이 유전자로 인해 유인원과 인간의 종이 갈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알츠하이머(치매) 환자는 신피질 퇴화가 두드러지는 현상을 보인다. ARHGAP11B 유전자 활성이 저하되어 나타나는 질환이다. ARHGAP11B 유전자가 없다면 인간은 치매환자나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된다. 거의 동물적 감각에 의해서만 살아가게 된다.
만일 ARHGAP11B 유전자가 인간이 아닌 쥐 뇌에서 발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의심할 여지없이 쥐가 만물의 영장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인간처럼 철학적인 사고를 하고 언어를 만들어 문명을 일으켰을 것이다. 쥐 문명권에 동물원이 생긴다면, 인간은 물소나 다를 바 없이 그냥 덩치 큰 포유류로써 전시될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은 시너지효과로 인해 등속도가 아니라 가속도로 발전한다. 정밀한 장비를 만들 수 있는 기계공학 덕분에 생물학도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엑스레이가 없었다면 DNA 발견도 없었을 것이다. 고성능 컴퓨터가 나오지 않았다면 DNA 서열분석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한쪽 분야의 발전이 다른 분야의 발전을 가져온다. 한편으로 발전에 따른 반대급부도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법을 강화해도 사기꾼이나 도둑이 사라지지 않듯이 생명공학이 발전함에 따라 그에 따른 무책임한 연구도 피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는 생명윤리 의식이 희박한 편이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나라다.
생명공학에서 사고가 나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일이 커진다. 실험실에서 유출된 인공생명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35억 년의 기간에 걸쳐 일어난 진화단계가 단 몇십 년 만에 일어날 수 있다. 새로운 진화혁명에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이다.
오늘날 컴퓨터를 개인이 튜닝할 수 있듯이 생명공학도 그런 날이 오게 되리라 생각한다. 무분별한 크리스퍼와 오가노이드 남용으로, 고의든 실수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물체가 지구 곳곳에서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중에는 ARHGAP11B 유전자를 가진 생물체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시점이 오면 인간만이 문명을 독점하는 시대는 끝나게 된다. ARHGAP11B 유전자 확산으로 지구에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우후죽순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능이 생긴 생물체 간에 자원확보를 두고 지금의 인간과 같이 전쟁을 벌이거나 연합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국제관계는 오늘날의 “국가”가 아니라 생물 종으로 재편된다. 인간 연합체, 쥐 연합체, 유인원 연합체, 바퀴벌레 연합체…. 지능을 획득한 생물 단위로 그룹이 형성될 것이다. 각 연합체가 “국가”가 되는 것이다.
지능이 뛰어난 종이 패권 국가가 되겠지만, 인간 연합체가 패권국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ARHGAP11B 유전자가 더 뛰어난 것으로 돌연변이되어 어떤 생명체에 탑재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생물 단위의 국가는 전쟁도 하겠지만 서로가 대사를 파견하여 지구 평화를 유지하려고도 할 것이다. 가령 바퀴벌레와 인간은 서로가 공존하는 선에서 모종의 협정을 맺을지도 모른다. 각 생물 종마다 FTA를 체결하여 자원을 공평하게 배분하거나 무역하는 형태도 생길 수 있다.
먼 미래 얘기지만 어쨌든 진화혁명의 물결 속에서도 지구의 평화가 유지되기를 기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