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그리고 결혼은 뭐길래

by 포인셋

아빠는 자식들과 하는 호프 한 잔을 좋아했다. 내가 성인이 된 후로 사이가 꽤나 좋았던 7년여 간, 동네 술집에서도 집에서도 꽤나 사이좋은 부녀지간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아빠는 술 없이는 진중한 얘기를 하지 못했다. 자식들이 컸으니 속 얘기며, 직장, 돈, 진로, 가치관, 결혼 얘기..할 얘기는 많았다. 먼저 앞에 술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엄마 빼곤 온통 말술인 인간들 뿐이니 엄마는 좀 고통스러웠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7년새에도 아빠는 나이들었고, 술을 더 이겨내지 못했고, 술을 먹고 대화하는 건 점점 더 사이를 멀어지게만 하는 일이 됐다. 술 마시며 얘기하자 해놓고 본인이 뭔가 해주겠노라, 내 마음은 이런건데 몰라주냐며 온갖 표현을 다 해놓고 내가 언제?라며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해졌다.


그마저도 다행이었다. 내가 없을 때, 그리고 아빠가 술을 마셨을 때.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종종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나는 아빠에겐 아픈 손가락이고, 내가 아빠를 공격하는 논리도 화는 나지만 어느정도 반박할 수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아빠에게 우스운 건 엄마와 여동생, 그 둘만 있을 때 술이 들어가고 대화가 삐끗해서 누구 탓 하나 하기 시작하면 꼭 큰 일이 생겼다. 결혼해서도 동생에게 이런 연락을 받으면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엄마는 두어번이나 큰 병원을 가서 간호사에게 도와드릴까요 라는 쪽지도 받았다고 했지만, 시력에 손상을 입기도 했지만, 그렇게 최근 몇 년은 홧병에 서너시간도 잠을 못자는 생활을 하면서도 이 관계는 유지하고 있다.


이제 엄마는 아빠가 술의 시옷만 꺼내도 치를 떤다. 나도 혹여 아빠가 엉뚱한 소릴 할까봐 사위 앞에선 술을 몇 잔 이상 입에 못대게 한다. 본인은 별 일 아닐 지 몰라도, 모른다면 그만인지 몰라도, 이런 일을 숱하게 겪은 우리 모두는 아빠를 엄격하게 단속한다.


엄마에게 결혼은 대체 뭘까. 옛날 여자들에겐 남편이, 울타리가 없는 게 그렇게 큰 일일까. 마음 한 켠 짠하고 깊은 정을 어찌 하지 못하는걸까. 자식들 결혼이라는 숙제를 아직 다 해치우지 못해서 그런걸까. 아빠를 닮아 정 없는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부모가 제발 이혼해주길 바라는, 부모의 결혼기념일을 뭣모를 어릴적 말고 축하해 본 적조차 없는 자식의 심정을 두 분은 알까.

이전 09화숨 막히는 집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