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말

by 포인셋

내가 두고두고 회자하는 아빠의 망언 목록이 몇 가지 있다. 가치관이 너무 고스란히 보이는 말들이라 곱씹을수록 잊어지지도 않는다. "사랑이 밥 먹여주는 줄 아냐,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사람 만나라고 이렇게 뼈 빠지게 공부시키는거다." 자식에게 저런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살아 온걸까. 사랑은 없어도 되니 돈을 보고 결혼하란건가. 내가 볼 때 아빠는 사랑이 없어서 돈이 생겨도 행복하지 않아 보이는데. 어릴 적 공부 많이해서 본인처럼 힘든 일 하지 말랄 때는 이해라도 갔는데, 본인처럼 못다한 꿈 마음껏 펼치란 얘기도 아니고 그저 결혼때문에 공부시키는거라니. 내가 딸이라서 한 얘기일까.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 때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집사람보다 중히 여기는 딸입니다." 우리 딸 이렇게 소중하니 잘 봐달라 라는 얘기였던 것 같은데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길 바랐다. 이건 앞선 얘기와 같은 맥락으로 멀쩡히 옆에 있던 엄마를 바보 만드는 얘기였다. 자식이 아무리 핏줄이라도, 부모라면 다 공감해줄 얘기였더라도 나는 가족의 근간은 부부 간의 존중과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저 말은 정말 필요치 않은 말이었고, 하나도 도움되지 않았으며, 우리 집이 어떤 집인지 빤히 보여주는 말이었던 거다.


나의 이 성질머리도 반은 그와 뿌리가 같다. 다만 나는 엄마에 의해 교화되고 사회화 되었다고 믿는다. 유독 온순하고 맏이인 딸이라 그랬는지 나는 엄마와 유대가 꽤나 깊다. 아마 크면서 감정적으로 의지하는데라곤 엄마 뿐이었어서 그랬을테다. 하지만 엄마도 꽤나 무뚝뚝하고 신경질이 많았던 사람이다. 어릴 땐 늘 칭찬이 고팠고, 아프다고 하면 엄마가 신경질을 내곤 해서 서러움에 울며 약국에 가곤 했다. 커서 결혼까지 하고보니 그 신경질이 되려 이해가 가기도 한다. 우리를 두고 집을 나갔어도 다 커서는 이해했을지 모른다.


나는 그의 딸이다. 나는 내가 증오하는 그를 닮았다. 설사 내가 엄마를 더 닮았더라도 나는 부러 그의 딸임을 자처하며 이 피에 대한 경각심에 평생 불을 켜고 살아야 나와 내 가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곪은 상처를 보이기도 싫지만 내 손으로 헤집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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