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는

by 포인셋

아빠때문에 홧병이 났을 때, 수도 없이 밤을 지새며 아래와 같이 아빠에게 하고싶은 말을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몇 번이나 정말 글로나마 적어 전달하면 감정적이지 않고 두고두고 보면서 조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전달되는 순간 어떻게든 큰 사달을 한 번은 예상해야 하고, 곱씹으며 싸울 것이고, 생각보다 더 큰 일이 날 지도 몰랐다. 이 편지는 그래서 차마 내가 전하지는 못할, 그러나 제발 아빠 스스로 가져가서 몰래 읽어줬으면 하는 그런 편지인 것이다.


이미 몇 년이 지났고, 잊고 지냈음에도 술술 적히기도 했지만 또 이미 쏟아낸 뒤인지라 무척이나 간결해지고 날이 무뎌져버린 글. 이 당부의 말이 내가 이 글을 시작하게 된 시초였다.




<당부의 말>


제발 자신이 제일 잘났는데 제일 안타깝다 생각말고, 대단치도 않은 과거의 영광에만 젖어 살지말고 주변 좀 돌아보고 살아요. 그 정도의 사연은 아빠 세대에 널리고 널렸어요.

위만 보지말고 옆도 보고 아래도 봐요. 돈은 아래를, 말과 행동은 위를 좀 봐요. 아빠 많이 가졌고, 욕심 더 나겠지만 그러다 가족 다 떠나요. 왜 밖에서 보고들은 남 바람피고 뒷돈 감춘 얘기로 엄마를 괴롭히나요. 그럴거면 아빠 동생들이나 뭐라고 하죠.


아빠가 엄마에게 하는 말과 행동, 엄마와 처가에 대해 갖고있는 생각 - 모두 사위가 똑같이 그런다면 마음이 어떻겠는지 생각해보시죠. 엄마가 당하고 엄마가 해온 것에 그게 합당하다고 생각하나요. 아니, 그 전에 여자는 사람이 아닌가요. 아직도 아빠한텐 종일 뿐인가요. 우리가 클 때까지 아빠와 시가에 대한 욕 한 마디 한 적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사람이 이간질을 한다고요? 말도 안되죠. 애들도 보는 눈, 듣는 귀 다 있어요. 순전히 우리 생각이었단 얘깁니다.


옛날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너희가 맞추라고요. 아빠가 힘으로, 가장의 권위로 찍어눌렀으니 생각해봅시다. 앞으로는 어떨지요. 좀 치사한가요. 자신을 바꾸는 건 엄청 힘든일이죠. 예전보단 좀 나아졌지만, 그 뼈를 깎는 고통으로 그 대단한 일도 했으면서 생각은 못바꾼다고 하세요. 그건 그냥 아집이죠. 그럴거라면 쭉 홀로 옛날분으로 지내시면 됩니다.

나이들수록 귀는 열고 입은 닫으라고 하는데요. 네, 이건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제발 감사하고 삽시다. 충분해요. 고단했던 거 알아요. 우리한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잘해주는거 바라지도 않아요. 아직도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는 아빠가 우리한테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닙니다. 제발 엄마한테 잘해요. 엄마한테 매일 감사한 거 하나씩 얘기하고 절하면서 살아요. 누가 그 성격 받아주고 산다고요. 나였으면 이미 뒤도 안 돌아보고 수 백번 도망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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