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욕을 밖에서 하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거라나. 아무리 가족이라도 갈등 중이라면 친한 사람에게 욕하기도 하지 않나? 너의 가족은 괜찮지만 나의 가족은 안 된다면 그게 바로 우린 가족이 아니라는 뜻이다.
며느리들에게 시댁은 대체로 가족이 아니다.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그 경계를 그냥 제발 인정해 주었으면 한다. 나는 가족이 아닌 것이 편하다. 아무리 대화가 많은 고부지간이라도 일상생활에 대한 것이 아니고서야 백프로 솔직한 대화가 가능할까. 며느리의 환경이나 가족이 아니라, 진심으로 며느리가 좋고 싫은 것, 꿈과 가치관과 철학에 대해서, 나와 오래 보는 것이 불편할 것이라는 것, 나와 함께하는 무엇이 좋고 싫은 지, 나와 무엇이 다른 지 이해하고 그것을 관심깊게 기억해 줄 사람이 있을까.
일방적이고 많이 바란다고 생각하는가. 며느리는 알고 싶지 않더라도 시어머니의 살림 방식, 음식 취향, 화가 나는 상황, 잘 나가던 시절, 시집살이, 친구관계까지 조만간 자식인 아들보다 더 잘 알게된다. 시어머니는 (적어도 취향적인 부분이라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이니까.
저렇게 다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사실 아는 게 더 불편하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거다. 한 20년은 같이 산 후에, 서로 쌓아온 감정이 좋다면 그 때는 비로소 미운 정까지 다 합쳐 좋은 가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쌍방 모두가, 을도 또한 가족이라고 수용할 수 있게 되려면 말이다 (요즘이라면 갑을관계로 명백하게 선 그어지는 관계는 아닌 경우도 많겠지만). 어떤 효자는 부모님의 연세를 들먹일지도 모르겠다.
며느리는 싫다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 어지간하면 괜찮다고 하거나 내 속내를 제발 알아채주길 바라며 돌려돌려 말할테다. 그러면서도 싫은 티를 내버렸나 싶으면 눈 앞에선 어쨌거나 좋게 말하고 싶은 감정에 열심히 말 뒤끝을 무마하고 있는 자신을, 뒤돌아서서는 결국 이렇게 될 거 내가 뭐하러 그랬담 하고 후회하는 나를 수없이 발견하곤 한다.
한 번 아니오 말하기도 어려운데, 세 번 싫다면 좀 들어주실 것이지 기어이 당신 뜻을 다섯 번 말해 관철시켜야 하는 고집불통 어머니와는 어머님네 아들 딸처럼 큰 소리 내고 싸울 자신이 없다. 늘 참는 건 나인데, 그런 상황이 온다면 단번에 분란 유발자는 내가 되고 말테니.
세상엔 다양한 시어머니, 시가 식구가 많을테다. 취향이 다른 건 그냥 개인차이다. 사이가 나쁜 게 아니라 당연히 다른 것이다. 시가식구 사이에 들어가 있는 시간동안, 며느리가 대체로 그 생활양식에 맞추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소하게 TV보면서 난 저 사람, 저거 싫어 좋아라는 얘기를 누군가 했다고 치자. 그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나를 굳이 일일이 다 어필하는 며느리는 없을 것이다. 누가 묻지 않는다면.
그저 그렇구나 하고 지나갔다가 반복되는 상황에 내 의견을 말했어야 했구나, 내가 나에 대해 말하지 않은거고, 저 사람들이 날 모르니까 저렇게 계속 실수하는거고, 그래서 나는 저 사람들이 계속 싫어지는거다 라는 생각이 들면 그래도 양호한 것일테다. 알아도 그렇든말든 내 생각이 중하다는 분이라면 사사건건 말 통하긴 어렵겠지만.
사람을 사귀면서 어울린 시간이 짧아도 내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말이 잘 통했다면 친구가 되는 데 조건이 필요치는 않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도 이렇다면 그만큼 상식적으로 불편하고 안 맞는 사이라는 얘기다. 왜 내가 느끼는 감정과 내 인간관계가 되었는데 내 마음대로 말할 수도 없고, 남편 눈치를 보거나 남편이 나서줘야 하는걸까. 내게 지대한 영향을 주면서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그 관계엔 왜 남이 가타부타 말이 많은걸까. 왜 같은 말이라도 아들이 하면 서운할지언정 괜찮고, 며느리가 하면 기분나쁠 말이 많을까. 그건 멋대로 내게 거는 기대, 결국은 타인에겐 그렇지 않아도 며느리는 이렇게 해줘야 한다는 틀과 의무를 씌우는, 소유적 심리에서 기인할 것이다.
주변에서 본 가장 이상적인 고부지간은 엄마와 딸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런 것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남이다 라고 인정하고, 좋아할 것만 챙겨주고 개인과 살림과 육아에 적당히 무심한 사이일 때 가능했다. 남인것 처럼 말조심을 해야 가능했다. 그게 아니라면 서로 어지간히 개인적이고 무던해야 가능한 일이다.
평소가 아니라 중대사가 있는 상황에조차 (어쩌면 반대일 지도) 좋다 싫다 내 의견을 편히 말할 수 없는 시댁이라면 미안하지만 가족보다는 회사나 직장상사의 위치에 가깝다. (실제로 시어머니의 전화가 처음엔 대표님, 결혼 무렵은 부장님 정도의 어려움, 지금은 잠시 마음이 덜컹, 왜 또 하는 정도이니 이것은 적절한 비유 같으면서도 가볍게는 '어머님'을 '덩기덕 쿵더러러러 ' 정도로 바꿔 저장한다면 어머님이란 이름의 존재가 더 좋아질지, 내 심장이 덜 반응할지 생각해봤다.) 요즘이야 할 말 하는 자식 부부네도 좀 있겠지만 일반의 상식을 가진 한국 사람이라면 나와 갈등의 당사자이더라도 사회통념 상 상대 부모와 싸울 수 없다. 답을 정해놓은 질문을 자꾸 던지는 시어머니라면 남편이 나서서 얘기해 주는데에도 한계가 있다.
어머니와의 갈등을 어머니와 얘기할 수 없으니 남편과의 갈등이 되고, 남편마저 이를 들어줄 성정이 못 된다면 나는 대체 어디에 풀어야 할까. 그러니 밖에서 시댁 욕을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라는 거다. 여느 회사에서와 아주 똑같은 이치 아닌가. 그렇게도 하지말라면 때려칠 수도 없으니 내가 속병이 나는 수밖에. 결정적으로 '할 말을 못한다'라는 데서 '가족'이라는 단어적 특성에서는 오히려 가족 그 정반대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