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결혼의 조건, 그리고 개인의 거리

by 포인셋

누구나 처음은 잘 지내고 싶고 잘 보이고 싶은, 뭐든지 오케이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이 대목이 상하가 있는 한국문화의 특성이고, 또 가장 문제의 원인이되는 부분이다. 이것은 어쩌면 조용한 폭력. 하루이틀 볼 사이도 아니고, 튀지말고 좋게좋게 라는 마인드가 결국은 누군가를 희생시켜 화목해 '보이는' 1세대 가정, 그리고 위태로운 2세대 가정을 만든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많은 가정에서.


모든 사람을 한 범주로 묶고 싶지는 않지만 많은 기혼여성을 불행하게 하고, 과거엔 당연했던 결혼과 출산을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고, 반평생 이상을 참는 고통 속에 살게 하기도 하는 문화 - 불행한 엄마라니, 저 자유로운 세대도 똑같이 겪을 고부갈등이라니. 물론 피해자는 며느리가 아니기도 하고, 며느리 뿐만이 아니기도 하다. 가족구성원 전체에서 분명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 참고 있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행복하자고 둘이 한 결혼인데, 둘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가족의 지분이 너무 크다. 나는 한국사람이니, 결혼할 때 남편과 시가의 요소를 5대 5로 보고 결혼을 결정해야 맞다고 본다. 이상적인 결혼이라면 나를 신경쓰이게 하는 비중으로 못해도 8대 2정도는 되어야 맞지 않을까. 후자가 5를 넘어갈 것 같다면 사랑을 물리는 것도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혼 당시 우리는 뭣모를 때고, 가족들도 나도 그 관계 안에서 어떻게 바뀔 지 알 수 없으며, 그 5를 듣기나 했지 미지의 세계라는 이유로 상당히 가볍게 봤다가 큰 코 다치곤 한다.




가족과 정이라는 단어에는 간섭과 강요가 한 세트로 포장되어 있다. 세트로 사면 꼭 버려지는 것이 있던 홈쇼핑 물건처럼, 과자선물세트처럼. 생각해 봤다. 당연히 입장 차이라는 것이 있고, 평소 배려가 충분하더라도 기분 나쁠 상황에도 어쩔 수 없이 내 의견을 견지해야하는 일도 생긴다. 같은 말이라도 친정과 시댁에서 듣는 것이 다르고 (실제로 가끔 대입해보라 - 나도 며느리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일이 생기면 자기 혈육에 치우치는 결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부분을 며느리도 이해하려 해야 맞다. 나 또한 시누이, 시어머니가 될 수 있고, 나라고 대단히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있었다면 고부갈등이란건 꽤나 오래전에 없어졌을 것이다.


배우자를 내가 선택하긴 했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영역이 생겼다고 해서 멋대로 공유하는 영역을 착각하거나 나의 나머지 영역에 들어온다면, 누구라도 달가워하진 않을 것이다. 통상의 며느리라면 시어머니와 밥을 함께 차리게 되었다고 해서 시어머니의 살림 방식에 간섭하지는 않지 않는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배려이고 사람 대우다. 개인의 거리를 평소 더 필요로 하는 며느리라면 더 힘들 수 있겠다. 세상에는 받는 것조차 어렵고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고, 원치 않는 것을 자꾸만 준다고 강요하며 감사해하길 바라는 것은 때로 안 주느니만 못한 때도 있다.


이는 출산과 육아 문제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이렇게 말하면 웃긴 줄 알지만, 아이를 엄마 마음대로가 아니면 대체 누구 마음대로 키운다는걸까. 엄마보다 더 많은 책임을 져주는 이가 있는지. 임신과 동시에 나의 몸은 내 것이 아니며, 그렇게 억압해오던 성은 모두의 것인 듯 오픈, 부숭해진 몸은 때로 타박할거리가, 아이는 내 유전자 없이 남편 혼자 낳은 줄 알게 되기도 하고,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욕심을 하나 더 낳으셔야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 자식인 양 실컷 손주에게 투영하기도 한다. 이 아이는 당신의 아들과 다른 개인인데.


나는 사실 그 시절 육아가 어땠다든가, 아이 아빠가 어떻게 컸다든가 뭘 좋아했다든가 하는 건 남편 입으로 듣는 정도 외에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시어머니가 겪은 한 두건의 케이스가 모든 진실인 양 이렇게 해야한다고 강요당하는 것도 싫다. 그 때와 지금은 천지차이임을 임신 때부터 깨달으셨다면 구구절절한 옛날 얘긴 굳이 넣어두셔도 될 것을. 나는 동네 바보가 아니고, 그 정도는 알고 있고, 요즘 육아를 모르는 건 어르신들이다. 임신과 동시에 시어른들은 너무 좋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선을 마구 넘는다. 그 사랑과 관심을 모르는 게 아니다. 나도 아이의 예쁨을 가장 잘 공감해 줄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떠들고 싶다.


하지만 때로 그 선의 기준이 너무 다르다. 자식 내외를 애들이니 내가 먼저 잘해야지 여기는 것도 어쩌면 성인임을 인정해줘야 하는, 더 이상 간섭하지 않아야 하는 어떤 선이 있다. 어른들의 노파심이라는 말이 요즘 세대에게는 너무 버겁다. 노파심이니 이해해라가 아니라 제발 그 노파심을 넣어달라 얘기하고 싶은거다. 다 아는 얘기 수십 번, 스트레스 말고 남는 게 없고, 할수록 마이너스임을, 양육을 해보니 잔소리하는 것이 제일 영양가 없는 1차원적 교육임을 벌써 깨달았다고 말하고 싶다.


차라리 며느리를 남이라도 사생활을 조금 더 공유하는 룸메이트쯤인 관계, 그러다가 대소사도 함께 겪으며 같은 환경에서의 경험이 쌓이면 감정도 공유할 수 있는 - 우리 집에 매일같이 드나드는 내 자식의 제일 친한 친구 쯤인 관계로 설정을 하면 서로에게 무례할 일이 없지 싶다. 그렇게 느린 속도, 일방적이지 않은 울타리를 갖고 싶지만 그 경계를 너무 쉽게 일방적으로 허물어버리고도 정이라는 포장으로 아무런 죄책감이 없게 만드는 이 오지랖의 문화가 잘못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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