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도
살다보면 생각보다 별 것 아닌 내가 처한 상황에 의해서나, 어쩌다 흘러가고 말 뿐일 생각 중 괜시리 붙들고 늘어지게 되는 단어들이 있다. '염치', 염치란 무엇인가.
미안한 것, 고마운 것, 정을 준 것, 마땅한 사람의 도리, 그리고 최소한의 양심. 그에 대해 보답까지는 아니라도 갚아야 할 마음으로 남겨두는 것. 그에 대해 스스로가 떳떳하게 행동하는 것. 마음 씀씀이.
염치의 기준을 플러스로 보는지 마이너스로 보는지에 따라 사람 하나를 판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염치로 사람을 볼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그리고 굳이 따진다면 우리 사회는 염치로 들이댈 수 있는 잣대도 꽤나 엄격하다.
내가 큰 것을 받았으니 그것을 꼭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 정도는 어쩌면 아주 기본적인 염치다. 세상엔 이 정도의 염치만 가진 사람도 있고, 받은 것조차 갚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받은 것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멋대로 주어서일수도 있고, 진짜로 염치란 걸 느끼지 못해서일수도 있다.
염치를 플러스 요소로 보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나에겐 이 정도 베풀고 갚는 것이 꽤나 선의이며, 남에게 요구하는 염치가 더 클 수 있다. 하지만 오고 가는 건 물질의 양이나 값, 사회적 지위와 관계가 포함돼서는 썩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누가 떠밀지 않아도 염치란 걸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라 여기는 사람은 본인의 상식과는 다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많은 내적 갈등과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분명 누가 뭐래도 좋은 사람이다. 좋은 의도의 염치라면 말이다. 그런 사람조차 사회에서 조금 찌들어가면서 선의의 염치에 무뎌질 지 모르지만, 좋은 마음 씀씀이는 분명 좋게 돌아오는 부분이 있다.
마지막으로, 염치가 피곤하고 버겁다고 느낄 사람들이 있다. 나는 조금쯤 여기에 포함된다. 딱 34도만큼의 염치를 가졌을 수도 있다. 나에게 엄격한 내가 봐서는 플러스 마이너스 0일 수도 있고.
큰 마음 씀씀이는 못 가졌으나, 가능한 한 친절하고 싶고 조금은 베풀고 싶기도 하고, 마음을 표현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염치를 많이 가진 사람에 비해 나는 조금 못나 보이고, 초라한 것 같고, 사회적 고급 염치를 다 지키기엔 마음이 모자라다. 모나지 않게는 살 수 있는 정도.
이런 사람들은 겉보기와는 다른 내적 염치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차이가 크지 않으면 문제는 없다. 사실 '정'을 중요시하는 이 곳에서는 그런 사람이 생각보다 아주 많을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더 교류하고 싶고 지키고 싶은 가치가 많지만 사실은 다 내 생각 같지만은 않은 '염치의 기준'에 상처받고, 어디에 설 지 서성이고 있을지도.
염치는 곧 어떤 사람의 그릇이다.
또..불편한 마음이다. 지키지 않으면 내 마음이 불편한 것.
나는 내가 이미 가진 무엇 (주로 물건이든, 지식이든, 사주는 것이든) 을 누군가에게 주는 건 아까운 적 없고, 남을 불편하게 하거나 무례하게 구는 것에도 매우 엄격한 편이지만..어째서 마음을 뚝 떼어주는 것만큼은 어려워할까. 마음이란 걸 내가 '가진 것'이라고 인식한 적 없기 때문일까. 안 줘도 불편할 줄 모른다면 고마움도 미안함도 잘 느낄 줄 모른다는걸까. 기계적이고 학습된 상호작용은 틀린걸까.
나는 때로 내가 안 주고 불편한 마음보다 내가 그런 사람에 속한다는 사실이 좀 더 불편하다. 그래서 대체로 기본적인 염치는 지키고 산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본성을 가진 내 자신에게 좀 더 못되게 스스로를 별로라고 생각한다. 속에 다른 그릇을 차고 있는 나를 바깥의 시선으로 굽어보며 나쁘다 라고 생각한다. 그 그릇의 차이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내 자신 뿐이므로.
그러면서도 모순되게 내 그릇을 꾸짖는 나는 좀 염치 있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의도는 좋지만, 지키고 싶지만
내겐 숙제 같으면서도 그래서 웃기는 염치다.
염치도 어쨌거나 못해도 34도만큼은 지키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