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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외곽 한국여자 Jul 15. 2024

파리외곽. 여름 바캉스. 1주차

                                                         

1. 3일차 (D-57)


공은 둥글고 게임은 90분동안 지속된다.


2024년 7월 8일 월요일


집 밖 저 아래로 스타드가 보인다.

바로 직선거리로는 이백여 미터인데 중간에 기차가 지나가기에 빙 돌아서 가야 한다. 축구를 하는 곳인데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오늘은 저기에 가서 아이와  배드민턴을 쳐야겠다.


아. 라켓이 차 트렁크에 있는데 보조키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축구공을 꺼내와서 물과 간식을 챙긴다. 아이가 줄넘기도 가방에 챙겨 넣는다. 한국의 줄넘기 학원처럼 나도 아이에게 음악을 틀어주고 뭔가 즐겁고 규칙적인 운동 시간을 만들어주면 좋은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갑자기 좀 미안하다.


아이는 말도 늦게 트이고 걷기도 15개월이 넘서야 시작했고, 외동이다 보니 집에서도 혼자서 놀고, 다른 아이들처럼 주변에 친척이 있어서 사촌들과 노는 것도 아니다. 또 이사를 온 지 이 년 차라 어릴 때부터 형성된 또래집단 속에서 사회성을 기를 기회도 없었다. 나의 양육방식도 그렇게 독립적인 성향을 형성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솔직히 뭔가 아직 또래에 비해서 너무 순진하고 착해빠졌다. 독한 구석도 전혀 없고 마음이 많이 여리다. 그래도 학교에서 줄넘기를 또래들이 온갖 모양으로 하는데 자신은 그냥 한 열번 하다가 걸리니 마음 한 구석에 자기도 줄넘기를 좀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있었나 보다. 이제 아기 같다고 놀림받는 횟수가 줄어들 것 같다. 단단해지고 있구나 우리 공주. 우리 집 밤톨도 슬슬 여물어지는구나. 엄마가 응원할게. 힘내자 우리.



성장을 향한 여정


햇빛이 강렬하다.

15분을 걸어 내려왔다.


스타드가 잠겨 있다.

잔디도 관리가 잘 되어 있고 뛰어놀기 딱 좋은데. 어쩌지. 어디로 가나..


일단은 전진한다.

왠지 넓은 공터가 있을 것 같은 저 오르막길로 올라가 본다. 또 계단이 이어진다. 거기도 올라가 본다. 아파트만 즐비하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아파트 단지에서 두 아이와 이 쪽으로 오고 있는 아이엄마에게 축구를 할 만큼 널찍한 곳이 근처에 있는지 물어본다. 저쪽으로 가다 보면 호수 쪽에 원하시는 비슷한 모양새를 갖춘 놀이터가 있다고 한다.


다시 십여분을 땡볕 아래서 이어 걸었다.

아, 여기와 봤는데.. 자동차를 타고 왔을 때는 우리 집이랑 하등 관련 없는 동네인 줄 알았는데, 이곳이 걸어서도 접근 가능한 곳에 있었구나. 잘 도착했다. 이제 아이는 재미있게 놀기만 하면 된다. 나는 너무 더워서 가방만 벤치에 놓아두고 2미터 정도 되는 돌덩어리에 등을 기대고 모래바닥에 앉았다.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그늘이 큰 편이다.



값진 시간들


아이는 땅에 큰 구멍을 파는 것을 좋아한다.

우선 놀이터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어놓고 모래 놀이를 한다. 외출 시 모래놀이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모래를 파고 모양을 만들 때 필요한 플라스틱 친구들은 전혀 없지만 손가락 열 개로 최대한 깊이 파고 동굴도 대여섯 개를 만들고 즐겁게 논다.


그다음으로는 철봉 구름사다리를 탄다.

아이들의 은근한 관심을 받으러 한 번 두 번 성공의 경험, 그 행진을 이어간다. 쪼그라들었을지도 모르는 자존감도 높아지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전하는 값진 시간을 보낸다. 굳이 지금 피에르 브루디외의 교육과 계급 재생산에 대한 얘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작년 중학교에서 일을 하면서 그의 말 일정 부분은 절대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닌 것을 알았다. 엘리트교육을 받지 못하는 대다수의 공교육에서는 사회체계의 존속을 위해 순응교육을 분명히 자행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소름 돋을 만큼 강하다.


손에 땀이 차올라 미끄러워서 계속 철봉에서 떨어지는 우리 딸. 현재는 문체부차관인 영원한 우리들의 역도요정 장미란. 손바닥에 하얀 가루를 묻혔다가 탁탁 털면서 그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던 것이 생각나, 입자가 곱고 부드러운 이 하얀 모래를 손바닥에 묻혔다가 탁탁 털어서 한 번 해보라고 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아이가 정말 행복해했다. 그렇게 손이 빨갛게 부풀어 오를 때까지 아이는 철봉 구름사다리를 두 팔로 횡단하며 큰 기쁨을 맛본다. 그렇게 열 번 정도를 횡단하고 나니 손바닥이 너무 따가워 끝까지 완주를 못하고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했다. 아이는 다시 자존감이 낮은 표현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아이의 현재 상황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깊은 자기 자책의 수렁에 빠지지 않게 손을 잡아끌어 올려줘야 하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가능하고 또 가능하다고 믿는다.


마지막 활동으로 나는 아이에게 축구를 제안했다.

아이가 둘이서는 할 수 없는 스포츠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작년 중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남학생들이 두서넛이 서 책가방 두 개를 약간 거리를 두고 툭 바닥에 던져놓고 골대로 임으로 정하고 그렇게 스펀지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매일 보았다. 그래서 둘이서도 충분히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것을 감사하게도 알아버렸다.


놀이터에서 나와서 공을 차면서 공원으로 진입했다.

아이가 내게 게임에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작고 둥근 나무벤치를 보고 저곳을 골대라고 생각하고 네가 그곳을 사방으로 포위하며 공이 들어가지 않게 막으라고, 네가 골키퍼를 하라고 했다.


직접 달려보니 정말 운동량이 상당하다.

달리고 또 달리고 공이 구르는 속도에 맞춰 달리고 또 달렸다. 공이 너무 멀리 날아가면 그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발로 차주고 또 날아가면 다시 차주고.. 고맙다 공주야! 해줬더니 이번에는 공을 가슴에 소중하게 안고 달려와서 직접 전달해 주고 방긋 웃고 간다. 아프리카 출신 부모님인지 아주 까매가지고 눈만 하얗게 동동 뜨는데 옷은 네온 핑크로 입은 아이. 키가 제법 크고 덩치도 꽤 있는 편이라 멀리서 보면 중학생 필도 날 수 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한 열 살 정도로 보인다.  아마 공주님,이란 말을 많이 듣고 자라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는 여자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것이 흔하지 않다. 아무래도 파리외곽이다 보니 남학생들이 좀 거친 경우도 많고 파리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물론 파리든 파리외곽이든 한국이든 프랑스든 케바케일 것이다. 그런데 이 덩치 좋은 여자아이는 자기 남동생과 축구놀이를 하는데 자세가 꽤 안정되어 보였다. 우리 팀의 세 번째 플레이어처럼 큰 역할을 해 준 고마운 친구였다.



엄마랑 노는 거 너무 좋아


아이가 너무너무 재미있어하고 행복해했다.

고맙다 공주야, 그리고 이제껏 이렇게 함께 스포츠로 자주 못 놀아줘서 미안하다. 엄마가 너무 그늘에서 쳐져 있었던 것 같아. 지금이라도 너의 초록 에너지에 맞춰서 움직이고 뛰고 달리는 그런 놀이로 즐겁게 함께 놀아보자.


우리는 마실 물이 다 떨어져서 집에 돌아가기 직전까지 그렇게 축구놀이를 했다.

계절 몇 바퀴마나 더 돌면 반백인데 여덟 살 아이와 땡볕에서 공 차고 뛰어놀고 집에 가서는 밥까지 하려니까 다리가 후 달리기는 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원 없이 놀았다.


아이도 이제 남자아이들이 여자들은 하는 거 아니라고 끼워주지도 않던 그 축구의 재미를 알아버렸다. 나도 작년에 남학생들 축구할 때 감독하면서 거의 매일 봤더니 뇌로 눈으로 익힌 실력으로 현란한 드리블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발재간이 좀 는 것 같았다.


나는 오늘 아이와 함께 축구공 하나 죽자 사자 따라다녔다. 땡볕이지만 원 없이 달렸고, 달리고 또 달렸다. '달린다'는 것의 의미와 '살아있다'라는 느낌을 나를 형성하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기억해 냈다.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달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여전히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음에 감사한다.


몸은 진짜 계속 움직여야 한다.
우리 몸은 움직이도록 디자인되어 있다고 하는 애플의 건강 앱의 말이 사실이었다.



활력적인 삶의 끝판왕


작년 중학교에서 일할 때 점심 축구하던 아이들은 컥컥 대며 자주 물을 마시러 건물 안에 위치한 화장실로 들어가려고 줄을 서서 내게 입장 허가를 요청한다. 수업 이외의 시간에는 건물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아이들은 항상 가방을 가지고 나와 운동장에서 있어야 하는 이곳의 환경이 참 각박하다는 생각도 처음엔 많이 했다. 이렇게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순응하는 교육을 받는다. 물론 엘리트교육은 시계가 반대로 돈다.


땀을 줄줄 흘리며, 물 물 물 마시고 싶어요 하는 애절한 두 눈은 허가가 떨어지고 건물 출입구가 열리기가 무섭게 Merci Madame! 을 연발하며 총알같이 실내로 뛰어들어간다. 이때 또 내 업무 중의 하나인 태클 걸기, "뛰지 말고 걸어가거라, 화장실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쭉 다니면서도 자타공인 자유로운 학창시절을 보냈던 영혼이었기에 규칙 따위에 크게 구애받지 않던 삶을 살던 내가, 온통 금지 금지 금지 금지투성이의 프랑스 공립학교에서 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철저히 금지시키며 상점을 주고 벌점을 주는 그런 경찰 같은 시간도 보냈다니..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여튼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달리고 또 달리는 야생마 같은 어린 친구들의 그 활력은 진짜 삶의 끝판왕이다. 물론 한정된 자원이었던 작은 운동장을 그 아이들의 축구로 다른 아이들은 사용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어차피 축구를 하지 않다도 그렇게 뛰어노는 아이들도 없었다. 뛰어노는 법을 잊어버린 듯 잃어버린 듯한 것처럼.


와중에 딱 한 명이 내게 말했다, 네 이름을 지금은 찾아봐야 기억이 나겠지만, 이 중학교 2년 차, 한국식으로는 중학교 1학년이지만 특수학급이 따로 없었기에 수업의 반 이상은 개인수업을 받는 학생이었다. 작은 몸에 알이 굵은 안경을 끼고 가방을 빙빙 돌리기를 좋아하던 아이다.


그렇게 운동장 구석에서 가방을 전 방향으로 빙빙 돌리르면 적어도 3에서 5미터 정도의 공간이 필요한데 그러다 보면 축구하는 아이들과 부딪히기 마련이고, 나의 입장에서는 둘 중 하나의 활동은 그곳에서 멈추어야 했다. 그 아이는 '왜 쟤들이 운동장을 다 차지하는지 모르겠다'며 가방을 빙빙 돌리던 자신의 활동을 멈추며 말했다. 나는 쟤네들은 오전에 이미 오후 한 시부터 한 시간을 축구공 예약을 했기 때문에 합법성이 있고 내가 너에게 위험할 수도 있고 또 축구에도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자리를 바꿔서 저 쪽 구석에 가서 가방을 돌리라고 요청하는 내 행동에도 정당성이 있다고 했다. 아이는 운동장 구석에서 잠시 가방을 돌리다가 관중이 없으니 이내 흥미를 잃고 가방 돌리기를 멈추고 저쪽에 아이들이 모여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곳의 근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축구를 구경하곤 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에서도 그곳의 규칙을 정확히 인식하고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굴리며 즐기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또 그 일 퍼센트의 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쩌면 그 주변의 작은 공간을 또 그 안에서도 세분되는 자원을 가지고 나누어 살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저 아이처럼 현세를 자신의 눈높이에서 자신의 입장에서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바로 지적하며 태클을 걸어보다가 그냥 이쪽도 저쪽도 아닌 교집합의 저 언저리 너머로 그냥 밀려 떠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그런가 보다.




2. 4일차 (D-56)


친구는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는 가족이다.


2024년 7월 9일 화요일


이자벨을 한 달 평균 한 번은 만난다.

견진을 위해 Évangile de Marc 마가복음을 함께 좀 들여다보고 있다. 이자벨은 대략 두 달에 한 번 있는 바캉스에는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 지난 마지막 만남은 5월이었다며, 오늘은 꼭 만나자며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렇다면 방학이라 집에 있는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서 데리고 함께 가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신교와 구교, 기독교와 가톨릭 그리고 교회와 성당, 목사님과 신부님, 성경과 성서.. 이 양단간에  많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아니 혼란스러웠다. 나는 교회 다니는 사람인가 성당 다니는 사람인가. 교회도 다녀봤고 성당도 다녀봤다. 하지만 아무 데도 출석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뿌리내리고 있지 못했기에 나의 아이덴티티를 어느 곳에도 두고 있지 못했고 그것은 종교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그 부분에서 자유로워졌다. 부모님은 종교가 특별히 있는 분들이 아니셨기에 간접적인 압박도 느끼는 바가 없었다.


외부적 압박감은 저번에 한번 쌍둥이 고모 중에 서울고모가 교회를 다니고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고 성당 갈 때도 있고 교회 갈 때도 있다고 하니 약간 걱정스러워한 딱 그 정도가 다였다. 서울고모의 딸인 언니의 딸, 그러니깐 서울고모의 외손녀는 이제 의대 5년 차이고 외손자도 착하고 공부도 잘하니 사위와 딸이 사역에 힘쓰고 있고 그 자녀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도 다 그 열매로 생각하시니,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울 수 있다고 본다.


서울 고모는 한 십 년 전에 러시아 어디에 교회를 하나 세웠다고도 한다. 이 고모의 외동딸도 신학대학을 가고 또 같은 과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군대 간 그를 격려하고 끝까지 함께하고 결혼까지 한다. 목사가 된 형부랑 함께 외국에 교회를 세우고 유치원까지 함께 운영하며 산지도 벌써 이십 년이 다 되어간다.


또 육촌인지 몇 촌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큰 고모의 큰 딸의 사위되시는 분도 목사라고 하고, 또 다른 사촌 언니도 신학대학을 뒤늦게 가서 전도사를 하고 수많은 분들이 집사 권사 등의 타이틀을 가지고 교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모두 얼굴을 자주 보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내가 교회를 가든 성당을 가든, 교회를 가지 않든 성당을 가지 않든 크게 관여치 않는다. 아마 나보다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사람들이 조카딸보다는 백배 친밀할 것이다. 당연지사다. 그러니 내가 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천국에 가든 못 가든 그것은 개인적으로 알아서 할 일인 것 같다.


어느 날, 앞 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성당을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부님의 밥도 해주고 여러 봉사활동에도 진심이었다. 아 성당도 저렇게 적극적으로 다닐 수 있구나 하며 그 의외성에 놀라기도 했다. 학교에서 일을 하면서 세례를 받고 동네 성당이 본당이라고 해서 몇 번 갔을 때 그 아줌마의 막내아들이 청년그룹으로 초대해서 젊은이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일만 주구장창하고 남녀상열지사에는 노관심이던 나는 수많은 청춘남녀 사이에서 관심을 너무 받을까 혼자 너무 부담스럽다고 느꼈다. 그 이후론 청년부에 발도 디디지 않았었다. 참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첫사랑 이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남자로 보이지 않던 그런 시절이었고 마음이 고장 나 버린 건 정말 고치기가 힘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는 성당과 교회 그리고 성당 다니는 사람들과 교회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성당 교회 그리고 절까지 모두 크게 구분두지 않고 그냥 그 삼각형 중간의 어디쯤에서 자유하고 싶었지만 꼭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그런 입장이었던 것 같고 뽑기를 하지 않으면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그런 입장이었던 것 같다.


이곳, 프랑스에서 나는 외국인 신분이다.

그래서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내적인 고민을 하며 힘들어하는 과정을 좀 수월히 패스했다. 그렇게 그냥 속 편하게 교회가 없으니 성당을 갔고, 성당에 갔으니 세례 이후의 과정인 견진성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기본 일 년 이상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마음의 준비에 일 년이면 그렇게 긴 것도 아니라고 본다.



내 친구 이자벨


이자벨은 교구에서 견진준비를 돕는 그룹의 장이다.

이자벨을 알게 된 지 일 년 가까이 되어간다. 오늘은 이자벨과의 약속이 있는 날인데 어제 아침에 휴대폰을 어디 두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녀의 문자메시지도 확인이 어렵다. 바캉스 기간이기도 하고 해서 편하게 자신의 집에서 만나자고 했고 자신이 우리 동네까지 데리러 가겠다고 했는데 폰이 없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메일을 보냈다. 그녀는 문자를 여러 번 보냈는데 응답이 없어서 답답했었는데 그런 사정이 있었냐며 우리의 약속시간과 장소는 변동이 없음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처음으로 이자벨 집에 가는 거라 걸어갈지 버스를 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그녀는 멀지 않은 곳이지만 자기 집에 처음 오니까 픽업을 하러 가겠다고 밑에 원형 교차로에서 보자고 한다.


아이는 이자벨을 저번에 한번 교구사무실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고 학교에서 일하기도 하고 어린이 캬테도 해봤기에 색칠놀이와 색펜등을 준비해 주어 아이가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아이랑 이야기할 때도 아이 눈높이에서 듣고 말하고 하는 좋은 사람인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은 가슴으로 사람을 느끼고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함께 따라나서는 것이다. 이자벨이 좋단다. 제이가 재택근무라 아이를 두고 올 수도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데리고 나가는 것이 훨씬 낫다는 판단에 함께 이자벨의 차를 타고 그녀의 집에 순식간에 도착했다. 이자벨은 어제 우리가 놀았던 그 놀이터 언덕 받이에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이런 우연도 다 있구나. 아니 인생은 항상 이런 모양이었던 것도 같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일들의 연속.


오늘은 체감온도 30도라는데 이자벨 집 내부는 시원하다.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것도 아니다. 낮에는 덧문과 창문을 모두 닫아 이글이글 끓는 태양빛과 더운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 밤에는 덧문만 닫고 창문은 열어 놓아 차가운 바람을 들이는 식으로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중학생 때였던가 배운 것으로는 밤에는 지표면이 차가워지면서 대류현상이 역전되고 안 좋은 물질들이 밑으로 쏠려서 가라앉기 때문에 늦은 밤-이른 새벽의 공기가 별로 좋지 않다고 들어서 여름에도 나는 창문을 항상 닫아 놓았었다. 누구의 말이 맞고 안맞고를 떠나서 그냥 자기가 선택한 선택에 믿음을 가지고 그 삶의 양식을 이어가면 될 것 같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자기 쪼대로 자기 인생 사는 거다. 여기에서 나는 그냥, 시원하고 좋네. 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쪽의 덧문을 막아놔도 반대쪽 정원 쪽으로 난 덧문은 아직 한여름이 아니라 열어둔 상태에서 창문을 닫아두었다. 그래서 충분히 밝고 시원하다. 이자벨, 살림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거실에는 그야말로 오만가지 것들로 꽉 차있다.

아무래도 한국사람인 나는 여백의 미를 나도 모르게 중시하고 있다. 거실이든 응접실이든 뭔가 텅 비어있는 그런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이자벨네 집에는 벽에도 무언가가 엄청 걸려있고 난로 주변에도 사방 벽 주변에도 마찬가지였다. 소파 쪽도 그러하고 우리가 시간을 보낼 큰 테이블의 한쪽에도 뭔가가 가득하다. 그런데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없다. 잘 정리되어 있고 그냥 그녀의 역사가 숨김없이 전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커다란 사진 액자들이었다. 벽에 각 잡고 못질해서 둔 것은 아니었다. 하나는 벽난로 위에 있었고, 첫째 딸이라고 하는 네 번째 아이가 만들어서 보내 줬다고 하는 사진퍼즐액자는 책장 위로 얹혀 있었다. 위로는 아들 셋 아래로는 딸이 셋이 있었다. 모두 독립을 했으나 막내딸은 스물두 살인데 아직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웬만하면 좀 나가 달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약속이 만들어서 조금 있다가 나갈 거고 하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너무 예쁜 그 딸이 이층에서 내려와 인사를 하고 나간다.


루브르나 오르세에서 봤던 고운 드레스를 입고 양산을 쓰고 있는 그런 양가집 규수의 모습이다. 정말 전형적인 유럽아가씨의 아름다움이 그득하다. 옷은 아주 현대적으로 등판이 훤하게 파여 있었고 끈 나시 배꼽티 스타일로 시원하게 입고 있었지만 숨길 수 없는 기품과 그 우아한 얼굴 표정에서 여유로움이 그득하게 묻어난다.


이자벨은 사진을 보고 있는 나를 보며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이름을 다 말해준다. 다섯째, 그러니까 둘째 딸의 이름은 빅투와, 그리니까 승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이 이름만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아이가 어제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가 빅투와였기에 아이가 빅투와! 어제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 이렇게 한번 외쳐줬기 대문에 기억한다. 나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첫째는 서른둘이고 막내가 스물둘. 첫째는 결혼해서 8살 5살 아이가 있고 첫 손녀가 우리 딸아이와 동갑이고 초등학교 3학년으로 9월에 올라간다. 이 첫째 아들이 살고 있는 곳의 전경이 담긴 컵이 테이블 위에 있다. 그 바닷가의 맨션에서 바라보이는 바다. 관광지에 가면 수건 등에 그곳의 사진을 넣어서 판다. 여기에 자기 아들의 집이 떡하니 나와있는데 사지 않을 수 있는 엄마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며느리는 성당에서 거의 매주 있는 결혼식에서 노래를 한다고 했다. 바닷가 바로 앞의 맨션에 살면서 직업으로는 노래를 하는 이제 갓 서른이 된 여자도 나처럼 여덟 살 딸아이를 키우고 있구나 생각하니까 참.. 인생살이 모양새가 어찌 이리 다양한가 싶었다.  


이자벨은 이번 바캉스에도 남편의 휴가가 시작되면 이곳저곳 여행을 할 예정이고 그 언저리에 이 첫째 아들 바닷가 동네에서 며칠 있다가 아이들을 픽업해서 이곳으로 데려와서 일주일이나 이주일을 데리고 있을 생각이지만 모든 계획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자벨이 방학이 되니 더 여유로워 보이고 자유롭게 보여서 보기가 좋았다.


이자벨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

그전 학교에서는 교장과 문제가 초반에 있었던 것 때문에 불편함이 많았었는데 지금 이 학교에서는 편안하다고 했다. 솔직히 이전 학교에서 너무 힘들어서 머리가 은색으로 다 바뀌어 버린 것에 대한 얘기를 저번에 들은 바가 있다. 구체적인 얘기까지 다 해주었지만 언젠가 다시 이자벨의 커리어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할 날이 있을 것 같다.


이자벨은 쉰여섯이다.

이자벨은 스물셋에 첫아들을 낳고 서른셋에 막내딸인 여섯 번째 아이를 낳았다. 마흔여섯에 할머니가 되었다. 나는 이 나이에 여전히 여덟 살 아이를 기르고 있고 할머니가 되려면 앞으로 적어도 20년은 지난 예순여섯은 되어야 할머니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우리 둘의 시계는 크기도 속도도 많이 다르지만, 이자벨은 내가 혹시라도 말을 할 때 'tu튀' 대신에 'vous 부'라고 말하면 너무 속상해하면서, 뭐야 네가 부라고 하면 내가 너무 나이 들어 보여 모야 진짜'이런다. 이날도 테라스에 나가서 코에 바람 좀 쐬고 아이는 그네를 타고 그러다가 깔끔한 부엌에 들어서면서 뭐 좀 먹을지 물어봐서 '실부쁠레' please처럼 끝에 붙이는 말 해버렸더니 너무 실망하면서 갑자기 왜 또 실부쁠레, 나면서 화들짝 놀라기에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실뜨쁠레,로 급바꿨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놀다 보니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나서 가야겠다고 하고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거절했다. 배웅하면서 끝인사도 엄청 길었고 비주, 볼인사도 두 번이 아니고 네 번이었으며 네 번도 그냥 네 번이 아니라 3-1로 소리-소리 -소리 -쪽 이렇게 마지막엔 직격이었다.


이자벨은 나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해주려고 하고 큰 모임이 있을 때마다 집을 나와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유하고 놀고 즐길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2월에 딱 한 번 나가고 이런저런 이유로 참여를 하고 있지 않기에 너무 안타까워하면서 아이에게도 엄마가 바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 하는 필요성을 피력하고 매달 수요일 오후 8시에는 엄마가 엄마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고 이날 하루는 엄마가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자유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아이는 자신도 함께 가고 싶다고 했지만 다음날 학교에 가는 데 밤 열 시까지 있을 수 없다고 안된다고 하자, 아이는 시간을 조금 앞당겨서 자기도 가도 싶다고 했지만 일을 마치고 오는 어른들의 모임이니 안된다고 하니 많이 섭섭해했다. 그래도 엄마 보내줄 거지 하니 아이는 이자벨의 눈을 바라보며 알겠다고 했다.


첫 모임 이후로 여러 이유로 참석을 하지 못했지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뭔가 숨통 트이는 경험을 했기에 9월에 다시 모임이 시작되면 우선순위에 두고 참여해야겠다.


내가 실제로 자유하여 풍성한 삶을 살면 아이에겐 그것이 참 교육이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원래 지어진 목적대로 그렇게 흐르는 삶을 살아야겠다.




3. 5일차 (D-55)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2024년 7월 10일 수요일


다다다다. 다다다. 아이가 벌써 일어났나 보다.

우리 셋 모두 다 같은 나무계단을 사용하여 거실을 향하지만 하나같이 다른 소리가 난다. 제이는 퍽퍽퍽 퍽 퍽, 나는 닷 닷 닷 닷, 아이는 저렇게 다다다다, 다다다. 박자와 소리 모두 다르다.


오늘은 여기에 더해 드르르르. 드르르르르 이 소리가 추가될 예정이다. 공사의 마지막 날이다. 끝없이 들리는 드르르르.... 도장 공사? 도장 공사, 이 단어가 뭔 줄 알고 이 단어가 툭 튀어나오니,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일수도 있고.. 여하튼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드르르르 소리는 도장공사가 맞다고 본다. 도색 작업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 않은가. 뭔가 전체적으로 시멘트 바닥 표면을 고르게 가는 소리. 드르르르르 소리가 끝나니 새로운 소리가 이어진다. 불을 뿌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센 공기를 뿌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도로를 도장한 후에 도색을 하나보다, 하고 멋대로 생각해 본다.


그나저나 왜 난 벌써 이렇게 피곤한 거니 도대체 몇 시인거지 음.. 오전 7시 10분..?! 아.. 방학이다 얘야 그냥 좀 더 자도 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니. 눈 뜨자마자 스트레칭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 방을 나서는 우리 공주.. 나도 천근만근 몸뚱어리를 일으켜 세우고 아이를 따라 내려간다. 내 나이가 몇이지 왜 이렇게 몸이 무거운가 생각해 보면 사십 대 후반은 확실한데.. 이 정도 반백의 레벨이 붙으면 대학생 아이 하나는 있어주면 딱 좋을 것 같다. 내 몸 건사도 힘든 마당에 아이 시종 노릇을 하려니 체력적으로 좀 후달린다고나 할까. 아이 방학이라고 그래도 취침시간을 이삼십 분 늦춰서 재우는데.. 그래도 21시 20분에 어제저녁에 잠들었는데.. 이제 여덟 살이라고 잠이 좀 줄어든 건가.. 더 이상 10시간을 자지는 않는구나..


새벽 한 시가 한참 넘어서야 겨우 침대로 향하고 5시 조금 넘어서 쓰레기 수거 차량 소리에 한번 깨고, 밤 열 시라는 꿈의 시간대에 자서 6시경에 화장실을 간다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제이, 그의 움직임에 또 한 번 깨었다가 다시 잠으로 빠져드는 언저리에 아이가 일어나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렇게 7시경에는 잠을 접고 내려가야 하다 보니 좀 피곤하다. 그냥 나도 아이를 저녁에 좀 더 늦게까지 둘까, 그러면 나의 수면시간이 조금 확보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실행 기능

(아동 정신학자 웬디 모스와 도널드 모제스)


아침 루틴을 자동화 교육을 시켜두지 않은 업으로 일일이 씻어라 머리 빗어라 크림은 발랐냐 하고 학교 갔다 와서는 목욕할래 샤워할래 물어보고 목욕한다 그러면 욕조를 씻고 물을 받아서 욕조 밖에 욕실수건을 깔아 두고 세면타월과 갈아입을 옷들을 준비해 두고 화장실에 갔다가 욕실로 오너라 얘기한다. 또 너무 물이 뜨겁다고 하면 찬물 좀 틀어넣고 또 너무 미지근하게 느껴지면 또 뜨거운 물 넣고 하면서 이미 욕조의 물은 한강이다. 아이는 또 물이 많으니 좋아서 거기서 물장구를 치니 물이 흘러내리고 또 그걸 닦는다고 엎드려서 좀 흡수시키고 그러다 바닥 청소로 이어지고 이미 허리는 끊어질 판이다. 그러고 나가서 저녁을 준비하다 보면 아이가 나온다고 하는 데 머리 감기고 말리고 바로 해 줄 수 없을 땐 또 무선 스피커를 가져와서 음악을 좀 틀어주고 양파를 후라이팬에 넣어서 좀 달달 볶다가 불을 약하게 해 놓고 카라멜라이징을 시켜두고 다시 욕실로 들어가서 이제 나오자고 한다. 그런데 음악이 꽤 맘에 들었는지 또 10분만 더 있겠다고 한다. 그래 그럼 10분 뒤에 온다고 하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서 마늘을 까고 또 까고 계속 까서 한 스무 개 남짓을 갈아서 양파와 함께 좀 볶는다. 거기에 간 소고기를 넣고 생강가루와 마늘가루 그리고 꽃소금과 요리주 그리고 후춧가루 약간을 추가해서 또 좀 볶는다. 그리고 다시 욕실로 가서 이제 시간 다 됐으니 나오자고 한다. 그럼 아이는 다시 조금만이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나와야 한다 안 그러면 저거 다 탄다고 으름장을 놓고 샤워기를 틀어 머리도 감고 몸도 좀 헹군다. 아이가 몸을 닦고 나면 나는 드라이기도 머리를 말려주고 그 사이 아이는 얼굴에 크림을 바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아이가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이번 방학 때 하나의 과제로 설정해야 할 것 같다.  


일층으로 내려와 아이에게 잘 잤냐 물어보고 왜 좀 더 자도 되는데,라고 말하며 창문을 열어서 손을 내밀어 공기 중을 휘저어 본다. 음.. 오늘도 어제처럼 후끈할 것을 예상했는데 아직까진 찬기운이 가득하다. 며칠 잠시 달궈졌던 땅덩어리와 인간들의 몸뚱어리를 식혀주는구나. 해도 구름 뒤에 숨었는지, 구름이 워낙 두꺼워서 비집고 나올 틈이 없는 건지 회생과 초록이 팽팽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살벌한 차가움이 지표면과 대기 중에 가득하다. 하지만 바람이 이들을 해체시킬 것이고 먹구름은 물러가고 다시 태양의 위엄이 뿜어져 나올 것이다.  



'재미있는' 운동하러 가자


지금 이 하늘을 보면 상상이 어렵지만 예보대로라면 오후에는 이 땅덩어리가 또다시 한번 후끈하게 달아오를 것이다. 그래. 점심 먹고 나서 아이와 수영장을 가자. 파리 15구 워터파크수영장이 가고 싶지만 돌아올 때 퇴근길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수영장 짐꾸러미를 들고 전철을 타고 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너무 버겁다. 그냥 근처 수영장에 버스를 타고 가야겠다. 아.. 한국에서 타던 내 차는 지금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십 년 지났지만 아직 이승에 있을 것이다. 나이로는 열한 살 아닌가. 새 모델을 뽑아서 룰루랄라 다니던 때가 내게도 있었구나.


그런데.. 아이랑 수영장에서 노는 것은 좋지만 두 가지가 좀 걸린다. 오전이 아니면 물이 얼마나 더러울지 상상했을 때 뒷걸음이 쳐진다. 그리고 작년에 일하던 중학교의 780명의 학생들 중 몇 명을 만나게 되고 수영복차림으로 안부를 묻고 어쩌고 해야 하는 상황. 얘네들을 어디만 가면 항상 만나고 만났으면 또 인사해야 하고.. 기쁜 만남이지만 좀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그냥 이 아이들을 친구로 만났으면 마냥 즐겁기만 하겠지만, 어른으로서의 안정감과 모범 같은 것들을 항상 장착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좀 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 학교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같이 놀거나 하면 된다. 어른, 그게 뭔데. 됐다. 이것도 이제 문제가 안된다.


너무 잘 놀다 왔다.

'반백도 아직 안되었는데
벌써 체력이 바닥이고
근심은 마를 날이 없고
과연 남은 인생을 살아갈 체력 지력이 남아는 있는 걸까
남은 내 인생 어쩌면 좋은가'

십 년간 고였던 '저 생각'을 한 방에 날려버릴 정도로
오늘 우리 너무 잘 놀았다.




솔직히 수영장 가려고 집에서 나왔을 때 속도방지턱을 없애고 새롭게 주차 선을 도장과 도색 작업으로 우리 집 건너편으로 박아 놓은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기에, 땡볕을 뚫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가면서도 완전 저기압상태였다. 이렇게 되면 문 밖으로 나가면 바로 차가 슝슝 지나가는 상황인데 도대체 이것은 누구의 발상인가 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최대한 아이에게 말을 줄이고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버스앱의 지시에 따라 스포츠센터,라는 정류장의 한 정거장 앞에 내렸다. 좀 이상했지만 버스앱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따랐다. 수영장은 원래 아이가 지 아빠와 자가용으로 가기 때문에 아이가 나랑 이렇게 버스 타고 가는 것이 처음이다. 이사하기 전에는 아이를 데리고 여름에 수영장을 버스로 자주 다녔기에 익숙했는데.. 아차 싶었다. 그렇게 또 땡볕에 아이와 함께 걸었다. 걷다가 집에서 정원을 가꾸고 물을 뿌리고 분주한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어보니 그쪽이 맞으니 한 10분만 걸으면 된다고 한다. 그래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공주 조금만 참아라. 알았어 엄마. 그렇게 또 나는 우리 딸내미를 땡볕에서 걷게 했다. 또 일기예보는 어찌 그리 정확한지 등허리가 제대로 굽혀지고 있었다. 아, 코너를 돌아서 오른쪽이라고 돌면 바로 보일 거라고? 아.. 저기 맞아 엄마 아빠랑 왔던 곳 저기 맞아. 아.. 고맙다 공주야


밥하고 집안일하고 아이를 챙기는 것에 백 퍼센트 집 안에 쏟아붓던 그 에너지가 수영장이라는 새로운 공간 속에서 재생되었다. 물속에서 두 팔과 두 다리를 움직이며 호흡을 멈추고 호흡을 참고 또 터트리고 물거품 속에서 고개를 들어 올리고 아이를 오른쪽 어깨에 태우고 폭포를 향해 전진해 나가며 나에게는 아직 에너지가 넘쳐나는구나를 깨달았다.


나 아직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폭발적인 힘을 내 안에 가지고 있구나
이 에너지, 분출되지 못한 채 계속 기회만 엿보고 있었구나
나 아직 무엇이든 해낼 수 있겠구나
몸 안에 에너지가 넘쳐나는구나
힘이 쌓이고 쌓여 있였구나

운동의 힘은 실로 엄청나다.




4. 6일차 (D-54)


나는 결코 문제를 걱정하지 않는다. 해결책에 대해서 고민할 뿐이다.


2024년 7월 11일 목요일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5시와 6시 사이일 것 같다. 쓰레기 수거 차량의 삑삑 삑삑 소리가 지나가고 이어서 제이가  내려가는 퍽퍽퍽 퍽 퍽 소리가 들린다. 부엌 찬장을 열고 쿠키 통을 열고 닫는 소리가 난다. 그걸 하나 꺼내 먹고 화장실에 들렀다 바고 다시 올라오고 있다. 아마 밤에 더워서 문을 열고 자는 모양인지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제저녁에 잘 때 귀마개를 깝박하고 하지 않고 잤나 보다. 귀마개 통을 흔들어보니 달달달달 소리가 난다. 아예 꺼내지도 않고 바로 잠이 들었나 보다. 하기사 어제도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고 더구나 오랜만에 수영장에서 놀았으니 잠이 쉽게 들었던 것이리라. 다시 잠을 자야 하나 일어나야 하나 하는 생각에 뒤척이는 소리를 제이가 들었는지 안방의 문을 조심스럽게 닫는 소리가 난다. 나도 그렇게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귀마개를 장착한 상태이다. 아이가 학교를 가는 것도 아니고 제이도 재택근무이니 알람은 설정하지 않았다. 다다다다, 계단을 뛰어내려 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딸내미 오늘 또 일등으로 일어났구나.. 나도 일어나야 하는 데 몸이 왜 이렇게 무거울까. 좀 더 누워 있어 보자.. 그래도 일어나야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꿈쩍꿈쩍거리다가 일단 시간이라도 좀 보자 싶다. 몇 시지.. 하, 폰 충전을 부엌에다 꽂아두고 그냥 두고 왔구나. 아.. 일어나자. 아이고... 드디어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데 성공을 했다. 창문을 열고 덧문도 열어 접었다.


아. 오늘 날씨도 거의 완벽에 가깝다. 오늘 내가 관 속에 누워 들어가지고 나가지도 못하는 그러한 죽음의 상태가 아닌 것에 감사하며 내 방 문을 나선다.  오늘은 우리 공주랑 뭐 하고 놀아주나.



과속방지턱이 지나간 자리


어제 퇴근한 제이에게 과속방지턱 작업이 끝나고 주차를 하는 곳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말을 했지만 피곤에 쩔어 있는 상태로 'c'est pas grave'세 빠 그하브,라며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더니, 오늘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 정원에 나갔다가 우리 집 쪽에 있던 주차 구역이 반대쪽으로 넘어가고 우리 집 쪽에는 인도도 없는 상태에서 차가 바로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제는 피곤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되면 기름차가 와도 곤란하고 우체부가 편지 넣으러 올 때도 힘들고, 무엇보다 쓰레기통을 꺼내 놓으려면 도로를 건너서 반대쪽에만 있는 인도에 두어야 한다며. 어제 내가 쭉 얘기했던 것을 오늘이라도 깨달아서 너무 다행히다,면서 칭찬해 주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 보았다. 어라, 금 토 월 화 수, 이렇게 예정 작업일 5일은 지났고 과속방지턱도 모두 제거된 상태인데, 여전히 시청 트럭 두 대가 보이고 마무리 점검 작업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내 몸뚱이를 한 번 보니 다행히 비몽사몽 중에 잠옷은 갈아입었다. 머리도 세수도 하지 않고 나왔지만 그들에게 직행한다. 그리고 우리 상황에 대해  그냥 노동직 근로자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 한 남자에게 설명했다.  그는 경청 후 부드럽고 교양 있는 목소리와 매력적인 말투와 믿음직한 딕션으로 내게 믿음을 주었고 내 마음을 순식간에 평온한 호수의 작은 배에 태워주었다. 왠지 이 사람이 변화를 다시 불러올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 제이에게 일단 관련 당사자와 얘기했으니 조금 기다려보고 액션이 취해지지 않으면 시청에 얘기해 보자고 했고 그도 이번에는 꽤 심각하게 이 사안을 받아들이며 성인 남자로서의 자존심은 지키는 듯했다. 힘내자.



몽 베베 mon bébé..

네 여자가 잘 못해주니?


과속방지턱이 없어지고 나면 운전자들은 편안해질 것을 생각했다. 아마 내가 그 운전자인 듯 잠시 빙의라도 되었었나 보다. 시어머님은 어떤 의미에서 과속방지턱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제이의 '직장 감정 그래프'에 휘둘리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을 때, 간신히 운전해나가고 있을 때, 툭 끼어들어들 때가 그런 때이다.


남자는 여자와 잠자리를 못하면 여러모로 힘들어지는데, 너네들 잠자리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거 맞니?


제이가 회사생활에 어려움이 있어 술을 마시고 정신줄을 놓고 화상 짓을 하는 것이 마음이 너무 아픈 나머지 이유를 고민고민해 봤을 것이다. 아무래도 며느리라는 여자가 아들을 무시하고 남자 구실도 못하게 만들어서 회사에서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제일 만만한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나 이제는 그러든가 말든가 하고 만다. 사가지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독하다고 생각하는가.그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라고 원래부터 이렇게 말에 가시가 돋았던 사람이었겠는가. 한국의 부모님께서 내가 첫 아이 지금 이 딸내미를 마흔에 낳고 일년 정도 지나서, 아이가 혼자서 자라면 외롭다고 둘째도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제이에게도 이 통화내용을 대화 중에 전달했고, 이 것은 시어머니 귀에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시어머니는 그렇잖아도 혼자 일하는데 아이가 둘이나 되면 자신의 아들이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안된다고, 그건 얘가 감당하기 힘든 짐이 될 것이라며, 좋지 않은 생각이라고 했다.


사람은 바뀌기 쉽지 않다. 항상 저런 식의 딕션이었다. 그것이 십년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닮아버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시어머니의 엄마, 시할머니는 그녀의 딸이 바캉스 때 가서 그 곳에서 일주일 정도 있고 싶다고 하면 non 하신다.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는 며칠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 맞지 않아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은 시어머니가 호텔에 가서 지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자신의 엄마에게 전화해서 방문 예약 시간을 잡고 나서나서야 그곳을 방문할 수 있고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한 시간 남짓이고 쉬어야 한다고 하면 그 집을 나오는 식이다.


시할머니도 혼자 딸 둘 아들 하나를 키웠고 우리 시어머니도 제이를 혼자 키웠다. 물론 혼자서 자녀를 키워도 성격이 모가 나지 않은 경우엔 오히려 찌지고 볶으며 함께 사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경우도 있겠지만, 우리 시어머니는 너무 성격이 아주 특이하다. 부드럽게 평소에는 행동하고 말도 교양있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한번씩 돌변할 때는 너무 놀란다. 제이가 어렸을 때 그런 엄마에게 잘 보이려고 찍 소리도 못하면서 자랐겠고 크면서 한번씩 터트렸지만 바로 진압되고 또 그러면서 그녀의 모든 가르침을 흡수했겠구나하는 생각하면 정말 이 관계를 유지해야하나 하는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성격상 다음 날이 되면 다 잊어버리면서 10년을 살고 있다. 제이가 화상짓을 개인적인 결점으로 생각했을 때는 그 터널에서 빠르게 나올 수 있는데, 이것이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그리고 두번째 시어머니 등과 복합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로 발전할 때는 정말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서 정말 이 관계는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에 걸려서 터널에 한 동안 갇혀버린다.


나는 그런 과속방지턱이 자주 출몰하지 않는 곳으로 운전해서 다니거나, 집 앞의 과속방지턱이 없어지면 운전이 아주 수월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하나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제이가 시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자주 보이지 않으면 좋은 것이 그에게는 없으면 아주 위험한 수준의 거의 한 몸 같은 존재인 것이다. 아주 불편하고 두렵고 그립고 안타깝고 안쓰러운 내 분신 같은 존재. 그 부재를 볼 때마다 빈 곳에 선명한 그 자국을 볼 때마다 자신만 행복하면 안 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그녀가 어디 외딴곳에 버려진 양 안타깝고 안쓰럽고 보고 싶고.. 혹 그녀가 이곳에서 내버려진 것으로 생각하고 혼자 슬퍼하고 있을까 두렵고 미안한 마음.. 그것은 다시 그를 괴롭히고..


그는 집 안에 살고 있고 그의 엄마는 과속방지턱처럼 그의 집 앞을 오가는 차들이 과속을 하지 않는데도 그 차량의 속도를 줄이라고 온몸으로 욕받이를 하며 그냥 지나만 가는 거기에 길이 있기에 가야만 하는 그런 차에게 받은 욕을 다시 돌려주며 그렇게 그의 아들이 살고 있는 집 앞에서 밤이고 낮이고 비가 오고 눈이 오나 그렇게 살고 싶어 했다.


그것이 없어지고 그는 그녀가 더 그립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절실히 그 필요성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나는 과속방지턱을 떼내야 한다라고 주장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드시 거기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아니다. 제이는 그것이 반드시 필요했다면 거기에 두어야 한다고 더욱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없어지고 나니 또 술을 마셔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이제 우리 집 문을 열고 계단을 몇 자국 내려가면 차가 바로 지나간다.


이 거리의 모든 과속방지턱을 제거할 때, 차가 달리는 방향과 주차하는 곳의 방향을 바꾸면서 우리 집 앞에 있던 보행자 보호 공간도 함께 제거된 것이다. 결국 그녀가 거기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그녀는 그 손에 다른 카드도 함께 쥐고 있었던 것이고 자신이 삭제될 위기에 있을 때 그것부터 태워버린 것이다. 나는 그녀를 절대 이길 수가 없다. 그녀는 전문가다. 프랑스의 1960-7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치는 시기를 지나면서 그녀는 희노애락의 절정을 경험해 본 것이 두 손의 손가락을 다 꼽을 정도의 이성을 만나고 같이 살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 하면서 남녀관계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상황 속에 있어보았고 그 큰 감정의 굴곡점을 지나면서 나는 도저히 경험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한 그런 사건들도 많이 겪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거기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해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도덕적이거나 항상 바람직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제이를 통해 들었다. 어린 소년이었던 그는 엄마의 모든 시간들을 지켜보면서 좌절하고 무너지고 자책하는 수많은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엄마는 이 모든 것이 나 때문이라고 하는데, 왜 난 이렇게 괴롭고 행복하지 않을까하며.


나는 그쪽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싶지도 않고 입문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집도 차도 버리고 걸어 다닐 것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여전히 내가 이 집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차들 중의 한대라고, 자신의 아들 곁을 지킬 수 있는 다른 선택지 중의 하나라고,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제이가 두서너 살 때 그녀와 다니엘은 이혼을 하고 또 그전부터 불화가 심했으니 임신과 출산 그즈음해서 이미 두 사람의 관계는 끝이 나고 수많은 남자와 살고 헤어지고 쉽게 하다 보니 아들의 곁에 있는 저 이도 아들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그런 자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쓰는 나도 저렇게 내가 쓸 수밖에 없도록 처신한 사람 못지않게 매정하고 현명하지 못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지난 글에서 내가 과속방지턱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과 오늘의 내가 과속방직턱을 바라본 시선이 이렇게 상이할 수 있다니. 내가 그 턱 위를 지나가면서 속도를 줄이지 못했을 때의 여파와 속도를 잘 줄이더라도 일단은 브레이크를 밟는 등의 수고를 해야 하는 상황과 우리 집 앞에서 길을 건널 때 그래도 얘 덕분에 조금은 안전하게 다가오는 자동차와 조금은 안전을 유지할 수 있게 그래도 우리를 도와주기 위한 목적으로 거기에 있는 애초의 목적으로는 고마운 존재., 내가 운전자의 입장이 아니라 제이와 함께 있는 자로서는 이 턱의 존재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에덴동산의 사과를 먹고 눈이 떠버려 진 이브처럼, 그녀가 나와 제이를 위해 거기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제이와 묶여있는 한 세트가 아니라, 그녀에게는 그만 보인다는 사실. 내가 그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거나 잘 해먹이고 집안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하지 못하여 그가 편히 쉬지 못하는 내 존재가치는 거의 제로이하로 떨어진다는 것.


문제는 이러한 그녀의 뇌구조가 너무 선명하게 그녀의 언행을 통해 여실하게 드러나는 것. 금발은 너무해. 뭐 의도치 않게 이렇게 사람 욕을 하고 있는 내가 참 안쓰럽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하는 데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닮으려도 옆에 있지도 않은 사람 생각에 이렇게 글로까지 박제하는지 모르겠네.. 여하튼 이렇게 털어내고 그녀의 건강과 그녀의 행복을 바라는 네 마음을 더 키워나가기를 바란다.



무엇이 어떻든 간에 오늘도 날씨는 완벽했다.


그래서 우리 셋은 호수 쪽에 있는 빵집에 가서 거기 테라스에서 호수 전경으로 샌드위치를 먹는 걸로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 큰 공원으로 가서 배드민턴을 치면서 두 어른은 놀고 아이는 외관상으로는 천년을 되어 보이는 엄청난 나무의 둥치 안에 나뭇잎을 땅에서 주워 넣고 캐빈을 만들며 놀았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는 제이는 이 배드민턴 활동이 너무 재미있었던지 그다음 날도 아이에게 "엄마가 배드민턴도 엄청 잘 치지?"이러면서 또 눈치 없이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덧붙였다. "둘이서도 잘 치더구먼 한번-두 번-세 번이나 공이 왔다 갔다 했잖아"하고 아이가 "내가 두 번을 친 거야, 아빠는 한 번이고" 이런다. 음.. 이번 방학에는 아이의 자존감과 함께 아이의 사회성에 대한 재고와 개선방안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좀 어디다 적어놓고 잊지 말고 제발 실천하기를 바란다.




5. 7일차 (D-53)


개인의 성장은 새로운 정보를 배우는 것보다 오래된 한계를 극복하는데서 온다.


2024년 7월 12일 금요일


아 이게 뭐지, 뭔지 모르겠지만 얼굴은 크게 붓지 않았는데 손가락 마디마디가 좀 부어있다. 신장이 안 좋은 건가. 여기서 십 년간 운동도 하지 않고 인상만 쓰고 살았더니 이렇게 벌써부터 하나씩 신호가 벌써 오기 시작하는 것인가. 아이가 대학 가려면 아직 십 년이 더 남았는데..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산 송장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아침에 집을 나서는 제이가 가죽점퍼를 입고 있다. 무슨 일이냐 이 한 여름에,라고 하니 또 옷차림에 딴지를 거는가 하며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최고기온 18도고 비까지 내려서 선득해,라고 하며 어제와 달리 시원한 오늘이라는 시작이 짐짓 꽤 마음에 드는 눈치이다. 어제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집안 내부에서는 정확한 오늘의 기온을 알 수 없는 노릇이라 제이가 떠나고 난 자리에서 창문 밖으로 밖을 보니 비바람이 있다. 어느 정도인데 가죽점퍼인가 싶고 그래도 여름인데 하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훅, 하고 치고 들어오는 찬바람에 뒷걸음질 치는 내 모습이 좀 우습기도 하고, 그래 프랑스에 나고 자란 네가 프랑스 날씨를 더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 어설프게 출근지도하다가 나치냐는 소리 듣지 말고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 쪼대로 살도록 두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힘들게 자랐는데 마누라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그렇고 어찌 보면 참 불쌍한 인간이다. 그냥 내버려두자 한겨울에 팬티만 입고 나가든 한여름에 양털코트를 입고 나가든.


우리 집 화상, 내 아픈 손가락 제이.

이번 바캉스 때는 지 좋아하는 자전거를 좀 탈 수 있게 염두에 두고 휴가지를 찾아봐야겠다. 저번부터 휴가지 물색을 계속 미뤄왔다. 왜냐하면 저 인간을 데려갈지, 아이와 나만 떠나서 평온함을 누리는 시간을 가지며 내 정신건강을 돌봐야 할지 확정을 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은 인간이 또 어디 바닥까지 떨어져 있을 지모를 그런 상황을 뒤로하고, 그런 크고 깊은 그림자를 달고 어디를 간들.. 내 마음이 어디 평안할 수 있을까.


그렇게 휴가지 선택을 미루고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지난 한 주 내 속을 깔짝깔짝 건드린 적은 몇 번 있으나, 확 뒤집는 퍼포먼스는 없었기에 저이를 데려가도 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로 한다. 이렇게 착각에 빠져야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하는 거지. 너무 이성적이어서는 일단 진행이 되들 않는다.  빠져나올 수 없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깊게 빠지게 되는 늪처럼, 그런 결혼 생활을 하더라도, 이 늪지대를 지나고 또 악어떼를 만나더라도 일단 진행을 해야 죽음의 문을 열고, 관뚜껑도 열리고 닫히고 하면서 , 내가 왔던 태초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진행해. 그래 저 인간 데리고 가기로 마음을 굳힌다. 일단 내가 700유로를 휴가비로 보태기로 했다. 십 년을 살아도 머릿속의 계산기는 한국식이다. 한국돈으로 백만 원을 염두에 두고 700을 불렀더니, 오케이 싸인에 초록불이 반짝인다. 혼자서 돈 벌고 분리수거하고 쓰레기 갖다 버리고 설거지 하고.. 다 자기가 한다고 생각하니 항상 버겁고 어깨에 얹힌 돌덩어리무게가 사람을 휘청휘청하게 하는 것 같다가도 돈 줄을 조금이라도 좀 풀어주면 그 순간은 좀 숨이 트이는 가 보다. 네가 정신 차리면 매달 적어도 천 유로씩은 통장에 꽂아줄 텐데.. 참 너도 힘들게 산다, 힘들게 살아.. 내가 왜 규칙적인 일을 올해는 알아보지도 않는지 진짜 모르겠니. 감이 안 오니. 네 문제에만 매몰되어서 주변을 보지도 못하고.. 천로역정 영화 찍니?


마누라가 풀타임으로 일하면 더 넉넉 학고 여유롭게 살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제 삶이 동료들과 비교되어서 너무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했었던 거를 지난달에는 숨기 지를 못했었지 그러다가 최근에 마튜가 동거녀와 런던에서 점심 저녁 끼니당 일인 육칠십 유로를 쓰면서 밥 값으로만 이천유로 이상을 쓰면서 일주일을 호텔에서 지내고 왔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 가족 등 뭐 하나 걸릴 것 없고 자유롭고 월 사천육백유로로 마튜보다 천 유로를 더 버는 인사팀 당당자인 그녀와 함께 살며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는 그 관계의 유효기간이 멀지 않았다고 며칠 전 마튜와 점심을 먹으며 들은 이후로는 제이도 느끼는 바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 내 마누라가 그래도 최고다. 돈은 규칙적으로 벌고 있지 못하지만 끼니마다 집밥 짓고, 항상 저기에 있어주니까.. 뭐 이런 깨달음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마튜와의 점심식사 이후에는 일 언제 구하냐, 도대체 일을 할 생각은 있는지 등의 말은 요즘 하지 않는다. 바보 도 트이는 소리. '내가 푸시하면 반작용이 일아날뿐이다'라는. 한정된 자원을 이용해서 새나가는 돈을 막고 그것으로 요리 재료를 좋은 것으로 사서 내 손으로 밥 지어먹는 것도 일종의 경제적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을 계산기 두드려보니 답이 좀 나오는 것인가. 요즘은 시어머니도 아들에게 '너 혼자 일하는 거 정상 아니다. 얼마나 힘드니 그래' 이런 류의 딕션을 줄이신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제발 우리 서로 나쁜 사람 만들지 않도록 정상적으로 좀 지내볼 수 없을까요.



뇌는 춤추고 노래하고 운동하는 삶을 원한다.


오늘은 날도 시원해서 그냥 집에서 둘이서 놀았다.  아이는 레고, 슬라임, dance monkey 지수의 꽃 틀어놓고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다. 정원에 나가서 봉봉 좀 뒤고 개미와 도롱뇽 관찰 좀 하다가 들어와서 아이 시 짓고 그림 그리는 거 보면서 그렇게 보냈다. 수학도 좀 시키고 책도 읽고 감상평도 나누고 한글 공부도 시키고 해야 할 건 많은데 일단 방학도 길고 나이도 아직 어리니까 그냥 좀 하루 이렇게 보낸다.


국제청심중학교 준비하던 초3 남자아이와 보약 보온통과 생과일을 준비해 와서 그 자리에서 깎아서 쉬는 시간마다 아이를 챙겨 먹이던 엄마가 갑자기 생각남을 필두로 타조알 공예로 만든 번쩍번쩍거리는 시계 선물부터 오만가지 자녀서포트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난 아이에게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프랑스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학교에서 너무 똑똑하거나 너무 눈에 띄지 않도록 그냥 두는 편이다. 2학년 초반에 담임이 아이가 너무 똑똑하고 영민하다고 수업중에도 칭찬을 좀 많이 했다. 하지만 학기초에 비해 산수만 봐도 실력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초반에는 세자리 빼기도 집에서 공부 시켜서

보냈는데 지금은 두자리 빼기도 불가하다. 아이도  짝이었던 레아의 불타는 질투심에 치어 선생님 칭찬을 놓아버렸다. 나도 아이의 노선에 합류했다.  


파리외곽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초등학교 예비 3학년 아직 빼기도 잘 안되고 곱하기는 요원하기만 한 거기 아이들에 비해 너무 튀지 않게, 단지 건강하게 그렇게 이 시간이 잘 지나가기만을 바란다.라고 내 기억을 조작하고 있지만.. 사립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별한 구석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참... 보낼 데가 너무 없구나.

공립이든 사립이든 학교에 가서 이상한 것만 계속 배워서 오지는 않으면 정말 좋겠다..




6. 8일차 (D-52)


Life is full of interruptions and complications.


2024년 7월 13일 토요일


나는 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를 일컫는 자시에 잠을 자기도 했다. 아이가 자고 나서 이것저것 좀 하다 보면 보통 축시에 침대에 몸을 누이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새벽 2시를 훨씬 넘겼다. 브런치 스토리 이 플랫폼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또 강한 대댓글 하나를 받았고 머릿속에 또 계속 맴돌며 나의 정신을 꽉 잡고 있었다.


Jun 28. 2024 (나)

책임감이 엄청난 분이시네요.

아, 글 잘 읽었습니다. 살면서 반드시 우리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참 좋으신 분이고 리스트대로 열심히 하시고 미래 가정을 일구실 상황까지 그들의 편안함까지 생각하고 틈틈이 푸셥에 자기 관리까지.. 정말 멋지세요, 하지만 혹시 1,2번이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죽음의 순간에 우리는 가진 걸 다 내려놓아야 하는데.. 물론 글에 이의를 다는 건 아니군요, 오해 없으시길 ^^

Jun 29. 2024 (작가)

제 글을 보시다 보면 알게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자기 관리와는 전혀 관련 없이 운동을 합니다. 1,2번의 상황이 와도 괜찮다는 것은... 차마 표현조차.. 하고 싶지 않은 주제입니다. 차차 제 세계를 이해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Jun 29. 2024 (나)

그렇죠.. 그 옵션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고, 열심히 하시니까 목표하신바 이루기를 바래요. 그래도 혹 너무 자신을 몰아가시는가 해서 오지랖을.. 네.. 글을 조금 더 읽어보면 작가님의 세계를 더 알게 될 것 같네요. 아직 엄청 젊으시니까,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시면 닿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화이팅

Jun 29. 2024 (작가)

감사합니다^^


이렇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또 독자 한 분이 댓글을 한 2주 지난 글에 달았고 나를 호출해서 갔었던 거다.


Jul 12. 2024 (독자)

댓글 무서운 게. 본인 글도 아닌데 사견을 쉽게 타인 독자에게 전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해 보여요. 동의하지 않으시면. 논리를 경험에 비춰 구체화하거나. 사견으로 개인 일기에 남기심이.

Jul 12. 2024  (나)

안녕하세요, 제가 이 댓글을 남길 때도 당연히 글을 꼼꼼히 읽었는데 지금 방금 두 번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오독을 한 부분이 있고 연속하여 댓글에 큰 문제가 있었나 해서요. 제가 1,2번 상황이 와도 괜찮다고 한 건 당연히, 그런 상황이 오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는데 그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1,2번의 상황이 올 수도 있고 물론 이 경우에도 노력하여 3번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지만 혹시라도 상황이 안 좋더라도 자책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입장에서 달았었네요. 제목에서 작가님이 ‘나도 두려운 것이 있다’고 하면 독자로서 ‘너무 두려워마세요 잘 될 거예요. 혹시 넘어지더라도 일어나면 돼요’라고 얘기해 줄 수 있지 않나요? 그리고 작가님께서 또 대댓으로 의중을 설명하셨는데… 독자님은 어느 지점에서 불편하셔서 이런 댓글을 다셨을지 제가 조금 이해가 안 되네요.. 독자님도 작가님이 말한 것처럼, 제가 작가님 글을 모두 읽어보지 못해 그 세계를 모를 수 있다고 이해해 주심 좋겠네요

그리고 무슨 댓글을 제 일기장에다 적나요.. 이 부분은 좀 동의하기 힘드네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하면서 쌍방의 생각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고 또 그래야 되는 거 아닐까요? 제가 언더독 작가님 글에 댓글 안 달았다면 제일 좋았겠네요 그런 논리면요. 아니면 ‘맞아요, 무조건 좋아요’류의 찬양성 댓글 이외에는 불가하단 말씀이실까요?
저는 일단 독자님께서 제게 달아주신 이 댓글도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저에겐 인상적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제 말을 다시 읽어봐도 문제가 보이지 않는 제 관점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고요.
Jul 13. 2024 (독자)
제대로 이해하신 거 같아 다행이네요. 댓글을 안 달았으면 좋았겠다에 동의합니다. 댓글이 너무 길고 장황해서 요점이 없어 보이는데. 다른 독자분들이 판단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은근 어머님 독자들이 많으시네요. 청소년을 위한 브런치라 생각했는데.

Jul 13. 2024  (나)

일단 브런치북에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적혀 있으니까 그것을 한번 보시는 저도 예상독자임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브런치북이 청소년을 위한 것이라면 어머니독자로서 더욱더 글의 내용에 집중하며 읽을 수밖에 없죠

그리고 불에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부를 축적하고 소유하는 일에 인생을 걸고 달려가면 내 불에 내가 타 죽는 불나방이 될 수도 있는 위험성도 있다고 누군가는 말해주어야 균형 잡힌 시선을 청소년이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님이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은 멋지고 젊은이로서 충분히 해볼 만하죠 제가 거기에 대해서 딴지를 건 것이면 댓글을 안 달았으면 좋았겠다는 연아독자님의 말씀에 동의하지만 제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균형을 좀 맞추기 위한 행위, 이것 또한 독자의 역할 혹은 권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탁탁탁탁, 이 계단 소리는 뭐지. 벌써 아침이 온 거니

근데 나 왜 이렇게 피곤한 거니. 몇 시야. 아 7시구나.. 아 근데 오늘 토요일이라 일하러 안 가면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니 어제저녁 설거지를 그냥 두고 잤다. 제이도 피곤해서 열 시쯤 자러 갔다. 그렇게 축시까지 나는 하루종일 읽지 못한 글 좀 읽고 라이킷도 좀 누르고 댓글도 좀 달고 일기도 좀 쓰다 잤다.


제이가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린다. 토요일 7시에 일어나자마자 굳이 설거지부터 해야 하는 이유가 뭐니.

하기사 오븐이 예열되는 동안 설거지 한 수 크와쌍 넣는 것이 타이밍으로 딱 좋지 아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나 조금만 더 자고 싶다. 진심. 아이도 곧 일어날텐에.. 뒤척뒤척거리다가 제이가 샤워하러 욕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닫히고 물소리가 쏴아아아 아. 이제야 평온하다 잠이 다시 들었다, 싶었는데 아이가 일어나서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다다다다다다다. 음.. 8시인가. 그래.. 내려가마. 시계를 본다. 9시? 뭐야 그럼 두 시간이 지난 거야? 나, 그 사이 뒤척이기만 하고 다시 잠든 것 같지 않은데.. 레알?  아..


아이는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금방 태어난 산들바람처럼 푸르고 맑다.

그 작은 꽃 봉오리 같은 입에서 노래가 쏟아지고 있다. 온 집안에 아이의 신선함으로 꽉 찬다. 부엌에는 제이가 옷을 갖춰 입고 멀쩡하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푸른 눈에 어울리는 마린 블루 와이셔츠를 걸치고 있다.  


-어디 가?

너무 클래식해 보이고, 멀쩡해 보이고, 인물이 훤해보인다. 낯선 남자 같다.


-Marie 메리

구청에 간다고 했잖아 어제. 의 어감이다.


-너도 같이 가나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

-뭐야. 어제 그냥 한말이 아닌 거야?

꽤 진지하네 웬일로. 의 어감으로 의중을 전달한다. 어제 시청을 간다고 하더니 그것 때문에 일찍 자서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오늘 정말 멀쩡하구나. 너. 남자로 보이네 갑자기.


속도방지턱이 제거된 일방통행로의 오른쪽에 있던 stationnement이 왼쪽으로 바뀌어져 있는데 이 위치를 우리 집 쪽으로 다시 원상복귀 시켜달라는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하는 그에게, 집 계단과 도로 사이의 안전 공간 확보 그리고 그 앞 보행자 횡단보도까지 세 개의 요구를 한 세트로 해달라 하라고 했다.


Je ne suis pas devil. 나 바보 아니야.


제이가 돌아왔다.

구청에 갔으나 구청의 프로젝트가 아니고 시도의 차원에서 몇몇 구간의 과속방지턱을 제거한 것이기 때문에 이곳으로 연락해 보라는 쪽지를 주더라며 전화번호 3개를 보여준다. 많이 실망한 듯한데, 아이와 수영장 간 그날 도로 상황을 보고 나도 많이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수영하며 놀면서 잊었듯이 오늘 너도 시간이 지나면서 제발 잊도록 하자. 어차피 주말에는 연락해도 전화받을 사람도 없고. 그러니 제발 오늘내일 스트레스받는다고 술로 꾹꾹 누르지 말자 좀. 마음이 힘든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술에 쩔지 않는 주말, 인간다운 주말'.. 좀 부탁할게.. 제발.



Quiche aux épinards et au saumon

키쉬 오 제피나흐 에 오 쏘몽


아이가 공원놀이터에 놀러 간 사이 저녁으로 시금치 연어 키쉬를 준비를 하면서도 어제 읽은 글과 그의 추종자인듯하지만 오히려 pusher에 가까운 독자의 댓글이 계속 떠오른다. 이 브런치가 십 대의 사상교육적 플랫폼으로 사용된 어질 수 있단 염려와 함께 작가의 사상이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의 위험성에 대한 부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수많은 댓글 중 두어 분도 이미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 파급효과에 대해서. 오늘은 일찍 자고 싶다. 이제 새벽 두 시 취침 7시 기상이 버거운 나이인가, 그런 체력인가. 운동을 하면 오십 대에 지금보다 더 활력 넘치는 삶이 가능할까.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다. 이제 반 살았는데.. 이것도 내 생각일 뿐이고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그날은 아무도 모르는 법.



불꽃놀이


내일이 혁명기념일 fête nationale이기에 오늘 밤 자정 전후로 feu artifice 불꽃놀이를 전국적으로 한다.

우리 집에서는 이층의 안방의 큰 창문을 열면 지대가 높아서 저 앞쪽으로 여러 동네들이 보이는데 가장 가깝고 크게 보인 것 호수 쪽이다. 여기서 밤 11시에 시작해서 20분 동안 큰 불꽃놀이가 이어지는 것을 필두로 자정까지 이곳저곳에서  작은 불꽃놀이까지 해서 여섯 군데 것이 다 보였다. 쥬멜, 쌍안경 두 개 사 둔 것을 처음으로 유용하게 쓴 날이다. 너무 늦어서 가지는 않았지만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잘 봤다.


아이가 인천-cdg 왔다 갔다 하면서 이 시간에 깨어있었던 적 빼고 아이가 밤 열한 시 이후까지 깨어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너무 좋아서 즉흥댄스도추도 아주 힘이 남아돈다. 엄마 기다리는 거 힘들지 않게 마사지해 줄게.  완팔 조물 조물 오른팔 조물조물 너무 시원하다 했더니 다시 왼팔.  균형을 맞춰야 되니 오른 팔도 다시 해준단다. 콩만한 계집애가  미니미한 손이 어쩜 저리 야무진지.


나 어릴 적, 일하고 온 아빠 뒷목 어깨 팔뚝 주물러주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옷이 두꺼우면 마사지가 힘들다고 러닝만 입어야 한다고 말하고 아빠가 준비 완료되면 정말 온 정성을 다해서 주무르고 두드렸다. 또 등허리에 올라가서 꾹꾹 밟아주었다. 회색과 하늘색이 줄무늬로 있었던 그 러닝을 입고 있던 사십 대 초반이었던 우리 아빠. 아따 시원하다. 우리 딸이 최고다 고맙다 했던 우리 아버지. 오늘 우리 딸에게 그 마사지를 돌려받게 될 줄이야. 고마워 공주야..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 오전에는 과속방지턱 제거 후 stationnement 변경 여파로 제이가 완전 저기압이었고 공원에 갔다 와서는 술기운이 약간 있어서 예민했었지만, 아이가 내게 추천해 준 '명상하며 쉼'의 시간을 통해 그 시간대를 아이와 함께 이층에서 편히 지나갈 수 있었다. 일층에 있던 제이도 점심을 먹고 두 시간 정도가 지나니 술이 깨어서 감사하게도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고 아이와 공원도 다녀왔다. 그 사이 나는 키쉬와 샐러드를 준비해서 저녁을 잘 챙겨 먹었고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을 앞두고 터트리는 불꽃을 6군데 동시관람하며 평화로운 마무리로 하루가 마감되었다.




7. 9일차 (D-51)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그렇게 될 것이니.


2024년 7월 14일 일요일


오늘도 새벽 두 시가 다되어 잠이 들었는데 7시 10분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제이도 쓰레기수거차도 아이도 아니다. 이제 누구 탓으로 잠이 깼다고 할 수가 없다. 어떤 소음 하나 없고 방온도도 21도 60퍼센트로 딱 좋았다. 그냥 그렇게 계속 그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있었고 이제는 그런 상황이 아닌 데도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자동화시스템이 내 안에 자기 잡은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이런 경우가 참 많구나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한다. 조금 더 자자. 그런데 갑자기 어제 그 댓글 호출받았던 글이 생각난다. 그 독자가 또 나에게 태클을 걸어두었을까. 그 글로 찾아가 본다. 글이 없다. 발행취소를 한 듯하다.


오늘자로 올라온 글을 읽어보니 독자들끼리 싸우는 것이 싫다고 적혀져 있다. 일단은 이 작가님이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일할 때 그 아이들과 출생년도가 같아서 글을 읽고 댓글을 적었던 것이고 그 댓글이 독자분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은데.. 여전히 나는 그 작가님이 너무 자신을 몰아가며 돈을 많이 못 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혹은 그 이상의 문장까지 적어놓은 것이 걱정된다. 퇴직 후 계획이 서지 않은 자신의 부모를 대신해서 동생과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정말 뭘 어쩌겠다는 건지.. 진인사대천명이라고 그냥 지금처럼 열심히 사시고 결과는 그냥 하늘이 알아서 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자신을 몰아가는지 쉬지도 않고 저렇게 달리면 안돼는데.. 걱정이 된다. 여튼 이러느라 더 피곤이 쌓이는구나. 그 사람이 너보다 어쩌면 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누가 누구를 걱정하고 있는건지.


오늘도 어제처럼 그저께처럼 한 달 전처럼 일 년 전처럼 십 년 전처럼.. 반은 깨어있고 반은 자고 있는 반인반수의 상태로 겨우 일어난다.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특히 뒷 목과 어깨 날갯죽지가 뻐근하다. 이 승모근 친구들 별명이 스트레스 근육이라는데 이 나라에 와서 거의 달고 사는 아이들이다. 음..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일할 때도 있었지만 마사지를 받으러 가면 데콜테 마사지를 받으면서 이 상부승모근과 중부승모근 근육 뭉침도 좀 풀렸었다. 그런데 여기와 서는 마사지는 무슨.. 혼자서 할 수 있는 심호흡과 스트레칭도 제대로 안 하고 있다.


매슬로우 인간 욕구 5단계 중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 그 사이에서 뱅뱅 돌기만 하다 보니 정신적 욕구와 자아충족욕구까지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데콜테, 더 나아가 전신 마사지에서 중요한 것은 그분들이 할 일을 1차적으로 마치고 그 방을 나갈 때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클래식음악을 아주 약하게 틀어놓고 아로마 테라피가 되고 공기청정기가 어디 사방에서 나오는지 숨도 너무 잘 쉬어지고 조도를 최대한 낮추고 햇빛에 말린 듯 뽀송한 전신 타월을 나에게 덮어지고 뒷목에 낮은 베개를 받쳐주고 문을 닫고 있던 그때.. 나는 정신적 욕구 중에서 자기 존중 욕구가 일정 부분 충족되었다. 단순하게 보일 수 있지만 상위 2단계로 바로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일단 이 동네에는 저런 마사지샵은 절대 없고, 파리 나가도 그 정도 시설에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으려면 얼마를 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온몸이 천근만근일 때 일단 심호흡과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얘기를 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안 하면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 루저스럽지 않은가. 그냥 네 몸 네가 꿈쩍거리는 걸로 이 승모근의 수난 시대를 일단 극복해 나가기로 하자. 좀 일찍 자고 일어나면서 스트레칭하고 부엌으로 가서 따뜻한 물 좀 마시고 정원으로 나가서 심호흡 한 번하면서 맨손체조하고 그렇게 실질적으로 행동을 하자, 입만 나불나불거리지 말고.


겨우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고 덧문을 접었다. 그리고 창문은 다시 닫지 않고 활짝 열어 둔다. 벌써 10시가 다 되어 간다. 7시부터 반은 깨어있지만 일어나지 못하는 그런 상태로 있으니 더 피곤하고 뒷목만 잡고 있는 나약한 인간의 결정판을 보는 듯하지만... 어떻게 날씨가 이렇지! 하면서 일단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으로 시선을 틀어본다.


구름 한 점 없는 여린 하늘색에 온 세상이 현재 온도 19도라는 쾌청한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너네들 너무 귀여운 거 아니니.. 새들은 도무지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얘들아 장난 아니구나 웬일이니.. 정말 파리와 파리외곽의 7월. 너무 완벽한 거 아니니.


지난 10년은 그냥 제이의 기분 날씨표에 따라 내 기분이 좌지우지되었다면 이제는 내 날씨는 내가 만들며 살아가야겠다. 하늘 아래 구름이 먹구름뿐이랴. 아.. 이런 날엔 하늘을 좀 날아줘야 하는데... 날개가 없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14 juillet Le Défilé

꺄또즈 쥬이예 르 데필레

군사퍼레이드  생방송


10시.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티비를 보고 있다.

땅에서는 군사 퍼레이드, 하늘에서는 공군의 블루 블랑 후쥬 쑈가 벌어지고 있다. 이사오기 전에는 창문을 열고 전투기와 헬리콥터의 비행쑈를 눈앞에서 직접 봤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안 보인다. 쑈가 끝난 건지 여기서는 안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마음이 편안한 7월 14일이 시작되어 감사하다. 제이가 준비해 놓은 아침을 먹으면서 편안히 티비를 보고 있으니. 그런데 아이가 크와쌍을 반만 먹고 남긴다. 오늘 너무 잘 구워졌는데 왜 안 먹냐고 하니 엄마랑 아빠가 둘 다 안 내려오니 찬장에 넣어둔 새우깡을 의자를 받치고 올라가서 꺼내서 반을 꺼내먹은 모양이다. 일단 오늘부터는 자정 전에 자고 내일은 아이보다 일찍 일어나거나 적어도 아이 내려가는 소리 날 때는 내려갈 수 있도록 하자.


7월 14일, 오늘은 프랑스혁명기념일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발단이 된 1789년 7월 14일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을 기념하는 날 이기 때문에 혹자는 바스티유 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나저나 마크롱의 표정이 정말 달라졌다. 마크롱은 2024년 현재 46세이다. 프랑스 최고 엘리트 커리어를 밟았고 2017년에 최연소 대통령 타이틀을 거머쥐고 2027년까지 프랑스 최고권력자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Brigitte Macron 브리지트 마크롱


1977년생인 마크롱은 자신보다 24세 연상의 선생이자 친구의 어머니인 1953년생 브리지트를 사랑했다. 16세였다. 당시 브리지트는 40세에 1남 2녀를 둔 유부녀이고 장녀인 로랑스는 마크롱과 같은 반 친구였다. 마크롱은 브리지트의 연극반 수업을 받으면서 브리지트와 같이 희곡을 작성하고 동시에 가까워졌다. 마크롱의 부모는 마크롱이 로랑스를 좋아하는 줄 알았으나 브리지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고 한다. 브리지트와 상담을 한 부모는 브리지트의 권유를 받아들여 마크롱을 파리로 전학시킨다. 하지만 파리로 떠나기 전 마크롱은 브리지트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며 당신과 결혼하겠다."는 말을 던지고 떠났다. 훗날 마크롱의 말대로 브리지트는 2006년 1월에 남편과 이혼하고 이듬해인 2007년 10월에 마크롱과 결혼하게 된 것이다. 결혼할 당시 마크롱은 29세이고 브리지트가 53세였다. 그녀에겐 이미 손자손녀들이 7명이 있었는데 마크롱은 30대 나이에 의붓손자 7명이 생긴 거다. 한편 대통령이 될 남자에게 부인을 뺏겼던 전남편 앙드레 루이는 그녀와 이혼한 후 은둔하며 지내다 2019년 12월, 69세 나이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프랑스의 엘리트교육


39세에 대통령이 된 마크롱. 재작년까지는 뭔가 붕 떠있는 것 같고 그의 말과 행동에서 진정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2022년 44세의 나이에 재선이 된 후로는 좀 더 딴딴해지고 성숙한 대통령의 표정을 잘 구현해 내는 듯하다. 뭐 제이는 부인이 연극부 담당 선생님이었으니 전문가적인 손길일 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30대의 대통령 역할과 40대의 대통령 역할이 완성도에서 봤을 때 물이 오른 것 같다. 군사퍼레이드를 하는 군인들에게 경례를 하는 모양새도 해가 갈수록 그럴싸해진다. 옆에서 우유를 마시고 있는 아이에게 한마디 한다.


-너도 군인 할래?


프랑스군의 사관학교는 전부 특수대학 '그랑제꼴'의 일부로 간주된다. 그래서 바칼로레아를 통과하고도 2년 동안 프레빠 준비반 과정을 거친 후 입학할 수 있다. 프랑스에는 약 250여 개교가 그랑제콜 기관으로 공식 인증되어 있지만 그랑제콜 학교들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하며 이 중에서도 유력한 동문과 오랜 역사를 가진 학교들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랑제콜'로 인식된다. 이 학교들의 정원은 모두 합쳐도 몇 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프랑스에는 총 6개의 '군사고등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에서 사관학교 입학생들을 많이 배출한다. 학생지도를 위관급 장교가 담당하고 기초 제식훈련까지 미리 가르쳐주는데, 장교의 길도 걸을 수 있고 기숙사비도 싸서 인기가 많은 학교라고 한다.


프랑스군 사관학교는 총 3년 과정인데, 육군의 경우 2년간의 일반학 과정과 1년간의 군사학 과정을 통해 소위로 임관하고, 해군은 1, 2학년 땐 연안 함정 실습을 하고 3학년 때는 해외 순항훈련을 실시한다고 한다.


현재 한국은 2000년부터 프랑스 육군사관학교에, 2006년부터 해군사관학교에 사관생도를 주기적으로 파견하고 있는데 한국 생도들의 성실성은 타국 위탁생도들과 비교해도 우수한 편이라고 프랑스군 측에서도 호평한다고 한다.


-아니, 군인은 남자아이들이 하는 거야. 나는 그냥 댄서가 될 거야.

-저기 티비 봐봐. 여자 군인들도 많아.

-아니, 남자는 군인 여자는 댄서.



물론 케바케이기는 하지만


아이가 여기 파리외곽 이 동네 학교에서 아랍애들한테 제대로 영향을 받은 것일까.


물론 이 문장은 아랍인을 비하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일드프랑스의 아랍인 중에서도 시리아 쪽은 좀 강성이고 튀니지 쪽은 그렇게 강경하지는 않다. 그리고 또 케바케이기 때문에 부모들의 양육방식이나 종교 활동의 강도에 따라서 아이들은 문화적으로 크게 프랑스 토박이 부모의 아이들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이 네 문장도 나의 경험에 한정된 부분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도 정론화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일 년간 동네 중학교에서 일하면서 어떤 그러한 경향성에 대한 부분은 분명히 목격한 부분이 있기에 이 네 문장을 활자화한 것이다.


물론 이곳 프랑스에 살면서도 이슬람 아랍 문화를 고수하고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만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태어나서 이곳에서 살고 있지만 부모의 고향이 이 프랑스 메트로폴리탄이 아닌 경우에는 몸은 이곳에 있지만 정신은 그들의 부모의 것을 아주 상당 부분 흡수하여 그들의 문화 종교 음식 언어 등 많은 부분이 이중적인 것을 넘어 부모의 것을 잇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또한 아랍국가라해도 종교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일반화시키는 것을 어렵다. 하지만 프랑스에 살지만 엄마아빠의 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것은 숨기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데, 문제는 숨기려고 하는 것이고 이 부분이 안타까운 것이다.


작년 2023년 일이다. 쉬는 시간에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한 남학생과 한 여학생을 두고 모여 있다. 무슨 일이냐 이렇게 무리를 지어 있으면 곤란하다는 교칙을 알려주며 해산하도록 하니 한 아이가 이 커플이 정혼한 사이지만 남학생은 이 여학생 이외에 다른 여학생도 마음에 두고 있다며 일부다처제를 나름 진지하게 내게 간접적으로 설명해 왔다. 당사자였던 두 아이 중에서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 당황해하면서 자리를 뜨고 남학생들도 흩어졌다.


또 학교에서는 얼굴·몸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 눈만 내놓는 니캅, 머리카락과 목을 가리는 히잡, 얼굴만 내놓고 몸을 감싸는 차도르, 머리에 감는 스카프 형식의 샤일라, 두 개의 천으로 된 알아미라, 망토처럼 머리카락과 목, 어깨를 감싸는 키마르 등 모든 종류의 종교 상징물은 허용되지 않는다.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라이시테'의 원칙에 따라 절대 금지이다.


굳이 히잡을 써야 하는 경우에는 학교 교문을 나가서 써야 한다, 학교에 다니고 싶으면. 전체 프랑스인의 거의 10퍼센트가 이슬람 이민자들이다. 프랑스 내에만 500만 명이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그러다 보니 특히 일드프랑스 중에서 파리 외곽의 경우에는 공립학교의 거의 반 이상이 이슬람인 경우도 많다.


이에 지금 딸내미가 학교에서 축구하고 있는 남자애들에게 '여자는 안 끼워줘'라는 이 말을 듣고 노발대발할 것은 안된다. 여름이 되면 엄격한 종교규율을 따라는 여학생들은 웬만해선 살을 다 드러내는 옷을 입지 않는다. 물론 종교와 상관없이 성격상 노출을 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히잡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분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 나고 자라고 있지만 그들의 정신은 그들 부모의 고유한 문화를 이어가고 있고 바캉스에는 또 그곳에 가서 방학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이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종교와 문화 언어 그 어느 것 하나 단정할 수 없는 속사정들이 다 있다.


여튼 아랍문화에 영향을 받든 유럽문화에 영향을 받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안팎으로 건강하도록 부모로서 힘쓰면 두 문화 모두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을 취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믿고 편견과 맞서 싸워 숭리하길 바랄뿐이다.



엄마 같이 가자.


제이가 아이에게 놀이터가 있는 공원에 가자고 했고 아이는 엄마가 안 가면 절대 안 간다고 한다. 점심시간이 너무 임박해서 밥 먹고 가자고 하려다가 춥지도 덥지도 않고 날씨가 너무 좋아서 오케이를 한다. 밥통에 쌀을 넣고 12시 30분 예약취사를 눌러 놓는다. 와서 미역국 남은 것을 데우고 생선구이를 해 먹으면 될 것 같아서, 그래 모두 같이 가자, 했더니 너무 행복해한다. 아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눈 뜨자마자 내려와 문 앞에 준비해 둔 모래 파는 큰 삽과 작은 삽 그리고 불가사리 모양의 모래틀과 양동이 등을 챙겨서 셋은 11시경 집을 나섰다.



아이는 오늘도 땅을 파고 있다.


처음엔 작은 삽으로 내가 앉아 있는 벤치 앞에서 사부작 거리며 놀다가, 월요일에 와서 손으로 땅을 파둔 저기 큰 돌덩어리 앞에 자리를 잡고 제법 깊게 땅을 파고 있다. 그 사이 아이들이 제법 넓게 확장해 둔 것 같다.

아이는 모래를 채워 놓은 놀이터에 가면 바닥까지 땅을 파는 것을 좋아한다. 대부분은 50센티미터만 파면 모래틀 바닥이 모이는데 여기는 60센티미터 이상 팠는데도 전혀 바닥을 보일 기미가 없다.


여전히 고운 모래가 파고 또 파도 가득하다. 여기는 원래부터 이렇게 모래로 되어있었나 생각해 봤을 때 이어져있는 공원은 거진 모래와 자갈이 깔려있기 때문에 바닷가의 모래처럼 곱지만 습기는 적당하게 있는 이 모래가 자연발생적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아주 깊이 아마 1미터 아니 그보다 더 두껍게 모래를 넣어둔 것 같다. 이것은 다음에 이자벨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그녀의 집이 백 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있고 스물두 살의 막내를 여기서 가졌으니 현재 23년을 여기 살고 있고 막내딸도 이곳에서 놀았을 것이니 이 놀이터의 역사를 꿰뚫고 있으리라.



모래로 쌓은 작은 집


간간이 비가 와서 그런지 모래가 파면 팔수록 촉촉한 것이 사방 일 미터 이상에 깊이 육칠십 센티미터 해서 내부 벽도 만들고 그 안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두 개를 만들고 미끄럼틀도 만들어 모양새가 제법 그럴싸하다. 출입구도 만들고 완성도가 제법 높은 작업이 막바지에 다달았다. 이 마무리 단계에서는 도구들은 꺄반 cabane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손바닥으로 미장을 하고 있다. 갑자기 건축가가 되어야겠다고 한다. 그래, 조각가가 될 수도 있겠다,라고 맞받아쳐주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다는 것을 경험해 본 오늘 이 아침은 축복이고 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2024년 7월 15일 월요일


방학식이 딱히 있었던 건 아니지만 7월 5일 금요일부터 두 달간의 방학이 시작되었고 오늘이 열흘째다. 이번 바캉스는 가장 긴 '8주 여름방학'이라서 한 주를 트랙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봤을 때 이제 혹은 벌써 한 바퀴를 돈 셈이다. 그리고 오늘 트랙 두 바퀴째 돌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일단 이번 이번 방학은 한국을 가지 않고 스포츠활동도 딱히 신청하지 않았다. 활동이 있는 스타드까지 왔다 갔다 시간이 한 시간인데, 종일반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는 두 시간도 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그 시간에 아이와 수영장에서 수영하면서 나도 겸사겸사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록을 보니 수영 한번, 축구와 배드민턴 각각 한번, 공원과 놀이터에서 자전거 타기, 철봉 구름사다리 타기 등의 신체활동을 간헐적으로 했다. 줄넘기는 축구하느라 공원에 가져갔다가 그냥 가져왔기에 거실에서 한 열 번 넘은 것이 다이다.


이번 2주 차에는 매일 규칙적으로 아이가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신경 좀 써야겠다.


그리고 이제 슬슬 산수와 영어, 피아노 악보 읽기 그리고 다리 찢기 연습도 해야 한다.


아이 댄스 선생님이 예술원을 그만두어서 이 숙제는 안 해도 상관은 없지만, 공원이나 거리를 걷다가도 갑자기 여자아이들이 다리 찢기를 하고 땅 짚고 옆돌기를 하는 것을 보고 아이가 '쟤들은 어떻게 저렇게 잘해'하는 눈빛을 본 이상은 '나도 연습하면 할 수 있다'는 연습의 중요성과 자신감 자존감을 위해서는 다리를 매일 찢는 것도 시켜야 하고..


일단 2주 차에는 리스트를 좀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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