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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외곽 한국여자 Jul 20. 2024

파리외곽. 여름 바캉스. 2주차

1. 10일차 (D-50)


2024년 7월 15일 월요일


아침이다.


크와쌍의 한겹을 입안으로 들여온다. 뜨겁게 우려낸 홍차에 우유를 충분히 부어 한 모금 이어 마시니 순식간에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몸이 따땃하게 하루를 시작할 연료를 가득 품는다.


성화 봉송이 티비 생방송 중이다. 지금 화면에서는 성화가 루이 뷔통 건물 앞에 와있다.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성화 가방으로 원래 명품브랜드를 사용했었나.. 그런데 왜 에르메스가 아니라 루이 뷔통일까.  

요즘 한 그룹의 제품 마케팅은 기업을 넘어 전국가적이다.



올림픽이 열흘 안팎으로 다가왔다.


2024년 7월 26일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위한 성화는 지난 4월 16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점화된 후 벨렘호를 타고 5월 8일에 프랑스 마르세유에 도착했다. 68일간 프랑스령 해외영토를 포함한 총 프랑스 64곳의 지역을 이동하는 일정이다.


프랑스 남부에서 시작해 서쪽, 그리고 프랑스령 해외영토인 기아나, 레위니옹, 프렌치 폴리네시아, 과들루프, 마르티니크를 거친 후 프랑스 본토의 니스로 6월 18일에 다시 들어왔다.


여기서 다시 동부와 북부 순회 후 프랑스 대혁명일이었던 어제 최종 목적지인 파리에 총 68일 중 58일 차에 도착했다. 성화는 파리에서 다시 파리외곽 지역을 돌다가 7월 26일에 생드니에서 파리로 이동한 뒤에 파리 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예정이다.


파리는 한 세기 전 1924년 8회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이력이 있다. 동계 올림픽이 '올림픽 동계 대회'라는 이름으로 승인을 얻어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이 분리된 것이 1924 파리 올림픽이었다. 이전에는 북유럽 국가들이 끈질기게 주장했지만 '고대 올림픽에는 동계 스포츠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되었었다. 올림픽 엠블렘이 처음으로 도입된 것도 저때부터다.


파리는 올림픽 기간 동안 도시 전체가 거대한 경기장이 될 예정이다. 앵발리드는 양궁경기장으로, 트로카데로 광장은 유도와 태권도 경기장으로, 베르사유 궁전은 경마장으로 탈바꿈한 한다고 한다. 평소에도 사람들도 넘쳐나는 곳인데 올림픽 기간에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이와 한번 나가서 발자국 꾹꾹 지신밟기 좀 하고 와야겠다. 제이도 올림픽 하는 날부터 이 주간 방학이니 '특이사항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데리고 가야 할 터이고.


파리 올림픽 개막식이 진행될 7월 26일 금요일 전 주인 7월 18일에서 7월 25일 일주일 동안 지하철 2, 3, 14호선을 제외한 10개의 지하철 일부 역은 폐쇄된다. 그리고 RER C 수도권 고속 전철의 경우에도 Champ de mars - Tour eiffel, Pont de l'alma, Musée d'orsay 샹 드 마 -투흐 에펠, 퐁 드 랄마, 뮤제 도르세 역은 폐쇄된다고 하니 혹 파리 플라쥬를 가거나 뮤제 도르세를 가거나 아니면 관광객들 구경하러 갈 때 미리 계획을 짜서 아이 고생시키지 않아야겠다. 올림픽 기간 동안 일정 구역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Pass Jeux라는 QR 코드를 보여줘야 하고 이 QR코드는 테러위험 등을 대비해 프랑스 경찰청에서 발급하는 것으로 pass-jeux.gouv.fr에서 신청해야 한다고 하니 이것도 챙기도록.



여름 세일 기간


특별한 것이 없는 것은 알지만 '파리사리1편 1화'에서 겨울세일기간이라서 갔었던 까르푸가 있는 쇼핑센터에 아이와 함께 갔다.


십 년을 마음속으로는 수백만번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 쌌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아침에는 멀쩡하다가 피곤에 쩔거나 회사에서 뭔 일이 있는 경우에 들어가는 술은 독주로 변하여 그를 괴물로 변하는 것을 보며 십 년을 살았다. 그렇게 마음이 쪼였다가 풀렸다가 쪼였다가 풀렸다가를 반복당했다. 탄성회복그래프가 쭉 올라가지는 않았다.


어떨 땐 살아보려고, 그릇도 많이 사고 한국책도 사모으기도 했다. 짐이 늘고 무거워지면 아무래도 무거운 추가 되어 나를 이 항구에 더 오래 정박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무게로 나를 꾹 눌렀다.


또 어떨 때는, 이번 여름 세일이 그렇다, 최대한 가벼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특별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 것들을 사모으지는 않았다.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이제 그릇이고 책이고 뭣이든 간에 안 산다. 그냥 밥 할 때 필요한 재료만 사다 나를 뿐.


이런 저런 이유로 이번 세일은 그냥 노관심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립밤을 하나 더 사고 싶다고 여기에 있는 드럭스토어가 크니까 거기 가고 싶다 해서 소비의 장으로 가게 되었다.



아이들의 사회생활


아이는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앙쥬를 뽑는다.

저번에는 네일라였지만 바뀌었다. 네일라는 학교를 오지 않는 경우도 많고 처음에는 디즈니랜드에 놀러 간다고 결석한다고 이유를 댔지만 이후에는 출석을 하지 않은 이유는 모호하다. 담임선생님이 일일이 그것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지 않으니 알 노릇이 없다. 그러던 와중에 앙쥬가 이사를 왔다. 발랄하고 귀여운 이 흑인소녀는 네일라의 빈자리에 스르륵 들어왔고 그렇게 순식간에 딸아이의 절친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반짝이 립밤과 핑크색 립밤. 이렇게 립밤 두 개를 사고 싶다고 한다. 이미 내 것 두 개를 가지고 갔고 네일라에게 받은 스티치 립밤도 있고 학교 선생님에게 칭찬 선물로 받은 세포라립밤도 있는데 왜 또 필요한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앙쥬는 립밤을 여섯 개를 가지고 오는데 자신은 네 개뿐이라 립밤 콘테스트를 할 때 좀 그렇다고 한다.



에르메스


2014년 봄,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3개월 후인 여름에 프랑스에 들어왔다.


파리 체류는 2010년에 이미 한번 했었다. 한국에서는 일만 했었기 때문에 여기 체류하는 동안에는 어학원도 다니고 여행도 하고 그렇게 지낼 여력이 되었었지만  명품 구매 대행 알바를 해서 여행경비에 보태 썼다.


2013년에 왔을 때는 세계속기사 파리인터스테노 통역알바를 했는데 1300유로였던가 이제는 잘 기억도 안 나지만 천은 넘었던 것 같다. 단 하루였지만 통역비가 좀 쎄게 책정되었었다. 단독으로 스탠드를 운영해야 했기에 몇 주에 거쳐 담당자와 연락을 주고받고 택배로 부스 방문자 선물까지 받아서 전체 일정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명품 구매 대행 알바가 2010년대 저 때만 해도 샤넬이나 루이 뷔똥 등이 주류였는데, 5-6년 전부터는 에르메스로 갈아탔다. 샤넬이나 루이 뷔똥보다 두 배 정도 받았다. 오전에 나가서 한두 시간만 하면 가방 하나에 평균 200유로를 받을 수 있었고 혹시라도 두 개를 사는 날도 있었기에 일반통역알바를 6시간 정도 해서 200에서 250유로 정도 받는 것보다 금액적으로는 훨씬 나았다. 하지만 경력을 위해선 후자가 좋지만 불규칙적이긴 마찬가지였다.

남의 돈 벌기 결코 쉽지 않다.


혹 버킨백을 사는 날에는 저기에 동그라미를 하나 더 써넣을 수 있지만 성공한 적이 없다. 버킨을 사려면 스카프나 신발 옷가지 등의 사소한 것을 최대한 많이 사면서 자연스럽게 1500만 원 정도는 기본값인 버킨백을 충분히 메고 다닐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냥 가방만 사는 구매 대행 알바로서는 건지기 어려운 빽이다.


저들은 가방을 많이 풀지 않는다. 많이 팔아서 매상을 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돈이 있어도 사기 힘들다는 에르메스의 희소성을 유지하면서 고급 고객층을 유치하여 브랜드의 고급성을 지속하는 것이 그들에겐 중요하다. 가장 많이 산 것은 칠백 정도하는 가든파티 그리고 사백 정도로 가격이 착해서 입문용으로 많이 멘다는 피코땅이다. 피코땅은 한 번에 두 개도 어렵지 않게 구매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예약이 어려워지기 시작하고 또 개인적으로도 통역알바를 시작하려고 달프시험을 쳐서 자격증하나 갖추고 알바 방향을 바꾸면서 굳이 한 두 달에 한번 에르메스 매장을 들락날락거릴 필요가 없어졌다. 중국남자가 알바 총책이었고, 그 옆에 고객 실시간 관리하는 중국 여자와 중국 남자 한분 이렇게 셋이 팀으로 있었다.


총책은 정말 유능하고 커뮤니케이션에 아주 능통했다 그 밑에 남자분도 제일 첨에 내가 에르메스 본점 위치 헷갈려하니까 직접 앞에까지 데려다주고 나중에 지하철도 헷갈려하니까 거기까지 데려다주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간에 휴머니즘을 장착하고 있는 이들에게선 아름다운 향기가 났다. 물론 명품시장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거대화해지는가에 대한 고찰은 할많하않.


이후로 대한민국의 수요도 늘어나면서 한국인 알바 관리인도 한 명 있었지만 2019년과 2020년 거의 한두 달에 한 번씩 매장을 들락날락하던 집중적이었던 해가 지나고 2021년 2022년은 뜨문뜨문 가뭄에 콩 나듯이 명품 구매 대행 알바를 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예약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면서 어떤 날은 아무것도 사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총책은 너무 미안하다면서 점심과 차비를 하라면서 50유로를 쥐어 주었다.


아래 리스트는 2020년 어느 날 고객들이 원했던 가방들이다. 이 리스트는 매번 구매자의 요청에 따라 그날그날 달라지고 가방별 수고비는 거의 고정이  되어 있었다. 버킨이 기본 천삼백유로를 깔고 시작했으니 제일 쎄게 책정되어 있었고 그다음이 켈리 순이었다.


BIRKIN
사이즈 25, 30, 35, 40
색깔, 가죽, 버클 다 괜찮습니다.
(TOGO & EPSOM가죽이 제일 좋아요!)
사이즈 35&40 은 클래식 색깔만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Kelly
사이즈 25, 28, 32
색깔, 가죽, 버클 다 괜찮습니다.
(TOGO & EPSOM 가죽이 제일 좋아요!)
사이즈 32는 클래식 색깔만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Kelly Pochette
색깔, 가죽, 버클 다 괜찮습니다.
(TOGO & EPSOM가죽이 제일 좋아요!)

Mini Kelly
색깔, 가죽, 버클 다 괜찮습니다.
(TOGO & EPSOM가죽이 제일 좋아요!)

Kelly Danse
색깔, 가죽, 버클 다 괜찮습니다.

Kelly Depeche
색깔, 가죽, 버클 다 괜찮습니다.

Roulis 사이즈 Mini
Roulis는 사이즈 MINI 만 구매가능해요!
오렌지색, 파란색 빼고 나머지 색깔은 괜찮습니다!

24/24 (가방 이름이 이십사/이십사) 사이즈 29
24/24는 사이즈 29 만 구매하실 수 있어요!
색깔: 검정, 에투프, 골드,
그리고 다른 색들은 상황 봐서 구매합니다!

Lindy 사이즈 MINI & 26 & 30
Lindy는 사이즈 미니사이즈, 26과 30 만 구매합니다!
색깔은 에투프와 골드만 구매가능합니다!

Herbag 사이즈 31
Herbag는 사이즈 31 만 구매합니다!
색깔은 대부분 상관없습니다!

Constance
사이즈 Mini & 24
주황 색깔만 빼고, 가죽, 버클 다 괜찮습니다.
(TOGO & EPSOM 가죽이 제일 좋아요!)

Picotin 사이즈 18 & 22
Picotin는 사이즈 18과 22 만 구매합니다!
색깔은 에투프와 골드, 나머지 색깔은 검정 빼고 다 가능합니다!
최대한 환한 색깔이면 제일 좋구요!

Evelyne 사이즈 MINI
Evelyne는 사이즈 MINI 만 구매합니다!
색깔은 클래식 색이 제일 좋구요
다른 색상은 상황에 따라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Bolide 사이즈 MINI
Bolide는 사이즈 MINI 만 구매합니다!
색깔은 클래식 색이 제일 좋구요
다른 색상은 상황에 따라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에르메스 가방 가격이 어떻게 변했는지,

저 빽들의 구매 대행 수고비가 어떻게 변했는지,

저 명품 시장 바닥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할 것이다.

파도 파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돈이 있어도 못 사는 가방이라니.

마케팅도 참 천차만별이다.


여하튼 희한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 살아가는 모양새가 어찌 이리 다양한지.



친애하는 고객님께


고객님의 예약이 확인되었습니다!

2019년 5월 15일 오전 10:30, 포부르 생-토노레 부티크에서 고객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주의사항: 기재하신 성함으로 상담이 진행되오니, 예약 시 사용하신 신분증을 지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Faubourg 매장에 약속이 컨펌되시면 세일즈맨을 만나실 수 있다는 것이지 원하시는 가방을 사 실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친애하는 고객님께


고객님의 예약이 확인되었습니다!

2019년 7월 10일, 포부르 생-토노레 부티크에서 고객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표시된 시간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변경된 시간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hermesfaubourg.com/client/WUVRNV.

주의사항: 기재하신 성함으로 상담이 진행되오니, 예약 시 사용하신 신분증을 지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Faubourg 매장에 약속이 컨펌되시면 세일즈맨을 만나실 수 있다는 것이지 원하시는 가방을 사 실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친애하는 고객님께

고객님의 예약이 확인되었습니다!

2019년 8월 26일 오전 10:30, 포부르 생-토노레 부티크에서 고객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주의사항: 기재하신 성함으로 상담이 진행되오니, 예약 시 사용하신 신분증을 지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Faubourg 매장에 약속이 컨펌되시면 세일즈맨을 만나실 수 있다는 것이지 원하시는 가방을 사실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Tue, Oct 13, 2020


Dear Madam / Dear Sir,

We are pleased to confirm your appointment.

We would be delighted to welcome you on the at the entrance of 24 Faubourg Saint-Honoré.

The given hour might be subject to change.

Please kindly follow up on your appointment status.

As your appointment approaches, we invite you to introduce yourself to one of our receptionists.

Please bring the proof of identity used on our website.



Fri, Oct 23, 2020


Dear Madam / Dear Sir,

In view of the high number of requests for appointments, we are extremely sorry that we were not able to fulfill your request this time. We invite you to repeat your request at another date.

We remain at your disposal in our store at 24 Faubourg Saint-Honoré for any further information.

You can also go directly to one of our two other Parisian stores* to get a Leather Goods appointment subject to availability.             

Hermès George V – 42 av. George V, Paris 8ème

Hermès Sèvres – 17 rue de Sèvres, Paris 6ème

Hermès Saint-Germain (temporary) – 161 boulevard Saint Germain, Paris 6ème





위의 그림에 보이는 저 에르메스 본점에 주로 갔다.

주로 중국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중국 시장은 우리 상상 그 이상이다. 이것이 한국으로 흘러들어 갈지 중국으로 들어갈지 북한으로 갈지는 몰라도 상황에 따라 카드 외에 추가로 현금을 두둑이 들고 매장으로 들어갈 때도 있었다. 오늘 물건, 버킨백이 있을 것 같다면서 혹시라도 모르니 스카프나 로데오 참스 등을 구매하면서 타진해 보라고 할 때다. 일단 구매 과정이 시작되면 가격표를 꺼내서 보여달라는 요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내가 사고 싶은 가방을 하나라도 구입하는 것과 그들이 그 가방을 풀어줄지 아닐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하나만 건지지만 운이 좋을 땐 두 개도 순식간에 살 때도 있었다. 뭐 마실지 물어보면 물 한잔과 오렌지 주스 한잔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괜히 예의차린 다고 괜찮아요 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주문한 음료를 마시고 있으면 셀러가 가방을 가지고 온다. 이런 경우는 거의 10분 안에 이뤄진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2순위 3순위의 가방을 계속 불러야 한다. 처음에는 무조건 호기롭게 버킨백을 부르지만 셀러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걸 바로 가지고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패드 화면을 클릭하고 고심하는 척하면서 죄송하지만 오늘 매장에 입고된 것이 없다고 한다. 초보 셀러들은 자신도 한정된 정보만 가지고 있고 숨겨진 뒷창고의 사정을 진짜 모르는 표정이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그 모델이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화면으로 확인까지 시켜주며 사뭇 진지하게 말하는 순진한 모양새가 안타깝기까지 하다. 고급정보는 접근하지 못하는 모습, 남의 일 같지 않다.


시간만 가고 수고비가 가장 적은 어설픈 가방하나만 사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색이 좀 튀거나 원하는 가죽이 아닌 경우 버클 색이 맞지 않는 경우 혹은 선호사이즈가 아닌 좀 큰 경우이다. 이 모든 소통은 지속적으로 카카오톡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렇게 힘들게 하나를 결정하고 나서 아무 모양도 없는 하얀색 종이가방을 요청한다.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돌아다니다가 날치기라도 당하면 황당한 노릇이 아닐 수 없기에. 그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새하얀 종이가방 큰 것 하나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 결제를 하는 데 그제야 가격을 알게 된다. 하지만 가격 따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간 가격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 때만 해도 버킨백 하나를 살 수 있는 만 오천 유로, 이천만 원까지 이 카드 하나로 결제가 되었기에, 돈 액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물건을 구입하는 경험 한다.



내 아이의 화장품 위시 리스트,

립밤, 매니큐어, 핑크색 립스틱과 팔레트


오늘은 아이가 사고 싶어 하는 화장품 중에서 립밤을 사 줄 생각이다.

아이 립밤의 경우, 내가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좋은 것을 사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리 가격대가 비싸도 약국 내에서는 10유로 내외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옆 가게인 hm에서는 가격이 약국보다 저렴했고 반지 두 개까지 들어가서 예쁜 포장이었지만 덜컥 사주지 않는다.


겉모양만 번지르르해도 그것이 입술을 마르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냥 사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이 대형 약국 안에서도 립밤이 발색과 관련된 부분도 없고 그냥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으므로 굳이 수많은 립밤이 왜 필요한가 하며 아이에게 충동구매적인 모습은 거의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군말 없이,

아니 더욱 적극적으로

'좋은 것' 위주로 고르라고 한다.

벌킨빽은 못 사줘도 립밤은 하나 사줄게.


-한번 보고 가장 예쁜 걸로 이 바구니에 넣어

-어? 사주려고 엄마? 진짜?

-그래 좋은 걸로 하나 골라 담아봐


Baume à Lèvres Lapin 아이는 흰색 토끼 립밤을 바구니에 골라 넣는다. 우리 아이에겐 지금 버킨백보다 이 하얀 토끼 머리가 달린 립밤 하나가 더 소중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게, 혹은 수준에 넘치게, '특정한 어떤 것'에 소비를 아끼지 않는다.

나에게 그것은 무엇이었고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합리적 소비와 비합리적 소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비: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재화나 서비스를 소모하는 일을 가리키는 경제용어

소비의 주체인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효용극대화를 추구한다. 소비자들의 효용극대화는 전적으로 각자의 취향의 문제이고 취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할 말은 별로 없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합리적인 사람이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합리적인 소비란 소비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합리적인 소비를 늘 추구하는 합리적인 소비자(주체)의 모형을 가지고 작업한다.

경제학에서 경제주체는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고 가정한다. 합리적 소비 지출이 중요한 이유는 자원의 희소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가계의 소득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가계의 소비에도 희소성의 원칙이 적용된다. 가계는 효용(만족의 크기)을 가장 크게 하는 선택의 문제에 당면하게 되며 이때 합리적 소비의 문제가 대두된다.

합리적 소비란 가계의 제한된 소득 범위 내에서 한 시점에서 뿐만 아니라 먼 장래까지 생각하여 가계의 만족을 극대화하려는 소비 행위를 뜻한다.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함으로써 얻는 만족과 그에 따르는 기회비용을 고려하는 것은 전형적인 합리적 소비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가계부 기록의 생활화를 통해 주어진 예산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 소비 지출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 역시 합리적 소비 방법의 한 예이다.

반면, 비합리적 소비란 과잉소비, 즉 소비 지출이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것을 말한다. 비합리적 소비의 예로는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많이 소비하는 과소비 외에 타인에게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하는 과시소비, 기업의 광고에 따라 소비하는 의존소비, 다른 사람들의 소비를 추종해서 소비하는 모방소비,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소비하는 충동소비 등이 있다.

경제학에서 회자되는 비합리적 소비의 예로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 백로효과(snob effect), 전시효과(demonstration effect) 등이 있다.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는 가격이 상승하면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하는 개념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베블런이 자신의 저서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Leisure Class)』에서 황금만능주의 사회에서 재산의 많고 적음이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사치를 일삼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대로 이를 모방하려고 열심인 세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백로효과(snob effect)는 1950년 하비 레이번슈타인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다수의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을 꺼리는 구매심리 효과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남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타인의 사용 여부에 따라 구매의도가 감소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전시효과(demonstration efect)는 개인의 소비행동이 사회의 소비 수준의 영향을 받아 타인의 소비행동을 모방하려는 소비성향 또는 후진국이나 저소득자가 각각 선진국이나 고소득자의 소비양식을 모방하여 소비를 증대시키는 성향을 말한다. 여기에는 신문과 라디오 등 매스 미디어를 통한 브랜드 선전에 따른 영향이 크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듀젠베리는 그의 저서 『소득·저축·소비자행동의 이론』(1949)에서 소비가 단지 개인의 소득액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소득계층상의 순위에도 의존한다고 하는 상대소득가설을 수립하였는데, 이 저서에서 그는 전시효과라고 하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는 어떤 재화에 대해 수요가 많아지면 다른 사람들도 그 경향에 따라서 수요를 증가시키는 편승효과로, 다시 말하면 타인의 사용 여부에 따라 구매 의도가 증가하는 현상인데 하비 레이번슈타인이 백로효과와 함께 사용한 용어이다.

원래의 의미는 밴드왜건(대열의 앞에서 행렬을 선도하는 악대차)이 연주하면서 지나가면 사람들이 무엇 때문인지 궁금하여 모여들기 시작하고 몰려가는 사람을 바라본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뒤따르면서 군중들이 더욱더 불어나는 것에 비유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현대의 소비문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대의 소비문화는 단지 개인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을 타인과 구별하는 기호로 이해되기 시작했으며 최근 소비의 트렌드는 착한 소비 혹은 윤리적 소비, 그리고 안티 소비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사회구성원이 함께 살아가는 상생과 동반성장이 중요시되는 현대에 자주 회자되는 단어들이다.

착한 소비는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소비를 말하며, 윤리적 소비는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윤리적인 가치 판단에 따라 의식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생활협동조합이 소비자가 직접 조합원이 되어서 착한 소비와 윤리적 소비를 행하는 단체이다. 이는 생활협동조합이 착한 소비를 실천하고 친환경적인 물품을 공급하며 원료를 구매하는 데 있어서 거래상의 지위를 이용하지 않고 공정한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소비가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고 소비 위축은 불황과 투자 위축 및 실업의 증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소비는 ‘미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소비가 진정한 미덕이 되려면 환경파괴나 자원 고갈을 초래하거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윤리적 소비자주의의 대두가 바로 그것이다. ‘윤리’를 상품 선택의 중요한 고려 요소로 삼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기업들도 점차 이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대기업들이 윤리적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상품과 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때의 윤리는 지구환경에 대한 윤리일 수도 있고, 아동이나 여성인권에 대한 윤리일 수도 있으며, 동물에 대한 윤리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윤리적 소비자들은 친환경적인 기업을 선호하기도 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기업의 상품에 불매운동으로 대응하기도 하며, 동물을 상대로 비윤리적인 실험을 하거나 불필요한 고통을 주며 잔인하게 도살하고 유통하는 기업들에 대해 비난을 가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소비자운동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윤리적 소비자주의이다.

상품을 구입할 때 단지 그 상품 하나의 가격이나 품질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장바구니 안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함으로써 생태계나 생산자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 윤리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는 윤리적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윤리적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윤리적 제품의 가격 프리미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9년 한겨레경제연구소와 아이쿱 생협은 아이쿱 생협 이용자 가운데 윤리적 소비를 염두에 두고 소비한다는 사람들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윤리적 소비자 중 월평균 소득이 300만 원 이상인 비율은 약 81% 수준이었고, 그 가운데 월평균 소득이 300만 원에서 400만 원인 소비자가 35.9%로 가장 많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전 국민 중 월평균 소득이 300만 원 이상인 비율은 약 50%로 그중 월평균 소득이 300만 원에서 400만 원인 비율이 19.7%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윤리적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비율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제품의 윤리적 측면에 관심을 가지는 새로운 소비자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기업들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공정무역연합이 공정무역 축구공을 수입·판매 중에 있다. 이 같은 윤리적 소비의 개념은 간략히 말해 소비 행위가 다른 사람, 사회, 환경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고려하여 소비하는 것을 뜻한다.

구매운동(사람·동물·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은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것), 불매운동(사람·동물·환경에 해로운 제품을 구매하지 않거나 단합하여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 녹색소비(자신의 소비행동 결과가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행동), 로컬소비(지역의 제품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소비운동), 공정무역(생산자에게 ‘가장 싼값’이 아닌 ‘공정한 값’을 지불한다는 것), 공동체 화폐 운동(우리 전통의 두레·품앗이·계와 같이 서로 돕고 보살피고 나누고 협동하는 다자간 품앗이를 화폐를 통해 현대화하고 시스템화한 것), 절제와 간소한 삶(여러 가지 연구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자발적으로 삶과 물질을 간소화하자는 것), 기부와 나눔(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내가 가진 바를 다른 사람에게 대가 없이 기꺼이 주거나 함께 공유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사회적 약자(저소득층, 장애인) 계층이 생산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구매운동 등으로 지원하는 것 혹은 식량 자급 및 경제적 자립성 확보를 위해 국내 농업 생산물을 지원하고 주로 소비하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윤리적 소비는 단순히 이상적인 것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부분까지 따져 장기적으로 볼 때 사회 전체에 이득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지지를 받고 있다.

안티소비는 1970년대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업의 현혹적인 마케팅, 과소비로 인한 경제, 사회적 낭비 등을 비판하기 위해 시작된 집단적 사회 활동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최근 선진국 시장을 중심으로 심화되고 있는 현상으로 대량생산, 과잉 마케팅에 스트레스를 느낀 소비자들이 소비에 대한 흥미를 상실하고 소비를 줄이는 현상을 뜻한다.

또한 사회의식이 성숙되고 소셜 미디어가 확산됨에 따라 비주류 이념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반소비 운동이 대중의 공감을 얻으며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구매력을 보유한 소비자가 소비를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안티소비현상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뉴미디어의 출현과 디지털 문화의 대중화는 반소비적 움직임의 확산을 가속화시켰다. 따라서 대량생산, 대량소비, 환경오염, 물질적 불평등 등 소비의 부정적 측면을 비판하는 반소비 운동은 소비의식의 성숙과 함께 전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활성화되어 왔던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확산됨에 따라 운동 취지를 알리고 동참을 유도하는데 필요한 조직화 비용이 대폭 축소됨으로써, 선진국에서 시작된 반소비 운동은 세계적 범위의 소비문화로 발전해가고 있다.

뉴 미디어의 주 사용자인 젊은 층 사이에서 이와 관련한 소비 캠페인 동참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반소비 운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소비 경험이 풍부하고 소비관이 뚜렷한 일부 고소득층, 지식층에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소비성향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으며, 중산층 내에서도 고학력, 전문직 소비자들이 유명상표 등 과시적 소비보다는 계획적 소비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안티소비 운동에 동참하는 소비자들은 자유, 도덕적 무관심, 나눔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높은 관심과 정보력 내지 전문지식을 보유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매우 적극적이다. 또한 이들은 자신이 앞장서서 사회를 선도해야 한다는 의무감, 이타적 성향이 강한 편으로 소비 만능주의, 낭비 사회의 문제점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통해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다른 소비자들에게 비용 없이 빠르게 알릴 수 있는 스마트 기기와 네트워크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디지털 디톡스 위크, 신발 없는 하루, 옷 여섯 벌 이하 입기 운동, 그리고 프리건 등은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 많은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지거나 동참하고 대표적인 안티소비 운동의 사례들이다.

특히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운동은 캐나다 비영리단체 애드버스터즈가 1992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세계적 안티소비 캠페인으로, 한국은 1999년부터 녹색연합이 주축이 되어 참가하기 시작하였다. 캠페인 당일에는 여러 국가와 도시에서 쇼핑하는 소비자들이 그들의 소비행위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의 집회와 거리공연 혹은 퍼포먼스 등 여러 행사를 개최한다.
의의와 평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비의 증대가 기업의 매출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경제를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최근 소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확대되고 있으며, 소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커지고 있다. 모든 소비자가 낮은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현대는 질 좋은 상품을 구매하고자 함과 동시에 지구환경과 인권 등을 고려해 제품을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선진국의 소비자들이 윤리적인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환경단체 활동에 참여하거나 제3세계 구호단체에 기부를 하지 않더라도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안심감을 얻고 있기도 하다.

또한 소셜 미디어를 매개로 한 안티소비운동에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나서고 있으며 개인이나 사회적 단체는 물론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는 안티소비 캠페인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스마트 기기에 익숙하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인 젊은 소비자들이 소비행위 자체로부터 얻는 만족감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를 통한 참여의 즐거움, 개성의 표현 및 자기만족 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비자의 사회적 의식이 제고되고 이에 따른 윤리적 소비 관련 시장이 성장한다는 현대의 소비 트렌드 자체는 무시하기 어렵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기업이 생산·유통과정에서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근로자를 부당하게 대우하지는 않았는지 감시하고, 부도덕한 기업에 대해서는 불매운동과 시위도 불사하는 적극적인 소비자로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기업은 윤리적인 이슈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단지 비용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차별화를 위한 선행투자로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며 안티소비를 주변적인 사회현상이 아닌 경영 환경의 주요 변화로 인식하여 비즈니스 모델을 개선하고 혁신하는 전략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한편, 최근 달라진 소비환경과 소비지출구조로 인해 국내 전체 소비의 장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이는 최근 정보통신 관련 상품 및 서비스의 소비는 크게 증대하였지만 인구의 고령화와 소비시장의 글로벌화, 그리고 계층 간 소득의 양극화 등 소비환경이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또 해외 유학 및 여행, 이와 관련한 해외 의료비 지출 등 해외 소비가 늘어나고 있으며 소비가 고급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한 심리 증대와 소득 양극화· 신용불량자 문제 등이 적절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이는 소비의 장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고 또다시 경제성장의 잠재력을 저해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대한 인식 공유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모색은 기업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흡수하고 점진적인 소비 회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고용 창출과 안정적인 구매력 창출이 정부 차원에서 무엇보다 우선 시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물류나 소프트웨어 등 고용흡수력이 크고 제조업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신서비스산업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디지털 가전제품들을 중심으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고성능 및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하여 소비수요를 창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용불량자에 대한 신용악화를 해결할 수 있고 가계자산 버블을 방지할 수 있는 가계신용시스템 구축의 기반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명품 구매 대행


명품을 떠나 소비에 전혀 관심 없는 일인으로서 정말 무덤덤하게 한 알바였다. 가방 금액에도 무덤덤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천만 원짜리 가방은 못 가지고 다닐 것 같다. 비가 오는데 내가 가방을 감싸고 달리고 싶지는 않다. 물론 재화도 부족하지만 그렇게 가방이 생기면 뭐 하는가 거기에 맞는 수만 가지 것들이 필요할 텐데.. 내 생활 습관까지 모조리 싹 다 바꿔야 할 테고.. 그냥 난 이렇게 생긴 대로 살다 가련다.


십여 년 전 한국에서 남고에서 일할 때 열일곱 열여덟 밖에 안된 아이들이 명품빽 관련해서 한마디를 한 것이 아직 기억이 난다. 정말 깜짝 놀랐었다. 여자친구 사귀는 법 첫 번째로 명품가방을 선물하는 것을 꼽았기 때문이다.


난 그런 얘기를 그때 난생 처음 들어봤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들은 아마 티비나 유튜브를 보고 그런 정보를 접한 것 같다. 티비는 내 아파트엔 없었고, 유튜브가 뭔지도 몰랐었다.


2012년이 그렇게 고조선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삶이 아주 단순했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 수업을 하고 학교 갔다 와서는 또 그 다음 날 수업 준비를 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참 시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정말 순진무구한 뇌 그 자체였다.



백치미


재수와 휴학을 했던 나는 대학교 졸업반일 때 동기들보다 두 살이 많았었다. 그중에 하나가 '언니는 백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했을 때 난 그냥 무슨 개소린가 하고 넘겼다. 왜냐하면 난 내가 엄청 철학적이고 깊이 있고 영감을 주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금발은 너무해'류의 그런 여자라는 건가. 사람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 지지배, 하고 말았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를수록 여기저기서 들은 말들 그중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음을 느낀다. 그 친구들이 무슨 악의를 가지고 한 말도 아니고 난 그때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삶의 길목길목에서 저 말이 한 번씩 떠오른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듯이 어떤 말도 버릴 것은 없다. 물론 거름망 하나는 장착하고 거를 것은 걸러야겠지만.


여하튼 우리 남학생들의 '명품백 어록'이 있던 그해, 얘들아 모든 여자애들이 명품백을 좋아하겠니,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던 그 시간을 지나고 있던 그 해에 나는 서른다섯의 노처녀였다.


금요일마다 반복되는 아이들의 함성.

선생님! 오늘 불금입니다!
달리셔야죠~~~!


입시공부에 묶여있던 청춘들이 대리만족이라고 하고 싶었던듯하다.


좀 차분하게 묻는 반도 있었다.

"선생님 불금인데 뭐 하세요 오늘?"

"기혼자라 8살 된 딸도 하나 있어서 집에 가서 저녁해야지 뭐하겠니?”


뭐, 애들이 믿거나 말거나. 아줌마라는 타이틀은 뭔가 모든 것을 중화시켜 주는 그런 효과가 있었으니. 진짜 저때 8살 딸이 진짜 있었다면 지금 대학생이겠구나. 지금 우리 딸내미 진짜 8살이고 십 년이 더 지나면 대학생이 될 터이다.


띵똥땡똥. 쉬는 시간이 끝나고 시작종이 룰리면 이것저것 챙겨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교무실 앞에서 혹은 쪽지시험이나 뭔가 짐이 많아 보이면 내 책상까지 와서 내 책과 텀블러 등을 모두 받아서 들고 교실로 들어가서 교단에 반듯하게 놓아주던 천사같이 귀엽고 사랑스럽던 아이들.. 단어시험을 치고 엉덩이에 매를 들 때 내 손목을 더 염려하면서 자기가 자기를 차라리 때리겠다고 다음부터는 더 잘쳐서 고생안시키겠다던 순수하고 고마웠던 아이들.. 참 세월이 유수와 같구나. 어디서든 사랑받을 친구들.


그 아이들이 그때 열여덟이었으니 서른이 되었겠고, 그 곁에는 여자친구나 혹은 아내가 있을 것이다. 과연 곁에 있는 여자는 명품 가방을 좋아할까 아니면 그냥 우리 왕자들 곁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양가의 규수들일까. 너희들이 행복하게 어디서든 잘 살고 있기를 바래.


명품 마녀의 마술에 걸려든, 혹은 그 폭풍의 눈으로 한국인들이 자진해서 걸어 들어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현상과 환상이 순식간에 끝없이 확장되고 대한민국을 삼켜버릴 듯 거대한 쓰나미 현상이 대한민국 땅에 자주 출몰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마케팅이 저렇게도 잘 먹혀드는 이유가 뭘까

좀 먹고살만해져서 그런 걸까




2. 11일차 (D-49)


2024년 7월 16일 화요일


어제 올린 파리사리 브런치북 네 번째 이야기 '여름방학 1주차' 글에 작가님들께서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그중에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고, 특히 여름철에는 수면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자정에는 잘 수 있도록 해야겠다과 생각했지만 '다짐'까지는 되지 않았던 것일까 한시 반에 잤다. 물론 그전에 비해서 한 시간 정도 앞당겨졌기에 나름 발전한 것이다. 제일 좋은 그림은 오전 일곱 시 반까지 깨지 않고 여섯 시간 연속을 자면 나름 가볍게 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데, 실제 그림은 다섯 시 이십 분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일단 너무 고요한 이 속에서 브런치 읽기를 좀 하고 일곱 시 삼십 분에 제이가 일어나 내려가고 아이가 십분 뒤에 일어나 내려가기에 나도 십분 뒤에 따라 내려갔다. 아이는 그 사이 티비를 틀어놓고 최애 만화 sisters를 보고 있다. 같은 내용을 보여주고 또 보여주고 이제 나도 에피소드의 스토리를 줄줄 꿰고 있다. 아이에게 일어나자마자 멍하게 티비보면 좋을 것이 일도 없다며 티비를 끈다고 말하고 껐다.


나는 정원에 나가서 한 바퀴를 돌고 온다고 하니 자신도 따라 나왔다. 헉, 이 찬바람은 무엇.. 바람이 선들선들.. 오늘 아침은  유달리 흐리고 날이 선득해서인가 새도 지저귀지 않고 하늘과 나뭇가지가 텅 비어있다. 무슨 크루즈여행이라도 떠났나.. 내 등허리를 양팔로 감싸고 질질 끌리듯이 매달려 오는 딸을 달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아침 8시. 아.. 긴 하루가 기다리고 있구나.

계획은 없음.


오늘은 무엇을 하며 노나.. 생각하며 레몬을 두 개 짜서 캬라프에 넣고 물 오백미리 정도를 부어둔다. 냉장고에서 주스 두 통을 꺼낸다.

pomme trouble pur jus 약간 흠이 있는 사자로 만든 주스

boostez votre energie; orange, pomme, orange sanguine, gingembre et citron 사과 주스 베이스에 오렌지와 붉은 오렌지와 생강 그리고 레몬을 섞어 만든 주스


아이는 언제나처럼 사과주스를 선택해서 레몬주스와 사과주스를 반반씩 섞어서 크와쌍 접시 옆에 컵을 놓는다. 제이는 푹 자고 일어나 어제저녁에 또 피곤함의 끝장쇼는 생의 뒤편으로 물러내고 크와쌍을 구워놓고 아이 우유를 데워두고 내 찻잔과 티벡을 준비해 두고는 샤워를 하러 갔다.



나비 나비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아침에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돌아서 아이에게 한글 공부를 좀 시켰다.라고 적었지만 실은 노래하며 놀았다. 아이가 노래하는 것을 이제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외국어 공부하는 압박감이 크게 줄어든다. 그래서 '봄나들이' 동요에 맞춰 의태어 두 개를 익히기가 수월해진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나비 나비 범나비
배추밭에 흰나비
장다리밭에 노랑나비
팔랑팔랑 잘도 난다.
나풀나풀 춤을 춘다.


-자, 이 노래에서 나비가 몇 마리 나왔니

-trois

-뭐뭐뭐

-범나비 흰나비.. 어, 두 개네

-세 개라면서

-아 je me suis trompée

-첨엔 세 마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 노랑나비 흰나비 범나비

-노랑나비도 넣어주는 거야?

-  마리 맞네 이제 쌀롱에 가도 되지?

-그래 같이 노래한 번만 하고~

- 알았어~

-준비. 시. 작. 해. 요.


나비 나비 범나비

배추밭에 흰나비

장다리밭에 노랑나비

팔랑팔랑 잘도 난다.

나풀나풀 춤을 춘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사하라로 간다


지난주 7월 8일 월요일에 와서 최초로 땅을 파고,  7월 14일 일요일에 도구를 가져와서 본격적으로 캬반을 만들었던 그 ‘전체 모래바닥 놀이터’에 다시 왔다. 그런데 바람이 세게 불어올 땐 사하라사막이 따로 없다.


제이가 재택근무여서 태워주고 다시 갔다.

차로는 몇 분 걸리지도 않는구나. 이런 걸 아이걸음 맞춰 걸어서 가면 삼십 분. 물론 운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땡볕에 아이랑 걷는 건 진짜 약간 학대 같다. 물론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이썬트림 발라주고 옷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더워도 양말을 신기고 운동화까지 받쳐 신고 모자까지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보냉가방에 온도유지용 얼음팩을 하나 넣고 이어 차갑지 않은 물 한 통, 과일하나 유제품하나. 하지만  드롭과 픽업을 나이도 한참 어리고 국적도 다른 이에게, 그것도 21세기에, 수동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나. 완벽하게 준비된 자세로 땡볕을 아이와 걸었던 적이 있었던가. 수동차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운전을 여기서 하고 있지 않는 이유의 전부라는 것은 납득하기 불가능하다.


아이의 캬반이 아직 그대로 있다. 매끈하게 다져놓은 내벽을 당연히 찾아볼 수 없지만 깊이 60센티미터 폭 1미터 50센티미터 유적터는 그대로 있다.  최근에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비시대 궁궐에서 발견된 60미터 대형 건물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꽤 인상적이다. 이틀이 지난 정도라 큰 변화도 없다. 아이는 여기서 조금 놀다가 벌써 발굴이 끝난 곳에 흥미를 이제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


플라스틱 연장 중 초록색 작은 삽을 들고 미끄럼틀 밑에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여 거기에 새로운 구멍을 파기 시작한다. 구멍이 점점 넓어지면서 두어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움푹한 공간이 생긴다. 자기 또래의 한 여자 아이가 그 곳에 발을 내려 딛고 함께 놀고 싶어 한다. 아이는 캥거루처럼 뛰어와 빨간색 큰 삽과 양동이 불가사리 모양틀 등 모든 연장을 다 들고 간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아이의 언니도 합석하여 셋이다.


-꺅! 마망!


열 살 정도로 보이는 큰 딸아이가 엄마에게 달려간다.


-대박! 쟤들 이름 똑같아!


자기 여동생이랑 우리 집 딸내미 이름이 똑같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엄마에게 달려간 것이다.


작은 일에도 놀라고 감동받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뭇 귀엽고 예쁘다.


우리 아이들의 '아이다움' '해맑음'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최대한 확보되길 바란다. 이후의 삶이 어떤 모양으로 오든 추억할 만한 어린 시절이라는 돼지저금통이 빵빵하게 차 있다면 배가 부르다.


마이클 잭슨은 어렸을 때부터 밤무대에 서고 가수 생활을 빡세게 하느라 아동기라고 할만한 시간 없이 커버렸다. 그래서 세계적인 팝스타가 된 이후에도 장난감을 사 모으거나 동화책을 계속 읽는다거나 하면서 스쳐 지나가버린 그 시간을 그리워했다. 또 자기 집을 테마파크처럼 지어 아이들을 초대해서 자신도 아이처럼 같이 놀고 자신의 방에 재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를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그건 아니지만 인간적인 안타까움은 여전하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에 덧문을 열고 처음 만난 바깥 풍경이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사정없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선득한 공기 속에 새 한 마리 지저귀지 않는 뭔가 무림의 대나무숲에 부는 그런 서늘한 바람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때가 오전 7시 50분. 지금 시간은 오후 15시 50분. 여전히 바람이 세다. 그런데 이곳은 바닥전체가 모래로 되어있는 놀이터다. 바람이 방향을 바꿔서 내 쪽으로 불면 무조건 눈을 감아야 한다.  


그래도 바람 부는 날엔 적극적으로 사하라를 찾는다.

온몸과 얼굴에 모래가 날아와 달라붙어 까슬까슬해져도 내가 살아있음이 그 생명의 충만함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를 찾아들기 때문이다.



사랑타령


벌써 두 시간 삼십 분이 지났다.

걸어갈까 하다가 제이에게 일단 문자를 보냈다. 오고 싶으면 코에 바람 쐬러 오고 아니면 우리끼리 걸어가도 된다고. 10분 안에 오겠다고 한다.


제이가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나오기 전에 '오늘 좀 부탁한다'라고 했었지만 혼자 집에 있다 보니 또 사탕을 몰래 먹는 아이처럼 몰래 마셨나 보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지만 약간 헤롱헤롱 댄다.


"Tu es déjà bourré?"

튀에데쟈부레. 너 벌써 째렸냐? 했더니,

"Tu m’aime pas plus?"

튀멤빠쁠뤼. 넌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라고 하는 제이.


아 CB 여기서 뭔 사랑타령이냐.

진짜 결핍 많은 놈 데리고 살기 더럽게 힘들다..

애정결핍 불쌍한 sk

내 그릇이 그렇게 안 크다고!

알아서 좀 강해져라.... 쫌!

네가 내 남자냐 내 아들놈이냐.

남자. 몰라? 남자는 힘, 이지! 왜 계속 찌질한 모습만 보이냐 말이야

와.. 진짜 난감하네.

오늘 좀 부탁한댔더니 알겠다더니..

정말 중독은 정말 컨트롤이 불가한걸까.


그래도 오늘 제이는 나름 자신을 컨트롤해서 술이 괴물로 자신을 몰아가는 과정에서 힘껏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성공했다. 왜냐고. 어떻게? 항상 얘기하지만


변화는 가능하다

그럴 '필요'가 있을 때


문제 일으키면 바캉스 안 데리고 우리 둘이서만 갈 거라니까

바캉스 따라가려고


아주 단순한 hdd를 뇌에 장착하고 살고 있는 우리 집 아픈 손가락

힘들게 노력하는 모습이 애잔하다.

데리고 가야겠다.




3. 12일차 (D-48)


2024년 7월 17일 수요일


아이가 오전에 한 십분 정도 공부를 했다.

- 한글 쓰기 한 바닥. 어제 나비 나비 범나비 한번 더 부르기. 한국어 공부 할당량 완성.

- 산수 문제 달랑대여섯개 풀고 힘들다고 해서 요기까지.

- 불어 철자 관련 orthographe 한 바닥 풀고 끝.


아직도 여름방학 할 일 리스트는 만들지 않았다. 아마도 대책 없이 일단 하루하루 놀아나가는 것이 될 것 같지만, 염두에는 두고 있다.


점심에는 완두콩을 산 것을 씻어서 삶았다. 이것이 요즘 제철인가 통통하니 어디 하나 터진 데도 없이 삶고 나서 어찌 더 예쁘다. 아이는 그라땅만 먹고 오목한 볼에 따로 담아준 완두콩은 포크로 한 두 개씩 찍어서 깔짝깔짝 거리고 만다. 숟가락을 주면서 팍팍 먹어라, 복스럽게 하니까. 차라리 다른 것을 주면 그것을 먹겠다고 한다. 그래서 당근주스를 짜서 줄 테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니 윽, 이러면서 헛구역질을 한다. 식탁에서 아주 잘하는 행동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Twisters


점심 먹고는 영화관에 갔다. 버스 타고 가기도 애매해서 땡볕을 또 한 삼십 분 이상 걸었다.


한국에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혹은 남자가 여자에게 '꽃 길만 걷게 해 줄게'라는 딕션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던데, 나는 '땡볕을 걷게 해 줄게'라고 하는 엄마이구나. 뭐 그래도 아이 옆에 있어 주는 것만도 큰 역할인 듯하다. 잘 먹든지 안 먹든지 밥도 해주고. 됐다. 그거면 족하다.


트위스터스가 14시 30분에 시작하는데 점심 먹고는 꾸물럭거리다가 14시가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이 바람에 영화 상영 시작시간이 십 분 정도 지났을 때 영화관에 도착했다. 매표소에 가서 시작했냐고 하니 limite라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아이에게 화장실 다녀오라고 하고 나는 영화표를 두 장 끊는다. 1관이나 2,3관이나 다 몇 걸음 안팎이다. 한국으로 치면 아주 아주 아주 소형 영화관이다. 약간 예스럽기도 하고 매표소 아줌마들도 정겹다.


제1관 문을 열었다.

twisters라고 화면에 떡하니 나온다. 타이밍이 절묘하다. 호랑이는 어두운 곳에 들어갔을 때 금방 적응해 잘 볼 수 있고, 사람의 눈보다 6배나 잘 볼 수 있다. 호랑이에게는 빛을 반사하는 세포층이 한 겹 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이다. 암순응 명순응, 이라는 단어를 주절거리며 더듬더듬 거리며 계단이 있는지 다리로 재고 있는데 아이가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아이가 뻗어주는 손을 잡고 영화관 정 중앙에 착석한다.


28년 만에 리메이크된 거라는 데..

한국 감독이라는데..

자칭 재난영화 마니아의 내 취향은 아니다.

그닥 재미가 없다.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데 벌써 상영관은 텅 비었다. 우리 외에 딱 세 명이 더 있었는데 벌써 다 나가고 우리 둘 뿐이다.  아이는 엔딩 음악에 맞춰 무대 쪽에서 빙빙 돌며 춤을 추면서 출입구 쪽으로 이동한다. 나도 아줌마의 춤사위로 아이의 팔랑팔랑 춤을 좀 따라 하면서 아이를 따라나갔다.



힘을 쓸 때 잘 써야 힘을 뺄 수 있다


문을 여니 바로 바깥으로 통한다.

아, 공놀이하기 충분한 공간과 그라피티가 있는 벽이 멋스럽다. 게다가 그늘까지 멋지게 준비되어 있다. 아이에게 또 공놀이를 제안했다. 아이가 오케이 해서 가방에서 이번에는 핸드볼을 꺼냈다. 바닥에 한번 튕겼다가 받기 놀이를 하다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핸드볼이지만 축구를 한번 해보자고 다시 제안했다.


아이가 알겠다고 해서 몇 번 신나게 차다가 퍽, 하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아이 얼굴 완전 정면으로 공이 날아가 붙었다. 핸드볼이라 조그마한데도 아이얼굴이 워낙 조그마해서 정말 공이 아이얼굴에 붙어있으니 무슨 축구공만 해 보인다. 아이는 순간적으로 얼음이 되었다. 다가가 보니 붉어지다가 심지어 코 눈밑 뼈 쪽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코뼈도 만져보고 눈알도 괜찮은지 보고 여기저기 만지니 그제야 아픔이 몰려오는지 아이가 울음을 터트린다.


아이는 아기 때부터 잘 울지를 않았다.

울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항상 참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약간 마녀의 저주에서 풀려나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아이도 조금씩 힘든 감정을 털어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계기가 되는 사건이 주로 아픈 것이겠지만.. 그렇게 우리 아기가 성장하여 아이가 되고 또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갈 것이다.


아이는 '축구는 남자, 여자는 축구하면 안 돼' 이러면서 조금 더 울다가 멈추고 붉은 기도 가라앉고 부은 것도 금세 갈아든다. 그리고는 '모기 안 물리는 팔찌 사러 가자'하면서 이 상황을 기회로 바꾸면서 평소에 자신이 사고 싶었지만 엄마가 사주지 않은 품목을 던진다. 그래 사러 가자,하며 아이의 미니미한 손을 꼭 잡고 땡볕으로 다시 들어선다. 오늘은 아이도 나도 모자를 쓰고 있다. 감사하다.




4. 13일차 (D-47)


2024년 7월 18일 목요일


어젯밤에는 '어젯밤에'잤다.

'오늘 새벽에'잤다를 극복했다.


땡볕에 많이 걷기도 했지만, 아이가 외출 후 샤워하지 않고, 저녁 먹은 후 목욕하고 싶다고 해서 꽤 뜨거운 물을 틀어뒀는데 딸내미가 배꼽 높이를 넘기고 가슴 수준까지 물을 받아서 너무 덥다고 해서 가보니 벌써 잠에 취해서 해롱대고 있다. 언능 나오라고, 이 온도는 배꼽정도로 받아서 하는 목욕에 적합하고 가슴 수준까지 물을 받고 싶었으면 물 온도를 좀 낮추어야 한다고 말하며 나와서 샤워부스로 들어가서 헹구고 나오라고 했다.


한 오분도 안 지난 욕조물은 다 흘려버리기 아까웠다. 내가 재활용하고 자려 가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목이 따갑단다. 소금물 가글 좀 준비해 달라고 해서 부엌으로 향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에어컨바람에 좀 추웠었나 보다. 자기 몸은 스스로 잘 살피고 또 보살펴야 한다고 한 이후에 목이 따가운 증상이 있으면 소금물가글을 요청한다. 지지배 머리가 많이 굵어졌다.  


그렇게 욕실을 벗어난 지 일 분도 채 되지 않았다.

뭔가 느낌이 싸하다. 그 사이 제이가 욕조의 물을 빼고 있다. '아 쫌!' 대화 부족의 결과는 즉각적이다.

그래도 귀한 물이 반이나 아직 남아있다. 꿀 같은 이 시간은 십 분을 넘기지 않았으나 밤새 꿀잠을 자게 해 주었다. 자정을  넘기지 않고 잤다.


에헤라디야. 아침 7시 30분까지 쭉 잤다. 잘 자서 몸은 가벼웠지만 희한하게 또 머리는 깨질듯했다. 깨질 듯이 아팠다는 아니었지만 지끈지끈했다. 기상 후 한 시간 정도 침대에 머물러 있으니 아이에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크와쌍을 또 사야겠다. 냉장고에 냉동고가 붙어있는 붙박이 냉장고라 크와쌍도 6개들이 한 봉지밖에 사 올 수가 없어서 매번 이틀에 한번 사야 한다. 보통 이틀에 한 번은 기본적으로 슈퍼에 들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반강제적이다. 큰 냉장고를 사는 것은 내가 돈을 조금 풀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부엌이 작기 때문에 어디 놓을 때가 없다.


한국 가정처럼 큰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있는 삶이 이곳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방법을 찾아보지 않고 세월만 보낸 것, 큰 냉장고나 냉장고 두 대를 사서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지난 세월. 선택한 것을 선택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살고 있는 삶을 선택한 지난 세월. 변화를 원하는 가. 그러면 변화하라.



쿵쾅쿵쾅 삐그덕 삐그덕 푸파푸라 첨벙첨벙


오전 9시 30분. 피아노를 쿵쾅거렸다.

한국 초등학생이 체르티 100번 정도 하면 치는 곡. 클레멘티 소나티나 작품번호 36-3, spiritoso 활기차게 연주하라고 되어 있는 그것으로 골랐다. f를 ff처럼 ff는 fff처럼 쾅쾅 쳤다. 피아노 건반이 부서질지언정 가오는 살려야지. 일석이조의 효과이다. 아이도 어느새 내 옆에 붙어서 치고 있다. 제이도 이층에서 내려오는지 나무 계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삐그덕 삐그덕.


제이는 재택근무 프로젝트를 다 끝내서 수영장에 오늘 같이 갈 수 있다고 한다.


아이에게 한글문장 두 개 쓰기 어제 부른 나비 한글노래 함께 부르고. 더하기 문제 빼기 문제까지 하고 나서 간다고 하니 꽥꽥거리다가 우는 시늉도 몇 초하다가 결국 해 낸다. 아이의 오늘 목표는 점심을 수영장에서 먹는 것이다. 11시에는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다. 아직 몇 시가 몇 시인지 시간 개념도 좀 없지만 슬슬 감은 잡아가는 것 같다.


공주야. 분발하자. 아니, 엄마가 시간은 읽게 도와 줄게. 긴 바늘 짧은바늘.. 그게 그렇게 어렵니? 하기사 내가 여기서 수동자동차 몰려고 할 때의 그 난감함을 생각해 보면 백번 이해가 가긴 한다. 함께 난관을 헤쳐나가보자. 할 수 있어. 3학년 되기 전에 시곗바늘 읽기 꼭 성공하자.


문제는 내가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반복적으로 학습시켜줘야 한다는 건데.. 그래서 이렇게 기록도 하는 건데.. 그런데 뭘 너무 길게 적어놔서 이제는 브런치 연재북 어디에 뭐를 적어둔 건지도 모르겠다.


현재 시각 10시 30분.

마지막으로 나비노래를 다시 한번 부르고 출발하기로 한다.


'나비노래'하자니까 이제는 '나비 나비 범나비 배추밭에 흰나비' 이 노래가 나온다.


나비 나비 범나비

배추밭에 흰나비

장다리밭에 노랑나비

팔랑팔랑 잘도 난다.

나풀나풀 춤을 춘다.


내가 원래 봄나들이 노래를 불러주고 같이 한번 부르고 간다.

아, '나리나리개나리'노래하고 해야 했구나. '나비야'와 '봄나들이'가 좀 헷갈렸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일단 출발하자


오늘은 최고기온이 31도까지 올라가는 날이다.

현재 24도. 정오에 27도. 오후 3시에 29도.

오후 5시에 30도 찍고

21시에 29도.. 22도에 25도....

일단 물에서 최대한 오랫동안 놀다가 오자.


더워서 사람들 엄청 많을 듯하고

물도 엄청 더러울 듯하다


지는 뭐가 그렇게 깔끔하다고

집이나 자주 쓸고 닦으면서 그런 얘기를 하기 바래


깔끔 떨지 말고

유난 떨지 말고


일단 출발!



5. 14일차 (D-46)


2024년 7월 19일 금요일


아이와 운동되게 노는 것은 나도 참 재미있다.

하지만 다녀와서가 좀 힘들다. 밥을 한다고 한 시간을 서서 여기 총총 저기 총총. 총총걸음으로 왔다 갔다 그리고 붙박이로 한자리서 서서 탁탁 착착... 아 밥의 굴레여.. 그리고 아이가 잠들고 나서부터 새벽 한두시까지 이어지는 브런치의 굴레까지..


아주 이 굴레 저 굴레..에 몸이 칭칭 감긴 형국이다.

그냥 다 싹 놔 버리고 그냥 자연인으로 확 돌아가버려 싶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굴레에서 빙빙 돌다가  두시쯤 잠 들었다.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 일곱 시까지 내리 잤다. 만약 자정에 잠들었으면 ‘일곱 시간’이라는 황금의 수면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섯시간 넘는 통잠 잔 것만해도 감지덕지다.


그래.

이 느낌 좋다.

너무 감사하다.

이 느낌 그대로 쭉 가는거여


운동, 특히 수영을 하고 나면

깊고 깊은 숙면. 푹잠이 보장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등장했으니.


몸에 에너지가 차오르니

‘그 느낌’도 함께 올라온다는 것이다.

아니면 지금이 배란기라서 알 만드느라 그런건가?


그 깨진 흰둥이 아이폰 6 어디 있나.

거기에 앱이 깔려있는데.. 일단 이층으로 올라간다. 아 귀찮아. 뭐를 알아보려고 이렇게 까지 흰둥이를 찾고 있니. 그래도 책상서랍을 여니 바로 있구나. 아. 그런데 잠자고 있었네. 일단 데리고 내려와서 충전을 한다.


일단 내 몸의 이 야릇한 느낌이 배란일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있는지 한 번 추적해보고 싶다.



마지막 그게 언제였던가


2024년 봄도 아니고 2024년 겨울도 아니다.

2023년에는 한 번 아니면 두 번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것도 확실치가 않다. 너무 태곳적 일이고 그렇게 강렬한 인상이 남았던 적이 거의 없었기에.


2022년에 내가, 아니 내 몸이, 원했던 적이 있다.

그것도 한 번이었을 것 같다. 그때는 이사 와서 이층의 아이 놀이방을 수리하던 때였다. 3월 말에서 4월 초였는데 일인 시공자였는데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꽤 많은 이였기에 전혀 끌리는 점이 없었다. 단지 열심히 몸을 놀리며 육체노동을 하는 그 모습이 내 뉴런에 와서 박혔던 걸까. 말을 해보면 이상하게 백 퍼센트 한국인이 아닌 것으로 느껴지는데 광고에는 백 퍼센트 한국인이라고 적어놓고부터 뭔가 믿음이 크게 가지 않고 대화도 별로 통하지도 않고 인간적인 매력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가 웃옷을 벗어재끼지도 않았는데 뭔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야성적인 모습이 있었던 걸까. 난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내가 특이점도 없는 외간남자에게 홀릴 이유가 대체 무엇이겠는가. 내 뇌는 이성적인 판단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상을 인식했었던 듯하기도 하다.


특유의 젊음 혹은 넘치는 에너지에 내 몸이 반응을 한 것일까. 내가 무슨 옹녀도 아니고 인생에서 한 번도 불끈불끈한 느낌이 온 적이 없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왜 내가 내 몸이 그에게 반응을 했었는지.


그렇게 제이는 어부지리로 지 마누라와 하룻밤을 몇 만년만에 맞이했다. 무슨 아이 입에 사탕을 물려준 것 마냥 정신을 못 차리고 헤벌쭉이다.


아이에게는 단 것을 자주 줘도 안되고 오랫동안 물려놓아서도 곤란하다. 단 맛을 알아버리기 전에, 사탕에 더 깊게 빠져들기 전에 회수해서 버려버린다.


그렇게 가뭄에 콩 나듯이 내 몸을 여는 일이 이 수영을 하고 몸을 움직이고 몸이 깨어나면서 이상하게 또 꿈쩍꿈쩍하는 그 느낌이 찾아온 것이다.


보통 배란일에는 큰 느낌이 없고 배란기가 끝나고 나면 엄청 피곤하다. 심지어 코 안이 다 헐어버리고 입술이 부르트는 경우도 있다.


우리 정원에 꽃 중에 굵은 씨를 잔뜩 매달아 놓고 조금씩 자신은 죽어가는 그런 아줌마 꽃이 몇 송이 있는데, 정말 알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동식물 모두에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닌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오늘 아침에 오랜만에 편지함을 열어보았다.


요즘엔 편지함 알람도 꺼놓고 노관심이었다.

편지함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3일 전에 임용시험 불참 관련 편지도 와있다.


DGRH concours

mar. 16 juil. 16:37 (il y a 3 jours)


Questionnaire participation aux concours de l'enseignement


Cher(e) candidat(e),

Vous étiez inscrit(e) à la session 2024 des concours de recrutement des enseignants et personnels d’éducation du second degré, mais vous n'avez finalement pas assisté aux épreuves.

Nous souhaiterions comprendre les raisons de cette absence pour améliorer l'organisation de nos concours. Nous vous remercions de répondre à ce court questionnaire.

Si vous avez des questions ou des doutes concernant le questionnaire, répondez directement à ce mail ou envoyez un mail à l'adresse suivante : @education.gouv.fr

Ce questionnaire, totalement anonyme, peut être complété en moins de 2 minutes.


Merci de répondre à notre enquête via ce lien.


Cordialement,



왜 임용시험에 불참했는지 사유를 밝히라는 데 이것도 노관심이다.

삶에 매달려서 10년을 놀이기구 탬버린 털듯이 털리고 나니 이제 그냥 잠시 쉬고 싶다.

그냥 잠시 다 놓고 쉬고 싶다.


아이반 친구 엄마가 방학 때 아이랑 놀러 오겠다고 왓챕에다가 메시지로 약속을 잡자고 보내놓은 것도 오늘에야 발견했다. 일주일이 지났구나. 하지만 그냥 씹는다. 그냥 빠릿빠릿하게 하고 싶지가 않다. 어차피 방학도 길고 릴리아도 캠프를 간다고 했으니 그 이후에 천천히 연락해 봐야겠다.


어쨌든 잊지 말고 답장을 조만간 하나 보내야 한다. 9월에 같은 반 아이들 리스트가 교문에 붙을 텐데.. 혹시라도 같은 반이 되면 두고두고 신경 쓰일 것이다.

오늘 최고온도가 34 도구나.. 그나저나 오늘은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야 하나.



늦바람은 초장에 잡아야 하는 법


앱이 설치되어 있던 흰둥이 폰을 흔들어 깨워 배란일을 확인해 본다.


오늘이 배란기 마지막 날이구나.

이렇게  한 열흘동안 자궁 내벽은 두꺼워지고 계속 두꺼워지고 또 두꺼워지겠구나. 그리고 내부공간이 좁아질 때로 좁아지고 질이 수축되다가 별일이 없으면 내벽이 허물어져 다시 다음 배란을 준비하는 것인가.


불필요한 이  알 만들기의 기간.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피곤하기만 했던 이 시간이 내 몸의 향방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실로 놀랍다.


하지만 알 만드는 것 때문에만 몸이 꿈틀꿈틀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수영장에서 팔과 다리를 좀 움직였을 뿐인데 온몸의 감각이 훅 살아나버린 것인가. 한 이틀 잠시 사부작거리는 정도로 이런 활력을 되찾은 것, 이것 정녕 실화인가.


앱을 연 김에 배란일 외에 또 다른 관련 데이터도 확인해 본다.


일단 2024년에는 확실히 없다.

2023년에도 안 했구먼. 그럼.. 정확하게 다시 시간을 더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본다. 데이터가 없다. 2022년에도 없다.


어, 그런데 기록이 2021년 10월까지에서 끊긴다. 프리미엄서비스가 아니라 이전 기록은 다 사라졌다. 내가 이 앱을 2015년에 임신하고부터 사용을 했으니 2015년에서 2021년 9월까지의 기록은 모두 삭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대략 2년 이상 우리는 부부관계를 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사 와서 한 번의 꿈쩍거림이 있었다고 했다. 그건 내가 체크를 안 해둔 걸 보면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런 사소한 것이었으리라.


아마 그렇게 따지만 이사오기 전에도 한두 번 꿈쩍거림이 있었을 테지만 너무 미미해서 내가 앱에 저장을 해두지 않았을 것이고, 사라진 6년간의 데이터도 손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라 확언한다.


 제이는 '너는 내게 매력을 안 느껴' '나 못생겼니'등의 이유를 들며 내가 자신을 거부한다고 생각을 한다. 아니 무슨 남자답게 들이대는 것도 없는 놈이 무슨 '거부'타령인지 기가 막힌다.


남자가 아니고 중2병처럼 구는 애를 도대체 내가 어떻게 건드릴 수 있겠는가. 이것은 심각한 범죄지 미성숙한 이는 그대로 보존하는 걸로.


자신감 안팎으로 팍 충전하고, 약물이나 술에 의존하지 않고 강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면 내 마음이 확 열릴 것이고, 이어 몸은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이다.


이가 다 썩어서 징징 거리면서 사탕하나 달라고 하는 아이에게 또 사탕을 물려줄 엄마가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적어도 나는 아니다.


제대로 들이대는 법도 모르는 놈이 왜 자신을  거부하는지를 물으면 나는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겠니.


네가 아무리 데오도란트를 발라가며 더 향기로워지기 노력하고 집안일을 도와주며 매력은 없지만 착한 남편 되기 코스프레를 하고 아내 찬양 멘트를 날리며 스윗한 남편 되기를 시도해도 네 마누라에게 씨알도 안 먹힌다면 그 전략은 틀렸다는 거야.


그걸 모르겠니. 왜 그걸 그렇게도 모르니.

십 년이 지났다. 변화하지 않는 건 변화할 의지가 없거나 변화가 필요한 이유가 없어서라던데 그런 거니. 솔직히 변화하고 싶은 마음은 보이긴 하는데.. 아, 또 너네 엄마가 와서 도와줘야 하는 거니.


그런데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 감각이 깨어나고 있다.  그것이 문제라는거다. 십 년간 물도 주지 않고 관리도 하지 않던 고목에 이상반응으로 꽃망울이 맺히려하는 이 상황이 정말 난감하다. 한 번씩 느낌이 쭉 들어온다. 그냥 일시적 현상이길 바랄뿐.


고기도 어릴 때부터 먹어본 놈이 고기맛을 알지.

그냥 채식으로 살다 채식으로 갈려는 사람,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다시 한번, 일시적 현상이길 바란다. 미운 놈 떡하나 안 주고 싶네. 혼자 즐거움도 개뿔 관심 없다. 대책 없이 이게 무슨 상황이니.


뭔가 좀 쎈 운동으로 이 에너지를 분출해내야겠다.

왜 갑자기 온몸에 에너지가 이렇게 막 돌기 시작하는 걸까. 지난 십 년 몸이 제 기능을 못하고 죽은 듯이 있었는데 이 무슨 일인가 말이다.


잠자는 숲 속의 아줌마 몸뚱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힘이 넘쳐나는구나 소비를 해야 한다. 집안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스포츠 협회라고 찾아보던가 해야겠다.


늦바람이 무서운 법. 마음 단디 먹기를.

상황 더 복잡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컨디션 좀 올라온다고 발라당 까지지 말고 이제껏 살던 대로 사시길.


늦바람이 무섭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연애 중이나 결혼 중이라도 다른 이성에게 호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건 아닙니다. 사람으로서 감정이란 게 어찌 자기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본인 스스로 컨트롤이 가능한지의 문제인 듯합니다.

[아내의 외도/바람피우는 아내]
늦바람이 무서운 이유?

평소에 본인의 감정을 억누르고 억누르고, 평생 자녀교육에만 전념하고, 주부생활을 하다가, 새로운 이성과 눈이 맞았고, 짜릿한 그 경험을 한순간 돌이킬 수 없는 배를 타버린 아내.. 돌이키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죠.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늦바람 난 아내, 돌이킬 순 없을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친 들 떠난 소가 바로 돌아오진 않습니다. 이는 소가 스스로 집주인을 찾아가거나, 아주 빠르게 소를 찾아 나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물론 소야 찾기만 하면 강제로 데려오면 되지만 사람은 마음을 돌려놓아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힘듭니다.

평소 아내의 사소한 변화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남편의 잘못도 크기 때문에 무조건 아내를 욕하기보다는 본인 스스로도 반성을 해야 합니다. 또한 늦바람이 난 아내들은 원래는 정말 현모양처처럼 가정에 충실했던 여성들이 90% 이상입니다. 정말 좋은 여자였는데 한 순간에 돌변하는 것이 늦바람이죠.
짜릿한 불륜로맨스, 시작이 어렵지 한번 진행된 그 사랑은 시작하자마자 엄청나게 불타오르는 법이거든요. 그 불을 끄려고 아내를 구속하고 집착하게 된다면 그 불길에 기름 붓는 격 밖에 되지 않습니다. 참으로 힘듭니다. 이미 시작된 그 불길.. 솔직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설마 했던 나의 아내가.. 정말 상상치도 못했던 나의 아내가..
배우자의 바람을 경험한 남편이나 아내들이나 같은 말을 합니다.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 나에게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상상을 안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아무런 대처도 못하는 겁니다.

늘 배우자의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하고,
가정에 충실했다면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내만 탓하지 말고 본인도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었는지,
집에 돈만 벌어다주면 다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는지도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고,
가정을 파탄내고 있으니 침착하게, 이성을 찾으셔서 철저한 준비에 집중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출처: 네이버 100% 진실은 있어도 100% 거짓은 없다


외식 같지도 않은 외식으로 저녁 때우기


날도 덥고 해서 하루종일 아이랑 빈둥빈둥했더니 오히려 몸이 늘어져서 저녁에는 그냥 반조리 식품 라자냐를 데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퇴근하고 돌아온 제이도 동의했다. 그래서 나는 샐러드는 좀 힘을 써서 준비해 줄게 하면서, 부엌에 가서 오븐 예열 좀 하라고 했다.


뭔가 술술 잘 풀린다고 생각했더니 부엌에서 나오면서 라자냐를 어디에 두었냐고 물어온다. 라자냐는 네가 저번에 슈퍼에 갔다 와서 신선제품 정리할 때 정리하지 않았냐고, 나는 아이 목욕물 받느라고 따로 재정렬하지 않았다고 했다. 뭔가 느낌이 오는 것이 있는지 밖으로 나간다. 응? 설마 트렁크에 둔 거? 음.. 언제나 그렇듯이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이것이 어제인지 그저께인지는 모르겠지만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 텐데, 내게 묻는다. '이거 먹을까?'


나는 tortelloni가 있으니 이것을 바로 준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제이는 멘붕을 느끼고 그냥 집을 나가자, 나가서 외식하자라고 한다. 지난달부터 마이너스통장에서 벗어나더니 요즘 제법 밥에서 먹자는 얘기를 자주 한다. 웬만하면 그 의지를 꺾을 텐데 멘붕이 심하게 온 것 같아서 그냥 그의 말을 들어주기로 한다.


일단 슈퍼가 저녁 여덟 시 삼십 분에는 문을 닫기에 밥 먹으러 가기 전에 아이 생우유부터 사러 가자고 한다.

현재 기온 35도, 체감온도 37도.

한국에서는 36.5도라고 하고 여기에서는 37도라고 하는 인간의 체온 그것을 넘어섰다.


일반 봉다리 두 개를 들고나가기에 보냉가방을 준비해서 뒤따라 나간다. 다행히 티셔츠 두 개중 하나를 내 잔소리 폭탄이 벗겼고 길고 두꺼운 청바지도 면 반바지로 바꿔 입었다. 양말도 벗어버리고 슬리퍼를 신어라고 하니 여기가 베트남이냐고 하며 양말을 종아리 반까지 올라오는 걸 신고 가죽운동화를 고수한다.


아이는 한국식당을 가면 좋겠지만 이 동네에는 없다고 하면서 이미 두 번 나랑 가본 적이 있는 중국 레스토랑이나 동네에서 꽤 유명한 타이 레스토랑 아니면 학교 앞에 있는 쿠스쿠스 전문 레스토랑을 가자고 했다. 하지만 제이는 그런데는 내일 가던가 하고 오늘은 그냥 맥도널드 가자고 했고 아이도 동의했다.


중학교 근처에도 맥도널드가 있는데 왠지 아그들을 많이 마주칠 것 같기도 하고 실외공간도 딱히 없어서 좀 넓은 곳으로 가자고 제이에게 주문했다. 어, 아이에게 엄마가 언니오빠들 안 마주치려고 여기 맥도에 안 간다고 나를 놀리네. 웃기는 짬뽕이 뭔 군소리여. 내가 널 놀릴 것은 한 일톤은 된다. 내가 가오가 없지 입이 없냐.


한 십분 정도 운전해서 조금 시골스러운 곳에 있는 맥도에 닿았다. 다행히 문지방에서 맥도까지 큰 마찰 없이 차 안에서 통구이 되기 일보직전일 때 잘 도착했다. 사방이 트여있고 하늘이 보이는 바깥 테라스에서 아이가 노는 것을 보면서 좀 앉아있다가 아홉 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는 입에도 대지 않던 맥도널드류를 저녁 메뉴로 그것도 사십 대 후반에 이렇게 먹고 있는 걸 보면 참.. 인생 살이 어디로 흘러갈지 진정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작가님 s 날씨가 많이 덥네요 여름 맞네요 ㅎㅎ

파리 사리 이 다음 연재글에는, 여기 시민들은 딱히 관심 없는 JO 분위기나는 쪽으로 출동해서 사진을 조금 찍어서 올릴게요. 주말 잘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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