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일하는 사람을 위한 사유
COVIC 19 이후 이제는 사라진 종류의 일을 했다. 간단히 말하면 매 시즌 다른 국가에서 최상위 호텔/리조트를 빌려 대륙별 주요 파트너 수 백 명을 모시는 초청 행사. 덕분에 출장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같은 질문을 받는다.
'제일 좋았던 곳은 어디였어요?'
그때마다 떠오르는 단 한 장면. 나이트 이벤트 직전 볼륨에 도열한 수 십 명의 호텔 스텝과 그런 이들의 중심에서 곧은 자세로 신호를 기다리는 총 지배인. 기본적으로 5성급 레벨이라 해도 여러 호텔서비스를 경험해 보면 그 격차가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이 서비스 스텝에 있다. 제아무리 특색 있는 장소 (인공섬 한가운데라던가 셔틀버스 서너 대가 다닌다던가 금으로 도배되었다던가)라 해도. 서비스를 제공 할 때가 아닌 사소한 표정과 태도는 교육으로 커버가 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 어려운 것을 해낸 곳이었다. 객실 클리닝 스텝부터 볼륨 서빙 스텝까지 자신이 속한 곳에 대한 자부심과 역할에 대한 책임감의 모양이 뚜렷하게 보인 곳.
행사 5분 전 각자의 포지션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그들이 주는 긴장감은, 말 그대로 전장의 한가운데 투입되는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게스트 300명이면 8 틱 30여 개 남짓이고 이를 위한 서빙 스텝만 10-12명 적지 않은 인원. 그 사이 식음료 파트까지 포함하면 호텔 스텝만 수십으로 그들이 한 곳을 보고 있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나의 보스 옆에 서있는 그들의 보스가 내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장 기간을 포함하면 2주 남짓 기간동안 잠을 못 자는 것은 일상다반사며 여름날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사건사고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현장. 그렇게 몇 달간 준비한 것을 한 순간 쏟아붓는 일을 한다는 것은, 판단이 빠르고 행동은 신중하고 신경은 예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업무에 길들여진 구성원으로 만든 조직의 보스에게 필요한 덕목은 고요한 성정을 갖추는 것이다.
그건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인 탓도 있지만 광고주 성향상 접객에 더 예민해야 할 수밖에 없을 프로젝트가 늘면서 점차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진 속 장면을 본 순간 감탄과 기대를 넘어 부러움의 감정까지 샘솟았다. 실제로 처음으로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이후 어느 곳에서도 다시 보지 못했다.
존경심을 느끼고 함께 일할 수 있는 보스의 뒷모습을 보며 퇴사보다는 출근을 선택한 나였다. 나는 운이 좋았다. 아마 저 날 등을 보이고 도열한 이들도 그러하리라. 그래서 저 장면이 가능했겠지. 새벽 리허설 때부터 복잡했던 마음에 빗질을 하듯 일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깨치게 순간 핸드폰을 꺼내 사진에 담는데. 맞은편에 계신 보스와 눈이 마주쳤다. 평소와 다른 긴장감으로 홀을 바라보는 나를 지켜보며 의미심장한(!) 미소 짓고 계셨다.
여담이지만 이 장면은 이벤트의 일부분일 뿐, 마야는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함을 갖추고 있었다. 압도될 만한 규모의 자연에 맞닿은 해안에 위치했으나 어느 곳보다 쾌적하게 관리된 공간과 올 인클루시브에선 소홀하기 쉬운 7개 레스토랑까지 호텔리뷰 관점에서 그랜드 레벨. 거기에 다해 그 근간을 이루는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때 정갈한 몸짓으로 나타나는 스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