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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밍줌마 May 29. 2023

겁없이 항공기를 탈출한 강아지.

조심스레 꺼내보는 아픈 경험담.

쓸까말까? 굳이 안좋은 얘기 다시 끄집어 낼 필요가 있을까? 여러번 생각해보며 써보는 글이다.





2017년경  어느날, 방콕으로 가는 야간 비행기 수속 카운터에서 매니저로 일할때였다.

태국인 승객이 강아지 3마리를 데리고 나와 수속을 요청했다.


타이항공 규정상, 강아지는 기내로 데리고 들어갈수 없고, 철제로 된 항공기용 강아지 케이지에

잘 넣어 화물칸에 싣고 운송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문제는 갖고온 강아지 케이지 하나가 사알짝 허술해 보이는거 였다.(거절하기도 애매모호한..)


원칙적으로 승객은 강아지 크기를 고려한 규정에 맞는 사이즈의  튼튼한 케이지를 준비해야 하는게 맞지만.

실제 현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가끔 있었다.


이런경우, 승객을 갑자기 돌려보낼수도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공항 신도시에 있는 애견샵에 연락하여

케이지를 구입하도록 유도하곤 했다.


애견샵에서는 꽤 높은가격의 케이지 단가를 매겨 놓기도 했고, 신도시 운서역에서 인천공항 출국 터미널까지

배달료 3-5만원 정도 추가하여 요구했다. 왕복 택시비용 개념이라고나 할까?


다소 바가지 쓰는 느낌의 가격이긴 하지만, 어쩔수 없으니, 승객들은 대부분 새로 구입을 할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공교롭게도 문제의 그날은 일요일이라, 애견샵도 휴점이었으니, 난감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케이지가 사알짝 문제라며 탑승거절하기도 애매한지라, 최대한 케이지를  강한 접착테이프로 여러번 돌려감아 운송을 진행하였다.



그런데..ㅠㅠㅠ

비행기 출발 15분쯤전, 매우 당황한 현장 조업장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강아지가 엔진 소음에 심하게 날뛰었고, 그 바람에 케이지 잠금장치가 풀려 강아지가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강아지는 미친듯이 튀어 나갔고, 야간이라 쉽게 보이지도 않았다.

일단, 비행기는 출발을 시켜야 해서, 강아지 주인에게 상황을 급박하게 설명하였다.

승객은 친구의 부탁으로 강아지를 대신 데리고 가는 중이었다며, 실제 강아지 주인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그렇게 비행기를 보내고, 공항 활주로에서는 때아닌 한밤의 강아지 수색작전이 시작되었지만, 도저히 찾을수는 없었다. 이런일은 모두가 처음인지라 어찌할줄 모르며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허허벌판 활주로를 미친듯이 뛰어다닐 강아지도 걱정이고, 갑작스런 강아지 출현에 조종사가 당황하여 급정거를 하고 대형사고가 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내 머리는 지끈지끈 아파왔다.


태국 지점장에게 일단, 보고하여 본사로 연락해달라 하였고, 2-3시간 더 대기해 보았으나 강아지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조업팀의 보고만 받은채로 새벽녘이 되어 퇴근하였다.


그렇게 불면의 밤을 보낸후 잠깐 잠이 들었다가, 갑작스레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회사에서 온 전화였고 어제 그 강아지는 새벽녁에 발견되었지만, 항공기 활주로 안전문제로 사살했다는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솔직히 강아지는 어려서 마당에 묶어놓고 키운경험만 있지, 집안에서 물고빨며 키워본적은 없었지만, 요사이 강아지는 가족개념 아니던가? 말이 동물이지.. 견주에게는 거의 사람의 죽음에 견줄만한  

충격이요, 아픔일거라 생각되며 자꾸만 나도 눈물이 났다.


아니, 마취총을쓰던가 하시지 왜 죽이셨냐고 조업팀에 항의해 보았지만, 관련 매뉴얼만 보여주시며 어쩔수 없었다고 하셨다.  규정상에는 1단계, 그물망등을 이용한 생포  2단계 활주로등으로 진입하여 위험하다고 인정되면 사살이라며, 그 절차대로 한거라고 하셨다.



다시 출근을 해보니, 한국에 있었던 태국인 견주가 사무실을 찾아왔고 ,조업팀에서는 강아지 '사체'를 박스에 담아 갖고 오셨다.


강아지의 죽음을 확인한 견주는 오열햇고, 나도 곁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같이 울었다. 그것밖에 내가 할수있는 위로가 없었다.




이후, 이 사건은 견주가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태국내에서도 일파만파였고, 그 와중에 '한국의 개고기 문화'까지 들먹거리며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내에서도 인터넷 이곳저곳 도미노처럼 퍼지며, 항공사를 비난하는 악플에 기자들은 날마다 공항 사무실로 찾아왔다.


보지 않으려 하면서도, 자꾸만 기사를 보게 되었고, 하다못해 딸들마저 학교에서 이 사건 얘기가 많이 나온다며 "엄마 어떡해?"라고 걱정을 하였다. 악플에 사람이 자살하는 이유를 알것같은 날들이었다.


허구헌날, 회사만 가면, 사건관련 REPORT 를 디테일하게 하라는 요구가 게속되었다.


외국의 비슷한 사례에서는 활주로까지 폐쇄하며 생포를 시도하는데," 한국에서는 생명을 너무 경시했다."

"만약 이 동물이 멸종위기종이었다면, 국가간의 비난으로 큰 문제가 될수 있었다" "공항 관련 매뉴얼을 새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등등 동물 단체의 요구도 대단했다.




이후, 강아지를 데리고 가는 승객이 나올때마다, 우리는 강아지 케이지 상태를 확인하느라 혈안이 되었고,

아주 조그마한 미흡함이라도 발견되면, 그 사건을 예로 들어가며 수속거절을 안내해야 했고..

이에 흥분한 승객들은 "말도 안되는 규정"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시 거금을 주고  공항신도시 애견샵에서 케이지를 구입후, 원래 가지고 잇던 케이지를 보란듯이 우리앞에 던지고 가는 승객도 있었다.


 다양한 많은 경험중에 불현듯 떠오르는 ' 잊을수 없는 사건'이기도 하고.. 그리고 강아지 데리고 여행하는 승객들도 많이 보이는지라 아픈가슴 부여잡고 구구절절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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