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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스몰닷 Oct 27. 2024

104 - 이야기라는 접착제

브랜드들의 마이크로무비(微电影)


중국의 춘절은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일년에 한번이라도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기다리고 기다렸던 명절이기도 합니다. 요맘때 중국 거리의 모습은 가로수와 아파트의 정문에 빨간 홍등이 달리고, 지하철에는 큰 캐리어와 빨간 선물상자를 들고 이동하는 사람들로 분주하지요. 

항저우 춘절 거리 풍경

요즘 중국 시장에서 브랜드들이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 중에 '마이크로무비'의 형식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나 춘절 기간에는 가족과 고향에 대한 마음이 애틋해진 시기에 많은 브랜드들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브랜드가 만드는 '마이크로무비(微电影)' 이야기를 해보려구요. 





 마이크로무비(微电影)


브랜드 설립 20주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로컬 화장품 브랜드 [PROYA]는 23년 한해를 마무리하며 '谢谢‘ 프로젝트를 다시 진행했습니다. 3년전 처음 시작된 ‘谢谢(감사합니다)' 컨텐츠 프로젝트는 두번째 해에는 '谢谢参与(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올해는 세번째 '谢谢记得(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진행되었는데요. 올해는 특히 소비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마이크로 무비를 제작하여 화제를 모았습니다. 


마이크로 무비의 내용은 2세부터 23세까지 조부모의 손에서 자란 어린 소녀 天天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2022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기억을 5만 단어로 종이에 남기기로 하는데요. [PROYA]가 제작한 영화에서는 할아버지가 매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을 어린 天天이보게되고, 그 주인공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로 시작하죠. 편지 속의 주인공 书芬을 찾아 눈 덮인 마을을 찾아 헤매던 天天은 우연히 꿈의 정원에 들어서 신비한 할머니를 만납니다. 영화의 마지막 꿈에서 깬 天天은 꿈 속 인물이 자신의 할머니 宁书芬이라는 것을 알게되죠.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天天에게 매일 할머니를 기억해달라고 말합니다. 눈 덮인 고요하고 신비한 마을, 어린 天天과 우연히 만난 소년이 함께 할아버지의 수수께끼를 찾아나서는 판타지같은 풍경, 곳곳에 있는 상징적 함의로 가득한 언어유희는 중국인들에게 따뜻한 감동과 울림을 남겼습니다. 각자가 '기억'해야할 소중한 것들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면서 말이죠. 영화 '코코'에서도 말하죠, '기억하는 한 끝나지 않는다고' 

[PROYA]의 마이크로무비는 1월 5일 발표되어 10일동안 1600만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또 영화의 울림이 한 방향으로 끝나지 않도록 항저우의 지하철역 '留下역'을 활용해 양방향 소통을 기획합니다. '留下'는 중국어로 '어떤 것을 남겨두고 떠난다'는 의미인데요, 중국인들이 이런 상징적 언어의 아이디어를 좋아하고 감동받기 때문에 특별히 留下역을 선택하여, 마이크로 무비의 이벤트 장소로 활용했습니다.

 

중국인들에게 환영받는 피트니스 브랜드인 [lululemon] 역시 춘절을 맞아 지난 1월 12일 마이크로 무비를 공개했습니다. 《新春,咏春》이라는 제목의  [lululemon]의 단편영화에서는 30년전 중국의 무술 영춘권을 다룬 영화 '영춘'의 주인공 양자경이 등장하는데요. 양자경은 8명의 무용수들과 함께 햇빛과 바람, 물흐르는 소리만 있는 자연 속에서 리드미컬한 균형감으로 영춘권에서 영감을 받은 무술춤을 춥니다. 룰루레몬을 입고요. 중국의 전통유산인 '무술'과 '무용'이 결합된 이 작품은 영춘권의 핵심 가치인 '절제와 균형'을 의미하는데요. 룰루레몬이 지향하는 '몸과 마음의 균형'에 대한 철학을 내포하면서도 춘절기간 전통문화 정신을 전달하며 절묘하게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각인되었습니다. 봄을 맞이하는 춘절이자 민족의 전통인 명절에 새로 태어나는 리드미컬한 생동감과 절제의 힘 그리고 전퉁의 정신까지. 너도나도 '용'을 활용하며 춘절을 맞는 이 시점에 한 층 수준 높은 이 시적인 이야기는 소비자들에게 [lululemon]의 브랜드 이미지까지 높게 평가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죠. 


[Maison Margiela]는 조금은 더 감각적인 모습으로 마이크로 무비를 선보입니다. 춘절을 맞아 마르지엘라는 마이크로무비 '家路依旧(The memory of streets)' 를 제작했는데요. 田帅의 디렉팅, 张家诚이 사진감독을, 글로벌 수퍼모델 雎晓雯이 주연을 맡은 이 단편 영화는 옛 필름 영화의 감성을 가득 담아 제작되어 많은 소비자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maison margiela]의 '家路依旧'

영화 속 雎晓雯은 고향으로 가는 버스 안에 있습니다. 버스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통해 마치 시간 터널을 통과하듯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하나씩 되돌아 보는데요. 시선이 닿는 프레임마다 추억 속의 자신을 발견하고, 기억 속에서 작은 잉어 등불을 들고 기다리던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납니다.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 여유롭고 편안한 어린 시절처럼 가족들과 새해를 맞이하는 춘절의 풍경. 레트로 감성 가득한 렌즈의 감도와 영화속에 등장하는 [Maison Margiela]의 패션이 만나 여유롭고 풍요로운 분위기를 돋보이게 합니다.   


특히 영화는 여행테마의 체험공간 [Maison margeila]의 플래그쉽 스토어에서도 상영되고 있는데요. 플래그쉽 스토어 컨셉 전체를 '공항'으로 잡아 실제 공항에 온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대형 터미널과 공항 셔틀버스, 퍼스트클래스 라운지, 컨베이어벨트 등을 섬세하고 상징적으로 설치해 주목받고 있죠. 홈커밍 시즌인 춘절에 귀향과 여행을 둘러싼 긴 여정의 이야기와 마르지엘라의 패션들을 잘 엮어내면서 꼭 방문해야하는 인증 스팟이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마이크로무비 역시 동시에 상영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행복하고 설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죠. 영화는 춘절을 준비하는 이 기간 웨이보에서 463,000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회자되고 있습니다. 


감성을 소비하는 시대, 브랜드가 소비자들과 교감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브랜드가 던지는 그것이 '나(소비자)'의 어떤 포인트와 맞닿아 공명을 일으키는 모멘트를 찾는 것이 쉬운일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한 마음 한 감성으로 고향을 향하는 춘절 같은 시기를 이용하는 것은 참 영리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나라가 너무 커서 주말마다 맘먹으면 갈수 있는 고향이 아닌 중국이라는 나라에서는요. 이맘때는 누구라도 고향이 그립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옛날 동네의 친구들이 보고싶기 마련이죠. 그런 마음의 틈에 '이야기'라는 접착제가 브랜드와 소비자를 '딱'하고 연결하고 붙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위 사례 말고도 올해는 특히 마이크로 무비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브랜드들이 참 많았어요.


'컨텐츠의 시대'라고 말하는 요즘 시대에 짧은 클릭이지만 두고두고 긴 여운을 남기고 회자되는 방법, 이야기 만큼 강력한 무기가 있을까요? 컨텐츠의 스토리텔링이 브랜드의 코어와 잘 엮일 수록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도 더 끈끈하게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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