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공간의 장소화
건축 설계 수업을 진행하는 공간, 또는 클래스를 우리는 스튜디오라고 한다. 보통은 화가, 사진가, 음악가 등의 작업실을 가리켜 스튜디오라 하는데, 건축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을 왜 스튜디오라 지칭하는 것일까?
단순히 뭐 좀 있어 보이는 것 때문은 아닐 것이고 나도 습관적으로 스튜디오라 부르던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검색해 봐도 딱히 그 유래를 알 수 없어 나름 추측해 보자면, 수업의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보통 설계 수업은 강의로 진행되지 않는다. 5~6 시간의 수업시간 동안에 잠깐의 이론 강의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학생과 일대일 대면 크리틱으로 채워진다.
자기 차례가 오기 전까지 학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노트북으로, 스케치로, 모형으로 설계를 이어간다. 그러다 자기 차례가 오면 교수와 작업한 내용을 펼쳐 놓고 설계를 설명한다. 교수는 의도를 묻고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며, 때론 성의 없는 작업 내용이나 태도에 대해 혼을 내기도 한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주로 혼나는 역할이나 대책 없이 대드는 역할이 주이기는 했다. 자기의 순서가 끝나면 다시 자리로 돌아가 하던 작업을 이어간다.
이렇듯 수업은 설계 과정의 연속선 상에 있게 된다.
뭔가를 배우게 되는 교실이기도 하지만 작업이 진행되는 작업실이기도 한 것이다.
학생들은 스튜디오에 수업이 있을 때만 머무르지 않으며, 설계가 진행되는 학기 내내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그들의 작업 공간이 된다.
이렇듯 예비 건축가들이 지속적으로 머무르며 작업을 하는 장소이니 스튜디오라 부르는 것은 틀리지 않은 호칭일 것이다.
지금은 내가 하는 건축 설계 일을 무엇보다 좋아하지만 학생 때는 그렇지 못했다. 진득하게 작업에 열중하지 못했고 매번 수업에는 그 주의 성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해 말로 때우다가 교수님께 혼나기 일쑤였다.
수업에 흥미를 잃었고 스튜디오는 벗어나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학교 밖 지하 작업실에 처박혀 책을 보거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건축에 대한 헛소리를 늘어놓던, 참 철없던 시절이었다.
나의 불성실이 가장 큰 문제였겠지만, 설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스튜디오를 내가 좋아하는 작업의 장소로 삼는 것에 실패했다.
처음부터 본인의 방이 있는 사람은 모른다. 내 방이 생겼을 때의 그 기쁨을. 나도 내 방이 생기고 난 후에 그 기쁨을 방과 함께 나눴었다. 좋아하는 영화의 포스터와 배우의 사진을 벽에 붙였고 기타를 가장 멋진 자세로 방구석에 기대어 줬고 가장 예쁜 펜들을 골라 가장 예쁜 머그컵 안에 담아 뒀다(마치 꽃병에 꽃을 장식하듯).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방에게 선물하면 그 방도 온통 내 것이 되는 즐거움을 누렸다.
나만의 장소였기에, 공부를 하든 음악을 듣든 아니면 불온한 짓을 하든 내 방에서 하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좋았다.
학기를 보냈던 스튜디오에 내 방에 줬던 마음을 조금 나눠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스튜디오의 내 자리를 나만의 장소로 만들었으면, 도망치 듯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좀 더 설계에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자리에서 연속되는 설계의 과정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진다.
그래서 학기 초 학생들과 대면할 때에는 자기의 자리를 좋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보라고 주문한다.
뭔가 거창한 것을 가져다 놓거나 장식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나의 작업실, 나만의 장소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손쉽게는 자기 책상 앞에 모형재료로 흔히 사용하는 폼보드 한 장 세워 놓고 사랑하는 이의 사진, 건축물의 사진, 스케치, 가훈(?) 등을 핀업해보는거다. 칼판에다 스티커나 낙서를 남길 수도 있고 지난 학기의 모형(마음에 들었다면, 대부분 학기가 끝날 때의 모형은 갖다 버리고 싶은 충동이 더 큰 결과물일 때가 많아서)을 올려놓는 것도 방법이겠다.
설계 수업은 단편적이며 단락적이지 않다. 하나가 끝나고 곧바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수업이 아닌 것이다. 한 학기에 한 놈만 패는 수업이다.
설계 수업은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보다는 좋은 과정을 경험하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작업의 환경은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내 작업 환경이 좋아야 오래도록 사고하고, 방법을 찾고 설계로 구현해 나갈 수 있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공부 잘한다고들 한다. 건축설계 또한 예외는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