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8.19
[K-9 내부 화재, 1997년 연구원 숨진 사고와 유사]
당시 장약에 불붙는 사고 발생
강원도 철원서… 6명 중경상 "불량 장약에 불 붙었을 수도"
숨진 중사, 안전 통제관으로 탑승했다가 참변 당해
중부전선 최전방 부대에서 18일 오후 사격 훈련을 하던 K-9 자주포〈사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군인 1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사망한 이모(26) 중사는 사고 후 호송 중에 숨졌다. 부상한 6명은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부상자 중에는 중상자도 있어 사망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
육군은 이날 오후 3시 19분쯤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지포리의 육군 부대 사격장에서 K-9 자주포 10여 문이 사격 훈련을 하던 중 다섯 번째 포에서 갑자기 화재가 일어났다고 했다. 군 관계자는 이날 저녁 "폭발이 일어났다는 미확인 보도가 있었지만 현재까지는 화재로 파악되고 있다"며 "만일 폭발이 일어났다면 포는 완전히 망가지고 인명 피해가 훨씬 더 컸을 수 있다"고 했다. 군 당국은 장비 결함, 장약 불량, 탄약 관리 부주의 등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방산업계에선 "1997년 12월 당시 개발 중이던 K-9에서 발생한 사고와 유사하다"는 말도 나온다. 당시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 관계자들은 ADD 안흥시험장에서 K-9 시제 1호기의 화력 성능을 시험하고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탄이 발사된 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세 번째 탄이 발사되지 않다가 갑자기 내부가 화염에 휩싸였다.
이전 탄에서 연소되지 않고 약실에 남아 있던 추진제 찌꺼기에 불이 붙어 추진장약(탄을 날려보내는 화약)에 옮아 붙은 것이다. 탑승한 인원은 모두 탈출했지만 삼성테크윈 정모(당시 34세) 대리는 심한 화상을 입고 한 달 뒤 숨졌다.
군 소식통은 "여름철에는 약실이 과열되기 쉬워 운용 지침을 엄격히 지키지 않으면 장약에 불이 붙을 수 있다"며 "만약 운용 지침을 지켰는데도 사고가 났다면 장약 불량이거나 부품 노후화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강원도 철원군 최전방 부대에서 18일 오후 사격 훈련 중이던 K-9 자주포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군 당국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대표적 국산 무기인 K-9은 주로 휴전선 인근 최전방 지역에 배치돼 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잇따라 불량이 발생하고 납품 비리가 적발되기도 했다. 사진은 K-9 자주포 내부에서 병사들이 모의탄으로 사격 준비를 하는 모습.
하지만 다른 군 관계자는 "원인 조사가 이뤄져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내부에서 포탄이 폭발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사고 원인을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정기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는 "정비가 제대로 안 돼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포신 내 이물질이 제대로 안 닦여 있는 상태에서 장전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화약에 불이 붙어 화재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숨진 이 중사는 안전 통제관이었다. 통상 K-9 자주포 사격에는 포 1문당 포반장, 사수, 부사수, 1번 포수, 조종수 등 5명이 탑승한다. 이날 훈련에는 이 중사 등 안전 통제관 2명이 추가로 탑승했다가 이 중사가 변을 당했다.
K-9은 대표적인 국산 무기로, 1999년 이후 900여 문이 백령도·연평도 등 서북 도서와 휴전선 인근 최전방 지역에 배치됐다. 당초 최대 사거리 40㎞가 넘는 세계 정상급 자주포로 주목을 받았다. 우리 군은 '명품 무기'로 선전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잇따라 불량이 발생하고 납품 과정에서의 비리가 적발됐다. 자주포 엔진의 힘을 바퀴에 전달하는 이음매에 문제가 있었고, 엔진에 불량 부동액을 써 엔진 실린더 외벽에 구멍이 생긴 적도 있었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때는 6문 중 3문이 작동하지 못했다. 1문은 포사격 훈련 중 불발탄이 끼어 사격 불능 상태였고, 2문은 자주포 근처에 북한 포탄이 터지면서 충격에 예민한 사격 통제장치의 전자회로에 이상이 생겨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이 일로 K-9을 개발한 삼성테크윈도 풍파를 겪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11년 6월 삼성테크윈의 경영 진단 과정에서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 문화가 훼손됐다. 부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대로(大怒)했고 삼성테크윈 사장은 바로 사표를 썼다. K-9에 대한 이 회장의 부정적 인식은 2015년 삼성이 방산 부문을 한화에 넘기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화테크윈은 지속적 기술 개발로 K-9의 '가격 대비 성능'을 끌어올렸고, 최근 대규모 해외 수출을 잇따라 성사시키며 '불명예'를 씻는 듯했지만, 또다시 '악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