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부산이다.
남동쪽의 따뜻한 지방. 그래서인지 ‘눈’이란 늘 내게 어딘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오는 것과 같이 신비로운 존재였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까지 내가 부산에서 눈을 본 것은 딱 한 번 밖에 없다.
TV에서만 보던, 겨울 서울의 거리에만 내리는 그 눈은 꼭 좋은 일을 가져다줄 것만 같았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녹아서 없어져 버린다는 자연의 섭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드려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곤 오지도 않을 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겨울을 또 기다렸다.
서울 생활 20여 년, 이제 눈이 오면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음날 얼어붙을 거리, 교통 체증, 더러워지는 신발이 먼저 떠오르고, 길을 걷다가 미끄러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눈길을 걷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어느새 ‘눈’은 내게 희망의 상징이 아닌 겨울철 불안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여전히 ‘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눈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에 문제가 있을 뿐.
눈이 단지 눈일 뿐인 것처럼, 겨울철 지나가는 자연의 해프닝인 것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 또한 삶의 과정에서 지나가는 인과의 해프닝이다. 그것에 무게를 싣고, 마음을 주기 시작하며 단순한 걱정거리는 ‘불안’이라는 감정의 문제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 불안한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내려놓는 것이다. ‘생각하기’를 그저 그만두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눈을 감고 앉아 있을 때 노랑 앵무새를 생각하지 말라.”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눈을 감자마자 노랑 앵무새를 떠올릴 것이다. 그 생각은 차츰 강박적이 되어 밥을 먹을 때나 일을 할 때나, 심지어 꿈속에도 노랑 앵무새가 나타날 것이다. 그 새를 괴물로 만드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저
성공학에선 단 10분도 헛되게 쓰지 말라고 한다. 100억을 벌었다는 누군가는 자신을 쥐어짜듯이 다이어리를 빡빡 채워 미친 듯이 한번 살아보라고 한다. 그래서 반포자이에 살고 있다고 한다. ^^;;;
하지만… 난 반댈세. 정작 우리의 영혼은 그 수많은 ‘생각’으로부터의 휴가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하루쯤은 멍청해져도 되는 권리가 있다. 나의 영혼을 위한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