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흔한 배롱나무
가까이서 일어나는 일에 더 세심하게 반응할 감각이 있었다면, 나는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어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십 년간 같이 살던 화분이 집을 나가건 새 화분이 들어오건 알아채 본 적이 없다. 몇 년간 출퇴근하던 길에 건물이 지어지든 없어지든 제 때 깨달아 본 적도 없다. 남편이 나의 이런 특성을 한국말로 무어라고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무심하다’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었지만 그게 정확히 맞는 말인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이런 나와 다르게, 한강변 달리기를 좋아하고, 사계절 산에 오르기를 즐기며, 자연의 변화를 세심하게 느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음악도 그 친구를 꼭 닮아, 나는 그 둘을 모두 좋아한다.
여름학기라는 것을 만든 것이 누구인지 작은 저주라도 퍼붓고 싶게 더웠던 몇 년 전 어느 여름날, 그 친구에게서 사진 한 장이 전송되어 왔다.
선명한 진분홍색 꽃들을 한 아름 피워내며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나무의 사진. 작은 핸드폰으로도 그 사진이 전해주던 기운이 특별했다.
그 나무의 이름은 배롱나무라고 했다. 나는 정말이지 배롱나무라는 말을 태어나 처음 들어보았다. 자매품 메롱나무라도 있어야 균형이 맞을 듯한 약 오르는 이름을 가진 것 치고, 그 사진 속 나무는 무척 품위가 있었다.
광주에서 가까운 화순 만연사라는 사찰에 이 배롱나무가 있다고 한다. 우연히 본 사진에 홀딱 반한 친구는 아주 잠깐의 망설임 끝에 다음 날 새벽 첫차를 타고 광주로 내려왔다. 역시 그녀는 행동력이다. 광주 무등산에 먼저 다녀온 후 화순 만연사에 이 배롱나무를 보러 가겠다고 한다. 광주와 화순은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우리 부부는 그 친구를 맞기 위해 방학 평소라면 생각지도 못할 새벽 시간에 일어났다. 첫 차로 내려오는 친구를 기차역에서 픽업한 후 무등산 입구로 데려가 산악인들이 먹을 법한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산 입구에서 온갖 기개를 갖춘 포즈를 취하며 무더위 산행에 기합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기합 그대로 친구만 혼자 무등산으로 올려 보냈다. 이 날씨에, 이 습기에, 이 고온에, 보통사람인 우리 부부에게 산은 무리라는 것을 친구라면 이해할 것이다, 맘대로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 왔다. 더하여, 초등학교 때 억지로 끌려가던 소풍 산행 이후, 내 평생 자발적으로 오른 산은 없었더라 중얼거림을 보탰다.
한참 뒤 꿋꿋이 산행을 홀로 마친 친구가 내려왔다. 우리는 그녀의 주목적인 만연사의 배롱나무를 함께 보러 갔다.
고즈넉한 만연사에 단단히 서있는 배롱나무는 자연에 별 감흥 없는 나에게서조차 탄식 비슷한 감탄을 자아냈다.
친구와, 남편과, 만연사의 배롱나무.
함께 나무와 사찰 주위를 거닐던 그 평온한 순간들이, 내 삶이 온전하고 괜찮은 것이었다 말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 수많은 조각들 중 한 조각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하루 밤 자고 돌아가는 친구를 기차역에 바래다주며, 그녀도 나도 깜짝 놀랐다.
친구가 사진을 보내주었을 때도, 만연사의 배롱나무에 감탄하던 순간에도, 그리고 당연히 평소에도 전혀 몰랐던 사실.
우리 아파트 앞에 한 50그루쯤 심어져 있는 나무가 모두 배롱나무 아닌가. 나는 어떻게 몇 년간 이 화려한 진분홍색의 존재를 한 번도 알아채지 못한 걸까.
아파트 앞을 지나며 나와 친구는 한참을 웃었다. 친구는 네가 사는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잔뜩 있어 다행이라며 떠났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정말 맞다.
그렇게 배롱나무를 알아본 이후로, 나는 어딜 가나 배롱나무를 본다.
아파트 앞에서도, 학교 안에서도, 여행을 갈 때도.
알아봤다고 들이받은 건 아니지만, 심지어 학교 캠퍼스에서 들이받아 물어낸 나무조차 배롱나무였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나무가 있는 것이 좋다.
이 나무를 볼 때마다, 매일 보던 것을 못 알아보고 화순까지 가서야 감탄하던 나의 무심함과 안목 없음이 어이없어 웃음이 난다. 이 나무처럼,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 아름다운 것이 분명 가까이에 또 있다는 생각에 또 다른 웃음이 난다.
우리나라는 온 천지에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다.
가는 곳마다 눈에 띄는 나의 나무에, 나는 그럴 수 있을 때마다 두 팔을 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