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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 J Aug 26. 2022

사직은 처음이라

나무에게 털어놓는 사직


이제 슬슬 온다.

외면하려 했던 감정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슬슬 고개를 들려한다.

어릴 때 동네 슈퍼들마다 있던 두더지 게임이 떠오른다. 신속 정확히 조준하여 두더지를 주저앉히듯, 불쑥 올라오는 감정들을 빠르게 제압해 왔다. 이제 그것들이 조준할 수도 없게끔 기체화 되어 몸 밖으로 나오려나 보다.


사직서를 냈다. 태어나 처음 써보는 사직서라 인터넷을 찾아보며 ‘사직서 작성법’을 알아내고 상투적인 문장의 사직서를 작성했다. 규정집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사직을 원할 때 어느 부서 누구에게 처음 말해야 하는지조차 나와있는 곳이 없다.  생애 첫 사직이라 큰 실수는 하고 싶지 않아 한두 명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요즘 사람들은 미리 휴가를 신청해놓고, 사직서를 제출한 다음날부터 안 나오는 방법을 쓴다고들 한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내 사직서에 내가 적어 넣은 마지막 날까지 할 일을 다 할 예정이고, 하고 있다.


코로나 격리가 끝난 다음날 학장실을 찾아 사직의사를 밝혔다. 아직 회복되지 못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를 않아, ‘사직하려 합니다’ 란 말을 세 번 반복해야 했다.

“사직하려 합니다” “네? 박교수님 뭐라고 하셨지요?” 이걸 세 번을 했다.

아 역시 사직은 쉽지 않구나.

첫 번째는 좀 떨렸지만, 연달아 세 번을 사직하려 한다 외치다 보니 세 번째에는 이미 사직을 다 한 것 같았다.




현재를 사는 인간형이라, 2022년 1학기 이게 마지막 학기다 이미 마음먹었으면서도 그저 닥친 일들을 해내는데 집중하여 뭔가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예정된 연주를 위해 미친 듯이 연습하고, 맡은 수업에서는 열을 내어 가르치고, 일이 떨어지면 가능한 빨리 학과 행정들을 처리했다.  이게 나의 전공실기 마지막 시험 채점이구나, 이게 서양음악사 마지막 수업이구나, 다 알기는 알면서도 별다른 걸 느낄 틈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학교를 떠나 나라를 떠나 남편의 나라로 가는 날이 열흘도 안 남은 시점이 되니, 바야흐로 모른 척했던 감정들이 온다.


잠깐 학교를 들러 13년을 매일 보던 출근길을 운전해 올라가는데, 늘상 보던 하늘이 갑자기 호통을 치듯 다가왔다. 아직 무더운 여름이지만 가을이 올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파랗디 파란 하늘이 내 눈 속으로, 내 가슴속으로 훅 들어온다. ‘너 이래도 나를 제대로 안 보고 갈래?!’ 하는 듯하다. ‘내가 이렇게 파란데, 내 구름이 이렇게 하얀데, 너는 내 아래 그렇게 조그만 점처럼 돌아서면서, 나를 정말로 안 보고 갈래’ 하는 듯하다. 그 훅 들어옴이 너무 강렬해서 그저 고개를 돌린다고 회피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체념하고 차에서 내렸다. 근무했던 단과대와, 계절마다 바뀌는 꽃빛이 아름다웠던 도서관 앞 큰길들, 그리고 이들이 이고 있는 하늘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눈에 담았다. 햇살이 너무 쎄 제대로 눈을 뜰 수도 없었지만 애써 마주 보며 사진에도 담았다.

사직을 하면 파란 하늘이 보이는구나,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의 나무를 지나친다.

작년 가을, 너무 바빠 차를 중립에 놓은 줄도 모르고 내려버려, 나의 빈 차가 살짝 경사진 주차장 언덕을 뒤로 굴러 떨어진 적이 있다. 차는 스스로 도서관 앞 큰길을 건너 나무 한그루를 부러뜨리고 그 뒤편에 엉망진창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천만다행으로 지나가던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이 사고로 생을 마무리한 것은 나의 차와 배롱나무 한그루뿐이었다. 사고처리 후 보험회사는 학교에 내가 부러뜨린 나무를 다시 심어놓고, 재물 손배상을 완벽히 끝냈으니 한번 가서 보시라며 의기양양 전화를 해주었다. 그때는 ‘네.. 제가.. 굳이 그래야 할까요?’라는 마음이었는데, 요즘들어 가기 전에 이 나무를 한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그래, 내가 13년 가르친 학교를 떠나지만 나의 충실한 보험회사는 이 학교에 나무를 심어주었으니, 또 어떤 정신없는 바쁜 교수가 차를 뒤로 굴려 넘어뜨리지 않는 한, 이 나무는 여기 별일 없이 영원하겠지.

나를 홀짝 들어갈 기세였던 파란 하늘에 처음으로 맺혔던 눈물 반쪽 비슷한 것이, 내가 심어놓은 나무 앞을 지나니 다시 몸속으로 천천히 흡수된다. 이 나무가 나만의 흔적이 되어 줄 듯도 하고, 왠지 이것도 교수업적 중 하나로 쳐줘야 할 것 같은 우스운 맘이 든다.


나무야, 배롱나무야, 내가 부러뜨린 자리에 심어진 나의 나무야.

너는 내가 학교를 그만두기 1년 전 심어져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난 13년을 더할 수 없이 살았다.

광주라는 낯선 곳에, 연고도 인연도 없는 곳에 뚝 떨어져 임용이 되어, 학교에서 가장 어린 교수로 심하게 세상을 배웠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학생들을 더 나은 학생으로 만들고 싶은 열정, 그것밖에 장착이 안되어 있던 어린 신임 교수에게, 아무것도 쉽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고, 옳고 그름이 다르다 해도, 좋든 싫든 내 할 일에 진심을 다했고,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러운 것이 없다. 그걸 학교와 학생과 동료들이 알건 모르건, 그것조차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내 가진 진심과 최선은 다 쓰고 간다.


더 이상의 소진은 이미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깨달았으니, 격무에서 놓여나 마르고 갈라진 땅을 토닥이고, 쏟는 진심만큼 기름지고 풍요해지는 밭을 일구고 싶어 이제 이곳을 떠난다. 소진이 지나쳐 마음에 화상을 입은 듯할 때, 겨우겨우 새 살이 나도록 도와주었던 얼마만큼의 학생들과 얼마만큼의 동료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 내가 떠날거라는 걸 모르면서도, 마지막 학기를 아쉽고 애틋한 마음으로 정리할 수 있게 해 준 학생들에게 고맙다. 그동안 나하고 나눈 것이 그 아이들 인생에 하나라도 남는다면, 전직 교수로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사람으로, 그것만으로도 작은 영광이고 큰 기쁨이다.


나무야,

떠날 때 까지, 파란 하늘이 또 호통을 치려 하면 얼른 너에게 오겠다. 나의 떠남을 가만히 보아주렴, 알아주렴. 너는 계속 굳건히 자라나, 옆에 선 다른 나무들처럼 울창해지고 푸르러 지기를, 진분홍 백일홍을 해마다 찬란하게 피워내기를 바라고 또 바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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