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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Nov 26. 2023

택배 배달일지 6화(험난한 도전과 성취)

분실 사고, 예상치 못한 난관, 그리고 효율성 향상

331개를 배달하다.

갑자기 물량이 폭주한 것인지 300개를 훌쩍 넘어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못 받았다는 전화와 함께 오전 배달이 시작되었다. 여태껏 해본 적 없는 수량이지만 형들이 도와준다 해서 안심하고 있었다. 한 명이 더 지원 왔으니까 아파트 수량만 같이 일찍 뺀다면 중간에 점심도 먹을 수 있고 여유 있게 나머지 번지는 시간 내에 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 바램과는 달랐다. 분명 한 명이 더 와서 빠른 건 사실이지만 양이 너무 많았다. 평소의 두 배 가까운 물량은 시간도 두 배가 필요했다. 그로 인해 오랜만에 처음 겪었던 현타가 찾아왔다. 점차 날은 어두워지고 배달할 물량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고 사고 건 때문에 연락은 계속 오지 힘든 시간이 지속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오후 6시를 넘겨 공장단지에 배송하려 했더니 퇴근했기 때문에 내일 오전에 다시 배송하라는 통화를 했을 때는 화가 났다. 퇴근한 것은 알고 있지만 대화 상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니가 늦어놓고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는 말에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물건을 이슬 맞지 않게 옆집 처마 밑 어디에 두고 간다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잃어버리면 책임지라고 확인받는 것에 또다시 마음이 상했다. 코스가 마지막 지역인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수의 사람이 늦게 받을 수는 없었다. 분명 내 사정인 것은 맞지만 잃어버리면 책임진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마음 편하게 그냥 두고 가세요라고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닌 사람도 있던 것이다. 정나미가 떨어졌지만 다음 배송 물량도 있어 그러려니 넘겼다. 어쨌든 평소보다 2배는 많은 물량을 배송해야 하기에 정신없이 배달했다. 지도 앱과 도로에 있는 도로명 주소를 눈에 불을 켜고 봤고 혹시라도 상가나 공장 사람들이 퇴근할까 봐 부리나케 운전한 것 같다. 당연히 늦었기에 사람들은 많이 퇴근했고 문 앞에 두고 사진 찍은 것을 보내주면서도 내심 마음은 불안했다. 결국 이날 배송은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잠을 조금 자고 다음날 6시까지 출근하려면 잠 잘 시간이 부족했다. 집에 간다고 바로 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3시간 정도 자고 다시 일하러 간 것 같다.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니 몸이 피곤했다. 피곤함을 느끼고 일을 하고 있자니 내심 내 구역이 무엇인가 잘못된 건 아닐까 고민되었다. 일찍 끝내고 쉬려고 형과 같이 일을 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늦게 끝나면 대체 정말로 나 혼자 했다면 새벽 3시까지 해도 못했을 것 같았다.


들리는 말로는 내 구역은 사람이 자주 바뀌는 곳이라던데, 배달을 해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량은 적고 지역은 넓고 코스는 어렵다. 물론 그러니까 사람을 뽑았을 테고, 배달하기 수월한 곳은 자리가 나올 리 없었을 것이다. 팀장도 내가 했던 곳을 배달했고, 처음 온 사람들은 대부분 겪는 곳이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구역을 받게 되어 나아질 거라 했다. 물론 그 말을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분실과의 사투

드디어 오배송 사고가 발생했다. 그렇게 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건만 결국 당했다. 번지가 조금 헷갈렸지만 사람이 바로 나와서 당연히 제대로 준 걸로 알았다. 하지만 10일 후 못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내용물은 시금치였고 물건이 3박스였다. 조금 커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해당 집을 찾아가서 달라고 문의할 수 있지만 시간도 오래 지났고 금액도 12,000원이라 그냥 변상해줬다. 오배송 전화 온 날은 그걸 기억해 내느냐고 현재하고 있는 배달을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 건지 정신없는 하루였다. 해당 지역을 가보니 내가 물건을 잘못 둔 게 기억이 났다. 같은 장소를 보고 지도에 검색했는데 거기다 둔 게 기억났다. 해당 장소에 가봤지만 물건은 당연히 없었고 그곳에 방문해서 달라고 하면 찾을 수는 있을 수 있지만 시일이 너무 지나 꺼림칙했다. 물론 고객이 너무 늦게 전화한 것에 원망도 했지만 애초에 내가 잘못 배달해서 생긴 일이다. 그걸 찾기 위해 내 시간을 써야 하고 찾는다 해도 고객이 거부하면 의미가 없을 거 같아 변상하기로 했다.


2번째 분실사고

한 번 터지니까 연달아서 다음날 또 분실 사고가 터졌다. 이번에는 같은 동네에 건물명이 같은 게 있었다. 도로명 주소가 워낙 틀린 곳이 많고 신주소 구주소를 아직 확실히 숙지하지 못해 생긴 일이다. 단순히 건물 이름만 보고 배달했더니 터진 문제였다. 당연히 같은 건물이라 확신했고 배달했지만 아니었다. 사진 찍어둔 게 있어서 고객에게 확인시켰더니 자신의 대문과 다르다고 했다. 이번에는 다음날 못 받았다고 바로 연락이 온 것이기에 해당 장소를 그날 찾아갔지만 부재중이어서 찾지 못했다. 하지만 메모를 남겨 '오배송으로 인해 연락 부탁드린다'고 남겼고 이후 연락이 왔다. 물건을 찾아가라는 메시지를 받고 그날 회수 후 고객에게 재배송을 하고 분실 사고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이곳은 도로명 주소, 건물명을 모두 봐야 한다. 둘 중에 하나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히 봐야 한다. 왜 이렇게 헷갈리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투덜대봤자 변하는 것은 없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개미지옥에 걸려들다.

배달을 하다 보면 차를 유턴해야 할 일이 많다. 꽤 넓어 보이는 자갈밭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아스팔트처럼 보여 아무 생각 없이 진입했다. 그랬더니 바퀴가 헛돌면서 꼼짝없이 갇히게 되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이곳에 갇힌 것만 같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빠져나오기 위해 좌우로 바퀴를 움직일수록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보다못한 마을 주민 아저씨가 조언을 해줬다. 바퀴를 일자로 하고 힘차게 악셀을 밟아야 빠져나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신이 없던 나는 바퀴가 지금 일자로 된 건지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더욱 밑으로만 빠져들었다. 결국 차에 내려서 상황을 보았다. 보아하니 땅을 점점 파헤쳐서 바퀴가 땅에 더욱 파묻히는 것처럼 보였다. 정신이 없었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내 실력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조언해준 아저씨에게는 방법이 있는 듯 했다. 그렇다면 저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고, 만약 못 빠져나온다면 그때는 렉카를 부르던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저씨에게 혹시 운전을 잘 하시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스틱이냐 오토냐 물어보더니 차에 탑승했다. 내게 조언해준 것처럼 바퀴를 일자로 정렬시킨 후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능숙한 전문가의 솜씨처럼 왔다갔다를 몇 번 하더니 차가 개미지옥에서 빠져나왔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안도의 숨을 그제야 내쉴 수 있었다. 아저씨에게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해드릴 게 없어서 고맙다고만 연신 말을 해댔다.


다행히 바퀴나 차에 문제는 없었고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상하다 싶은 곳은 진입하지 말고 되도록 걸어 다녀야 하며, 아스팔트나 포장도로가 아니라면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진흙탕에 빠지면 좌우로 움직이려 하지 말고 바퀴를 일자로 두고 앞뒤로 왔다갔다 하다가 올라가야 함을 알았다. 내심 좁은 골목을 운전하면서 운전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부족한 것을 느낀 하루였다


오후 5시에 배달업무가 종료되다

 200개 수량을 가지고 처음으로 해가 지기 전에 일이 끝났다. 물론 배달 장소 지역이 먼 곳이 많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점차 익숙해져 가기에 이룬 성과라고 생각한다. 차츰 어디다 물건을 둬야 할지 알게 되어 고객과 통화할 일이 적어지고 헤매는 시간도 줄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고객에게는 물건만 제대로 전달해 주면 서로 통화를 해야 할 일도 없고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없게 되는 것이다. 단지 주소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도로명 주소를 보고 배달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점은 여전하다. 그래서 고객이 도로명 주소를 잘못 쓰더라도 건물명이나 동호수를 보고 배달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어쨌든 애초에 구역이 넓어 더 이상 시간을 줄이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자꾸 하다 보면 수량이 조금 늘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택배 배달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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