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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Dec 03. 2023

택배 배달 일지 7화("빠른 배송과 외국인)

"택배기사의 하루: 빠른 배송과 외국인 고객과의 소통"

오후 4시에 끝나다

길을 헤매는 일도 줄어들고 오배송도 없어지니 끝나는 시간이 빨라졌다. 빨리 끝내려고 뛰어 다닌 것도 아닌데 빨리 끝나서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다. 원래 처음 계획이 빨리 끝내고 다른 일을 하는 거였다. 물론 아직도 더 빨리 끝나야 하지만 처음에 늦게 끝났던 걸 생각하면 많이 발전한 것 같다. 배달 구역이 넓고 변수가 많기에 시간을 더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기 때문에 조금은 더 줄어들 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집에 가니 기분이 묘했다. 다른 사람들의 퇴근 시간에 걸리지 않고 집에 가니 도로 상황도 좋았다. 계속 이렇게 일찍 끝났으면 좋겠지만 지역 자체가 넓고 아직도 모르는 곳이 많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외국인의 택배

외국인들은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아 택배 배달에 어려움을 느낄 거라 지레 짐작하고 겁부터 먹었다. 하지만 막상 전화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주고 받을 때면 즉각적으로 답장을 잘한다. 또한 직접 대면을 했을 때도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해대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소통의 어려움은 조금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서 전달된다. 그럴 때면 한편으로는 내가 일방적으로 한국말만 쓰는 것 같아 약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의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나를 생각해 볼 때 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은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어쨌든 한국 사람과는 다르게 유달리 반가워하고 친절한 외국인을 볼 때면 조금 잘해줘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외국인들의 물건을 문앞에 놓고 갈 때면 사진을 찍어서 전송해 준다. 대화가 되지 않더라도 사진을 보면 본인들의 물건을 잘 찾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한국에 오래 있다 보면 택배기사가 물건을 어디다 두고 가는지 대충 알기에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모를 수도 있으니까 보내준다. 실제로도 그렇게 했더니 고맙다는 답장을 하는 것을 보면 나름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다. 가끔 한국인들의 불성실한 태도로 외국인들의 물건을 신경써주지 않는 모습을 볼 때면 약간 안타깝기도 하다.


방심

너무 안심하고 활동했다. 237개란 역시 버거운 숫자다. 여기서 물량 욕심을 내서 더 하다가는 쓰러질 것 같다. 하루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시간이 아깝다. 하루의 고단함을 맥주 한 잔으로 잊어보려 할 때는 점차 술의 힘을 의지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약물에 의존하는가 보다. 예전에 택배 일을 배우려고 쫓아 다녔을 때 팀장이 그렇게 저녁마다 술 마시는 것을 보고 왜 그런가 했더니 지금은 이해가 되었다. 자꾸 마시려고 하면 버릇이 될 것 같아 자제하려 하지만 하루가 보상받는 느낌이 들어 쉽사리 포기가 되지 않는다.


어제는 쫓기는 꿈을 꿨다. 시간에 쫓기는 내 현실의 모습이 꿈에 투영된 것 같다. 하루 종일 시계만 쳐다본다. 빨리 지금 지역의 물건을 배달하고 다른 지역가서 또 배달해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퇴근하고 싶어서 서두르다 보니 쫓기는 꿈을 꾼 것 같다. 꿈이나 현실이나 계속 쫓기면서 사니 몸의 피로도가 급증했다. 집에서 퇴근하고 누워 있을 때면 꼼짝도 하기 힘든 걸 보면 확실히 무리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타택배사와의 만남

택배 배달을 하다 보면 종종 다른 택배사원들과 마주칠 때가 많다. 서로 같은 곳으로 가게 될까봐 가끔 피해서 가지만 그래도 같이 가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대신 올려준다고 할 때면 나는 사진을 찍어야 된다 해서 거절을 한다. 서로 도우면서 어차피 올라가는 길에 놓고 가면 분명히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내가 정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엊그제는 물건을 잃어버린 타 택배 기사가 물건을 찾아 헤매는 경우를 보았다. 동을 헷갈렸다던가 잘못 가져다 놓은 경우다. 그러한 때에 사진이 없다면 다시 가서 찾아보거나 아파트 CCTV를 봐야만 한다. 물론 잘 되어 있는 곳은 보기 쉽지만 CCTV란 게 택배기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안 규정을 들먹이면서 안 보여줄 수도 있다. 또한 CCTV를 봐서 어디 갔는지 찾는다면 또 그곳에 방문해서 물건을 찾아내야 하는 내 시간을 써야만 한다. 그게 귀찮으면 그냥 변상해줘야 한다. 하지만 고가의 물품이거나 귀중한 자료면 고객의 원성을 들어야 하고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안 그래도 물가가 올라서 변상을 해줘야 하면 10만원 이상을 생각해야 하니 조금 수고롭더라도 사진을 찍는 게 내 방법이다.


물론 어떤 택배사는 프로그램상 무조건 사진 촬영을 하기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아마도 고객이 원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 오배송 확률이 확실히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안다. 찍지 않고 바로 두고 가면 빠르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배달을 다 하고 나서 고객의 항의 전화에 잘 대처할 자신이 없다면 반드시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달을 다 하고 나면 내가 어디다가 물건을 두고 왔는지 기억이 안 나기 때문이다. 200개가 넘는 곳을 머리가 모두 기억한다고 믿는 것은 심각한 착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상황에서의 기억은 현장을 보다 보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고객이 믿을 리 만무하고, 실질적으로 고객이 물건을 못 받았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귀찮다고 대충하다가는 많은 손실과 원성을 들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 와중에 그러한 상황을 모두 견디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름의 방법과 함께 해 나갈 것이지만 일단 나는 그렇게 안 한다.


퇴근길의 모습

오후 6시가 다가올 무렵, 퇴근의 발걸음을 옮길 때면, 수많은 차량들이 도로 위에서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긴 채 정체되어 있다. 이때 같은 길을 걷는 수많은 이들과 함께 돌아가는 그 순간에, 나는 일상의 교향곡에 합류한 듯한 동질감을 느낀다. 다른 이들이 퇴근하는 시각에 내 발걸음도 그들과 함께하고, 세상이 쉴 때 나 역시 쉼을 얻음으로써, 일상이라는 연속된 흐름 속에 내 자신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회사라는 또 다른 공간에서 유사한 패턴을 반복하는 삶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늘 같은 규칙을 따르는 듯하나, 그 속에서 특별한 능력을 드러내며, 타인을 위하거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이들의 존재가 언제나 신비로움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약간은 두서없이 적었지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현실 속에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순간들은, 어딘가 모호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느낌을 안겨준다.


택배 배달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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