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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Dec 10. 2023

택배 배달 일지 8화(택배 못받았는데요?)

택배 분실 대응: 실제 상황과 기사의 고충


택배 못받았는데요?


이제 힘들고 어려운 시기는 지나간 것 같다. 4년 전에 했던 4개월이라는 짧은 경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택배는 진입장벽이 낮고 상대적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 것은 맞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보면 갖가지 어려운 상황을 마주칠 때가 많다. 멘탈 관리가 가장 중요하지만 시간이 없고 해야 할 일이 많을 때는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질적이게 될 수밖에 없다. 신경질을 내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지만 안될 때가 많아 주변 사람에게 화를 낼 때면 미안할 때도 있다. 그런데 또 화나는 일이 있었다.


'택배 못받았는데요?' 느닺없이 오전부터 걸려온 고객의 전화다. 고객의 이름을 확인하고 해당 지역의 배송사진을 보았다. 아무 이상 없이 정확히 배송된 사진이 존재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하고 고객에게 문앞 배달된 사진을 전송했다. 그리고 다시 통화.


고객: '사진은 맞는데요. 다른 택배 물건 다 있는데 제가 아무리 찾아도 그 택배만 없어요.'


다수의 택배와 함께 내가 배달한 택배가 같이 있는 사진이 분명 존재했음에도 무작정 없다고 한다. 더 기가막힌 사실은 나와 통화를 한 이후에 발송한 곳에 전화해서 물건을 못받았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내 눈에 없으면 분실이고 증거가 있어도 막무가내다. 물론 분실접수를 한다면 나는 증거사진을 들이밀고 항의를 할 것이다. 내가 놀란 것은 고객의 나름대로 택배 프로세스 분실 대응이었다. 예를 들어 출발 전 배송예정 문자를 받지 못했고 전화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트집을 잡고 분실접수를 손쉽게 한다는 점이었다.(물론 안하면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그런걸 다하면 오지랖이 넓으신 분들이 하도 연락을 해서 배달할때 엄청 번거롭다. 게다가 난 아직 신참이기에 배달예정 시간을 정확히 말해줄수가 없다. 프로세스대로 한다면 그냥 변상해줘야 한다.) 나처럼 사진을 찍지 않는 기사들이었다면 이런 고객에게 손쉽게 분실접수를 당해서 배상해줬을 생각을 하면 분노가 치밀었다.


다량의 택배박스가 집앞에 놓여 있던 걸로 보아 분실접수를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했다. 발송처에서 내게 전화를 해서 분실유무 확인전화를 해서 내가 배송사진을 가지고 있고 정확한 시간에 CCTV 확인해 보면 될 일이라 했더니 더 이상의 전화는 없었다.


잃어버리면 기사 탓으로 손쉽게 돌려버리는 시스템은 정말 바뀌어야 한다. 사진이 없었다면 하루하루가 바쁜 택배기사에게 이러한 분실건은 그냥 변상해주고 말았을 것이다. 친절한 듯이 통화를 해놓고 발송처에 분실되었다고 접수를 한 그 고객이 생각나서 그날은 오랜만에 현타가 왔다.


사람을 좋아하는 내게 사람에게 그런 뒤통수를 맞고 나니 간만에 사람에 대한 정이 많이 떨어져 버렸다. 간만에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좀 더 많으니까 이해하고 넘기라는 교수님의 옛 조언을 되새겨야만 했다.


수취거부 택배가 배송을 시작했다면 이미 그 과정에 집화터미널 -> 분류터미널 -> 배달터미널을 지난 상태이다. 이미 물건이 이동할 때 금액이 모두 사용되었기 때문에 고객이 물건을 받지 못하겠다고 거부한다면 새롭게 송장을 끊어서 접수해야 한다. 그와 같이 하지 않고 주소만 수정해서 다시 터미널로 가게 된다면 그 물건은 무임승차하는 형국이 된다. 그렇게 되면 돈을 내지 않은 물건이 공간을 차지하고 모든 사람이 나눠서 돈을 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안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해야 함에도 서비스 차원에서 그냥 해준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난감하기 이를 때가 없다. 그럼 서비스는 그걸 해주는 사람이 내야지 무작정 분류 터미널로 물건 상차시켜버리면 정당한 돈을 지급한 사람들이 손해를 봐야만 하는 형국인 것이다. 고객이 물건을 다시 발송하기 귀찮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까 편의를 위해 행하는 것이다.


배달 물량 공개

매월 말이 되니 한 달 배달 실적이 나왔다. 나보다 배달한 사람이 많고 난 평균보다 밑에 수량을 배송했다. 이제 배달한 지 한 달 반 정도 된 나이기에 베테랑 경력자들보다 수량을 많이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힘들어서 많이 하고 싶지도 않다. 수량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리고 퇴근이 늦어지니 그러하다. 신참 내기 구역이 좋을 리도 만무하고 좋다 하더라도 아직 부족한 건 사실이기에 그렇다.


내가 신경 쓰이는 것은 전체적인 배달 물량 공개에 관한 것이다. 마치 월급 공개와도 같은 실적 공개는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이 배달을 많이 한 것을 보면 상대적으로 시기하기 마련이고, 내 구역에 대한 불신이 쌓이는 것을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은 개별적으로 통보를 한다거나 상위 단계에서 자체적으로 물량 조절을 한다거나 할 일이지, 공개의 이점을 나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반대의 입장에 처해 있다면 상대적으로 덜 한 사람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까 싶었다. 물론 다수의 사람들이 불만이 없고 전반적으로 수긍하는 분위기라면 나도 이의 제기를 하기는 힘들 것이다.


직장 생활로 예를 들자면 거의 직원들 연봉은 전체적으로 공지한 것과 다름없는 형태다. 월급 공유는 퇴사 사유라고 들었는데, 개인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언짢았다. 내 나름대로는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한 결과인데, 단지 수량만으로 평가받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이러니 서로 좋은 구역을 가기 위해 입씨름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불만을 제기하면 끝이 없지만, 내가 얼마 벌었다는 사실을 남이 알아봐야 좋은 것은 없다. 회식 때 이야기할까 생각 중이다. 전체적인 배달 실적은 실무진만 확인하고 개별적으로 알 수 있게 말이다. 전반적인 배달 수량을 숨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개해도 어차피 변하는 게 없다면 더욱 실망하기에 그렇다.


불만이 한명 있다면 실제로는 10명정도가 더 있다던데 다른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어째뜬 처음으로 만근한 결과에 내심 기대중이다.


택배 배달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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