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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Dec 24. 2023

택배 배달일지 10화(빙판길 택배)

눈사람과 택배 

급작스러운 폭설과 강풍으로 아침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아파트 입구에 있는 조금만 언덕에서 들어섰다가 곤욕을 치뤘다. 후진으로 잠시 내려갔더니 눈때문에 올라올수가 없는거였다. 경사가 심하진 않았지만 일단 차바퀴가 헛돌면서 제어가 되지 않았다. 무서운 마음에 앞뒤로 왔다갔다만 조금씩 했는데도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택배차는 후륜차이다. 무게는 많이 싣는 화물차이기 때문에 전륜이 아니다. 후륜이라는 것은 앞바퀴가 미끄러 지면 차가 돌기 마련이다. 나와는 달리 전륜차인 승용차들은 유유히 언덕길을 빠져나가지만 난 그곳에서 옴짝달삭 발이 묶여 버렸다. 


그 와중에 아파트 경비가 와서 언덕 밑으로 완전히 내려가서 가속을 해서 올라와 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내 판단에는 그렇게 했다가는 속도가 붙은채로 차가 돌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말은 무시하고 앞 양바퀴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페달을 좀더 쎄게 밟아 박차고 나왔다. 저번 자갈밭에 빠졌을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저번방식과는 반대로 해야만 빠져 나올수 있는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빙판길은 택배 배달을 하기 전에도 화물차로 운전을 해봤기에 나름 경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빙판길은 그냥 조심히 운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한가지는 알고 있었다. 눈이 많이 올때는 곧 제설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진다는 점이다. 무리하게 배달하려고 눈이 많이 올때 운전하게 되면 사고나기 십상이다.


영하2도의 날씨에 눈이오고 어줍잖은 추위가 눈을 녹이고 얼리면 그대로 빙판이 되버린다. 날씨예보를 보고 어느정도 예상했기에 난코스 배달을 뒤로 편성한 내 선택이 옳았음을 알았다. 그렇게 택배배달을 하던중 택배배달 전임자가 전화가 왔다. 이 눈길에 배달 잘 하고 있나 걱정되어 전화했다고 한다. 본인도 빙판길에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을 터다. 아마 내가 난코스를 먼저 하는줄 알고 사고가 날까봐 전화한 모양이다. 그렇게 내가 무사함을 알리고 웬만한 곳은 직접 수레를 이끌고 배달했다. 아파트 배달 지역 이기에 할만 했다. 그렇게 2시간후 눈은 잦아졌고 제설차와 주민들의 제설작업으로 인해 도로 상황이 조금 개선되었다. 배달이 끝나갈때 쯤에는 렉카가 택배차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자칫 저렇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눈길에 화물차는 그냥 운전 안하는게 정답인거 같다. 전국의 택배기사들이 아마 나와같은 상황을 겪지 않았나 싶다. 차가 내의지와 다르게 움직이는 느낌은 경험한 사람많이 알것이다. 


아무튼 빙판길에도 무사히 배송을 완료했고 집에 무사히 도착했을때야 비로서 안도감을 내쉴수 있었다. 다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도 빙판이어서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제설작업의 필요성을 또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도로 전체에 염화칼슘을 왕창 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가지 든 생각은 이런 폭설이 지속되면 배달하는데 시간도 더 지연되고 몸과 마음이 더욱 지칠텐데 단가 조정을 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아파트 주민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눈구경을 시켜주고 눈사람을 만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파트 사는 사람들의 당연한 풍경이었지만 이날 만큼은 내게 그모습이 좋게만 보이지 않았다. 당신들의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 눈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하면서 약간 현타가 왔었다.


그래도 어떤 사람은 고생한다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으니 마냥 불평만 하고 있을수는 없었다. 

 

이러한 험난한 날의 배달 경험을 통해, 나는 일상의 무게와 그 속에서 찾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눈길에서의 고군분투는 택배 기사로서 우리가 직면하는 무수한 도전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고객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안전하게 배달하는 것은 우리의 중요한 책임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눈 내리는 풍경을 즐기는 동안, 나는 그들의 일상이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뒤에서 노력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역할과 각자가 맡은 바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이들은 눈길에서 즐거움을 찾고, 다른 이들은 그 눈길을 헤치며 중요한 일을 이어간다.


폭설과 빙판길에서의 배달은 분명 힘든 일이지만, 이것은 우리 삶의 필수적인 부분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이런 경험은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다시금 인식하게 하며,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우리가 서로에게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생각할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이 날의 경험은 나에게 단순히 물건을 배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게 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게 한다. 폭설 속에서도 계속되는 우리의 노력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오늘의 작은 발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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