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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Jan 07. 2024

택배 배달일지 12화 (분실 시즌2)

물건 못받았는데요? 두번째 이야기

내 물건 어디 있냐구요!

분실 방지를 위해 배송하면서 물건을 놓는 곳을 항상 사진 찍었고, 나중에 자료를 찾기 쉽게 입구 동호수까지 찍으면서 나만의 장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못 받았다'는 고객들의 문의에 사진을 보여주며 쉽게 방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빌런이 등장했다. 문앞에 놓여 있는 배송 사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못 받았다는 전화였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고객: 택배가 문앞에 없습니다. 확인해주세요(매우 퉁명스럽게)

나: 문앞 배송 사진을 가지고 있으니 보내드리겠습니다.


이후 사진을 받고 기분이 조금 풀어진 고객이 택배를 받은 동생에게 확인해보겠다는 대화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정확히 12일 후 고객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고객: 아오, 미치겠네요. 가족들은 안 받았다고 하고 우리 기사님은 받은 거 사진으로 주시기도 하고 참...

나: 아니, 물건을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간 정황만 확인되면 될 일 아닐까요?

고객: 하...

나: 어머니께서 왜 기억을 못 하시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되네요.

고객: 다들 못 받았다고만 하니 저도 짜증납니다. 010-XXXX-XXXX 전화해서 따져보세요. 겁나 짜증납니다.

나: 어머니 아니신가요?

고객: 네, 맞아요. 엄마에요...;;

나: 어머니가 사진은 보셨나요? 고객: 아뇨, 못 봤는데 자기는 계속 못 봤다고 얘기하고 동생도 모른다고 하고.. 나: 그럼 제가 보내드리고 통화 한 번 해볼게요.

고객: 네네..제발 빨리 해결하고 싶습니다. 너무 괴로워요. 010-XXXX-XXXX 제 동생 번호에요.


이후 번호를 받고 어머니께 직접 전화 시도와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결국 통화가 되었다. 어머니와 대화를 하려 했더니 갑자기 여동생이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저는 몰라요

나: 그날 물건이 2개가 배송되었어요. 1개는 받고 1개는 못 받았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을까요? 물건을 어떻게 받게 되신 거에요?

여동생: (약간 얼버무린다)물건을 받은 지가 한 달이 지났고 제가 집에 있어서 물건을 받은 게 아니에요.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이모님이 받으신 거 같은데 이모님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나: 네, 그럼 이모님께 확인하신 후 연락 부탁드려요.

여동생: 네.


그렇게 통화가 끝난 후 다시 3일이 지났다. 당연히 여동생에게 연락은 없었다. 다시 통화를 하게 된 건 그날 또 그 집에 배송 물건이 있어서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2개의 물건을 가지고 집에 방문했지만 당연히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했고 통화를 했다.


나: 오늘도 배송 물건이 있어서 물건을 가지고 왔는데 댁에 계시지 않을까요?

고객의 어머니: 네, 그냥 문앞에 두고 가주세요.

나: 네, 그런데 어머니, 지난번에 분실한 물건 분명히 물건 2개가 놓여져 있는 사진을 보내드렸는데 1개만 못 받았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 아닐까요?

고객의 어머니: 네,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두 아이들끼리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건지 서로 자기 일 아니라고 미루기만 하네요. 한 달이 지났고 저도 제가 받은 게 아니라서요.

나: 그렇다면 물건 배송한 문앞 CCTV가 확인되면 될 일 아닐까요?

고객의 어머니: 네, 그렇죠. 누가 가져갔는지만 확인되면 해결될 것 같아요.


그렇게 통화를 끝냈다. 당장 CCTV를 확인하러 관리사무소에 가고 싶었지만 그저 배송 물량이 많기에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객에게 전화를 했고, 상황이 이러저러 하니 나 대신 CCTV를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고객도 당일에는 힘들고 다음날 관리사무소에 찾아가서 확인해 본다 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영상으로도 확인이 안 되면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다. 고객도 수긍했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5일이 지난 현재까지 연락은 없다. 상식적으로 물건이 2개 배송되었는데 1개만 받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사진에도 2개가 놓여져 있다. 내 것이 아니라고 물건을 밖에 방치한 채 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물며 오빠 이름도 아니고 엄마 이름으로 되어 있던 물건이다. 일을 도와주신 이모님이 물건을 안에 가져 놓았다면 더더욱 일부러 챙기지 않았으리라는 없다. 이모님이 도둑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은 벌어질 리가 없다. 또한 급작스럽게 이모님은 이제 일을 도와주러 나오시지 않는다고 했다.


분실 연락을 내게 한 건 14일이 이미 지났고, 경찰에 신고한다 해도 당사자가 아니기에 어려울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오빠와 여동생 간의 다툼이 원인인 것 같다. 따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엄마와의 사이도 좋지 않아 보이고, 남에게 짜증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녹록치 않은 관계임에 틀림없다. 주변에서는 내게 왜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냐고 한다. 배송 사진도 있는데 뭐하러 스트레스 받냐고 했다.


푼돈이면 상관없는데 260만원의 고가의 제품이기에 그렇기는 하다. 설령 보상해주더라도 50만원 이내까지만 보상하면 된다는 마음까지도 가지고는 있다. 하지만 문앞 배송 사진이 있고 2개의 물건 중 1개만 수령했다는 사실이 있기에 변상해줄 생각은 당연히 없다. 내가 깨달은 것은 만약 배송 사진이 없었다면 난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여러 동료들이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배송한다. 쿠팡은 이미 문앞 배송 사진을 의무 배송하여 고객과의 마찰을 줄였다. 나도 이번에도 사진이 큰 역할을 하면서 고객에게 당당할 수 있었다. 조금 귀찮은 일이 후에는 내게 큰 힘이 되어주면서 고객 장부 관리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사진이 없었다면 난 얼마나 고통쓰러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사진이 없을때 고객이 못받았다고 우기면 그냥 변상해줘야 하는 이 시스템이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 느끼는 순간이었다. 가끔 그냥 물건을 두고 가는 사람을 볼때면 어쩌려고 저렇게 두고 가실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시간이 없는데 언제 찍냐고 묻는 그 사람들의 답변에 사실 나도 할말이 없다. 물량이 많을때 사진까지 다 찍으면서 하기에는 정말로 시간이 없다. 물량이 많을때는 사람을 쓰지 않는 이상 혼자한다면 정말 날을 새서 해도 못할수 있다. 배송을 당일에 하지 못하는 것만큼 문제 되는 것은 없다. 어쩌면 너무 낮은 단가로 인해 수량을 받드시 채워야만 이익이 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런일이 벌어지는것 같다. 적절한 대가를 받는다면 서비스가 좋아 지는 것임에도 여유없는 타임테이블이 사람을 불친절하게 만들어 버린다.


택배 기사가 내 물건을 던지고 간다고 흉만 볼게 아니고 그들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좀 더 배려해준다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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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배달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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