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건 Dec 31. 2023

택배 배달 일지 11화(아픔을 견뎌내며 배달하는 일상)

택배 동료

나에게 구역을 인계해준 동료가 A형 독감에 걸려버렸다. 한눈에 봐도 안 좋아 보이는 상태인 것 같길래 왜 그러냐 했더니 A형 독감에 걸렸으니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 동료는 아파도 쉴 수가 없다 했다.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아파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팀장의 그러한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보니까 팀장도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바로 옆자리라 그런건지 팀장도 독감에 걸렸다는 것이다. 팀장조차 아파도 하는데 팀원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래도 그렇지 열이 39도까지 올랐다는데 구역 배분이라도 좀 하던가 의견 조율 좀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마음속 생각은 뒤로 미뤄져만 갔다.


지금 내 현실이란 당장 내 몸을 챙기는 게 중요하기에 감기 걸린 동료의 옆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꼈다. 선뜻 그의 구역을 도와준다거나 말할 수 없었다. 현재의 내 물량조차 소화하기 버거운데 남의 구역 그것도 생판 모르는 지역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개인사업자이기에 혼자서 감당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들과 같은 환자의 입장이었다면 매우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이제 온 지 얼마 안 된 무언가를 조율하고자 할 수 있는 위치일까? 아닌 난 애초에 이기적인 놈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렇게 난 오늘 그런 동료들을 두고 내 일을 하러 갔다. 일하는 내내 신경 쓰였지만 눈앞에 일이 많기에 일단 잊고 배달을 했다.


택배는 물량이 너무 많아도 문제다. 애초에 사람 혼자서 할 수 있는 량은 한정적이다. 그럼에도 매번 늦은 시간까지 배달하다 보니 결국 병이 나는 것이다. 안 할 수도 없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지쳐서 쓰러져 버릴지 모른다. 오지랖이 넓은 탓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들이 잘 해냈을지 걱정이 앞선다.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해 씁쓸할 뿐이다.


그렇게 동료를 뒤로 하고 내 일을 하고 다음 날이 되었다. 다행히 동료와 팀장은 전일보다 겉모습은 나아 보였다. 하지만 감기가 좀 나았냐는 내 질문에는 아직 그대로라고 답변을 들었다. 자기 나름대로 버텨내기 위해 물량을 자체적으로 다음날로 미루고 소화할 수 있는 적정량을 하는 듯 보였다. 그래도 택배 4년 경력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무조건 해낸다는 마음가짐보다는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해도 문제가 없으리란 판단이었던 것 같다. 생물같은 긴급 배송건은 당일날 배송하고 그 외에는 뒤로 물려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되는 날 배달하려는 모양이다. 고객은 당일날 받지 못해 싫어 하겠지만 그래도 우선 내 건강을 어느 정도 챙기면서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내 코가 석 자이기에 도와줄 수는 없지만 다행히 동료가 쓰러지거나 이탈하지 않아 한편으로는 다행이었고 안쓰러워 보인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 몸 역시 그간의 피로 누적으로 인해 선뜻 발이 가지 않아 남을 위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그냥 놔두고 집에 가고 싶다...

수수료 정산하는 날이 올 때면 하나라도 더 배달할걸 이라고 생각하면서 막상 배달하는 순간만큼은 하나라도 덜하고 싶은 마음은 내적 갈등에 휩쌓이게 만든다. 하루에 300개 배달하고 일당 30만 원이라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려고 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피로감이 심하다. 육체적인 것과 클레임 전화건이 섞이기라도 하는 날에는 첫날 겪었던 도주하고 싶은 마음을 또다시 가지게 만들어 버린다.


그럼에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아무렇지 않은 듯 일하고 있는 옆 동료들을 볼 때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데 안 힘든 척을 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다. 팀장 말이 6개월마다 한 번씩 현타가 올 때가 있다는데 그때마다 물건만 가져다 주면 끝인 일이라고 마인드 컨트롤 한다 했다. 나도 그 말을 가끔 상기시키면서 일을 하기는 하지만 내 몸이 피로해질 때면 가끔 부정하기도 한다.


날이 금방 어두워진다

어쨌든 아파도 견디고 일해야 하는 게 택배 배달이다. 아프지 않도록 건강관리 유념해야겠다.


구독과 라이킷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택배 배달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이전 10화 택배 배달일지 10화(빙판길 택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