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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May 22. 2024

 2화 갈등의 종결과 새로운 이야기의 서막

대립

감독은 소호를 질책하고 있었다.


“아니, 때리는 척만 하던가 힘을 좀 빼던지 해야지 그렇게 때리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사람 한 명 죽을 뻔했잖아! 영화 개봉하기 전에 일을 그르칠 셈이야?”


“실제가 아니면 영화의 완성도는 떨어집니다. 그리고 안 죽었으면 된 거 아닙니까?”


소호는 감독의 질책에 맞섰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죽지는 않았지만 죽을 뻔했다고! 그 배우가 이제 트라우마 생겨서 연기 안 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원래 다 맞으면서 배우는 겁니다. 그도 이번에 확실하게 깨닫고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감독님도 그 장면을 사용하실 거잖아요. 감독님이 원하시는 장면을 드렸는데 이러한 처우는 부당합니다. 계속 이렇게 질책하시면 전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이봐, 말을 끝까지 들어봐.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좀 말아.”


감독은 속이 들끓었지만 이내 영화의 퀄리티를 생각해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애썼다. 그는 깊은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대외적인 시선이라는 게 있어서 자네도 조금만 이해를 해줬으면 해. 한 2주간만 자숙하자고. 사람들 금방 잊을 거야.”


“저야 괜찮지만 감독님의 영화 제작 시간이 지연될 텐데요.”


“그건 다른 장면을 먼저 찍으면 되니까 괜찮아. 그러니 부탁 좀 하자고. 이해해줘. 내가 이렇게 부탁하네.”


감독은 처음 화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소호에게 사정하기 바빴다.


조금은 마음이 풀린 듯한 소호가 감독실을 나섰다. 그런데 그 앞에 주령이 마주 섰다.


“내 공격을 아주 잘 캐치해서 써먹던데?”


“어, 생각보다 그 기술 괜찮길래 써봤어.”


“지난번 총을 꺼내서 겨룬 것도 그렇고 사람을 직접 패기도 하고 너 정체가 뭐야?”


“뭐긴 연기자지. 연기하는 게 안 보이나?”


“내가 볼 때는 넌 연기가 아니라 그냥 실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큭큭, 그래 연기는 실제야. 실제는 연기고 아직도 그게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닥쳐! 넌 그냥 미친놈인 것 같아.”


“그래, 뭐 이해 못하는 사람한테 떠들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근데 넌 내 뒤만 밟고 다니냐? 아, 배역이 죽었으니 일이 없겠구나. 참으로 불쌍하구나. 너와 놀아줄 시간이 없으니 그만 꺼지도록 해.”


“이 xxx야!”


주령은 급흥분해서 소호에게 달려들었다. 소호는 예상했다는 듯이 자세를 바로 잡고 주령의 공격에 대응하려 준비 자세를 취했다. 이내 폭풍같은 주령의 주먹이 소호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소호는 지난번과 달리 쉽사리 훼이크에 속지 않아 유효타가 나지 않았다.


주변 스태프들은 이 상황을 보고 놀라며 웅성거렸다. 하지만 소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령의 공격을 차분히 피했다. 그의 몸놀림은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그런데 소호가 지난번과 달리 엄청나게 빠른 움직임으로 주령의 공격을 피하고 주령의 가슴팍에 주먹을 꽂았다.


“크헉.” 이내 주령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이 멍청아, 내가 진짜로 때렸으면 그 배우는 죽었을 거야. 그런 것도 구분 못하냐. 얼빠진 놈 같으니.”


소호는 그 말을 하고 쓰러져 있는 주령을 두고 나갔다. 주령은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 소호의 펀치는 생각 이상이었다.


다음날...


주령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번쩍 든 주령은 주변을 둘러봤다. 병실은 조용했고, 창밖으로는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몸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고,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한 방에 기절하다니 당해놓고도 믿을 수가 없네.”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감독이 들어왔다.


“어, 깨어났구만. 몸은 괜찮은가?”


“네, 뭐 가슴에 통증은 있지만 견딜만 합니다.”


주령이 병원 침대에 누워 답했다. 창밖으로는 부드러운 봄 햇살이 병실 안으로 흘러들어왔지만, 병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모니터의 심전도 그래프가 주령의 불안한 심경을 반영하듯 규칙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아니, 소리가 나길래 나가봤더니 자네가 쓰러져 있더군. 소호에게 맞은 건가?”


홍 감독이 병상 옆 의자에 앉아 주령에게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와 걱정이 가득했다. 감독의 손에는 아직도 긴장감이 남아있는 듯,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네, 뭐... 제가 도발을 하긴 했습니다.”


주령이 자책하듯 고개를 떨구었다. 한숨을 내쉬며 흰 시트 위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친구는 연기에 진심이지. 자네도 알겠지만, 그 친구가 맡은 배역은 절대강자 캐릭터야. 그걸 실제로 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 거지. 설마 싸움까지 잘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럼 그가 맡은 배역에 따라 급변한다는 이야기십니까?”


주령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궁금증이 섞여 있었다. 창문 밖 나무들의 잎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이 잠시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런데 이 친구는 그 차이가 심해. 뭐랄까, 그냥 그 배역의 사람 자체가 환생했다고 볼 정도이지. 자네도 자네 배역만 집중해서 보지 말고 시나리오 전체를 보고 좀 더 세부적으로 읽어봐.”


홍 감독은 주령의 손에 시나리오의 한 부분을 건네주었다. 시나리오의 종이에서 나는 약간의 향기와 부드러운 촉감이 그 순간을 더 생생하게 만들었다. 그 내용은 소호의 절대강자 캐릭터가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는지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아니, 정보가 새어나가면 안 된다고 부분적으로만 보여주신 게 누군데요? 저도 읽어보게 자료 좀 주세요.”


주령은 억울하다는 듯이 항의했다.


“아, 그랬던가... 비공개는 절대적이지. 아무튼 그런 줄 알고 몸조리 잘하게. 병원비는 내가 내줄 테니 돈 걱정은 말고. 그만 가보겠네.”


홍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나서며 말했다.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네,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령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는 낡은 조명이 깜빡이며 병실의 단조로움을 더했다. 그의 눈에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


몇 시간 후, 몸을 추스린 주령은 퇴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을 나섰다. 병원 복도를 빠르게 걸어 나와 택시에 올라타자, 택시 기사에게 영화 세트장으로 가자고 했다. 강렬한 햇빛이 도로를 비추며 차 안을 따뜻하게 만들었지만, 주령의 마음속은 여전히 차가웠다.


택시에서 내린 주령은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감독의 사무실로 직행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홍 감독이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사무실 안에는 산더미 같은 서류와 책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고, 창밖으로는 도심의 소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니, 왜 이렇게 빨리 퇴원했나? 좀 더 쉬라니까.”


“소호의 집을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알려주실 수 없다면 연락처라도 알고 싶습니다. 그것만 알려주시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감독님도 일이 커지길 원치 않으시죠?”

주령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복수할 생각이라면 그만둬. 이번에는 진짜 죽을지도 몰라. 위험한 짓을 벌일 거라면 알려줄 수 없네.”


홍 감독은 주령의 눈빛을 보고 진심을 느꼈다. 사무실에 퍼지는 커피 향이 그들의 대화를 더욱 진지하게 만들었다.


“아니에요. 정말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못 믿으시겠다면 감독님도 동행하시죠. 아니면 통화 내용을 같이 들으시던가요.”


주령은 진심을 담아 호소했다.


“...좋아, 동행하는 걸로 하지.”


주령은 이내 수긍하고 소호의 집으로 감독과 함께 가게 되었다. 서울에서 한참을 벗어나 도착한 시골길, 주령은 핸드폰으로 주소를 확인하며 길을 찾았다. 시골길은 비포장 도로로, 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피어올랐다.


“흠, 주소지대로면 여기 근처인 것 같은데…”


홍 감독은 주령의 곁에서 연신 투덜거리며 구두에 묻은 진흙을 털어냈다.


“찾았다.”


주령은 낡아빠진 허름한 집을 발견했다. 주변은 조용했고, 들려오는 소리는 새소리뿐이었다. 낡은 대문은 녹슨 경첩 때문에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똑똑똑, 계십니까?”


주령은 문을 두들겼다. 이내 인기척이 들리더니 소호가 대문 밖으로 나왔다. 소호는 주령을 보자마자 한 소리 했다.


“아니, 네놈은 이제 집에까지 찾아오는 거야? 왜 또 맞으러 왔냐? 아니면 복수라도 하시게?”


소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령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고, 긴장감이 맴돌았다.


“상대의 실력을 확인해 놓고 아무 생각 없이 도전할 정도로 난 멍청하지 않지.”


주령은 소호의 반응에 차분하게 대꾸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그들의 대화를 더욱 긴장감 있게 만들었다.


“그럼 왜 온 건데?”


소호는 팔짱을 끼고 주령을 노려보았다.


“널 스카우트하려고 왔다. 지금이라도 복싱계로 진출하면 넌 챔피언이 될 수 있어.”


주령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무슨 헛소리야. 난 연기자야. 그 외에는 관심이 없어.”


소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따라한 내 기술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신인왕을 만들어준 기술이야. 심지어 넌 파괴력이 몇 배나 강력하지. 맷집 훈련만 조금 하면 넌 반드시 챔피언이 될 수 있어.”


주령은 소호의 가능성을 강조하며 말했다.


“그만 꺼져. 난 연기 외에 그 무엇도 하지 않아.”


소호는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처음부터 바로 승낙할 거라고 생각하고 온 게 아니야. 앞으로 매일 찾아올 거야.”


주령은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럼 또 기절시켜주마.”


소호는 주먹을 꽉 쥐며 앞으로 나섰다. 이를 본 홍 감독이 급히 나서서 막아섰다.


“아니 왜들 이래. 또 싸움 나면 이번엔 책임 못 진다고! 연기 안 할 거야? 그리고 주령, 너 이럴려고 그렇게 통 사정해서 온 거야? 왜 연기 잘하고 있는 친구를 자꾸 괴롭히는 거야?”


홍 감독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주령은 홍 감독을 쳐다보지도 않고 소호에게 말했다.


“내 얘기는 끝났으니 가보도록 하지. 아, 그리고 또 기절시켜 준다고? 마음대로 해봐. 연기 경력도 끝장 내줄 테니까.”


“뭐라고 이 xx가…”


소호는 분했지만 참았다. 무언가 준비하고 온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령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소호는 화가 났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감독에게 말했다.


“저 놈이 또 찾아오면 이번 영화 출연을 고사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그만 가세요


소호는 그 말을 하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니 뭐가 어째…”


난감해진 홍 감독은 머리를 긁적이며 본인도 귀가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그는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영화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용한 시골 풍경이 그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주령은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낡은 아파트 복도를 지나며 그는 자신만의 승리를 만끽했다.


“크하하, 드디어 그 꼴 보기 싫은 놈들을 박살 낼 인재를 찾았어! 두고 보라 홍익새, 김언재, 이제 니놈들의 시대도 끝이다. 크하하.”


주령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문 열어. 홍 감독이야.”


주령은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하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홍 감독은 싸대기를 날렸다.


짝!


“너 이 새 xx야. 이 영화에 몇 명의 목숨줄이 달려있는 줄 알아? 너 앞으로 한 번만 더 찾아가면 소호 씨가 영화 출연 안 한다고 이야기 나왔어. 너 이 바닥에서 완전히 매장당하고 싶어?”


뺨을 맞은 주령은 히죽 웃었다.


“이거 분명히 정당방위입니다.”


그 말을 마치고 주령은 홍 감독을 두들겨 팼다.


퍼퍼퍽 퍼퍽!


“으으... 으.” 풀썩, 이내 홍 감독이 무릎을 꿇었다. 홍 감독의 얼굴에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의 눈은 충격과 고통으로 가득 찼다.


"어이, 아저씨! 내가 대우해주니까 만만해 보여? 분명히 말하는데 내가 영화계에서 매장당하면 넌 무사할 거 같아? 너 같은 꼰대들은 이렇게 실력행사를 해야 정신 차리는 법이지. 내 집에서 침 그만 흘리고 언넝 꺼져."


"으으..."


홍 감독은 아픈 몸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주령은 소호를 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소호의 집 앞에 서서 주령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골의 고요함과 초록빛 들판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의 마음속은 싸늘했다.


“그래, 어떻게 생각 좀 해봤나?”


자신감이 넘치는 주령의 질문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소호는 지난번과 달리 침착해 보였다. 대문은 여전히 삐걱거렸고, 집 주변은 여전히 적막했다.


“홍 감독이 이번 영화를 접었더군. 네가 한 짓이냐?”


소호는 주령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누가 한 짓이면 어때? 난 네가 복싱만 하면 돼.”


주령은 태연하게 말했다.


“이따위로 일을 벌여놓고 내가 할 거 같나?”


소호의 목소리에는 냉소가 섞여 있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주령을 노려보고 있었다.


“안 하면 네 연기 인생은 끝난다니까? 왜 허투로 보여?”


주령은 소호의 반응을 무시한 채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다.


“챔피언만 되주면 돼. 연기는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아.”


소호는 주령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네놈은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내가 연기에 미쳤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뭐든지 할 것처럼 보였냐?”


그 말에 주령은 웃으며 대꾸했다.


“어, 넌 연기밖에 없잖아. 그래서 집에도 관심 없고 이런 데서 사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소호가 약간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세상에는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는 놈들이 있지. 바로 너처럼.”


그 말을 끝으로 소호가 주령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주령 또한 그런 행동을 예측했는지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고 소호에게 겨누었다. 권총의 차가운 금속이 햇빛에 반짝였다. 그러자 소호가 권총을 보고 달려들다 말고 멈췄다.


“너 같은 놈이 권총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을 텐데, 소품을 가지고 협박하는 건가?”


“소품이라 생각하면서 왜 멈춘 건데? 사실은 무서운 거지? 혹시 진짜 총이면 죽게 될 테니까 말이야. 온갖 폼은 다 잡더니 만에 하나라는 것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거잖아, 안 그래?”


소호는 그 말을 듣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주령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기에 잠자코 있었다. 주령은 소호가 반박을 못하자 조금씩 소호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뒈지고 인생 끝내기 싫으면 내 말 잘 듣는 게 좋을 거야.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연기 노트를 내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건 없어.”


“시치미 떼지 마. 이미 다 알고 왔으니까. 널 부려먹으려면 나도 안전장치가 있어야 하니까 말이야. 안 주면 넌 오늘 이 자리에서 죽게 된다.”


“좋다. 그럼 안에 들어가서 가져오지.”


타앙!


주령은 소호의 옆에다 총을 한 방 쐈다. 날카로운 총소리가 적막한 시골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그리고 소호에게 소리쳤다.


“수작 부리지 말고 품안에 있는 작은 노트를 내놓으라고.”


소호는 주령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놀랐지만 이곳에서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품안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서 주령에게 주었다.


“뒤돌아 있어. 노트의 내용을 확인해 봐야 하니까.”


소호가 뒤돌자 주령은 노트를 확인했다. 노트의 내용을 일부분 읽는 주령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크크크,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네. 이런 것도 기록하고 봐야 머릿속에 기억하는 모양이지? 똑똑한 줄 알았더니 의외로 허당인가 보네. 크크크.”


그 말을 들은 소호는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내용을 내 머릿속에 각인시키려면 기록한 걸 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지. 또한 유치하다 해서 아무것도 안 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


“그게 바로 멍청한 거지. 똑똑한 사람은 문장을 한 번만 봐도 줄줄이 써 내려갈 수 있는데 넌 그렇게 못하는 거니까.”


“똑똑함이란 자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고 그걸 극복한 사람을 말하는 거지.”


“흥, 서로의 가치관이 너무나 다르군. 그래서 네가 지금 내 총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 이번엔 분명 선수를 빼앗겼어. 하지만 두 번은 없다는 걸 기억하는 게 좋을 거야.”


주령은 노트를 품속에 넣고 의구심을 가졌다. 자신의 정보에 의하면 이 노트는 소호의 보물 1호임이 틀림없지만,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너무 단순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었다. 이내 주령은 한 가지 모험수를 두고자 생각했다.


("그래, 이걸 한 장 찢어서 불태운다고 하면 틀림없이 반응을 보일 것이다.")


찌익!


노트에서 종이를 찢는 모습을 본 소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무슨 짓이야! 네 말을 듣기로 결정했는데 왜 찢는 거야!”


“호오, 반응을 보이는군.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해. 이 찢은 걸 불태워서 없애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그건 목숨과도 같은 노트야! 확인할 생각이라면 그만둬. 네 말대로 복싱을 하지. 그리고 너에게 복수 또한 하지 않는다 다짐하겠어. 이 승부는 네가 이겼다.”


“흐음, 좋아. 그럼 3일 후에 다시 오겠어. 그때까지 모든 뒷정리와 마무리를 해놓도록 해.”


그 말을 끝으로 주령은 소호의 집에서 떠났다. 주령이 떠난 뒤, 소호는 분노에 휩싸였지만 노트를 빼앗긴 사실에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의 손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고, 주령의 말과 행동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령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해서 자신만의 승리를 만끽했다. 도심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혼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소호의 반응이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


집에 도착한 주령은 먼저 노트를 확인했다. 노트에는 간단한 자기 계발 문구들이 적혀 있었고, 주령은 이 단순한 내용이 왜 소호에게 그토록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크큭, 멍청한 놈. 겨우 공포탄 소리만 나는 소품 따위에 속다니. 역시 내 연기가 뛰어나니까. 무슨 기록이 어쩌고 떠들더니 아주 꼴 좋네. 그 자식이 이제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르니 대비해야겠지. 보자, 아니 그 전에 내용을 좀 더 봐두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이상해.”


주령은 별것도 아닌 내용에 소호가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노트의 전체 내용이 궁금했다. 그는 조용한 방 안에서 노트를 펼쳐 들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 모두 자신의 우주를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 좋아하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 없다.

-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휘하는 법을 배운다.

- 타인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중심에 둔다.

- 의미 있는 삶을 설계하고 추구한다.


“이게 뭐야? 그냥 자기 계발서 같은 것에 나오는 내용이잖아? 대체 이딴 게 왜 소중한 거지? 이 xxx 알고 보면 그냥 미친xx 인건가, 아니면 내가 속은건가?”


주령은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어떤 비밀이 적혀 있거나 보물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랬다. 아무래도 주령은 소호가 연기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현재 최고의 연기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 xxx들에게서 벨트를 뺏어와야 해. 장난이든 뭐든 반드시 시비를 붙여야 해.”


주령은 마음속 칼을 갈며 계획을 진행시키는 것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그리고 3일 후...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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