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가 끝나고 이제야 밀렸던 물량들이 차츰 정상화되는 것 같다. 해가 저물고 나서야 집에 도착해 늦은 저녁을 먹던 날들이 이어졌지만, 이제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 기사들도 말은 안 하지만, 그동안 누적된 피로가 풀릴 것을 생각하니 표정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비가 오는 날이면 물량은 많고, 고객님들의 "언제 오냐"는 전화가 이어졌지만, 이제는 그것도 잠시 지나간 풍경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렇게 한바탕의 파도가 지나간 후, 또 다른 파도가 나에게 밀려왔다. 친한 선배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였다.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부고는 몇 번 접해본 적 있지만, 이렇게 가까운 분이 세상을 떠나신 건 나에게 처음이었다.
장례식장은 그저 예의를 차리고 절을 한 후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이번엔 달랐다. 선배의 깊은 슬픔 앞에서 나는 말문이 막혔고,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몰라 더욱 막막했다. 실의에 빠진 그를 마주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지 고민스러웠다. 선배가 갑자기 아버지와 이별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평소 지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선 선배와 짧게 통화를 해봤다. 역시나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평소 사리분별력이 빠르고 냉정하던 모습과는 달리, 선배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 멀리서 오는 게 부담스러우니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연락을 했을 거야.' 나는 그가 너무 지쳐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걸 느꼈다.
"선배, 후배들한테 연락해서 같이 가면 좀 나을까?"
평소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선배였기에, 많은 사람이 찾아가면 그에게 힘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연락처를 뒤져보니 생각보다 연락할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동안 선후배들과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나마 연락이 닿은 선후배들에게 용기를 내어 연락을 돌렸고, 다행히 흔쾌히 같이 가자는 답변을 받았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마음 한켠이 계속 불편했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가고 싶었지만, 몸은 이미 피로에 지쳐 있었다. 이 상태로 장거리 운전을 하면 위험할 것 같았다. 내일 가도 충분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평소 친하지 않은 사람의 부고였다면 돈만 보내 위로를 대신했겠지만, 오랜 시간 봐온 선배였기에 장례식장에 가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남자 형제가 없는 선배는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큰 산을 잃은 기분일 텐데, 그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평소 의젓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무너진 게 아닐까?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먼 길이었음에도 많은 사람이 참석한 걸 보고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평소 선배가 인맥 관리를 잘 해왔던 덕일 터였다. 부조나 화환들도 많이 들어왔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것들은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장례식장의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내 눈에는 혼란 속에서 문상객을 맞이해야 하는 선배의 모습만 보였다.
결혼식 때 테이블마다 돌면서 인사를 하던 느낌과는 달랐다. 다른 장례식장 같았으면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을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터였다. 나는 선배가 어떤 심정인지, 잘 버텨내고 있는지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결혼식과는 분위기가 달랐지만, 선배와 형수는 이쪽저쪽 테이블을 오가며 문상 온 사람들과 대화하기 바빴다.
선배의 감정 상태는 당연히 안 좋아 보였고, 문상 온 사람들을 대하느라 바빴다. 물론 선배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지만, 내가 선배의 입장이라면 나 역시 날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대화를 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남이 아닌 내 아버지였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고 느껴졌다.
뭔가 더 위로나 일을 거들고 싶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내려왔기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나 또한 내일 새벽에 일을 나가야 했기에 올라가야만 했다.
"선배가 이 파도를 잘 넘기고 본래의 컨디션으로 돌아오길 바라지만,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기에 내 감정도 복잡했다. 힘내시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는 내 자신이 아쉬웠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더 무거웠다."
"선배의 슬픔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금 삶의 무상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언제나 예기치 않게 떠날 수 있는 존재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은 그 자체로 기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