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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Sep 20. 2024

끝나지 않은 명절 배송

시간에 쫓기며, 마음에 머물다

명절이 지나고, 한숨 돌릴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올 한 해도 어김없이 선물세트의 무게와 시간에 쫓기며 정신없이 달려왔으니, 이제 남은 일들은 그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으리라 여겼다. 물론 연휴가 끝나면 그동안 보내지 못한 물량이 몰려올 것이란 예감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준비한 태세에도 불구하고, 예상은 빗나갔다. 예상치를 뛰어넘는 물량과 갑작스러운 폭우, 그리고 폭염은 여전히 나를 힘겹게 했다. 비 오는 날, 미끄러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몸으로 깨달았고, 비 때문에 쓰던 모자가 시야를 가리기라도 하듯, 문턱이나 나뭇가지에 걸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불운이 닥칠 때면 '오히려 잘되었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지만, 오늘만큼은 그 긍정의 에너지가 통하지 않았다. 절반은 잘 해냈지만, 절반은 그저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마음을 다스리기조차 어려웠고,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누군가 내 일을 대신 한다면 어떨까. 물론, 택배 경력이 있는 이들이야 금방 적응하겠지만, 오늘 나처럼 힘든 상황에서 내 구역을 맡는다면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제 거의 1년을 같은 구역만 돌며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쫓기며 배송을 하느라 허둥대는데, 다른 사람이 맡는다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대단하지 않다. 다만, 내가 속한 배송 구역 자체가 효율이 떨어질 뿐이다. 시골길이 많고, 급경사와 다리를 건너야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폭우나 폭설이 잦아 언제나 조심해야만 한다. 저녁이 되면 길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워지는데, 웬만큼 지역 지리에 익숙하지 않으면 곤란해지기 십상이다.


이처럼 극한의 지역을 배송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도시와 똑같은 수수료를 받는다는 게 어쩐지 이해되지 않았다. 평소엔 그러한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다가, 오늘처럼 많은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니 그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추석 연휴로 인해 일할 수 있는 날이 짧아졌다. 그나마 한 달 적정 물량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몰아서 하고 있다. 추석 연휴에는 저녁 10시에야 일을 끝냈고, 이제는 그렇게 오래 일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오늘도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내일은 더 늦게 끝날지도 모르겠다. 근로시간이 수익과 직결되다 보니, 그 끝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량을 처리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뿌듯함이 밀려온다. '내가 해냈다'는 보람이 생긴다. 많이 처리한 만큼 수익이 돌아오니, 그 점은 분명 장점이다.


일하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 구역은 이렇고 저렇고, 남의 구역은 왜 저리 좋아 보이는지. 왜 나만 이렇게 힘든가 싶어 절망감이 밀려왔다. 평소엔 그런 생각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막상 일이 힘들어지니 그런 다짐은 쉽게 무너졌다. 지켜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그저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일이 싫은 건 아니지만, 가끔은 누군가 사리사욕을 챙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 불쾌해진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는 것 같고, 나만 고생하는 게 아닌가 싶은 순간엔 더욱 언짢아진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마지막 배송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오늘도 사고 없이 집에 돌아온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이 끝나는데도, 왜 일을 할 때마다 시간에 쫓기는 걸까. 서두른다고 더 빨라지지도 않으면서,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조그마한 불안감이 나를 계속해서 자극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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